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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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테러단체 한국인 노렸나

“파병 경고” “우발적 사건” 티크리트 피살 원인 놓고 의견 분분 …정치권도 파병 논란 재점화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3-12-03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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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테러단체 한국인 노렸나
    마침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11월30일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재건사업에 참여하던 한국 민간기업인이 이라크 테러단체의 공격을 받아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파병론 자체를 놓고 국민여론이 엇갈리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우선 사전에 이 사건을 막지 못한 정부부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뜨겁다. 한나라당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테러가 발생한 상황도 문제지만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봐야 할 점은 주무 부처인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가 곧바로 희생자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희생자들이 이라크에 밀입국한 것도 아니고, 미국 기업의 하청을 받아 이라크 재건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신원파악도 하지 못하고, 또 사전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느냐”며 “상임위가 열리면 위험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신분확인조차 제대로 못한 외교부의 무능을 따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전 위해 전투병 위주 파병 쪽에 무게

    이에 대해 바그다드 주재 한국무역관 한 관계자는 “이번 사상자들은 한국공관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대응이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외교부도 뒤늦게 초비상 상태에 들어갔다. 이광재 아중동국장은 “이라크전 종전 선언 이후 현지 한국대사관에 주의와 훈령을 7~8차례 보냈고, 이번에 더욱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특히 김재섭 차관 주재로 이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중동지역 공관장 회의’에서 한국공관을 겨냥한 테러 가능성에 더욱 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또 다른 관심사는 과연 이라크 테러단체가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의도적 도발을 했느냐 여부.



    외신들은 한국 민간기업인 테러에 앞선 일본 외교관과 스페인 장교에 대한 공격의 경우 이라크 테러단체의 대표적인 타깃공격이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외신들은 파병을 앞둔 일본과 이미 대규모 병력(1300명)을 주둔시킨 스페인은 미국의 가장 주요한 ‘이라크 재건 동맹국’이라는 점 때문에 이라크 테러단체의 표적이 됐다며 피살된 일본 외교관들이 탄 차량이 일본대사관의 관용차인 점을 들어 지난달 바그다드 주재 일본대사관에 대한 총격과 마찬가지로 일본 외교관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또 스페인 정보장교들은 민간인 차림에 민간인 차량으로 비밀리에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공격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으며 저항세력의 정보력이 상당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단 정부는 일본이나 스페인의 경우와 달리 “한국인에 대한 공격은 우발적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는 쪽이다. 하지만 외교부 주변에서는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된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를 싣는 이들이 많다. 그 근거로 10월23일 한국대사관 직원이 무장괴한에 의해 납치돼 “한국은 이라크를 떠나라”고 협박받았던 사건을 꼽는다. 이 사건 이후 한국대사관은 공관을 두 차례나 옮겨다니며 직원들의 안전을 도모해야 했다.

    11월21일 한국대사관이 임시공관으로 쓰고 있는 팔레스타인호텔에 로켓포가 날아든 것은 일종의 예고편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때도 정부는 정치적 효과를 노린 무장세력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공격이라고 주장했지만, 애초부터 한국대사관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당시 공격을 받았던 1211호는 애초 한국대사관 무관이 쓰기로 예약한 방이었는데 경비절감을 위해 다른 방으로 옮기면서 화를 면한 것으로 국회조사단 보고에서 밝혀졌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테러인 까닭에 이라크 테러단체들이 의도적으로 한국인을 겨냥해 공격했고 이는 곧 파병 원칙을 세운 한국정부와 국민에 대한 공개 경고장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단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이번 사태가 파병 계획에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2월1일 “그간 우리는 테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왔고 용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면서 “이번 테러는 군대나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테러라는 점에서 더욱더 용납해선 안 되는 비인도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라종일 대통령안보보좌관은 “한국인 피격사건을 이라크 파병문제와 연계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국방부 등 관련부처의 반응도 비슷하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오히려 우리 국민들도 이라크 반군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우리 군의 자체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전투병 파병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여론도 일단 ‘파병은 하되 안전보장을 위해 전투병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 같다. 1일부터 ‘동아닷컴’이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를 보면 네티즌들은 ‘이라크 재건 위주의 파병’(18.73%)보다 ‘전투병(특전사) 위주 파병’(51.34%)에 더 무게를 실어줬다. ‘파병방침 전면 철회’에 답한 네티즌은 29.14%였다(1일 오후 현재).

    조사단 재파견·파병일정 연기론도 등장

    정치권에서도 논쟁은 치열하다. 파병론에 무게를 싣는 쪽은 주로 한나라당 의원들이다. 한나라당의 조웅규 의원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입장에 변화가 와선 안 된다”며 “우리의 입장 변화는 자유진영의 운명을 테러리스트한테 맡기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국회 이라크 조사단장이었던 강창희 의원도 “한국인에 대한 테러사건이 처음 발생한 만큼 조사단 회의에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면서도 “그러나 현지에서 테러는 흔한 일이고, 조사단 활동 이후 발생한 사건이어서 최종보고서 작성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한 한나라당 의원은 “전투병 파병에 그칠 게 아니라 전투병의 구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라크 내 치안 상태가 불안한 만큼 고도의 작전능력을 갖춘 특전사 등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해야 하며 전체 파견 병력 가운데 전투병의 비중을 70%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파병반대 입장을 밝혀온 정치권 인사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로 민주당과 우리당 소속 의원들이다. 민주당 김영환 상임중앙위원은 “국회 이라크 조사단은 자신들이 투숙한 호텔에 로켓포가 떨어지고 교민들이 피격당하는데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말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이 테러를 당하는 상황에서는 전투병 파병뿐만 아니라 추가파병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미국이 이라크 통치권한을 유엔으로 이관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군이 파병되면 비전투병일지라도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정부는 조사단을 다시 이라크 현지에 파견해 현지상황을 다각도로 검토해 파병 성격과 규모, 시기 등을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강운태 사무총장은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로 국론이 분열돼 혼란을 자초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내년 총선 이후 새롭게 구성되는 국회에서 파병문제를 논의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강총장의 주장대로 파병일정이 연기된다면 파병문제가 총선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출마자들도 소속 정당이나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파병에 대한 입장을 달리할 것으로 예상돼 총선 자체가 파병에 대한 국민투표 성격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도 테러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이라크 파병논쟁은 올겨울, 내년 봄으로 이어지는 격변 정국의 뇌관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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