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맨 왼쪽)와 마흐무드 압바스 총리(오른쪽)간 싸움의 결과에 팔레스타인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서 끌려가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압바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아라파트의 이날 발언은 아라파트가 UN(국제연합)의 중동 특사 테르제 라르센을 접견하는 공식석상에서 나왔다. 아라파트의 이 발언은 그의 측근들이 “압바스의 실책은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잘못 이끌고 있는 데서부터 이스라엘과 공모하여 아라파트를 라말라에 사실상 연금상태에 있도록 방치하고 있는 데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고 압바스 총리를 강하게 비판하자 압바스 총리가 파타흐의 중앙위원회를 탈퇴하고, 아라파트와 파타흐 운동권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총리직에서도 물러나겠다고 응수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아라파트와 압바스가 펀치를 주고받자, 이스라엘 언론들은 앞다투어 “아라파트와 압바스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심복들 요직 기용해 상호 견제
1950년대 후반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조직으로 출발한 파타흐는 현재 팔 자치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최대 정파로, 1964년 창설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장악하고 있어 사실상 지배정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중앙위원회는 PLO가 하는 모든 결정을 먼저 논의하고 승인하는 핵심 기구로, 15∼21명의 중앙위원은 형식적으로는 파타흐 전체회의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PLO 의장인 아라파트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중앙위원회에서 탈퇴하겠다는 압바스 총리의 말은 아라파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아라파트는 압바스 총리와 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무함마드 다흘란 안보 장관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먼저 지브릴 라주브를 웨스트 뱅크(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행정관으로 임명했다. 지브릴 라주브는 포스트 아라파트 시대를 이끌 후보군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아라파트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데다, 지역 행정관 자리는 지역 내의 경찰력에 대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다흘란 안보 장관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다. 또한 아라파트는 역시 자신의 심복인 하니 알 하산 전 내무부 장관을 웨스트 뱅크 내 파타흐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앉혔다. 하산은 앞으로 진행될 파타흐와 팔 자치정부의 조직 정비를 총괄하게 될 것이라고 아라파트는 밝혔다. 조직 정비는 압바스 총리와 다흘란 장관을 견제하고 아라파트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이스라엘에서 발행되는 영문 일간지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아라파트는 이 계획을 위해 150만 달러의 예산을 할당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라파트와 압바스 사이의 갈등은 이밖에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스라엘의 일간지 ‘마아리브’의 보도에 따르면 아라파트는 지난주 팔레스타인 극빈 가정에 성금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이 성금이 총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나왔음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마아리브는 또한 압바스 총리가,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TV는 나의 개인 무기”라며 ‘공영방송 감시위원회’를 설립하고 자신의 심복들을 심어놓은 데 반발해 위성방송 채널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아라파트측이 테러단체와 연계돼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현재 권력에선 압바스가 절대 열세
아라파트는 현재 라말라에 위치한, 절반쯤 부서진 정부청사에 사실상 연금돼 있다. 이스라엘이 라말라를 봉쇄하고 그의 통행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끊임없이 이스라엘측의 제거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IDF(이스라엘 방위군) 참모총장 모세 아얄론은 최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라파트는 테러리스트다. 그는 죽거나 추방될 것이다”고 말했다. 아얄론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누구보다도 아라파트 제거를 원하고 있다. 최근에 보인 아라파트의 일련의 행동들은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킬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팔레스타인 내에서 아라파트와 압바스의 위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는 지난 5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팔레스타인 내에서 압바스 총리의 지지도는 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아레츠의 한 칼럼니스트는 아부 마젠과 다흘란을 강력하게 비난한 한 팔레스타인 상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어느 누구도, 설령 아라파트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일지라도 아라파트에게 감히 이런 식으로 도전하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반대파들 사이에서도 아라파트가 ‘국가의 아버지’로 존중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곧 두 사람의 갈등이 팔레스타인 내부의 권력투쟁이라면 압바스에게 승산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관측통들은 압바스 총리의 팔레스타인 내에서의 지지기반은 미약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를 지원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아라파트와 압바스는 평생을 함께해 온 동지다. 압바스가 50년대 파타흐 운동의 창시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두 사람은 평생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을 끌어내기 위해 이-팔 간에 비밀리에 진행된 협상의 팔레스타인측 협상 파트너가 바로 압바스였고, 그 협정에 사인한 사람이 아라파트였다. 오슬로 협정의 결과로 94년 팔 자치정부가 수립된 뒤 압바스는 자치정부 내에서 그의 지위 문제로 아라파트와 잠시 의견 충돌을 일으킨 적이 있지만 대(對)이스라엘 협상단 대표직과 PLO 사무총장에 임명되면서 명실상부한 팔레스타인 내 2인자 지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아라파트의 후계자로 지목받아왔다. 결국 동지에서 적이 돼버린 두 사람 간의 신경전은 섣불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싸움이라는 이야기다. 팔레스타인의 미래가 이 싸움의 결과에 달려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