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5일 모교를 찾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안경환 서울대 법대 학장.
강금실 장관: “일장일단이 있지요. 판사 변호사로 형사업무를 20년간 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은 없지만 조직의 관행이라는 게 있어 외부인으로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장점이라면 역시 외부의 시각에서 ‘이거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금세 들더군요. 즉각 ‘그거 고치면 큰일 납니다’ 하고 반발해오지만 고치고 나면 대체로 ‘어, 괜찮네’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9월15일 추석연휴 뒤 월요일. 서울대에서는 의미 있는 방문객이 학생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법과대 75학번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법대 1학년 법률문장론 담당 교수(한인섭, 이현수, 양현아) 초청으로 모교에 금의환향한 것. 입소문이 퍼졌는지 법대 100주년 기념관은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이들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강장관의 높은 인기를 가늠케 했다. 이날 강연을 성사시킨 사람은 안경환 법대 학장.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진행한 안학장은 “이렇게 훌륭한 분을 훗날 서울대 법대 학장으로 모시는 게 제 개인적인 소망”이라고 강장관을 치켜세웠고, 강장관은 “안학장께서 문학에 식견이 풍부한 것처럼 학생들도 법학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화답했다.
강장관은 이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의 다양한 경력을 예로 들며 “창조적 역량은 재야(在野)에서 나오게 마련이다”며 “정부나 공적인 영역은 창조하고 생산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넓고 다양한 식견을 위해서라면 꼭 재조(在朝)를 지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강장관의 모교 방문과 강연을 성사시킨 주역인 안학장과 한인섭 부학장이 각각 법무·검찰 개혁의 중심인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을 맡고 있고, 서울대 법대 최초 여교수인 양현아 교수(43)가 정책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호주제 폐지 운동에 주도적으로 나선 점에도 관심이 쏠렸다. 평소 법조개혁에 대한 끈끈한 의사소통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강연이었던 셈이다.
정책위, 표결 없이 토론으로 합의 도출
강장관에게 질문하는 서울대 법대 최초의 여교수 양현아 교수(왼쪽). 강연 후 학생들의 사인 공세를 받고 있는 강장관.
“강장관이 왜 지략가로 평가받는지 아는가. 바로 외부위원회를 활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검찰동일체 원칙을 깬 것은 강장관 자신이 아니라 정책위원회였고 경향(京鄕)교류 원칙을 고수한 8월 검찰인사도 결국 검찰인사위원회를 주도한 외부인사 작품이었다.”
서울대 법대 도서관(왼쪽)과 최근 동문들의 후원금으로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법대 건물.
안학장은 정책위원회 위원장은 물론 검찰인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강장관의 대표적 외부인사로 부각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깊지 않았지만 서울대 법대 인맥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는 전언이다. 본격적인 협력관계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강장관의 요청에 의해서 시작됐다. 강장관이 안학장을 만나 정책위원 인선을 상의했고 이후 덜컥 위원장 자리를 맡겼다는 것.
정책위원회는 표결을 거치지 않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독특한 방식을 지향한다. 위원회의 진행은 당연히 위원장인 안학장의 몫.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사회의 달인으로 별명이 ‘사회주의자’인 그의 역량이 더욱 빛났다는 후문이다. 11회에 걸친 집중적인 회의를 통해 수많은 성과물을 얻었다. ‘검찰 직원의 검사직무 대리제도’ 및 ‘탄력적 가출소제도’, ‘필요적 영장실질심사제도’ 같은 인권 관련 문제들은 비교적 쉽게 논의가 진행된 경우. 검사동일체 원칙 폐지 논란 이후 정책위원회를 뜨겁게 달군 논란의 핵심은 교정 분야로, 특히 ‘보호감호제도’에 관심이 모아졌다.
보호감호제도는 9월1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최병모 회장과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등 법률가 175명이 “보호감호제는 헌법에 반하는 제도로 폐지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할 정도로 진보적인 법학 흐름에서는 대표적인 악법에 속한다. 취임 초기 강장관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교정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개선 권고를 의식, 자신이 법무법인 지평에서 데려온 이병래 정책보좌관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며 “교정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라”며 독려해왔다. 그 와중에 보호감호소 문제가 정책위원회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로스쿨 문제’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
강장관은 취임 초기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보호감호제도를 완전히 철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다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설득해가며 “이중처벌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제도를 완전히 없애버리자”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검찰 출신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검찰로서는 사회의 안정을 저해하는 인물을 사회와 격리시키는 제도를 급작스럽게 폐지할 경우 초래될 위험에 대해서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학자 출신 위원들이 중재에 나서 결국 중간 심사제를 도입하고 1800명에 이르는 보호감호소 재소자들의 수를 200명 선까지 줄이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가면서 폐지 논의는 잠시 뒤로 미뤄둔 상태다.
이런 합의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안학장의 독특한 화합형 운영 능력이다.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안학장과 강장관이 세칭 코드가 맞다고 평가받는 까닭은 안학장이 그간 사회참여를 통해 획득한 사회적 역할모델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안학장은 10년 전 참여연대 창립위원으로 세상에 이름을 내밀었다. 또한 법학교수로는 드물게 문필가에 가까운 글솜씨를 뽐내며 자신의 인권중심적 법률관을 신문 및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하는 데 힘써왔다. 보수적인 서울대 법대 학맥 속에서도 인권을 우선시하는 진보적 법학자로서의 풍모가 강장관과의 공통분모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학장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법학교육의 상징성을 지닌 서울대 법대학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책위원회 차기 과제에는 법학교육제도 개혁이 포함되어 있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만든 ‘사법개혁위원회’도 10여년을 끌어온 로스쿨 논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겠지만, 어차피 법조인 선발의 주체가 법무부인 만큼 정책위원회의 결론 역시 중대한 지렛대 역할을 할 전망이다.
로스쿨 문제는 검찰의 기소독점권 문제와 함께 교정 분야 이후 정책위원회가 떠안을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이미 1000명이나 되는 사법연수원생에 대한 월급 지급의 부당성에 대한 여론의 지적이 뜨거운 만큼 사법연수원제도 개혁방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또한 수많은 고시장수생과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온 사법시험 개혁도 법조개혁의 피할 수 없는 핵심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와 검찰 개혁에 비견되는 서울대 법대 개혁을 1년 남짓 추진해온 안학장의 행보가 관심거리다. 강금실 장관-송광수 검찰총장 체제 못지않게 강금실 장관-안경환 서울대 법대 학장 체제가 주목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