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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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감동시킨 ‘18세 퀴즈 영웅’

최연소·최고 상금 영예 이창환군 … 가난 속 어머니 모시며 그늘 없는 생활, 수능서도 대구 ‘수석’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5-01-19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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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을 감동시킨 ‘18세 퀴즈 영웅’
    1월16일 오전 KBS 1TV에서 방송된 ‘퀴즈 대한민국’을 본 시청자라면 한 청년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출제되는 문제마다 거침없이 풀어내다 마침내 ‘퀴즈 영웅’이 되자, 껑충껑충 무대를 뛰어다니며 큰절을 올리던 청년 이창환군(18·사진) 말이다.

    역대 최고 상금인 5810만원을 받으며 최연소 ‘퀴즈 영웅’으로 등극한 이군이,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란 데다, 가정형편 때문에 과외 한 번 받지 못하고도 2005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 대구지역 수석을 차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이 ‘소년 천재’에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는 태연하다. ‘얼마나 고생한 끝에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을까’ 미루어 짐작하던 기자가 외려 민망해질 만큼 밝고 구김살 없는 표정으로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다.

    이군의 집은 대구광역시 반야월. “친구들도 환경이 다 나와 비슷해 어려운지도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대구의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다. 어린 시절에는 21평 ‘내 집’에서 살 만큼 형편이 괜찮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부터 가세가 눈에 띄게 기울었다고 한다. 어머니 혼자 꾸려가는 살림은 자꾸만 이들을 전세로, 월세로 그리고 독지가가 운영하는 무월세 거주 시설로 내몰았다. 생활보호대상자여서 학교등록금마저 전액 면제 받았을 만큼 어려운 살림이었다.

    이군이 ‘퀴즈 대한민국’에서 퀴즈 영웅에 도전하는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스무 살이 되니 고생하는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힌 것도 이 때문이다. 이군은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픈 적은 많았지만, 정작 나는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이제부터 마음껏 효도하라고 이런 운이 주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경제 경시대회서도 입상 경력

    하지만 그가 말하는 ‘운’이라는 것이, 이군에게 이번에 처음 온 것은 아니다. 대구외국어고에 수석으로 입학한 이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전국 고교생 증권 경시대회’에서 전국 2등의 성적을 거둬 500만원의 상금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돈으로 어머니와 남동생 등 세 식구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이후 처음으로 오붓한 외식을 했단다. 이군은 한사코 마다하는 동생에게 “형이 사주는 거니까 받으라”며 휴대전화를 떠안겨줄 수도 있었다.

    전국을 감동시킨 ‘18세 퀴즈 영웅’

    1월16일 방송된 ‘퀴즈 대한민국’에서 우승한 이창환군이 상금이 적힌 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너무 행복했어요. 어쩌면 제가 기억하는 한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웬걸, 행운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이군이 곧이어 열린 ‘제1회 전국 고교생 경제 경시대회’에서도 우수상을 차지해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의 50%’를 장학금으로 받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과학축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12일 동안 첫 해외 여행을 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경제 신문을 읽는 게 재미있었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다른 친구들은 입시 준비에 한창인데 저 혼자 ‘경제학원론’을 읽곤 했죠. 그때는 ‘내가 왜 이러나’ 생각했는데 고2가 되니까 갑자기 증권·경제 관련 경시대회들이 열리는 거예요. 운이 좋았던 거죠. 다른 친구들은 미처 준비하지 않았던 분야라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것 같아요.”

    이군은 화려한 수상 실적을 자랑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던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변명처럼 또 한 번 ‘운’에 덕을 돌렸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운’이라는 것은 세상의 흐름에 신경 쓰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적성을 쫓아 공부해온 그에게 세상이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이군에게 퀴즈 영웅의 ‘행운’을 안겨준 것도 이 ‘우직함’이었다. 드라마보다 시사 프로그램이나 교양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어머니 덕에 관련 분야에 관심이 깊어진 이군은 고3 때도 매일 아침 1시간씩 신문 보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주말이면 4~5종의 신문을 쌓아놓고 꼼꼼히 읽기도 했다. 이런 바탕이 그에게 다양한 상식을 길러주었음은 물론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헷갈렸던 답이 ‘순천’이었어요. 아마 TV로 보신 분들도 눈치 챘을 거예요. 근데 그 순간에 갑자기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읽었던 잡지의 한 부분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 잡지의 특집기사가 ‘순천’에 관한 거였거든요. 그 내용이 불현듯 떠오른 덕에 문제를 맞힐 수 있었지요.”

    어머니도 지난해 위생직 공무원 합격

    그러면서 이군은 “나보다는 오히려 지난해 고졸 검정고시와 10급 위생직 공무원 시험에 모두 합격한 어머니가 더 대단하다”고 슬쩍 말을 돌렸다.

    이군의 어머니 채판순씨(45)는 이군이 가장 존경하고 또 자랑스러워하는 대상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뒤, 이군과 지금은 대구과학고에 다니는 동생이 다닌 초등학교에서 급식담당 직원으로 일했지만 한 번도 자식들의 기를 죽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학교 식당에서 일하시는 게 왜 부끄러워요. 오히려 학교 가면 늘 엄마가 계시니 더 좋았죠. 그런데 연세가 드실수록 무거운 식판, 국통을 들어올리고, 설거지통에 손을 담근 채 수백명 분량의 식기를 닦는 일이 힘에 부치시더라고요. 월급이 적어서 다른 일도 더 해야 했고요. 그래서 작년 7월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셨어요.”

    이군은 “남들은 고3이라고 뒷바라지도 받는다는데, 사실 우리집에서는 내가 ‘수험생 학부모’ 같았다”고 말하며 환히 웃었다. 밤 늦도록 책상 앞에서 일어나지 않는 어머니에게 커피를 타 드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공무원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시죠. 대학 나온 사람들도 못 푸는 문제가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우리 엄마가 46.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셨잖아요. 신학기가 되면 7년 동안 근무하신 제 모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발령’도 받는대요. 정말 공무원이라니까요.”

    이제 이군의 어머니는 직접 음식을 나르거나 설거지를 하는 대신 음식의 간을 보거나 다른 조리원들을 감독하는 일만 하면 된단다. 매일 밤 시큰거리는 손목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어머니를 보며 눈물을 훔치던 이군에게 이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이군은 요새 너무 좋은 일이 많아서 늘 싱글벙글 웃고 다녀 어머니가 “항상 조심해라. 겸손해야 한다”고 충고한다고 했다.

    정말 인터뷰 내내 이군은 잘 웃었고, 많은 일에 감사했으며, 꾸밈없이 기뻐하면서도 겸손했다.

    감사한 이들을 묻는 질문에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가정형편 때문에 학습지 한 권 사지 못하는 자신에게 늘 교사용 학습지를 건네주신 담임 선생님, 어렵고 힘들 때마다 격려해주신 영자신문반 담당 선생님 등을 하나하나 읊어나가다 문득 말을 멈춘다. “감사한 분이 정말 많은데 혹시 빠뜨리면 안 되니, 다 너무 감사하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는 것이다.

    대신 퀴즈대회에 출전하고, 대학 논술고사에 응시하느라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아들처럼 돌봐준 ‘유경용 목사’께만은 꼭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유 목사는 서울에 묵을 곳이 없는 지방 학생들을 위해 무료 홈스테이를 해주는 분이라고 한다.

    이군은 이번 입시에서 서울대 경영학과에 지원한 뒤 현재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에 가면 진짜 멋들어진 연애를 하고 싶고,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많은 경험도 해보고 싶단다. 세계 최고 기업의 CEO(최고경영자)가 되어 경륜을 쌓은 뒤 중년이 되면 나라에 봉사하고 싶다는 포부도 풀어놓았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정말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이다. 상금 가운데 이공계 장학금 기증액을 제외한 2000여만원을 모두 고생한 어머니에게 드릴 생각이다.

    이군은 꿈 많고 이룰 것도 많은, 그의 미래를 지켜보는 이들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줄 만한 건강한 열여덟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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