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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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대는 유화 억압된 침묵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8-27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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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틀대는 유화 억압된 침묵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피터 웨버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우리나라에서는 ‘진주 귀고리 소녀’로 번역되었다)는 마치 한 편의 그림과 같은 영화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러 편의 그림과도 같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은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것이었을 테니. 멍하니 보고 있으면 가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분명히 17세기 네덜란드 화가가 그린 유화처럼 보이는 화면이 마술에 걸린 것처럼 꿈틀거리고 움직이니 말이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베르메르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이름 없는 모델이다.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재구성한 베르메르의 활동무대인 델프트에 ‘그리트’라고 이름 붙인 소녀를 풀어놓은 뒤, 베르메르가 어떻게 그리트를 모델로 해서 자신의 불멸의 걸작을 완성했는지 그려내 보이고 있다. 슈발리에의 원작 소설은 재미있는 책이다. 술술 넘어가고 디테일은 풍성하며, 고집 센 하녀 주인공 그리트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의 드라마 상당수를 빼버린다. 원작의 애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것이다. 그리트의 가족 이야기는 아주 조금밖에 언급되지 않고, 그리트의 독백 역시 모조리 사라져버렸으니. 남아 있는 영화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고 대사도 꼭 필요한 것만 남았다. 덕택에 영화는 거의 무성영화와 같은 침묵으로 가득 찬다.

    올바른 선택일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수다스러운 대화로 가득 차서야 분위기가 살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무대인 17세기 네덜란드의 정갈한 중산층 세계를 제대로 묘사하는 최선의 방법은 영화에서 웨버가 그런 것처럼 묵직하고 성적으로 억압된 침묵을 푸는 것이다. 덕택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터져나올 것만 같은 긴장과 성적 욕구가 묵직한 캔버스에 눌려 꿈틀거리는, 예상외로 섹시한 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침묵은 소설의 또 다른 주제를 눌러버린다. 슈발리에의 소설에서 화가와 모델의 권력 관계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리트와 베르메르의 관계는 단순히 억눌린 성적 교감이 아니었다. 그리트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성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한 캐릭터였고, 둘의 이야기는 그들 사이의 전쟁이기도 했다. 하지만 웨버가 연출한 침묵 속에서 그런 전쟁의 장면은 많이 죽어버린다. 베르메르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리면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소녀를 자기 식으로 박제한 것처럼 웨버의 영화도 그리트에게 같은 일을 한다.



    그래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아름다운 영화다. 물론 이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영화의 아름다움은 예술적 영감보다 거의 서커스에 가까운 예술적 모방에서 나오니까. 그러나 원인과 동기가 무엇이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찬란한 회화적 이미지를 무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Tips | 베르메르(1632~75)

    네덜란드 델프트 출생.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평가를 받았다. 작품 수도 40여점에 지나지 않고 색조의 정명한 대비는 북구의 신비로운 대기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는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대표작이다.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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