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둬요.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두 흔적. 상처받은 두 사람, 아직도 미련 있어.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가 ‘세월이 가도(As time goes by)’의 한 구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피난민과 망명객, 반나치 투사와 스파이들로 득실거렸던 아프리카 북단의 모로코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두 남녀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과 상처를 그린 영화에 어울리는 노래다. 동시에 이것은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어두운 역사와 현실의 은유적 표현으로도 어울린다. 희망(키스)은 짧고 불행(한숨)은 긴 나라들.
역사의 격변에 시달린 제3세계 민중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고, 대립과 반목의 세월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세월’ 동안에도 문학은 소외된 삶의 현장의 구석구석을 기록하고 증언해왔다.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태어나 이곳 사람들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열정을 기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이사벨 아옌데, 응구기 와 시옹오, 네이딘 고디머, 리처드 리브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이들의 문학은 이미 세계문학의 중심에 진입해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사려 깊은 문학기행서는 국내에 거의 없었다. 그동안 문학 현장을 방문하는 세계문학기행은 주로 서구문학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중남미·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기행문인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이 나와 눈길을 끈다.
작가는 소설가이자 한 일간지의 문학 담당 기자였던 조용호씨. 그가 2001~2002년 중남미 5개국 8개 지역, 아프리카 3개국 10개 지역의 문학 현장을 둘러봤다. 문학은 텍스트가 우선이지만 그것을 둘러싼 삶의 현실을 알게 되면 그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마르케스가 시상식장에서 했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제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단지 문학적 표현양식 때문이라기보다 우리의 가공할 현실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비참하지만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고 고갈되지 않는 창작의 샘물을 솟구치게 하며, 이런 창조적 샘물을 지닌 콜롬비아 사람들은 행운을 지닌 사람들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나라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중남미에서 20세기는 정치적으로 군부독재의 시기였다. 따라서 문학에서도 우익 군부독재자의 등장, 미국의 암묵적 지지, 헌법 효력 상실, 민중 수탈, 국부 유출, 또 다른 독재자의 등장 등의 과정을 그린 작품들이 쏟아졌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을 거쳐 좌우익이 대립한 ‘1000일 전쟁’과 미국 자본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콜롬비아의 현실을 그린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혁명기의 혼란을 틈타 출세와 부를 거머쥔 인물을 통해 멕시코 현대사를 보여주는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르테미오 크루스의 죽음’, 선거에 의해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당선됐으나 우익과 미국의 결탁으로 3년 만에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졌던 칠레의 역사를 그린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등이 먼저 떠오른다.
저자가 찾아가본 이들 나라의 현실 역시 소설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구조화된 가난으로 점철된 사회, 게릴라들이 출몰하고 시위대와 경찰이 대립하는 사회였다. 그 속에서도 춤과 노래로 울분과 피로를 푸는 민중의 건강함은 살아 있었다.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대부분 혼돈의 한가운데 있고 사회적 갈등이나 에너지가 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면으로 비춰진다. 케냐 작가협회 회장인 헨리 인당가시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교육받고 돌아온 엘리트 계층이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느끼며 그 견해를 소설로 표현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개인주의의 발달로 개인 속으로만 함몰되다가 결국 소설문학이 쇠퇴하고 있는데, 아프리카는 지금 소설문학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다”고 말했다.
조씨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인 모로코, ‘아이야 울지 마라’(응구기 와 시옹오)의 배경인 케냐 리무루, ‘보호주의자’(네이딘 고디머)의 배경인 요하네스버그와 ‘버킹엄궁, 제6구역’(리처드 리브)의 배경인 케이프타운 같은 곳들을 서정적이면서도 세밀하게 소개한다. 그가 직접 찍어온 125컷의 사진도 현장감이 넘친다. 모로코 현대시의 대부 무함마드 아 싸르기니나,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흑백갈등을 조명한 리처드 리브 등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와 미출간된 작품을 소개한 것도 큰 소득이다. 아쉬운 것은 조씨가 치누아 아체베나 윌레 소잉카 등 아프리카 문학의 중요 인물들이 사는 나이지리아로부터 비자를 받지 못해 이들을 취재하지 못한 점. 그 역시 아프리카의 현실을 담아내는 생생한 사례다.
조용호 지음/ 마음산책 펴냄/ 296쪽/ 1만2000원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가 ‘세월이 가도(As time goes by)’의 한 구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피난민과 망명객, 반나치 투사와 스파이들로 득실거렸던 아프리카 북단의 모로코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두 남녀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과 상처를 그린 영화에 어울리는 노래다. 동시에 이것은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어두운 역사와 현실의 은유적 표현으로도 어울린다. 희망(키스)은 짧고 불행(한숨)은 긴 나라들.
역사의 격변에 시달린 제3세계 민중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고, 대립과 반목의 세월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세월’ 동안에도 문학은 소외된 삶의 현장의 구석구석을 기록하고 증언해왔다.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태어나 이곳 사람들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열정을 기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이사벨 아옌데, 응구기 와 시옹오, 네이딘 고디머, 리처드 리브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이들의 문학은 이미 세계문학의 중심에 진입해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사려 깊은 문학기행서는 국내에 거의 없었다. 그동안 문학 현장을 방문하는 세계문학기행은 주로 서구문학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중남미·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기행문인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이 나와 눈길을 끈다.
작가는 소설가이자 한 일간지의 문학 담당 기자였던 조용호씨. 그가 2001~2002년 중남미 5개국 8개 지역, 아프리카 3개국 10개 지역의 문학 현장을 둘러봤다. 문학은 텍스트가 우선이지만 그것을 둘러싼 삶의 현실을 알게 되면 그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마르케스가 시상식장에서 했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제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단지 문학적 표현양식 때문이라기보다 우리의 가공할 현실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비참하지만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고 고갈되지 않는 창작의 샘물을 솟구치게 하며, 이런 창조적 샘물을 지닌 콜롬비아 사람들은 행운을 지닌 사람들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나라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중남미에서 20세기는 정치적으로 군부독재의 시기였다. 따라서 문학에서도 우익 군부독재자의 등장, 미국의 암묵적 지지, 헌법 효력 상실, 민중 수탈, 국부 유출, 또 다른 독재자의 등장 등의 과정을 그린 작품들이 쏟아졌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을 거쳐 좌우익이 대립한 ‘1000일 전쟁’과 미국 자본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콜롬비아의 현실을 그린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혁명기의 혼란을 틈타 출세와 부를 거머쥔 인물을 통해 멕시코 현대사를 보여주는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르테미오 크루스의 죽음’, 선거에 의해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당선됐으나 우익과 미국의 결탁으로 3년 만에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졌던 칠레의 역사를 그린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등이 먼저 떠오른다.
저자가 찾아가본 이들 나라의 현실 역시 소설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구조화된 가난으로 점철된 사회, 게릴라들이 출몰하고 시위대와 경찰이 대립하는 사회였다. 그 속에서도 춤과 노래로 울분과 피로를 푸는 민중의 건강함은 살아 있었다.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대부분 혼돈의 한가운데 있고 사회적 갈등이나 에너지가 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면으로 비춰진다. 케냐 작가협회 회장인 헨리 인당가시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교육받고 돌아온 엘리트 계층이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느끼며 그 견해를 소설로 표현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개인주의의 발달로 개인 속으로만 함몰되다가 결국 소설문학이 쇠퇴하고 있는데, 아프리카는 지금 소설문학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다”고 말했다.
조씨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인 모로코, ‘아이야 울지 마라’(응구기 와 시옹오)의 배경인 케냐 리무루, ‘보호주의자’(네이딘 고디머)의 배경인 요하네스버그와 ‘버킹엄궁, 제6구역’(리처드 리브)의 배경인 케이프타운 같은 곳들을 서정적이면서도 세밀하게 소개한다. 그가 직접 찍어온 125컷의 사진도 현장감이 넘친다. 모로코 현대시의 대부 무함마드 아 싸르기니나,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흑백갈등을 조명한 리처드 리브 등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와 미출간된 작품을 소개한 것도 큰 소득이다. 아쉬운 것은 조씨가 치누아 아체베나 윌레 소잉카 등 아프리카 문학의 중요 인물들이 사는 나이지리아로부터 비자를 받지 못해 이들을 취재하지 못한 점. 그 역시 아프리카의 현실을 담아내는 생생한 사례다.
조용호 지음/ 마음산책 펴냄/ 296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