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대해 위헌 심판 제청을 낸 배우 김부선씨.
등산과 마라톤을 즐긴다는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으며 표정도 밝았다. 그는 다국적 대기업인 패스트푸드사의 주장이 진실이 아니듯, “미국이 혹은 유엔이 (대마초가) ‘나쁘다’고 하니 무조건 그렇다는 논리 역시 헛소리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김씨는 10월 이런 이유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법)에 대해 위헌 심판 제청을 냈다. 올 8월 마약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던 김씨는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대마초에 대한 한 여배우의 ‘행복추구권’ 주장과 위헌 심판 제청은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만 않다. 김부선씨의 인터넷 다음 카페에 지지자들이 모이고 있으며, 가수 전인권씨가 자신의 경험을 들어 김씨 주장에 공개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잡혀가지만 않는다면, 아들에게도 대마초를 피우게 하겠다”라고도 했다.
김부선씨의 주장에 공개 지지 발언을 한 가수 전인권씨.
경찰에서 20년 동안 마약 범죄를 다뤘으며 현재 마약범죄학회 회장인 전경수 박사(광운대 교수)는 “대마초는 코카인이나 헤로인 등과 달라 마약관리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없다. 유해 정도나 중독성에서 술, 담배, 대마초가 비슷하다. 담배 많이 피워 죽었다는 사람은 많아도, 대마초 많이 피워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경우는 별로 못 봤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따라서 대마초를 중독성이 강한 헤로인이나 필로폰(히로뽕)과 똑같은 ‘마약관리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살인미수범죄에 해당)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김부선씨가 “온 국민이 대마초 하자는 소리로 곡해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것에 비하면, 대마초 합법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작가 유현씨의 책 ‘대마를 위한 변명’(실천문학사 펴냄)은 내용 면에서 훨씬 급진적이다. 작가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대마초를 금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대마초가 ‘저급한 인종이 사용하는 미치광이의 약물’로 인식된 역사적 배경에 자본과 정치의 냄새나는 결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30년대까지 질 좋은 펄프와 섬유 원료로 대규모 재배되던 대마는 섬유기업 듀폰과 제지 재벌이었던 허스트(황색 저널리즘의 창시자로 꼽히는)의 이해에 따라 만들어진 ‘마리화나 세금법’에 의해 멸종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과 체제에 대한 통쾌한 반격을 그린 영화 ‘바람난 가족’과 최근 개봉한 영화 ‘귀여워’, 엄정화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캐릭터를 드라마 ‘12월의 열대야’로 끌어왔다(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보성 등에서 300가구 정도가 수의(壽衣)용으로 소비되는 대마 농사를 지을 뿐이다. 유씨는 내년부터 ‘합법적인’ 환경, 의료, 진보 운동으로서 대마를 재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마초와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적 분석이 ‘대마를 위한 변명’이라면, 아편에 대한 중립적 묘사는 10월 말에 나온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에 있다. 대마초에 비해 훨씬 중독성이 강하고 치명적인 아편 역시 20세기 초까지는 ‘만병통치’ 약품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대마초나 아편에 대해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금기 중 하나다. 일반인들은 대마초와 아편, 필로폰, 헤로인, LSD가 다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마약 중독자’라는 낙인과 처벌의 공포만을 떠올릴 뿐이다. ‘마약’에 연루된 연예인은 돌팔매를 맞으며 최소 1~2년간 ‘자숙’해야 했고 영원히 유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금기에 대한 저항은 뚜렷해지고 있다. ‘대마초를 피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아니라, 대마초가 무엇인지 알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전경수 박사는 김부선씨의 위헌 심판 제청 소식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호주제’ 고사 직전 … ‘동성애’ 보는 시각 많이 개선돼
대마초 외에 우리 사회의 금기 중 최근 가장 강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은 아마도 가부장제와 일부일처제에 의한 ‘가족’일 것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도 간통제 폐지에 동의하고 있으며, 호주제는 고사 직전에 처해 있다. 가장 대중적인 영화에서도 가족제도를 조롱하는 작품을 만들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바람난 가족’의 제작자 심재명씨는 “남성 투자자들이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모욕받은 심정으로 돈을 구하러 다녔지만, 관객들은 엄청난 지지를 보내주었다”고 말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즐겁게 바람피우는 유부녀로 나와 많은 남편들을 불편하게 했던 엄정화는 지금 드라마 ‘12월의 열대야’에서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불륜’ 드라마는 홍수를 이루고 있으며, 가장 보수적인 작가들조차 ‘불륜’을 ‘나쁘다’고 그리지 않는다. 금기는 이처럼 인기 있는 상품이 되기도 한다.
영화 ‘어린 신부’, ‘여선생 vs 여제자’는 금기시됐던 소녀들의 사랑, 정확히 말하면 ‘성’을 판다. 영화에서 섹스를 하는 주인공들의 나이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으며, 새 영화 ‘귀여워’에는 아예 한 여자를 아버지와 형제들이 사이좋게 ‘공유’하는 가정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청계천 철거 논리와 이 부도덕한 집안의 오버랩으로 인해 강력한 정치적 함의를 띤다. 단란한 가정의 모습은 ‘리얼리티’를 상실한 것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우리 사회는 가정과 결혼이 이데올로기로만 엄격하게 남아, 오히려 역설적으로 ‘바람’이 가정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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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특별법 둘러싸고 ‘성적 금기’에 대한 찬반 대결
홍씨의 커밍아웃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금기를 단숨에 깨는 효과가 있었다. 공중파 TV에서 게이 커플의 결혼식을 중계하고, 서울 도심에서 해마다 ‘게이-레즈비언 페스티벌’이 열려도 ‘금기’에 대한 저항으로 보이지 않는다.
몸과 성적 욕망에 대한 금기는 이제 말하는 것조차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한때 공중파 TV에서 단속을 하던 배꼽티나 머리 염색은 말할 것도 없고 ‘신체에 대한 훼손’으로 금기시되던 ‘피어싱(신체의 특정 부위를 뚫어 장신구로 치장하는 일)’이나 문신도 이제는 패션으로 받아들인다. 엽기 가수 ‘춘자’는 노출과 커다란 문신, 스킨헤드 등 온갖 금기에 저항한 외모로 인기를 끈다.
최준식 교수(이화여대 한국학)는 우리 민족적 특성이 ‘틀’을 깨는 데 있다고 보기도 한다.
유신시대인 1975년 연예인들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마약 단속이 70년대 청년 문화에 대한 탄압과 일종의 ‘사회적 군기 잡기’라는 주장을 펴온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어느 사회, 어느 정권이든 정치적 금기와 성적 금기를 갖는다. 금기가 사회를 억압하면 저항이 생기는데 이때 기득권을 가진 권력층에서는 성적 금기만 풀어준다. 그것은 자본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명분으로서 금기는 너무나 높은 기준을 갖고 있으나, 현실에선 사소한 틀과 규칙도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허울로서 금기의 벽이 높고, 정치적 금기가 엄격한 사회체제가 오랫동안 유지되다 보니 때로는 무엇이 금기인지 알 수 없게 되는 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의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은 이것이 성적 금기에 대한 저항과 도덕주의의 대결인 듯 왜곡되면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됐다. 이영미씨는 “성매매는 금지해야 한다는 원칙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성을 인격으로 볼 것인가, 팔고 사는 서비스로 볼 것인가를 까놓고 이야기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논의가 자꾸 개인의 성 욕망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오히려 ‘성적 욕망’을 금기인 듯 몰아가는 것이 혼란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 뒤에는 ‘금기’에 대한 원초적이고 경험적인 반발 심리가 있다. 식민지배로 시작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금기는 언제나 억압이었고, 심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정법의 처벌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헤드스킨과 피어싱, 노출 등 신체에 대한 '금기'를 깨기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춘자.
즉 역설적으로 금기가 ‘금기’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음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불륜’이 금기가 된다는 것은 일부일처제에 대한 회의이며, 동성애에 대한 금기는 동성애자의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다. ‘포르노는 없다’라는 책을 쓴 박종성 교수는 프랑스 혁명기에 처음 등장한 포르노그래피는 명이 다한 귀족의 위기와 부르주아 혁명의 표현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마초에 대한 금기가 수면으로 떠오른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무한 속도경쟁과 소비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는 아닌가. 김부선씨는 스스로에게 아주 단순한 질문을 한 뒤 위헌 심판 제청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것은 대마초를 피고 싶은가가 아니었다.
“높은 아파트에서 이렇게 그냥 사는 게 정말 행복한 것인가, 생각해봤어요. 아니더라고요.” 그가 우리 모두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