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대륙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환전에 따른 불편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2002년 1월1일부터 유럽연합(EU) 회원국 15개 나라 가운데 영국과 덴마크, 스웨덴을 제외한 12개 나라에서 단일화폐인 ‘유로’가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덴마크와 스웨덴도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유로에 가입하겠다고 선언, 조만간 유로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마지막까지 자국 화폐인 파운드화를 고집하고 있는 영국 역시 유로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 투표에서 국민 과반수가 유로 도입에 찬성할 경우, 영국은 2006년이나 2007년에 파운드를 버리고 유로를 도입할 수도 있다.
2001년 6월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압승, 블레어 총리는 집권 2기를 맞았다.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2년 안에 영국이 유로에 가입할 경제적 조건을 충족했는지에 관한 경제적 테스트(economic test)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EU 회원국 12곳서 이미 유로 통용
단일화폐를 채택하려는 국가는 여러 ‘수렴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EU 15개 회원국의 총생산 중 4분의 1을 생산하는 경제대국 독일과 경제 규모가 매우 작은 포르투갈이 함께 유로를 채택할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 가입국들에게 동일한 이자율을 적용한다. 그러나 회원국 중에는 실업률이 높아 이자율을 낮추고 경기 부양책을 써야 하는 나라가 있고 정반대로 경기가 좋아 이자율을 높여야 하는 회원국도 있다. 따라서 유로를 도입하려면 이자율과 인플레이션율, 공공부채와 정부 재정 적자 등을 일정 범위 안에서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은 이런 수렴조건 외에 자체적으로 5개의 경제조건을 추가로 정해 이를 지킬 수 있는 경우에만 유로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경제조건들은 영국과 유로 가입국 간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수렴되는가, 유로 가입에 따른 경제변화에 충분히 대응할 유연성이 있는가, 영국에 투자하려는 외국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금융서비스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가 등이다.
6월9일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이 5개 조건 가운데 일부만 충족한 상황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유로에 가입해도 경제적 조건의 수렴과 단일화폐 채택에 따른 경제변화에 대처하려면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브라운 재무장관은 내년 3월 예산안을 발표할 때 그동안의 경제상황을 감안, 추가로 경제 테스트가 필요한지도 의회에서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올 가을에 유로 가입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에 필요한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빠르면 내년 가을, 아니면 이번 의회 회기가 끝나기 전인 2005년 상반기 혹은 2006년 상반기에 단일화폐 채택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
국민투표에서 영국인의 과반수가 찬성표를 던졌다고 해서 바로 영국에서 유로가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2년에서 2년 반의 이행기간이 필요하다. 즉 파운드화와 유로의 환율도 정해야 하고 정부와 기업, 일반인도 단일화폐 도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유로에 가입한 12개 나라도 1999년 1월부터 유로를 계정단위로 도입하고 3년이 지난 2002년 1월부터 비로소 실물화폐 유로를 쓰기 시작했다.
최근 일간지 ‘더 타임스’의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영국인의 3분의 1 정도가 여전히 유로 가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3분의 1은 경제적 조건이 맞을 경우 가입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3분의 1은 현재 가입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답했다. 아직도 유로 도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더 많은 셈이다
그러나 1년 반 전에는 영국인의 10%만이 유로 가입에 찬성했었다. 유로를 사용하는 이웃나라를 여행하면서 영국인들은 단일화폐의 편리한 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또 영국의 ‘라이벌 국가’ 프랑스도 이미 프랑을 버리고 유로를 쓰고 있다. 이런 점 역시 유별나게 자존심 강한 영국 국민들에게 `‘단일화폐를 도입하는 것도 별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줬을 것이라고 영국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당초 유로 가입에 회의적이었던 브라운 재무장관이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 것도 여론과 유로 채택을 지지하는 내각(현재 유로 가입을 지지하는 각료가 과반수를 넘는다)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한 결과다. 또 EU 회원국과의 교역이 영국 무역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들로서는 유로 도입을 적극 지지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을 지지해 프랑스, 독일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들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그런데 왜 이런 국가적 중대사를 총리가 아닌 재무장관이 주관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당인 노동당의 당권 경쟁이라는 배경이 있다. 1994년 5월 당시 존 스미스 노동당 당수가 급사해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당권을 놓고 경쟁할 처지에 놓였다. 블레어는 섀도 캐비닛의 내무장관, 브라운은 재무장관 자리에 있었고 노동당의 기반인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당권 경쟁을 계속할 경우 노동당이 분열될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었다.
결국 블레어와 브라운 두 사람은 런던의 그래니타 식당에서 만나 담판을 지었다. 당권을 양보하는 대가로 브라운은 재무장관 자리를 요구했다. 97년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브라운은 현재까지 재무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서열상으로는 총리 밑이지만 실상 브라운의 권력은 총리에 버금간다.
또 당시 당권을 양보하면서 블레어는 집권 2기만 마치고 노동당수에서 물러나기로 밀약을 맺었다. 따라서 차기 총리를 노리는 브라운이 당권 확보를 위한 카드로 유로 가입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영국 언론의 분석이다.
한편 제1야당인 보수당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버릴 수 없다’-파운드화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며 유로 채택에 반대하면서 이 문제를 정치쟁점으로 만들었다. 영국은 독립국가이기 때문에 이자율과 조세를 독자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야당의 논리다. 이런 논리의 밑바탕에는 물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역사적 자부심이 깔려 있다. 또 보수당은 단일화폐의 도입을 EU라는 연방국가로 가기 위한 덫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이 현재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의회 표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노동당은 제1야당과 국민이 반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단일화폐의 도입을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결국 이번 의회 회기 내 유로 채택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투표가 실시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집권 2기를 넘긴 블레어 총리의 레임덕 현상이 두드러지고 이에 따른 노동당 내의 당권 경쟁이 점차 가시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대륙을 정복한 유로에게도 마지막 보루인 영국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 마지막까지 자국 화폐인 파운드화를 고집하고 있는 영국 역시 유로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 투표에서 국민 과반수가 유로 도입에 찬성할 경우, 영국은 2006년이나 2007년에 파운드를 버리고 유로를 도입할 수도 있다.
2001년 6월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압승, 블레어 총리는 집권 2기를 맞았다.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2년 안에 영국이 유로에 가입할 경제적 조건을 충족했는지에 관한 경제적 테스트(economic test)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EU 회원국 12곳서 이미 유로 통용
단일화폐를 채택하려는 국가는 여러 ‘수렴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EU 15개 회원국의 총생산 중 4분의 1을 생산하는 경제대국 독일과 경제 규모가 매우 작은 포르투갈이 함께 유로를 채택할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 가입국들에게 동일한 이자율을 적용한다. 그러나 회원국 중에는 실업률이 높아 이자율을 낮추고 경기 부양책을 써야 하는 나라가 있고 정반대로 경기가 좋아 이자율을 높여야 하는 회원국도 있다. 따라서 유로를 도입하려면 이자율과 인플레이션율, 공공부채와 정부 재정 적자 등을 일정 범위 안에서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은 이런 수렴조건 외에 자체적으로 5개의 경제조건을 추가로 정해 이를 지킬 수 있는 경우에만 유로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경제조건들은 영국과 유로 가입국 간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수렴되는가, 유로 가입에 따른 경제변화에 충분히 대응할 유연성이 있는가, 영국에 투자하려는 외국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금융서비스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가 등이다.
6월9일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이 5개 조건 가운데 일부만 충족한 상황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유로에 가입해도 경제적 조건의 수렴과 단일화폐 채택에 따른 경제변화에 대처하려면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브라운 재무장관은 내년 3월 예산안을 발표할 때 그동안의 경제상황을 감안, 추가로 경제 테스트가 필요한지도 의회에서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올 가을에 유로 가입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에 필요한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빠르면 내년 가을, 아니면 이번 의회 회기가 끝나기 전인 2005년 상반기 혹은 2006년 상반기에 단일화폐 채택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
국민투표에서 영국인의 과반수가 찬성표를 던졌다고 해서 바로 영국에서 유로가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2년에서 2년 반의 이행기간이 필요하다. 즉 파운드화와 유로의 환율도 정해야 하고 정부와 기업, 일반인도 단일화폐 도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유로에 가입한 12개 나라도 1999년 1월부터 유로를 계정단위로 도입하고 3년이 지난 2002년 1월부터 비로소 실물화폐 유로를 쓰기 시작했다.
최근 일간지 ‘더 타임스’의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영국인의 3분의 1 정도가 여전히 유로 가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3분의 1은 경제적 조건이 맞을 경우 가입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3분의 1은 현재 가입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답했다. 아직도 유로 도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더 많은 셈이다
그러나 1년 반 전에는 영국인의 10%만이 유로 가입에 찬성했었다. 유로를 사용하는 이웃나라를 여행하면서 영국인들은 단일화폐의 편리한 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또 영국의 ‘라이벌 국가’ 프랑스도 이미 프랑을 버리고 유로를 쓰고 있다. 이런 점 역시 유별나게 자존심 강한 영국 국민들에게 `‘단일화폐를 도입하는 것도 별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줬을 것이라고 영국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당초 유로 가입에 회의적이었던 브라운 재무장관이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 것도 여론과 유로 채택을 지지하는 내각(현재 유로 가입을 지지하는 각료가 과반수를 넘는다)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한 결과다. 또 EU 회원국과의 교역이 영국 무역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들로서는 유로 도입을 적극 지지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을 지지해 프랑스, 독일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들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그런데 왜 이런 국가적 중대사를 총리가 아닌 재무장관이 주관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당인 노동당의 당권 경쟁이라는 배경이 있다. 1994년 5월 당시 존 스미스 노동당 당수가 급사해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당권을 놓고 경쟁할 처지에 놓였다. 블레어는 섀도 캐비닛의 내무장관, 브라운은 재무장관 자리에 있었고 노동당의 기반인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당권 경쟁을 계속할 경우 노동당이 분열될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었다.
결국 블레어와 브라운 두 사람은 런던의 그래니타 식당에서 만나 담판을 지었다. 당권을 양보하는 대가로 브라운은 재무장관 자리를 요구했다. 97년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브라운은 현재까지 재무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서열상으로는 총리 밑이지만 실상 브라운의 권력은 총리에 버금간다.
또 당시 당권을 양보하면서 블레어는 집권 2기만 마치고 노동당수에서 물러나기로 밀약을 맺었다. 따라서 차기 총리를 노리는 브라운이 당권 확보를 위한 카드로 유로 가입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영국 언론의 분석이다.
한편 제1야당인 보수당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버릴 수 없다’-파운드화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며 유로 채택에 반대하면서 이 문제를 정치쟁점으로 만들었다. 영국은 독립국가이기 때문에 이자율과 조세를 독자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야당의 논리다. 이런 논리의 밑바탕에는 물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역사적 자부심이 깔려 있다. 또 보수당은 단일화폐의 도입을 EU라는 연방국가로 가기 위한 덫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이 현재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의회 표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노동당은 제1야당과 국민이 반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단일화폐의 도입을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결국 이번 의회 회기 내 유로 채택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투표가 실시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집권 2기를 넘긴 블레어 총리의 레임덕 현상이 두드러지고 이에 따른 노동당 내의 당권 경쟁이 점차 가시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대륙을 정복한 유로에게도 마지막 보루인 영국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