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고위 여성지도자 과정에 입학한 이순자씨는 “평생 소원이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최근 연세대 대학원에 진학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65)가 입학 후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고위 여성지도자 과정 강의실에서 만난 이씨는 비둘기색 윗옷에 ‘이순자’라고 쓰여진 명찰을 달고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강의를 듣던 모습 그대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내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즐겁고 좋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공부하는 동안에는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은닉 논란 등 각종 구설들을 모두 잊는 듯했다. 그는 ‘공부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완벽한 행복’부터 시작해 13년 만에 완성한 회고록의 출판을 준비하며 느끼는 감정과 최근의 마음고생까지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1979년 外大 편입학 시험에 합격
사실 올 초 이화여대가 학칙의 금혼 규정을 폐지하면서부터 이씨의 재입학 여부가 세인의 관심을 모아왔다. 경기여중,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 대학 의예과에 진학했던 이씨가 전 전 대통령과의 결혼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 이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고, 독학으로 영어와 프랑스어 회화를 공부하는 등 향학열을 불태워왔다. 이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1979년 41세의 나이로 외국어대 편입시험에 합격했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결혼 초에는 군인의 아내로 정신없이 살았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고 남편이 발전할수록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1978년 연세대 어학당에 등록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네 번씩 나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듣다 보니 ‘이 정도면 대학에도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친김에 연세대 편입시험을 봤지요.”
결과는 낙방이었다. 일생 동안 공부에 관한 한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이씨는 충격을 받았고, 다음해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 외국어대 영어과 편입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그의 공부 욕심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해 12월 ‘12·12’ 사태가 일어나고 다음해 ‘서울의 봄’,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면서 그의 남편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억울했어요. 어쩔 수 없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죠.”
이씨는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정말 준비된 ‘반역’이었다면 왜 자신이 편입시험을 준비하고, 대학 진학 꿈에 부풀어 설레ㅆ겠느냐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무 준비 없이, 예상도 못한’ 대통령 부인이 된 이씨는 그 후 고단한 인생 여정을 걸어야 했다. 영부인으로 있는 동안 화려하고 이재에 밝다는 구설이 끊이지 않았고, 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백담사에서 칩거해야 했고 끝없이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씨 또한 언론 노출을 최대한 피하며 사실상 ‘칩거’ 상태로 지냈다. 공부는 그에게 사치스러운 꿈이었다.
10여년간 회고록 집필에 몰두하며 조용한 삶을 살던 이씨가 진학을 결심한 것은 올 초 이화여대 학칙의 금혼 규정 폐지 소식을 들으면서부터. 당시 연희동측은 “이제 와서 대학 졸업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며 이씨가 재입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씨 자신은 “의사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필요한 공부는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는 것이다.
학생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순자씨는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사돈과 함께 등교하는 이씨.
이씨가 이 과정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그가 9월3일 연세대에서 열린 입학식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이씨의 등장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왔다. “주위에 많이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진실 담은 회고록 언젠가는 출간”
사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과 그 이후 학생들의 정서에 비추어볼 때 연세대에 이씨가 드나든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연세대와 이씨는 오랜 세월 동안 ‘애증’의 관계였다. 이씨는 연세대와 가까운 연희동에 살면서 아들 셋을 모두 이 학교에 진학시켰지만, 연세대 학생들은 매년 5월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며 ‘연희동 진격 투쟁’을 계속해왔다.
이 때문에 이씨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경호원 없이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등 여러모로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학생들과 별다른 충돌은 없는 상태. 연세대 총학생회 게시판에 이씨의 입학 사실을 거론하며 “그냥 있어도 되느냐”라고 항의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지만 일반 학생들의 반응은 거의 없는 편이다. 잔뜩 긴장했던 연세대의 한 관계자는 “요즘 학생들은 이씨가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려했던 충돌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덕분에 이씨는 그가 바라던 ‘평범한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차를 강의실에서 멀리 세워둔 채 걸어서 학교를 오갈 뿐 아니라 정규수업 이후 오후 7시10분부터 8시30분까지 있는 특강 시간에는 ‘댄스스포츠’를 선택해 다른 동기생들과 춤을 즐기기도 한다. 이씨는 “골프 한 번 치려 해도 주위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늘 운동이 부족했는데 너무 즐겁다”며 즐거워했다. 입학 초기 “꼭 공부를 해야겠느냐”며 염려하던 전 전 대통령도 최근에는 “늦은 나이에 다시 학부모가 된 기분”이라며 늦게 공부를 시작한 그를 격려하고 있다고 한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그는 1988년부터 써온 회고록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백담사에 들어간 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쓰기 시작한 회고록은 2000년에 완성했지만 이씨는 지금도 사료를 보충하고 문맥을 바로잡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을 뒤집을 수 있는 진짜 ‘진실’들이 담겨 있어요. 그것 때문에 또다시 시시비비에 휘말리는 것이 두려워 출판을 미루고 있지만 제가 죽은 후에라도 진실한 사료로 남을 수 있도록 제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씨는 최근 미국의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자서전이 인기를 끌면서 그에게 회고록 출판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 자신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 책을 출판할 것”이라고 마음먹고 있다.
인터뷰 내내 이씨의 표정은 밝았고, 그의 목소리는 정력적으로 울렸다. 그는 조용하고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9월 셋째 주 열린 자치회에서 동기들은, 비밀투표로 그를 ‘고위 여성지도자 과정 명예회장’으로 뽑았다. 학교 관계자는 “모든 수업에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동기생들에게 신망을 얻은 모양”이라며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았는지 학교에 올 때마다 얼굴이 밝아지신다”고 전했다.
이씨의 말대로라면 그는 요즘 ‘평생 소원을 이루고’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은닉 의혹 등 아직도 연희동에 쏠린 시선은 곱지 않다. 한 학기에 4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낼 수 있는 형편이라면 막대한 추징금의 일부라도 갚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씨가 말하고 싶어하는 진짜 ‘진실’이 담긴 회고록이 출판될 경우 그의 삶이 또 한 번 격랑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