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최고의 특수통으로 이름 높던 A검사가 허울뿐인 부방위에서 이름이 거론된 이유는 놀랍게도 대기업 건설사업과 관련해 부당압력을 행사했다는 비위 혐의였다. 이권을 둘러싼 양측의 치열한 갈등 속에, 한쪽이 상대편의 비호세력으로 A검사를 지목하고 한 통의 투서를 검찰에 접수하면서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지검과 대검 감찰부에서 검토한 이 사건은 논란 끝에 무혐의로 판명됐고, 결국 투서를 한 세력은 마지막으로 부방위의 문을 두드렸다. A검사는 부방위에서도 성실하게 자신의 의혹을 방어해냈고, 이 과정에서 강장관과의 인연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검사의 비위 혐의는 검찰 역시 조사하기 껄끄러운 사안이다. 수사할 마땅한 인력도 없는 부방위가, 그것도 고위검사를 상대로 뚜렷한 해답을 내놓을 리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강장관이 법무부로 자리를 옮긴 2003년, 대검 감찰권의 법무부 이관을 놓고 벌어진 법무부와 검찰의 제1차 충돌에서 검찰이 강장관과 A검사의 윤리성을 공격하는 불씨 구실을 했다.
여당은 “이 참에 형사소송법 손질하자”
이 사건은 진실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고위공직자의 추문이 순환되는 매우 드라마틱한 과정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조직은 자신의 조직원을 최대한 보호하게 마련이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과거 사건이 언제든지 거론된 당사자의 약점으로 돌변한다는 것. 특히 판·검사를 포함한 1급 이상 고위공직자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권력은 정식으로 공론화해 사법처리하기보다 결정적 순간에 이를 약점으로 활용하는 수법을 애용해왔다.
이 같은 악습을 근절하고 선진국 진입의 걸림돌로 지목돼온 공직자 비리문제의 척결을 위해 부방위 산하에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를 설치하여 고위공직자와 그 직계가족에 대한 면밀한 감시활동을 펼치자는 게 참여정부의 기본적 구상이었다.
여권과 시민단체가 찬성한 \'공비처의 기소권 부여론\'에 참여정부의 상징 인물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반대 의견을 천명하고 나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제껏 수사권 없는 부방위의 일이란 홍보와 교육사업이 대부분이었다. 긴급체포권과 계좌추적권 등 실질적인 수사권한이 필요하지만 최고권력층의 미약한 의지와 검찰의 반발에 좌절되고 말았던 것.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조사권’ 부여라는 포문을 열자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의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수사에서 기소까지 일괄처리가 가능한 독립된 사법기구 설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기소독점주의’가 걸림돌이지만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기소권을 부여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참여정부 초기 부방위 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그는 “기소권이 없는 부방위는 존재 이유가 없다”며 “법무부가 끝내 반대한다면 수사 역량을 쌓은 뒤 나중에라도 꼭 기소권을 부여하겠다”고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열린우리당 소속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의 대책회의 모습. 이들은 ”기소권이 없는 고비처란 결국 검찰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고민에 빠져있다.
놀랍게도 이 목소리는 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를 비롯해 최용규 이원영 우윤근 의원 등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8명의 의원이 동일하게 내고 있다. 특히 최근 당정 협의과정에서 홍재형 정책위의장이 ‘검사파견제’라는 절충안을 거론하자 이들은 집단적으로 “법무부와 검찰에 밀려 엉성한 형태로 고비처를 출범시킬 경우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개선은 더욱 어렵다”며 ‘완전기소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오히려 편법 논란에 휩싸이기보다는 이 기회에 정식으로 형사소송법을 손질하자는 것.
이런 우리당의 태도에 법무부가 먼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형사소송법의 문구 하나를 바꾸는 데도 1년 정도의 검토기간이 필요한 것이 상식인데, 검찰과 동일한 기구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방위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강장관은 우리당 핵심지도부의 기대를 저버리고 법적인 논리를 들어가며 반대를 분명히 했다.
“검찰이 실패한 부분을 고비처라는 새로운 기구에서 또다시 반복할 이유는 없다.”
강장관의 논리는 명쾌했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다시피 해서 과도한 권력을 가진 괴물이 됐다고 비난받는 상황에서 전례 없는 기관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부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 게다가 강장관은 검찰개혁이란 과제를 내적인 논리에서 풀지 않고 외적인 견제기구를 통해 해결하려는 여당의 구상에 분노를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강장관의 논리에 검사들은 쾌재를 불렀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거의 처음으로 검찰과 법무부가 한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법무부 이기주의’라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전반적으로는 수긍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우리당의 변호사 출신 의원들과 시민단체의 지원만으로는 추진력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여당에 법무부나 검찰 출신이 없다는 점이 약점이다. 법무부가 형사소송법 수정을 강력히 거부한다면 우리로선 도리가 없다”고 푸념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당만이 유독 ‘기소권’을 가진 막강 고비처를 주장할까. 현재 음모론적 시각인 ‘검찰 견제론’이 널리 회자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여당 의원들의 정보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하다. 결국 권력 유지의 핵심인 정보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분석이다.
대검의 한 검사는 “여권이 고비처를 신설해 경찰의 비위 첩보를 직접 고비처로 전달했는데, 그 기소를 검찰을 통해야 한다면 결과적으로 고비처의 새로운 정보가 검찰에 공개되는 점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현재 검찰은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 판·검사 비리를 쫓기 위해 별도의 조직을 새로 만들 생각을 할 수 있는가”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고, 법무부 역시 “법무부 장관이 아닌 대통령이나 총리가 수사기관을 책임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발이 본격화하면서 우리당이 처음 거론했던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CPIB)과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ICAC)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해외의 부방위 사례 역시 잘못 알려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들 기관은 경찰과 공무원의 비리조사를 위해 검찰과의 적극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고비처는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사직동팀을 재건하려는 여권의 음모인가, 아니면 우리당의 해명대로 ‘상설 특검제’의 또 다른 이름인가. 이를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