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의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 중년 어느 날 찾아온 나흘간의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가는 프란체스카의 삶이 중년 여성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타닥타닥’ 낡은 타자기가 소리를 내면, 관객들은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무엇인가 쓰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죽음을 앞둔 여인의 맥박처럼 흐릿하고 낮은 소리로, 그가 남기려 하는 것은 유서다.
‘오직 나흘간의 사랑 이후, 서로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오랜 세월 떨어져 그리워하며 죽어간 사람들의 인생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나는 가족들에게 내 인생을 주었고, 그 사람에게는 나머지를 주었단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로즈먼 다리에 뿌려다오.’
솔직 담백한 사랑과 性에 매료
지난해 12월16일부터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손숙의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은 중년의 짧은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온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45세 주부 프란체스카가 52세의 사진작가 킨케이드를 만나 나눈 나흘간의 사랑과 긴 그리움에 대한 기억.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원작의 내용 그대로 이미 2003년 2월에도 한 차례 공연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유명한 이야기를 듣고 보기 위해 관객들은 여전히 극장을 가득 메운다. 대부분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여성들이다.
매해 생일마다 킨케이드의 유품을 뒤적이며 추억을 되새기던 프란체스카가 숨을 거두며 마침내 고백하는 것은 자신을 화장해 킨케이드가 뿌려진 로즈먼 다리에 뿌려달라는 절절한 사랑이다. 그리고 곧 프란체스카의 일생 중 가장 찬란했던 시절, 머리카락은 바람에 나부끼고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던, 킨케이드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의 사진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이루지 못한 이들의 사랑에 눈물을 흘리던 관객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이 사랑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진정 행복했던 것이다.(2월1일까지, 02-334-5915)
지난해 12월24일부터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 중인 서주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역시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공연이다.
서주희의 1인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성과 사랑에 대한 솔직한 묘사가 여성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말연시, 여성들을 극장으로 이끄는 건 이 작품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다른 여자들의 삶이다. 그들은 늙었다고 움츠러들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질투하고, 행복에 겨운 신음소리를 낸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로맨틱하고 인간적이다.
1월9일부터는 여든 살 할머니가 열아홉 살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연극이 관객들을 유혹할 것이다. 2003년 초 3개월간 장기 공연되며 화제를 뿌렸던 ‘19 그리고 80’이 다시 박정자 주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80세 모드는 길가의 나무를 뽑아다 공기 좋은 곳에 옮겨 심고, 동물원의 바다표범을 바다에 몰래 풀어주는 엉뚱한 할머니. 그는 19살 헤롤드와 사랑에 빠져 심지어 무대 위에서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이들의 사랑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19살 헤롤드가 ‘신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죽음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 질문에 힌트를 던져주는 모드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문하게 될지도 모른다.(2월29일까지, 02-765-5476)
그래서 다시 한해가 지났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사랑은 어디에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