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2

..

“들썩들썩…” 바람든 충청 부동산

외지인들 노른자위 땅 찾기 ‘떴다방’ 활개 … 서민·농촌 주민들 “거래 안 돼 피해 본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2-13 14:3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들썩들썩…” 바람든 충청 부동산

    3월부터 분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대전 노은 2지구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50여일이 지났지만 대전 충청 지역엔 대선 후폭풍이 거세다. 대전 일부 아파트가 평당 1000만원대를 찍었고, 부동산 투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인 ‘떴다방’ ‘기획부동산’ 등도 활개를 치고 있다. 외지인들은 노른자위 땅을 찾아 벌써부터 현장답사에 나서고 있고, 대전 둔산지구 등의 부동산중개업소는 투자 문의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행정수도 이전 지역이 결정되면 본격적으로 땅값이 오를 것”이라며 지역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모습이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도시의 무주택 세입자들은 오르는 아파트 값에 억장이 무너진다. 또 농촌지역 주민들은 “정부의 투기 억제 정책 때문에 급전이 필요해 땅을 싼값에 내놓아도 거래가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그렇다면 2003년 2월 충청도에선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대전의 강남’ 둔산지구

    “글쎄, 대전 사정을 잘 모르면 잠자코 계시라니까요. 대전에선 시공업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입지가 어디냐에 따라서 가격이 크게 달라집니다. 정부3청사를 끼고 있는 둔산동이 바로 대전의 강남이라니까요. 바빠서 전화 끊겠습니다.”

    2월5일 대전 최고 아파트로 통하는 서구 둔산동 A아파트 단지 내 상가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업소 주인은 연신 울려대는 전화기를 붙잡고 문의에 답하느라 정신이 없다. 서울 등 외지에서 전화가 끊이지 않아 업소는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공인중개사 이모씨는 “하루 100여통 정도의 문의전화를 받는다”면서 “부동산중개업을 시작하고 이렇게 바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둔산지구는 대선 이후 아파트 값이 수천만원이나 치솟은 대전 내 최고 인기 주거지다. 1994년 조성된 신시가지로 명문 충남고를 끼고 있고, 서울 대치동 지역을 떠올리게 하는 학원가가 조성돼 있다. 여기에 행정수도 특수가 가세하면서 둔산지구는 ‘부동산 광풍’의 진앙이 되고 있다. 둔산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오름세가 시작돼 외곽지역으로 번져가는 양상이다.

    “들썩들썩…” 바람든 충청 부동산
    둔산동 크로바아파트 47평형은 1월 중순 3억2500만원에서 3주 만에 3억6000만원으로, 녹원아파트 24평형은 1억5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값이 급등했다. 둔산동에 이웃한 유성구 도룡동 주공타운하우스 일부 평형의 평당 매매가는 이미 1000만원을 넘어섰다. 서울에서도 아파트 평균 평당 가격이 1000만원이 넘는 자치구는 강남 서초 용산 송파 양천구 등 5개 지역에 불과하다.

    2월5일 정부가 대전 전역을 투기지구로 지정한 데 대해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크로바아파트에 사는 김모씨(41)는 “서울 강남에 견주면 3000만원 정도 오른 게 무슨 부동산 과열이냐”고 반문했다. 공인중개사 이광옥씨도 “주요 도시 중 대전만큼 부동산이 저평가됐던 곳이 없다”며 “서울 강남아파트가 1억씩 오르는 것과 대전아파트가 수천만원 오르는 것을 어떻게 똑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아파트 계약을 둘러싼 분쟁도 잇따르고 있다. 집주인이 집을 못 팔겠다며 계약해지를 요구해 구매자와 갈등을 빚는 일이 비일비재라고 한다. 녹원아파트에 사는 곽미자씨(49)는 “동네사람들이 모이면 온통 부동산 얘기뿐”이라며 “지금 팔았다가 되사겠다거나 노은지구 아파트 분양권을 더 오르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등 부동산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일부 대전지역 부동산업자들은 대전 거주자와 외지인을 ‘구별’해 상담한다. 부동산중개인 최모씨는 “대전 사정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에겐 가격을 1000만~2000만원 정도 올려 부른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언론에 둔산지구 부동산 관련 내용이 다루어질수록 매수 문의가 늘어난다”면서 “정부와 언론이 투기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부동산업자들의 상당수는 취재팀에게 “부동산 상호를 기사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언론에 노출된 상호가 광고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행정수도 이전 특수에다 일부 부동산업자들과 투자자들이 ‘값 부풀리기’와 ‘묻지마 투자’에 나서면서 아파트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들썩들썩…” 바람든 충청 부동산

    공주 장기면 ‘부동산 거리’

    둔산동에서 불과 2.5km 떨어진 대전 노은지구도 부동산 광풍의 중심에 있다. 둔산지구가 ‘서울의 강남’이라면 노은지구는 ‘분당’ 정도에 해당되는 곳이다. 노은지구는 이미 입주를 마감한 약 60만평의 1지구와 지난해 분양을 시작한 2지구로 나뉜다.

    노은지구는 호남고속도로와 잇닿아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는 청원군 오송지구, 공주시 장기지구, 아산 신도시에 접근이 용이하고 주거환경이 쾌적한 새 아파트라는 점 때문에 인기가 높다. 그러나 이 지역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있던 곳. 행정수도 이전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2지구 일부 아파트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기 전까지 분양권의 60% 이상이 전매될 정도로 분양권 시장이 달아올랐다. 현지 부동산업자들은 “분양권 시장에 불을 붙인 건 원정 온 떴다방 업자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정보업체 매트릭스 관계자도 “미분양 물량을 흡수한 것은 대부분 떴다방”이라며 “이들이 확보한 물량이 대거 매물로 나올 경우엔 거품이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대전지역에 떴다방이 나타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노은지구 떴다방 업자들은 명의를 도용해 청약을 한 뒤 업자끼리 분양권을 사고 파는 수법으로 웃돈을 붙여 분양권 1개당 최고 1000만원 이상을 챙겼다고 한다.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노은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떴다방은 20여개에 이른다. 노은지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수도권 떴다방이 대거 대전에 내려오면서 분양권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며 “낮은 요금으로 거래를 알선하면 업계에서 ‘왕따’를 당한다”고 말했다.

    일부 떴다방 업자들은 분양권을 5~6차례씩 ‘찍고 돌렸다’고 한다. ‘찍고 돌리기’ 수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를 들어 분양권이 나오면 200만원에 ‘찍어’ 산 후 다른 업자에게 400만원에 ‘돌린다’. 그 분양권은 600만원에 또 다른 업자에게 넘어가고 결국 거래가가 자연스럽게 오르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전지역 무주택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최근 대전시 홈페이지(www.metro.daejeon.kr)에선 무주택자들이 올린 ‘행정수도 이전 결사반대’ ‘왜 노무현을 뽑아서…’ 등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분양권을 매입하기 위해 노은지구를 찾은 배정호씨(38)는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만 재산을 두 배로 불리고 있다.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다면 행정수도 이전을 재고해야 한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대전 충남지역 인터넷 언론인 디트뉴스24 김중규 편집위원은 “서민들은 한마디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전세금이 매매가격의 80~90%를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 없는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집을 가진 사람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한 채씩 갖고 있는 대다수 서민들은 실질적인 이득이 거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대전지역의 아파트 값은 이미 오를 만큼 올랐다고 분석한다. 대전지역의 경우 주택보급률이 90%를 넘는데다 전세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부동산 114 관계자는 “전세 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분양권 전매를 통한 단기차익을 노리고 접근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들썩들썩…” 바람든 충청 부동산

    아산 신도시와 인접한 천안 불당지구 아파트 건설현장,경부고속철도 천안역사 건설현장(위 부터)

    2월6일 오전 천안 시내에서 서쪽으로 차를 몰고 10분쯤 가자 논밭 한가운데에 골조 공사가 거의 끝난 경부고속철도 천안역사(驛舍)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 주변으로 불당지구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아산 신도시와 이웃한 불당지구는 최근 부동산값 상승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 대선 이후 쌍용동 동아아파트 65평형은 2억7000만원에서 4000만원 오른 3억1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진다. 쌍용동 현대6차 24평형은 9600만원에서 1억3400만원으로 분양권 프리미엄이 3800만원이나 붙었다.

    쌍용동 대우아파트에 사는 홍지연씨(28)는 “결혼식(1월5일) 3개월 전에 7000만원에 구입한 아파트가 크게 올라 너무 기쁘다”며 “행정수도가 아산 신도시로 옮겨온다면 집값이 얼마나 더 오를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 이서예씨(31)는 “천안역사에 더 가까운 불당동 지역 아파트를 분양받을 계획”이라며 “당첨만 되면 앉은자리에서 1000만원은 벌 수 있다”고 말했다.

    불당지구에서 아산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택지개발 예정지구’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아산 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인 이곳은 행정수도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곳. 천안 아산 경계 부근의 인적이 드문 지방도로에선 부동산업자의 안내에 따라 답사를 나온 10여명의 투자자를 볼 수 있었다. 부동산업자의 설명을 듣던 A씨는 “충청도 땅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늦기 전에 물건을 잡으러 나왔다”고 했다. A씨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기대로 소위 ‘묻지마 투자’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현지 부동산업자들은 “천안 아산 지역의 토지는 이미 오를 대로 올랐다. 혹시나 행정수도로 확정돼 강제 수용이 되면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천안 아산 지역의 임야와 전답 등은 도로와의 거리에 따라 평당 20만∼500만원 선이다. 2002년 초보다는 갑절 이상 오른 가격이지만 토지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천안 21세기공인중개사 한창표씨는 “고속철도 프리미엄이 이미 가격에 반영돼 크게 오른 상태”라며 “최근 천안을 찾아오는 외지인들은 천안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떴다방 경력만 10년이라는 중개업자 조모씨는 “기획부동산이 꿈틀대기 시작했다”며 “외지인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과 목동, 경기 분당을 중심으로 토지사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이들은 컨설팅 업체라며 접근해 “충청권의 확실한 땅이 있으니 답사나 한번 가보자”는 감언이설로 투자자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서울 강남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자들에 따르면 최근 “국책사업을 수행하는 컨설팅 회사”라며 투기성 유휴자금을 끌어들이려는 토지사기단도 등장했다고 한다.

    “들썩들썩…” 바람든 충청 부동산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는 공주 장기지구

    “여기가 서울이 되면 토박이들은 모두 떠나야 하는 것 아니에유. 어차피 땅은 수용될 테고. 언론에서 투기다 뭐다 떠드는 바람에 급전이 필요해 헐값에 내놓은 땅도 안 팔린다구 그래유.”

    2월6일 오후 7시께 충남 공주시 장기면사무소 인근 ‘부동산 거리’에서 만난 마을주민 심명복씨(50)는 땅값에 대해 묻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장기지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과거 행정수도로 ‘점찍었던’ 곳이다.

    면사무소 인근엔 대선 이후 20여개 부동산업소가 새로 들어서 ‘부동산 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중 절반 가량은 특수를 노리고 외지에서 들어와 개업한 것이다. 그러나 장기면에선 예상과 달리 부동산 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투자 문의가 늘고 호가도 올랐지만 거래가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이다.

    부동산업소는 한결같이 손님 한 명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거래가 없다 보니 급매물로 나오는 땅은 대선 전과 값이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행정수도 이전 특수를 누리고 있는 도시지역의 아파트 시장과 달리 행정수도 입지로 거론되는 농촌지역의 토지시장은 아직까지 투기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 하봉리 윤승현 이장은 “대선 직후엔 마을사람들이 들떠 매물을 거둬들이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며 “단속이니 뭐니 하는 바람에 급한 땅도 거래가 안 된다”고 말했다.

    장기면에서 청주 쪽으로 30여km 떨어진 충북 청원군 오송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 일선 중개업소는 대선 이후 땅값을 묻는 문의전화가 폭주해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정작 거래할 매물은 쑥 들어갔다. 박사공인중개사 박성순씨는 “대선 직후 반짝 활기를 띠면서 기존에 나와 있던 매물이 모두 소화됐다. 하지만 최근엔 매물이 잘 나오지 않는데다 매물이 있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장기·오송지구의 경우 땅값이 술렁이고는 있지만 일선 중개업소는 거래가 안 돼 울상이다. 기대심리에 따른 호가상승만 있을 뿐 거래 자체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으로 매도자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고, 투자자들도 위험부담이 커 선뜻 매매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정부가 2월7일 행정수도 후보지로 거론되는 대전과 충남 아산시, 충북 보은군 등 6개시, 5개군의 15억7400만평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이 지역에서 투자 목적의 부동산 거래가 전면 금지된다. 이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까지 제한하는 조치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장기면 도계부동산 신영인씨는 “시골사람들 허파에 바람 들게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투기가 문제라고 단속을 강화하는지 모르겠다. 그 바람에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만 죽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