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IT 벤처 기업인 소프트뱅크, 라쿠텐, 라이브도어가 입주한 도쿄 도심의 최고급 빌딩 ‘롯폰기힐스 모리타워’가 멋진 야경을 자아내고 있다.
첫 번째는 인터넷 벤처기업이 속속 프로야구계에 진출하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계 기업인으로 ‘일본 IT 업계의 황제’로 불리는 소프트뱅크 손정의(일본명 손마사요시) 회장이 최근 일본 프로야구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팀을 인수했다.
이에 앞서 신규 프로팀 창단을 놓고 다툰 라쿠텐(樂天)과 라이브도어 역시 모두 인터넷 관련 기업이었다. 마지막 승자는 센다이(仙台)를 홈으로 하는 라쿠텐. 신생 인터넷 기업 라이브도어에 비하면 온라인 호텔 예약, 여행 업계에서는 단연 선두로 자리를 굳힌 기업이다.
손 회장으로 주인이 바뀐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팀의 전 주인은 한때 유통업계의 신화로 군림했던 백화점 그룹 다이에였다. 또 라쿠텐과 라이브도어의 프로야구팀 창단 경쟁을 일으킨 계기는 철도 유통 그룹인 긴테쓰 그룹과 금융 리스 그룹 오릭스가 각각 소유하던 팀의 합병으로 전체 프로야구팀 수가 12팀에서 11팀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IT 창업 붐 꺼진 불 아니다”
일본 경제계에서 IT 기업이 뜨고, 유통·금융 등의 기업군이 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잇따른 IT 벤처기업의 프로야구계 진출로 한동안 거품으로 여겨졌던 IT 업계가 다시 일본 사회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착실하게 내실을 다져온 기업마저 ‘IT 거품 붕괴’에 묻혀 가볍게 본 것은 아니었나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1년 IT 관련 기업의 주식이 급락하며 일어난 ‘IT 거품 붕괴’ 이후 이제 벤처기업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이 많다. 하지만 2004년 신규 주식 공개 기업 수를 보면 10월1일 현재 110개사. 올 연말까지 160~170개사로 추정된다. 이는 2000년의 204개사에 비하면 적으나 2001년 169개사에 맞먹는 수다.
일본에는 2000년을 전후한 인터넷 벤처기업 붐 말고도 ‘벤처 기업 붐’이 세 번 있었다.
1차는 고도 경제성장으로 일본 경제가 폭발적 팽창을 하던 1970~73년 ‘탈(脫)샐러리맨 창업 붐’이다. 외식업체 스카이락, 게임업체 코나미 등이 이때 등장한 대표적 기업이다.
2차는 83~85년의 서비스 산업 붐. ‘미국 추월도 시간문제’라며 맹렬한 기세로 성장한 일본 경제의 과실이 개인에게 착실히 분배되면서 일반인들이 삶의 질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던 시기다. 소프트뱅크, 여행업체 HIS, 게임업체 캅콘 등이 이때 탄생했다.
3차 붐은 93~96년. 이때는 연간 약 150개 기업이 신규 주식상장을 했다.
그러나 이 세 차례 벤처 창업 붐은 각각 유가 폭등에 따른 ‘오일 쇼크’, 일본 엔화 가치의 상승, 금융불안 등으로 찬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이후 신규 주식상장 기업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은 2000년을 전후해 일어난 IT 거품으로 상황이 반전된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수익모델을 갖추지 않고 유행처럼 창업을 하면서 주가 폭락을 가져와 새로운 거품으로 그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신규 상장기업 수를 보면 2002년 124개사, 2003년 121개사로 세 자리를 유지했으며 올해는 약 170개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런 까닭에 IT 창업 붐은 결코 꺼진 불이 아니라, 분명한 경제계의 흐름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신규기업 업종은 표1 참조).
전문가들은 또한 신규 상장기업 수 못지않게 상장 폐지, 즉 ‘퇴장’ 종목 수에 주목한다.
90년대에는 연간 5~20개사 정도였던 것이 2000년 이후 해마다 40, 50, 70, 83개사로 크게 늘었다. 이는 전통을 가진 기업이 급속히 경제활동의 전면에서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모델을 가진 기업이 자리를 차지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의 경우 신규 상장기업 수와 퇴장 기업 수가 거의 비슷하다. 약자는 사라지고 강자만 살아남는, 사활을 건 경쟁시대. 일본 경제가 변혁기를 맞아 퇴장 속도가 빨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터넷 기업의 건재는 주식 시가 총액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표2 참조).
일본의 주간경제전문지 도요게이자이 11월6일자에 의하면 1위를 차지한 야후재팬은 3조 6222억엔(약 36조2220억원), 2위 소프트뱅크는 1조6799억엔(약 16조7990억원)에 달한다. 야후재팬의 최대 주주는 소프트뱅크와 마찬가지로 손정의다. 손정의가 ‘IT 업계의 황제’로 불리는 것은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도쿄 시내 초호화 빌딩에 사무실
대부분의 일본 기업 결산연도는 4월~다음해 3월이다. 따라서 상반기는 4~9월이 된다. 야후재팬의 상반기 실적을 보면 매출 509억엔(약 5090억원), 경상이익 273억엔(약 2730억원)이다. 전기 대비 매출은 54%, 경상이익은 56% 신장된 것으로 역대 최고 이익을 냈다. 매출액 대비 이익률이 50%를 넘는다는 것은 은행 금리 0%대의 일본에서 경이적인 일이다. 세계적 전자업체인 마쓰시타 전기나 소니의 이익률이 수%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야후재팬이 얼마나 ‘손쉽게’ 돈을 벌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야후재팬 뿐 아니라 다른 인터넷 기업도 원기왕성하다. 프로야구계 진출을 선언해 화제를 모은 소프트뱅크, 라쿠텐, 라이브도어가 모두 인터넷 업체다.
이들 사무실이 현재 입주한 빌딩을 보면 매우 상징적이다. 도쿄 시내 초호화 고층빌딩인 롯폰기힐스의 모리타워에 모두 사무실을 갖고 있다. 18, 19층엔 라쿠텐이, 25~27층엔 야후재팬, 38층엔 라이브도어가 입주해 있다. 신흥 부자 기업이 한껏 돈 자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인터넷 기업의 약진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인터넷 사용자의 급속한 증가를 들 수 있다. 현재 일본 인터넷 접속자는 전체 인구의 반인 6000만명을 넘어섰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초고속망 보급은 늦지만 휴대전화를 이용한 무선인터넷 이용자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유사한 사이트가 많지만 이용자는 순위 1, 2위 기업의 사이트로 모여드는 경향을 보인다. 접속 이용료를 챙기며 자금 여유가 생기면 업계 수위 기업은 새로운 서비스로 하위그룹과 더욱 격차를 벌여나간다. 소수의 승자가 벌이는 돈 경쟁에 다른 기업은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높은 이익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는 소수의 승자는 사업 범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를 어떤 이들은 ‘점과 점을 이어가는 단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인터넷 기업들은 이러한 사업 확장 전략을 위해 프로야구팀 운영에 들어가는 경비를 ‘껌값’ 취급한다.
일본에서는 모든 거품이 사라지고 이제부터 진정한 벤처기업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새해, 한국의 벤처기업들도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며 다져온 뚝심과 묵묵히 기르고 다듬어온 실력을 한껏 발휘하는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