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영화), 엔터 더 매트릭스(게임), 애니매트릭스(애니메이션)는 융합된 디지털 콘텐츠의 위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애니매트릭스의 7번째 에피소드 ‘구체화된 매트릭스(Matriculated)’는 한국계 피터 정 감독이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 일본처럼 디지털 콘텐츠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매트릭스’의 외전(外傳)-‘엔터 더 매트릭스’(게임)는 또 다른 외전 ‘애니매트릭스’(애니메이션)의 9개 버전 중 하나인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행’의 뒷얘기로 시작한다. 영화 팬들은 상징과 암시로 혼란스러운 영화 ‘매트릭스’의 흩어진 조각을 ‘엔터 더 매트릭스’와 ‘애니매트릭스’를 통해 어렴풋이 맞춰볼 수 있다. ‘매트릭스’를 연출한 앤디·래리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리로디드’를 만들면서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와 ‘꼬마 이야기’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행’ 등 애니매트릭스의 대본을 함께 썼다. 아마도 3편의 각기 다른 장르의 ‘매트릭스’를 즐긴 영화 팬들은 11월 개봉할 ‘매트릭스-레볼루션’을 보며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넷마블·플레너스 합병이 신호탄
게임과 애니메이션에서 ‘매트릭스’의 주인공들은 영화와 다른 시점에서 전혀 다른 에피소드를 전개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네오가 시온으로 돌아왔을 때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파퍼는 애니메이션에서는 혼자 힘으로 매트릭스에서 벗어난 소년으로 묘사된다. 파퍼는 게임에서도 잠시 등장하는 듯하다. 게임에 나오는 “한 아이가 세상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오라클의 대사는 파퍼를 묘사한 게 아닐까? 이처럼 ‘엔터 더 매트릭스’와 ‘애니매트릭스’는 ‘매트릭스’ 1·2편의 시공(時空)을 잇고 영화 이전과 이후를 암시하며 3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한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이 접점에서 만나고 다시 엇갈려 결국 하나의 ‘매트릭스’가 완성되는 것이다.
‘매트릭스’로 상징되는 영화산업 게임산업 애니메이션산업은 21세기 디지털 콘텐츠를 놓고 벌어질 ‘이미지 경제 전쟁’의 전략적 요충지다. ‘엔터 더 매트릭스’는 발매 1주일 만에 전 세계에서 100만 카피가 팔렸고, 애니매트릭스는 DVD 마니아들의 소장 목록 1순위가 됐다. 흔히 쓰이는 경제학 용어에 ‘시너지 효과’라는 게 있다. 서로 다른 두 개가 결합하면 둘 이상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3개의 서로 다른 ‘매트릭스’가 ‘1+1+1=∞’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한국에서도 요즘 ‘매트릭스’의 경우처럼 영화·게임·포털 등을 한데 묶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신호탄은 최근 합병을 발표한 온라인게임업체 넷마블과 영화배급사 플레너스가 터뜨렸다. 1900만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게임회사’ 넷마블이 합병을 통해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넷마블-플레너스는 영화 콘텐츠를 게임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두 회사의 합병에 대해 애널리스트들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합병 이후 넷마블-플레너스의 최대 주주가 된 넷마블 방준혁 사장은 “플레너스의 영화 콘텐츠를 이용한 서비스를 차세대 수익원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음반업체인 예당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역전에 산다’에 투자한 데 이어 3D 온라인 롤플레잉게임(RPG)인 ‘프리스톤테일’을 제공하고 있는 트라이글로우픽쳐스와 지분 취득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에 앞서 포털 코리아닷컴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바 있다. 음악·영화·게임·포털을 아우르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으로 ‘대박을 터뜨린’ 싸이더스도 온라인게임업체, 포털 등과 제휴 합병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바블-플레너스와 같은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트라이글로우픽쳐스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게임산업과 영화산업은 모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게임과 영화의 만남은 향후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임 ‘A3’의 캐릭터. 액토즈소프트는 성인 전용 게임 ‘A3’를 이용해 보석, OST 등 부가사업을 벌이며 한국형 멀티유즈 마케팅에 성공했다. 엑토즈소프트는 소설과 캐릭터 이미지북 등으로도 콘텐츠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은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뿌리를 내리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한국은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 온라인게임업체들은 인터넷 전송 기술, 데이터 압축 기술, 컴퓨터그래픽 기술 등에서 게임의 본고장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온라인게임 ‘뮤’를 제공하는 웹젠과 ‘리니지’를 제공하는 엔씨소프트 등의 이익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웹젠은 올 1분기에만 130억원 매출에 70억원 순이익을 기록했고 엔씨소프트 역시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이 48.4%에 이른다. 대표적인 오프라인 우량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4.1%로 20%를 넘지 않는다.
한국은 또 콘텐츠를 판매하고 유통시킬 인터넷망이 완벽하게 구축돼 있다.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수출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온라인게임업체들은 게임 선진국인 미국 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인터넷 인프라스트럭처가 저발전 국가에까지 확장되면 시장은 그만큼 커진다. 인터넷커뮤니티 문화가 활성화돼 1000만명 이상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포털이 즐비한 것도 자랑이다. 영화+게임, 영화+포털, 포털+게임, 영화+포털+게임 등의 다양한 조합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제조업 분야에서의 국제경쟁력이 선진국보다 크게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전 세계 문화콘텐츠산업의 규모는 올해 1조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영화와 게임, 포털이 서로 연계돼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업 등을 벌이며 성공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때 관련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경제전문가들은 디지털콘텐츠 분야를 차세대 반도체, 디지털TV, 차세대 이동통신 등과 함께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의 하나로 꼽고 있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영화·게임·포털업계의 M&A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