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형 의원의 상임중앙위 의장 선출은 민주당 사수파와 중도파가 연대한 부산물이다. 상임중앙위 의장 당선 직후 대의원의 환호에 답하는 민주당 지도부.
숨막히는 합종연횡 … 31.03% 득표
민주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며칠 전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대표경선 결과를 이렇게 전망했다.
“선두권 두 사람과 하위권 두 사람은 정해졌다. 조순형 의원과 추미애 의원이 2강이고, 김영진·장성민 두 전 의원이 2약이다. 나머지 4명이 중간층을 형성하며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선두권 두 명이 각각 30% 가까운 지지율을 보여 두 사람의 지지율만으로 전체의 60%가 넘는 점이다. 나머지 40%를 중위권 4명의 후보가 나눠 갖는 형국이다. 중위권 후보 가운데는 일단 10% 지지율을 넘어서면 5등까지 합격권인 상임중앙위원에 당선될 것 같다.”
경선 결과 이 당직자의 전망은 대체로 적중했다. 11월28일 민주당 지도부인 상임중앙위원을 뽑는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결과 김 전 의원이 581표(5.78%), 장 전 의원이 277표(2.76%)를 얻어 실제 최하위권으로 드러났다.
중위권 4명 가운데 10% 이상의 지지를 얻은 김경재 의원(1199표, 11.93%)과 장재식 의원(1150표, 11.40%)은 무난히 지도부의 일원인 상임위원에 선출됐고, 이들에 이어 888표(8.84%)를 얻은 김영환 의원도 5위에 턱걸이해 상임중앙위원에 당선됐다.
양강구도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맞아떨어졌다. 조의원과 추의원이 중위권 그룹을 멀찍이 따돌리고 선두권을 형성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30% 전후를 득표해 1, 2위를 다툴 것이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조의원이 3119표를 얻어 31.03%의 지지를 얻은 반면, 추의원은 2151표(21.4%)를 얻는 데 그쳐 단순 지지율에서도 선두 조의원에 10% 포인트 가까이나 뒤졌다.
‘10%’.
전당대회 직후 당 주변에서는 대표(상임중앙위 의장)에 당선된 조의원과 2위 추의원 간의 득표율 차인 10% 포인트에 민주당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조의원을 대표로 선출한 민주당의 선택, 그 이면에는 민주당 구성원간 이합집산과 각 세력간 숨막히는 합종연횡이 있었고, 그 결과 조의원이 여유 있는 표 차로 당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결과가 그랬다는 것이고 전당대회 현장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개표결과가 발표되기 직전까지 전당대회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초 오후 5시 반이면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투표가 지연되면서 한 시간 이상 개표결과 발표가 지연됐다.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오히려 긴장감은 높아갔다.
민주당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에는 6000여명의 대의원이 참석했다(위). 새 지도부 선출 직후, 정균환 총무(맨 왼쪽) 등 구 지도부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으면서 행사장에는 거물급 인사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한화갑 전 대표가 긴장한 표정으로 나타났고 이어 거동이 불편한 김홍일 의원까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행사장에 들어서면서 민주당 구성원들이 새 지도부 선출에 갖는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케 했다.
마침내 결과가 발표되고 대표 당선자와 상임중앙위원 당선자가 발표되는 순간 무대에는 축포가 터지고 꽃가루가 쏟아졌다. 이 순간 단상 한편에 자리잡은 민주당 구주류의 얼굴에는 안도와 만족의 미소가 번져갔다. 정균환 원내총무는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로운 표정으로 조대표의 당선 수락연설을 경청했고, 옆자리의 김상현 의원과 김옥두 의원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경선 이벤트 성공, 무난한 결과”
단하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전당대회 사회를 맡았던 이낙연 의원(전남 함평·영광은 경선결과가 맘에 드느냐는 질문에 “아휴, 잘됐지 그럼”이라고 말했다. 이용삼 의원(강원 철원·양구·화천)도 “무난한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박상천 전 대표, 정균환 총무, 한화갑 전 대표와 김상현 의원 등 당 중진과 중도파, 심지어 수도권 의원들마저 조의원을 밀었다. 모두가 그쪽(조의원)으로 줄을 선 상황에서 추의원이 이를 뒤집기란 애당초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조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과연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일 것인가. 전당대회 현장에서 만난 한 당직자는 조대표 당선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이렇게 요약했다.
“당초 민주당 구주류 사이에서는 새 지도부인 상임중앙위 구성을 두고 두 가지 방안을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 첫째는 조순형 의원을 대표로 뽑되, 나머지 4명의 상임중앙위원 가운데 3명을 개혁파에게 넘기며 겉으로는 개혁적 지도부를 구성하는 방안이었다. 둘째는 추미애 의원을 대표로 뽑으면서 상임중앙위원의 절반 가까이를 구주류로 채워 견제하는 방안이었다. 이 경우 장재식 의원과 이협 의원을 상임중앙위원으로 민다는 게 당 지도부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당대표가 된 추의원이 민주당 사수파나 중도파의 영향력을 벗어나 독자행보를 걸을 경우 대처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여 그 결과 조대표 체제를 선택했고 중도파의 이협 의원 대신 김영환 의원을 5인 상임중앙위원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당직자는 “조대표와 동반 당선된 상임중앙위원들의 면면을 보라. 장재식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3명(추미애·김경재·김영환)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인물이거나 외부에서는 개혁파로 분류하는 인물들이다. 결국 민주당 사수파는 확실한 자파 인사로는 장재식 의원 한 사람만 지도부에 넣고, 대신 조의원을 대표로 밀어 확실한 자기 사람으로 삼는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민주당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조대표 체제가 되면서 당분간 우리당과의 통합과 같은 정계개편은 어려워졌고, 큰 이변이 없는 한 현재의 4당 체제로 내년 총선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조대표도 당선 직후 한 인터뷰에서 “(우리당과) 다시 합칠 거면 왜 분당했느냐”며 “국민들이 ‘분당하지 말지, 이제 와서 급하니까 편의상 손잡는 것 아니냐’고 공박하면 대답할 말이 없다”고 재합당 가능성을 일축했다.
물론 우리당과의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당내에 없는 것은 아니다. 상임중앙위원에 당선된 김경재 의원은 유세 도중 “이상수, 천정배, 신기남 같은 의원들이 돌아온다면 받아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대의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는데,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조대표도 “이는(통합불가론)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 소신이며,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면 당 공식기구의 논의를 거쳐 대처해야 한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전당대회 직전까지 당 주변에서는 “민주당의 구 지도부와 조의원 사이에 통합운동과 관련, 보이지 않는 묵계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박 전 대표와 정총무로 대표되는 구 지도부가 조의원을 당 대표로 미는 조건으로, 우리당과의 통합운동과 같은 정계개편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주고받았다는 게 묵계설의 큰 줄거리. 하지만 양측 당사자 모두 이런 소문을 일축해왔다.
우리당은 조대표 체제를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한 당직자는 “솔직히 민주당 전당대회 전까지 조의원과 추의원 가운데 누가 되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하지만 솔직히 추의원이 당대표가 될 경우 국민들의 관심이 민주당으로 쏠릴 것이고, 그럴 경우 아직 뿌리도 못 내린 우리당 입지가 크게 흔들릴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관계도 당분간은 냉랭할 전망이다. 5위로 상임중앙위원이 된 김영환 의원은 유세 도중 “한나라당과의 공조는 민주당의 정통성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에 대한 대의원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당장은 특검법 재의를 두고 한나라당과 공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장기적으로 두 당이 공조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민주당의 새 지도부 선출은 정치권에 변화보다 ‘내부 굳히기’라는 명분을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당에 이어 우리당의 대표 선출 전당대회가 이어질 예정이고, 한나라당과 ‘친하지 않은’ 민주당 지도부의 등장으로 한나라당도 야권공조를 통한 정국 돌파보다 내부정비에 당력을 쏟을 듯하다. 과연 조순형 대표체제 하의 민주당은 과연 언제쯤 그 진면목을 보여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