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톰킬릭성당, 세풍 옷을 입은 탈린 시민들, 전거로 세계일주를 한 스위스 친구와 발틱해 앞에 선 필자.(왼쪽부터)
라트비아-에스토니아 국경을 통과해 에스토니아에 접어드는 순간, 고속도로처럼 잘 정비된 도로를 만나면서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빠른 에스토니아의 성장속도를 실감했다.
단조로운 국도에서 벗어나 해안선을 따라 작은 마을들이 이어지는 지방도로를 달린다. 10여km마다 하나 둘 자리잡은 시골 마을에서는 조용하지만 어딘가 기운 넘치는 삶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에스토니아 인구는 한국의 광역시 규모인 136만여명. 국토의 반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유럽 동화에 나오는 숲 속 작은 왕국 같은 느낌을 준다.
국토가 작고 인구가 적어 세계사에서 그다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 없는 이 나라는, 그만큼 신비로운 미지의 땅이다. 10여년 전 사회주의 소련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올 5월 EU(유럽연합) 가입과 동시에 급속도로 서구화 물결 속에 휘말려 있지만, 자본주의의 악영향이 그다지 미치지 않은 덕에 중세풍 거리와 진정한 의미의 유럽적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산한 지방도로를 지나다 무척이나 인상적인 작은 성당이 있는 마을 입구에서 길을 멈췄다. 늦은 점심도 먹어야 하고 얼마간 휴식도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저편에서 내 짐의 두 배는 족히 돼 보이는 짐을 실은 자전거 여행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나를 본 적이 있단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굉장한 경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7년에 걸쳐 자전거 하나로 세계일주를 한, M. 클라우드라는 40대 초반의 이 스위스 친구는 여정의 기록을 ‘길가의 노래(Le Chant Des Roues)’라는 책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스위스를 출발해 제정러시아 도읍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달리고 있다니, 마침 같은 방향이다. 우리는 함께 캠핑을 하기로 하고 대화를 나누며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여행 중 우연히 같은 방향의 동반자를 만나는 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중간에 합세한 키가 장대만한 20대 초반의 오스트리아 출신 친구까지 함께, 발트해에 면한 해변가 숲 속에 텐트를 쳤다. 여행자들, 특히 홀로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들은 만나는 순간부터 동료애를 느끼며 허물없는 친구가 된다. 발틱해를 빨갛게 물들이는 석양 아래 펼쳐진 그날 밤의 대화는 그들과 내가 자타(自他)라는 존재감조차 잊게 했다.
에스토니아의 작은 시골 교회당, 석양에 붉게 물든 발틱해, 길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들과 함께 캠핑하는 모습.(왼쪽부터)
다음날 오후, 우리는 페르뉴라는 에스토니아 남서부 굴지의 해변 휴양지에 도착했다.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발트해의 섬으로, 간밤의 친구들은 나도 함께 휴양지로 가기를 권했지만 나는 홀로 강변의 캠핑장을 찾았다. 이곳을 둘러본 뒤에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러시아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수도 탈린으로 이동해야 한다. 비자문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행을 즐길 형편이 아니었다.
활기 넘치는 라트비아 수도 리가가 ‘발트의 수도’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면,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은 ‘발트의 박물관’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중세풍 도시 전경이 그대로 간직돼 있기 때문이다. 페르뉴를 출발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탈린에 도착했다.
제정 러시아의 고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등에 업고 핀란드를 눈앞에, 스웨덴을 코앞에 마주하는 탈린. 중세부터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그 존재 가치를 꽃피워온 700년 역사의 도읍지는 바닷가 조그만 언덕에 피어난 중세의 향기와 빛깔을 간직한 한 송이 주황빛 꽃을 연상시켰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동화 속 작은 왕국 성문에 다다랐을 때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음이 옮겨진 것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욕심 때문인지.
자전거를 끌고 중세 성벽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작은 성문을 통해 옛 시가지 거리로 접어들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에 도달해 미로 사이를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정신없이 한참을 걷다가 압도되는 아름다움에 지쳐 성 밖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역사의 무게에 눌린 느낌이다.
지나가는 경찰관에게 시 외각에 있는 캠핑장을 확인하고 자리를 옮겼다. 자전거 여행자들은 시내 관광을 즐기기보다 캠핑장에서 여행 장비를 수리하거나 독서와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내는 습성이 있다. 반갑게 맞이하는 다른 여행자들 텐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서로 여행 정보를 교환하는데 러시아를 거쳐온 사람이 없다. 다들 까다롭고 비싼 비자와 치안문제 등을 이유로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것이다. 비자 발급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위해 오히려 더 대화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다 상당히 흥미로운 여행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네덜란드 부부도 만났다. 북유럽에서 아프리카 최남단까지 2년에 걸친 여정을 예정하고 떠나온 친구들인데, 부인은 30대 중반이고 남편은 나와 동년배로, 둘 다 다국적 기업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매니저로 일했던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만나온 자전거 여행자들을 보면, 자전거 여행과 관계 있을 법한 문학도나 철학도는 없고 오히려 현대과학의 첨단이라 불리는 분야인 IT(정보기술) 쪽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수학과 자전거, 논리와 자전거, 전자와 자전거의 관계가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연구 주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날 아침 러시아 대사관을 향했다. 비자 신청차 왔다며 러시아 측 호스텔로부터 팩스로 받은 숙박예약 확인서를 건넸는데, 단 한마디로 묵살당했다. ‘오리지널 페이퍼!’ 원본을 가져오란다. 완전히 구석기 시대의 업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전자메일 시대라 팩스조차 신석기 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는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러면서 여행사를 통하라고 조언까지 한다. 누군 몰라서 번거로움을 무릅쓰면서까지 팩스를 받았겠는가! 여행사를 통하면 비자신청 비용이 몇 배가 된다.
200유로 거금 주고 일주일 기다려 러시아 비자 받아
여행사를 다 돌아보니 비자 발급 비용으로 거금 200유로(30만원가량)를 요구하고, 일주일씩이나 걸린다는 똑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고민에 휩싸여 있는데, 싸게 신청하려면 본국인 한국에 돌아가서 하란다. 러시아를 갈 것인가, 아니면 핀란드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핀란드 헬싱키까지는 불과 70km 거리. 비용은 러시아 비자 값의 10분의 1이면 된다.
하지만 시간을 끌수록 문제는 복잡해지고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어떤 노력과 대가를 치른다 해도 한 번 정한 길을 간다. 결국 여행사를 통해 비자 대리신청을 부탁하며 여권을 맡겼다. 한 달 여행경비가 한순간에 날아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자를 기다리며 일주일씩이나 탈린에 있을 수는 없어서 여정을 계속하며 국경 근처에까지 갔다가, 짐을 맡겨두고 여권만 받으러 오기로 결정했다.
탈린과 러시아 사이 국경도시 나르바에 있는, 해변가를 따라 광대한 원시림이 이어지는 라헤마 국립공원을 찾았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뭔가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만큼 힘든 것은 없다. 그것도 텅 빈 주머니로. 마음을 비우고 국립공원 안에 있는 캠핑장에서 고요함 속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비자를 받는 날! 러시아 비자 쪽지가 붙은 여권을 보물인 양 속옷 복대 안에 넣고 국립공원을 출발해 하루 반나절 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빗속을 달렸다. 마침내 이틀째 오전, 에스토니아와 러시아 국경선으로 흐르는 다리 위에 검은 먹구름을 짊어진 채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