독일은 ‘대학생의 천국’이라 불린다. 전통 있는 유명 대학이 즐비할 뿐만 아니라 저명한 교수진, 방대한 도서관 시설 등을 갖추고 있기에 독일만큼 공부하기 좋은 나라를 찾기란 쉽지 않다. 독일의 거의 모든 대학들은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각종 할인과 복지 혜택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매력은 대학 등록금이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빈부귀천의 구별 없이 동등하게 교육받아야 한다는 이념에 따른 것이다.
물론 일부 사립대학의 경우 예외가 있지만, 대다수 대학들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재정 지원으로만 운영된다. 학생들에게는 학기당 100유로(약 15만원) 정도의 행정처리비와 학생회비만 요구할 뿐이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가능한 한 늦게까지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값싼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나 교통비 면제 등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4년 8학기가 일반적인 교과과정이지만, 이 기간에 졸업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번 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전공을 바꾸어 또다시 대학 울타리 안에 머무르려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이 대학생의 평균 연령 조사에서 ‘유럽 최고령’이라는 영광(?)을 안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학들 적자 누적으로 경쟁력 상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 동안 전국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 수는 두 배로 늘어났지만, 정부의 지원액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해볼 때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만성적자 재정으로 도서관은 신간도서 구입을 줄여야 했고, 학교 건물이 낙후했음에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교수 충원은 차일피일 미뤄져 교수 한 사람당 감당해야 할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 큰돈이 드는 실험기자재 마련에 매번 어려움을 겪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때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독일 대학의 위상이 서서히 가라앉는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기관에서 잇따라 발표된 세계 대학 경쟁력 조사는 독일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난 연말 영국 ‘더 타임스’가 조사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세계 50위권 대학 목록에 독일 대학은 딱 한 곳만 턱걸이했을 뿐이다.
사실 독일에서는 대학의 등급을 매기는 일이 무의미한 처사로 여겨졌고, 또 금기된 일이었다. 대학 수학능력시험(하비투어)에서 일정 점수만 넘으면 누구나 쉽게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고, 입학 후에도 얼마든지 학교를 바꾸거나 전국 대학을 돌아다니며 학점을 취득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명문대와 비명문대 구분 자체가 무의미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국제 경쟁체제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면서 미국이나 영국의 몇몇 초일류 대학이 두드러진 모습을 드러냈다. 전 세계 우수 인재들은 이들 대학으로 몰려갔다. 지금껏 맘놓고 있던 독일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신기술이 나날이 개발되는 요즘, 대학을 통한 우수한 두뇌 확보는 곧 국가경쟁력이다. 고급인력은 독일을 외면하고 미국이나 영국 등으로 간다. 무엇이 우수 인재들을 끌어당기는가? 전통 있는 명문대 명성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외에도 경제적인 지원을 포함한 제반 연구 여건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일 대학들은 이런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주도적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독일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슈뢰더 정부에서 이 중차대한 과제를 떠맡은 사람은 에델가트 불만 교육부 장관이다. 그녀는 “독일도 전 세계에 내세울 만한 대표적인 명문대학이 있어야 한다”며 ‘엘리트 대학 육성방안’을 마련했다. 독일 전국에서 5개 대학을 뽑아 앞으로 5년간 막대한 재정보조를 해주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지난해 초 전국적인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대학이 평준화된 현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임의로 몇 개 대학을 선발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야당인 기민당이 다스리는 주정부 측에서는 다른 제안이 나왔다. 대학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이 대학 재정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다. 즉 독일 대학도 이제 등록금을 거두자는 주장이다. 등록금을 거두면 누적된 재정 적자도 많이 해소될 것이다. 대학은 학생을 고객으로 생각해 더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며, 학생들도 대학 운영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학업도 빨리 마쳐야겠다는 자극을 받을 것이다. 각 대학 총장들도 대부분 이와 같은 생각을 밝혔다.
헌재 결정 직후 대학생들 반대 시위
그러나 교육부 장관 불만은 사민당 소속답게 이런 제안에 강경 대응했다. 아무리 가난한 학생이라도 대학 교육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장이 직업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기회균등이라는 대전제를 훼손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학생들이 불만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교육은 국가의 의무다. 학생을 상품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 대학생들이 외치는 구호다.
불만 장관은 2002년 8월 대학 등록금 징수 금지령을 반포한 바 있다. 대학 수업료를 걷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특히 생애 첫 학위를 따기 위한 학업일 경우 절대 수업료 징수를 허용할 수 없게 했다. 다만 예외 항목을 두었는데, 대부분 주에서는 이 예외 항목을 이용해 두 번째 학위를 취득하려는 경우나 12학기를 넘겨서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한편 6곳의 주정부는 이 금지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마침내 1월26일 카를스루에에 소재한 헌법재판소에서 결정이 내려졌다. 등록금 금지령은 각 주정부가 가진 대학 정책 결정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결정이었다. 이에 따라 주정부가 모든 대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이 일에 앞장서고 있는 곳은 독일 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나 바이에른 등 기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주이다.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 서서히 독일 전 지역 대학에서 수업료를 도입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무상 대학 교육’이라는 독일의 전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현재는 학기당 500유로(약 75만원) 정도의 수업료가 거론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다. 학자금 장기상환 저리융자 제도 등 ‘충격 완화’ 조치도 거론되고 있다.
판결 직후 대학생들은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수업료가 부과되면 많은 학생들이 대학 등록을 포기할 것이란 게 이들의 주장. 그러나 이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웃 오스트리아 사례를 통해 희망을 얻는다. 오스트리아의 대학들은 2001년부터 학기당 363유로(약 55만원)의 수업료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체 대학생의 20%가 학교를 떠났으나 곧 원래 상태를 회복했다. 독일에서도 ‘수업료 부과’ 충격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독일 대학의 수업료 부과 조처는 후대에 진보의 한 걸음으로 평가될까, ‘7만인에게 열린 교육의 기회 제공’이라는 전통적 이념이 퇴보하는 첫걸음으로 평가될까. 독일 대학은 새로운 실험에 돌입했다.
물론 일부 사립대학의 경우 예외가 있지만, 대다수 대학들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재정 지원으로만 운영된다. 학생들에게는 학기당 100유로(약 15만원) 정도의 행정처리비와 학생회비만 요구할 뿐이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가능한 한 늦게까지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값싼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나 교통비 면제 등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4년 8학기가 일반적인 교과과정이지만, 이 기간에 졸업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번 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전공을 바꾸어 또다시 대학 울타리 안에 머무르려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이 대학생의 평균 연령 조사에서 ‘유럽 최고령’이라는 영광(?)을 안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학들 적자 누적으로 경쟁력 상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 동안 전국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 수는 두 배로 늘어났지만, 정부의 지원액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해볼 때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만성적자 재정으로 도서관은 신간도서 구입을 줄여야 했고, 학교 건물이 낙후했음에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교수 충원은 차일피일 미뤄져 교수 한 사람당 감당해야 할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 큰돈이 드는 실험기자재 마련에 매번 어려움을 겪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때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독일 대학의 위상이 서서히 가라앉는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기관에서 잇따라 발표된 세계 대학 경쟁력 조사는 독일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난 연말 영국 ‘더 타임스’가 조사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세계 50위권 대학 목록에 독일 대학은 딱 한 곳만 턱걸이했을 뿐이다.
사실 독일에서는 대학의 등급을 매기는 일이 무의미한 처사로 여겨졌고, 또 금기된 일이었다. 대학 수학능력시험(하비투어)에서 일정 점수만 넘으면 누구나 쉽게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고, 입학 후에도 얼마든지 학교를 바꾸거나 전국 대학을 돌아다니며 학점을 취득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명문대와 비명문대 구분 자체가 무의미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국제 경쟁체제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면서 미국이나 영국의 몇몇 초일류 대학이 두드러진 모습을 드러냈다. 전 세계 우수 인재들은 이들 대학으로 몰려갔다. 지금껏 맘놓고 있던 독일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신기술이 나날이 개발되는 요즘, 대학을 통한 우수한 두뇌 확보는 곧 국가경쟁력이다. 고급인력은 독일을 외면하고 미국이나 영국 등으로 간다. 무엇이 우수 인재들을 끌어당기는가? 전통 있는 명문대 명성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외에도 경제적인 지원을 포함한 제반 연구 여건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일 대학들은 이런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주도적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독일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슈뢰더 정부에서 이 중차대한 과제를 떠맡은 사람은 에델가트 불만 교육부 장관이다. 그녀는 “독일도 전 세계에 내세울 만한 대표적인 명문대학이 있어야 한다”며 ‘엘리트 대학 육성방안’을 마련했다. 독일 전국에서 5개 대학을 뽑아 앞으로 5년간 막대한 재정보조를 해주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지난해 초 전국적인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대학이 평준화된 현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임의로 몇 개 대학을 선발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야당인 기민당이 다스리는 주정부 측에서는 다른 제안이 나왔다. 대학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이 대학 재정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다. 즉 독일 대학도 이제 등록금을 거두자는 주장이다. 등록금을 거두면 누적된 재정 적자도 많이 해소될 것이다. 대학은 학생을 고객으로 생각해 더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며, 학생들도 대학 운영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학업도 빨리 마쳐야겠다는 자극을 받을 것이다. 각 대학 총장들도 대부분 이와 같은 생각을 밝혔다.
헌재 결정 직후 대학생들 반대 시위
그러나 교육부 장관 불만은 사민당 소속답게 이런 제안에 강경 대응했다. 아무리 가난한 학생이라도 대학 교육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장이 직업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기회균등이라는 대전제를 훼손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학생들이 불만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교육은 국가의 의무다. 학생을 상품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 대학생들이 외치는 구호다.
불만 장관은 2002년 8월 대학 등록금 징수 금지령을 반포한 바 있다. 대학 수업료를 걷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특히 생애 첫 학위를 따기 위한 학업일 경우 절대 수업료 징수를 허용할 수 없게 했다. 다만 예외 항목을 두었는데, 대부분 주에서는 이 예외 항목을 이용해 두 번째 학위를 취득하려는 경우나 12학기를 넘겨서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한편 6곳의 주정부는 이 금지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마침내 1월26일 카를스루에에 소재한 헌법재판소에서 결정이 내려졌다. 등록금 금지령은 각 주정부가 가진 대학 정책 결정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결정이었다. 이에 따라 주정부가 모든 대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이 일에 앞장서고 있는 곳은 독일 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나 바이에른 등 기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주이다.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 서서히 독일 전 지역 대학에서 수업료를 도입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무상 대학 교육’이라는 독일의 전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현재는 학기당 500유로(약 75만원) 정도의 수업료가 거론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다. 학자금 장기상환 저리융자 제도 등 ‘충격 완화’ 조치도 거론되고 있다.
판결 직후 대학생들은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수업료가 부과되면 많은 학생들이 대학 등록을 포기할 것이란 게 이들의 주장. 그러나 이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웃 오스트리아 사례를 통해 희망을 얻는다. 오스트리아의 대학들은 2001년부터 학기당 363유로(약 55만원)의 수업료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체 대학생의 20%가 학교를 떠났으나 곧 원래 상태를 회복했다. 독일에서도 ‘수업료 부과’ 충격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독일 대학의 수업료 부과 조처는 후대에 진보의 한 걸음으로 평가될까, ‘7만인에게 열린 교육의 기회 제공’이라는 전통적 이념이 퇴보하는 첫걸음으로 평가될까. 독일 대학은 새로운 실험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