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계는 고민에 빠져 있다. 조흥은행 파업, 철도노조 파업 등 잇따른 ‘불법’ 파업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나선 데다 여론도 최근의 잇따른 파업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철도노조가 정부의 공권력 투입에 굴복, 파업을 철회하면서 올 노동계 ‘하투(夏鬪)’는 급속히 힘을 잃고 있다.
그러나 7월3일 만난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은 “하투가 결코 끝난 게 아니고 단지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연일 계속된 노동계 파업을 이끌고 정부와 협상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노-사-정이 완벽한 힘의 균형을 이룰 때까지 투쟁에 치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 10월부터 한국노총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위원장은 비교적 온건 합리주의의 길을 걸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 실망한 탓일까. 이위원장은 이날 노무현 정부의 원칙 없는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대목에 이르러선 단호함을 보이는 등 평소 ‘성향’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다음은 이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하투는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하나.
“6월30일 총파업 이후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투쟁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 6월 말 조흥은행 노조 파업에 대해서 여론이 좋지 않았다. 파업을 무리하게 진행했다고 생각지 않나.
“조흥은행 파업은 정부가 애초 약속을 파기한 데서 출발한다.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는지부터 생각해달라. 조흥은행은 공적자금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2년간 임금을 동결하고 45%의 구조조정도 감수했지만, 정부는 결국 독자생존에 대한 약속을 저버렸다.
물론 노동계도 그 뜻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투쟁 위주로 갔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위기론’을 내세우면서 국민이 노조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도록 만들었고 일부 언론은 이번 파업의 본질과 이유보다는 파업이란 현상을 보도하는 데 급급했다.”
- 조흥은행 매각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데도 노조가 ‘불법’ 파업으로 이를 반대한 것 자체가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또 협상 결과가 조흥은행 노조에 너무 유리하다며 인수 주체인 신한은행 노조에서 반발하고 있는데….
“조흥은행 노조에게 유리한 협상 결과라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3년 전제’ 하에 조흥은행원들을 해고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 은행 합병에서 ‘인위적으로 해고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또 우리는 조흥은행의 매각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장은 조흥은행을 단계적으로 소액주주에게 매각하자는 것이었다. 신한지주란 거대 은행에 매각·합병돼 ‘조흥’이란 브랜드를 잃어버리고 고용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 것을 반대했을 뿐이다.”
- 최근 참여정부는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공권력을 투입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면서 무리한 파업이 계속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시각도 있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민주노총의 전략을 논평하기는 조심스럽다(철도노조는 지난해 한국노총 산하에서 민주노총 산하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 철도노조 파업에서 파업 3시간 만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나 8000명이 넘는 파업 참가자를 징계하려는 정부의 처사는 지나치다고 본다. 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이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산하 조직관리를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관계다. 하지만 두 단체는 목소리를 모아 사용자와 정부에 대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 최근 한국노총이 노무현 정부를 ‘갈대정부’라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가.
“오락가락하니까 갈대정부지….(웃음) 노대통령이 국정 책임자로서 원칙과 명확한 소신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아쉽다. 노대통령은 대미관계에서도 처음엔 미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다가, 위기를 느끼자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를 보였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대통령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노동정책에 대한 장기적 밑그림을 그렸어야 했다. 노무현 정부가 처음부터 제도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노동계에 충분히 설명했더라면 노동계도 파업의 수위를 조절했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초기 개별 사업장에 해고 노동자들을 복귀시키며 ‘친(親)노동자 정책을 펼친다’는 정치적 공세를 받았다. 어설픈 정책 집행 과정으로 비판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다 이번에는 필요 이상으로 노동계에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노동계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발언은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나오지 않은 말이 아닌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노대통령이 실제로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정우 대통령 정책실장이 2일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대가로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네덜란드식 모델’을 제시했는데 사실 우리는 그것의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한 실정이다. 또 ‘스페인식 모델’ ‘포르투갈식 모델’ 등 다양한 방안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정부가 노동계와 한마디 논의 없이 정책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있어 당황스럽다.
더욱이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또 다른 모델을 준비하고 있어 노동계에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 한국노총 산하 노조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주를 이룬다. ‘대기업 공공노조도 사회적으로는 기득권층’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노동귀족’이란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노동자는 제조·생산직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나 막노동하는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박사나 대학교수도 임금을 받는 이상 노동자다. ‘노동귀족’이란 말에는 노동세력을 분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듯하다(목소리 높아지며). 대기업 노동자들도 그들 나름의 요구가 있으며, 대기업 내에서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는 분명 필요하다.
노조의 역할은 기업 사용자의 독선을 견제하는 것이다. 노조의 비판과 요구가 없다면 세상은 ‘빈익빈 부익부’의 이치로 흐를 것이 뻔하다. ‘배부른 사람이 요구조건은 왜 이리 많냐’는 식의 말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요구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몫을 빼앗아간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 역시 적절하지 않은 논리다. 문제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대기업 노동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경영진에게 있다. 조금의 손해도 감수하지 않고, 하청기업을 죽여 임금인상 비용을 충당하는 사용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은 게 현실인데, 노동운동도 뭔가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쟁점에 대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급선무란 생각이 든다. 사실 한국노총도 성명서나 신문광고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끊임없이 설명했지만, 우리의 글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아쉬웠다.
임금인상 투쟁이나 노동권 신장 투쟁 등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노동운동의 활동범위를 넓히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다. 환경, 세제, 교육 등 여러 가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 개발’과 ‘대안 찾기’에 집중하려 한다. 하지만 인적·물적 토대가 부족하다는 것이 현재 가장 큰 문제다.
노조는 노조원들의 권익 신장과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만큼 사회적 책임도 질 줄 알아야 한다.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노동운동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7월3일 만난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은 “하투가 결코 끝난 게 아니고 단지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연일 계속된 노동계 파업을 이끌고 정부와 협상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노-사-정이 완벽한 힘의 균형을 이룰 때까지 투쟁에 치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 10월부터 한국노총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위원장은 비교적 온건 합리주의의 길을 걸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 실망한 탓일까. 이위원장은 이날 노무현 정부의 원칙 없는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대목에 이르러선 단호함을 보이는 등 평소 ‘성향’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다음은 이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하투는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하나.
“6월30일 총파업 이후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투쟁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 6월 말 조흥은행 노조 파업에 대해서 여론이 좋지 않았다. 파업을 무리하게 진행했다고 생각지 않나.
“조흥은행 파업은 정부가 애초 약속을 파기한 데서 출발한다.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는지부터 생각해달라. 조흥은행은 공적자금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2년간 임금을 동결하고 45%의 구조조정도 감수했지만, 정부는 결국 독자생존에 대한 약속을 저버렸다.
물론 노동계도 그 뜻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투쟁 위주로 갔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위기론’을 내세우면서 국민이 노조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도록 만들었고 일부 언론은 이번 파업의 본질과 이유보다는 파업이란 현상을 보도하는 데 급급했다.”
- 조흥은행 매각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데도 노조가 ‘불법’ 파업으로 이를 반대한 것 자체가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또 협상 결과가 조흥은행 노조에 너무 유리하다며 인수 주체인 신한은행 노조에서 반발하고 있는데….
“조흥은행 노조에게 유리한 협상 결과라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3년 전제’ 하에 조흥은행원들을 해고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 은행 합병에서 ‘인위적으로 해고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또 우리는 조흥은행의 매각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장은 조흥은행을 단계적으로 소액주주에게 매각하자는 것이었다. 신한지주란 거대 은행에 매각·합병돼 ‘조흥’이란 브랜드를 잃어버리고 고용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 것을 반대했을 뿐이다.”
- 최근 참여정부는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공권력을 투입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면서 무리한 파업이 계속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시각도 있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민주노총의 전략을 논평하기는 조심스럽다(철도노조는 지난해 한국노총 산하에서 민주노총 산하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 철도노조 파업에서 파업 3시간 만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나 8000명이 넘는 파업 참가자를 징계하려는 정부의 처사는 지나치다고 본다. 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이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산하 조직관리를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관계다. 하지만 두 단체는 목소리를 모아 사용자와 정부에 대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 최근 한국노총이 노무현 정부를 ‘갈대정부’라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가.
“오락가락하니까 갈대정부지….(웃음) 노대통령이 국정 책임자로서 원칙과 명확한 소신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아쉽다. 노대통령은 대미관계에서도 처음엔 미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다가, 위기를 느끼자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를 보였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대통령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노동정책에 대한 장기적 밑그림을 그렸어야 했다. 노무현 정부가 처음부터 제도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노동계에 충분히 설명했더라면 노동계도 파업의 수위를 조절했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초기 개별 사업장에 해고 노동자들을 복귀시키며 ‘친(親)노동자 정책을 펼친다’는 정치적 공세를 받았다. 어설픈 정책 집행 과정으로 비판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다 이번에는 필요 이상으로 노동계에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노동계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발언은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나오지 않은 말이 아닌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노대통령이 실제로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정우 대통령 정책실장이 2일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대가로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네덜란드식 모델’을 제시했는데 사실 우리는 그것의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한 실정이다. 또 ‘스페인식 모델’ ‘포르투갈식 모델’ 등 다양한 방안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정부가 노동계와 한마디 논의 없이 정책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있어 당황스럽다.
더욱이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또 다른 모델을 준비하고 있어 노동계에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 한국노총 산하 노조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주를 이룬다. ‘대기업 공공노조도 사회적으로는 기득권층’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노동귀족’이란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노동자는 제조·생산직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나 막노동하는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박사나 대학교수도 임금을 받는 이상 노동자다. ‘노동귀족’이란 말에는 노동세력을 분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듯하다(목소리 높아지며). 대기업 노동자들도 그들 나름의 요구가 있으며, 대기업 내에서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는 분명 필요하다.
노조의 역할은 기업 사용자의 독선을 견제하는 것이다. 노조의 비판과 요구가 없다면 세상은 ‘빈익빈 부익부’의 이치로 흐를 것이 뻔하다. ‘배부른 사람이 요구조건은 왜 이리 많냐’는 식의 말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요구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몫을 빼앗아간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 역시 적절하지 않은 논리다. 문제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대기업 노동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경영진에게 있다. 조금의 손해도 감수하지 않고, 하청기업을 죽여 임금인상 비용을 충당하는 사용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은 게 현실인데, 노동운동도 뭔가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쟁점에 대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급선무란 생각이 든다. 사실 한국노총도 성명서나 신문광고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끊임없이 설명했지만, 우리의 글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아쉬웠다.
임금인상 투쟁이나 노동권 신장 투쟁 등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노동운동의 활동범위를 넓히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다. 환경, 세제, 교육 등 여러 가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 개발’과 ‘대안 찾기’에 집중하려 한다. 하지만 인적·물적 토대가 부족하다는 것이 현재 가장 큰 문제다.
노조는 노조원들의 권익 신장과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만큼 사회적 책임도 질 줄 알아야 한다.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노동운동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