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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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의 속삭임’ 휴대폰팅 따르~릉

‘명품 받고 친구 사귀고’ 미끼로 가입 유혹 … 청소년 탈선, 성매매 등 관련 범죄 속출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6-25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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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란의 속삭임’ 휴대폰팅 따르~릉

    최근 휴대전화를 이용한 미팅이 가정 파괴와 청소년 탈선의 온상이 되고 있다.

    어느 날 당신의 컴퓨터 e메일함에 ‘명품도 받고, 친구도 사귀고’ ‘좋은 친구, 많은 상품’이라는 제목의 e메일이 와 있다면? 인터넷 서핑을 하는데 팝업 창이나 광고에 이런 문구가 뜬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한 음란 e메일이나 배너광고의 하나라고 생각해 바로 삭제하겠지만 주저 없이 이 문구를 클릭한 사람이라면 생각이 다를지도 모른다. 가출 청소년이라든지 명품에 눈먼 여성, 생활형편이 어려운 주부 등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은 이들 사이트의 제안을 거부하기 힘든 까닭.

    거의 유혹에 가까운 제안의 내용은 이렇다. 해당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해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 뒤 그 번호로 걸려오는 남성의 전화를 받으면 백화점 상품권과 명품을 준다는 것. 전화를 받고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분당 500원에서 1000원까지의 포인트가 회원 여성에게 쌓이고 일정 정도의 포인트가 쌓이면 해당 금액만큼의 백화점 상품권이나 명품이 제공된다. 여성의 경우 사이트 가입비가 따로 없고, 휴대전화 번호가 사이트 화면상에는 다른 고유번호로 바뀌어 나타나기 때문에 상대방 남성이 전혀 알 수 없다. 1시간만 통화해도 6만원, 4시간이면 24만원을 벌 수 있다. 반면 남성들은 분당 500원씩의 통화료를 내야 한다.

    여성 1시간 통화 대가 6만원

    사이트측은 이런 ‘휴대폰팅’을 하면 친구도 사귀고 명품도 받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실상은 부작용이 더 많다. 휴대폰팅이 전화상의 대화만으로 끝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데다 이런 사이트에 돈을 내고 휴대폰팅에 나서는 남성들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그 만남이 유부남 유부녀의 만남일 때는 가정 파괴를 부를 수 있고, 미성년자와의 만남일 때는 원조교제가 되며, 심한 경우 성범죄로까지 이어진다. 이렇듯 휴대전화상으로 미팅을 하면 상품권이나 명품을 주는 일명 ‘명품 휴대폰팅’ 사이트가 청소년 탈선과 성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휴대폰팅 사이트와 기존 음란 폰팅 사이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음란 폰팅의 파트너가 되는 여성은 모두 운영자가 고용한 사람들인 반면, 휴대폰팅 사이트에서 전화를 받는 여성은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이트에 가입한 사람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PC방을 전전하는 가출 미성년자에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휴대폰팅 사이트는 최고의 ‘돈벌이’를 제공한다.



    6월12일 밤 휴대폰팅 사이트 ‘XXXTY19’를 통해 만난 김해리양(가명·17)은 아예 남성들이 자신이 미성년자임을 알 수 있도록 게시판에 ‘젊은 아기, 애인 찾아요’라며 미끼를 던져놓았다. 통화시간을 늘리기 위해 이야기를 계속하던 김양은 “밥과 술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같이 자면 용돈도 줄 수 있다”는 제안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바로 약속을 정하자고 했다. 확인 결과 김양은 지난 1월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한 상태. 이혼한 부모가 서로 키우려 하지 않아 할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된 그는 2월에 가출해 4월부터 휴대폰팅을 통해 얻는 상품권으로 물건을 사거나 원조교제를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가 가입한 휴대폰팅 사이트만 네 군데.

    “내 휴대전화 번호가 공개되지 않고 상대 남자의 번호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부담이 없어요. 설사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해도 확인이 불가능하죠.” 김양의 말은 사실이다. 김양이 미성년자임을 밝히고 사이트 운영자에게 상대 남성의 휴대전화 번호를 물었더니 그들은 오히려 화를 냈다. 사이트 운영자 김모씨는 “김양이 어떤 사람의 이름을 도용했든 회원 등록시 성인으로 확인되었고, 고객의 정보 보호 차원에서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줄 수 없다”고 했다.

    ‘음란의 속삭임’ 휴대폰팅 따르~릉

    명품은 사고 싶은데 돈이 없는 여성이 휴대폰팅 사이트의 1차 타깃이다.

    다른 휴대폰팅 사이트에서 만난 유부녀 이모씨(31)는 명품을 준다는 말에 혹해 휴대폰팅을 시작했다 ‘시간제 접대부’로 전락한 경우. 이씨는 휴대전화로 20분 정도 통화한 후 “회식이 있거나, 여자가 필요하면 부르라”며 “시간당 2만원을 주면 가겠다”고 제의했다.

    “2차는 절대 나가지 않아요. 명품 사느라 진 카드 빚 때문에 잠시 하는 것뿐인데….” 하지만 이씨의 이런 ‘다짐’은 채 1분이 지나지 않아 거짓말이 됐다. “30만원을 줘도 2차가 안 되느냐”고 묻자, 잠시 뒤 만날 시간과 장소를 물어왔다. 휴대폰팅 사이트가 인터넷의 포주이고, 휴대폰팅이 ‘섹스 폰팅’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고, 만약 그의 가족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야말로 가정이 해체될 상황이었다.

    5월31일 울산에서는 실제로 아내가 휴대폰팅을 통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아내의 애인을 납치해 7시간 동안 감금,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남편 김모씨(29)는 결국 경찰에 붙잡혔지만 휴대폰팅 탓에 이 가정은 풍비박산됐다.

    인터넷 포주 ‘섹스 폰팅’ 부추겨

    올 3월부터 초대형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하나 둘씩 모습을 보이며 광고를 하던 명품 휴대폰팅 사이트측은 관련 사이트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각 사이트 메인 화면에 버젓이 배너광고까지 내고 있다. 현재 확인된 명품 휴대폰팅 사이트만 30여개. 이제는 회원 가입을 권유하는 스팸메일까지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휴대폰팅 사이트가 늘어나는 만큼 관련 범죄도 속출하고 있다. 6월3일에는 휴대폰팅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정신지체장애인 이모양(19)을 성폭행해 임신까지 하게 한 유흥업소 종업원 배모씨(31)가 경찰에 구속됐고, 5월21일에는 역시 휴대폰팅으로 만난 여고생 김모양(17)을 성폭행한 중장비기사 안모씨(43)가 경찰에 붙잡혔다.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는 이양은 PC방에서 ‘무료가입, 전화를 받으면 상품이 온다’는 광고를 보고 휴대폰팅 사이트에 가입해 배씨의 전화를 받았고, 가입한 당일만 10여통의 전화를 받았다. 배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양을 여관으로 유인해 성폭행했다. 중장비기사 안씨는 광적으로 명품에 집착하는 김양에게 함께 술을 마시면 명품을 사주겠다고 유인한 후 성폭행했다. 이후 안씨는 김양에게 자신의 돈을 훔쳐갔다고 뒤집어씌워 다시 성폭행하고 알몸사진을 찍은 후 그것을 이용해 돈을 요구하는 일까지 일삼았다.

    배씨를 구속한 부산동부경찰서 형사계의 한 관계자는 “정보통신부에 등록된 사이트인 데다 약관에 성인만 회원으로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어 사이트 자체의 불법성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며 “하지만 미성년자가 쉽게 가입할 수 있고 전화를 받는 것만으로 돈이 생기는 구조로 돼 있어, 이를 노리는 범죄자들이 들끓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휴대폰팅 사이트에서 건전한 만남을 기대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찾기’보다 어렵다는 게 수사를 맡은 경찰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P휴대폰팅 사이트 운영자 이모씨는 “회원 가입 약관에 여성이 피해를 볼 경우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은 모두 본인이 지도록 돼 있기 때문에 사이트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실제 미성년자가 가입하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P휴대폰팅 사이트의 초기화면에 떠 있는 “최근 휴대폰팅 사이트를 통한, 돈을 전제로 한 청소년 성매매가 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행위를 자제해 주십시오”라는 경고문은 운영자의 주장을 믿기 어렵게 만든다. 회원이 모두 성인이며, 실제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매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왜 이런 경고문이 필요할까. 경고문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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