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이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유네스코는 1월12일 이 교향곡의 악보 원본이 보관되어 있는 베를린 시립도서관의 그라함 예프코아테 도서관장에게 ‘세계문화유산 공식 인증서’를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현재 690가지에 달하는 ‘세계문화유산’ 중 음악으로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유일하다. ‘합창’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한국의 석굴암, 인도의 타지 마할 등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길이 보존해야 할 보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토록 위대한 음악을 작곡한 정신은 또한 얼마나 위대했을까. 그러나 실제 베토벤은 귀가 어두워서 소리를 듣지 못했고 매독환자였으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위대한 유산’과 ‘괴팍한 성질’.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피아니스트인 리처드 코간(48)도 이 부조화가 흥미롭고 궁금했다. 코간은 여섯 살 때 공개연주를 해 신동 소리를 듣던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음악과 의학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하버드 의대에 진학했지만, 대학 재학 시절에도 첼리스트 요요마와 연주하는 등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도 꾸준히 쌓아왔다.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된 코간은 ‘불량한 정신’으로 평생을 고생한 작곡가들이 남긴 ‘위대한 음악’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몇몇 작곡가들의 정신병과 그 같은 병력이 작곡에 미친 영향을 설명했다.
우선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의 경우부터 보자. 코간은 베토벤이 평소에 병적인 변덕을 부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베토벤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미친 듯이 화를 냈으며 걸핏하면 ‘자살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코간은 “특히 말년에 이 작곡가가 보인 각종 기행(奇行)들은 누가 보아도 정신병적인 증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하면서 이 같은 증후들도 더 심해졌을 것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슈만은 조증 겪으며 하루 22시간씩 작곡
정신과 의사로서 코간이 가장 흥미를 보인 대상은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다. 슈만은 젊은 시절 왕성한 창작력으로 주옥같은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을 작곡했으나 30대 이후 별다른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코간은 슈만의 증세가 전형적인 조울증이었다고 진단했다.
“슈만이 살았던 19세기 당시에는 조울증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조울증으로 고생했죠. 또 일부는 조울증 덕분에 더욱 뛰어난 창작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슈만도 조울증의 조증 상태에 있을 때 맹렬하게 작곡을 했죠. 하루에 22시간씩 작곡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정열로 슈만은 2주일 동안 세 곡의 현악 4중주를, 그리고 1년 동안 무려 138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그러나 조울증의 조증 상태가 사라지고 우울증이 찾아오면서 그의 창작력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몇 년 동안 전혀 작곡을 하지 못하면서 슈만은 자신의 정신병을 치료해줄 의사를 찾아 헤맸다. “아마 슈만은 19세기 당시 독일에서 할 수 있었던 치료법은 모두 다 받아보았을 겁니다. 의사가 슈만에게 ‘지나치게 작곡을 많이 해서 몸의 에너지를 다 써버렸기 때문에 병이 난 것’이라고 말하면, 그는 즉시 다른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이미 창작의 에너지가 다 고갈되었다는 말은 슈만이 가장 듣기 두려워했던 말이었거든요.”
슈만의 비극은 바로 이 같은 정신병과 천재적인 작곡 능력이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는 데에 있다. 조증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작곡에 매달리다가, 우울증 상태에서는 발작을 일으켜 라인강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결국 슈만은 46세의 나이로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과 일곱 자녀를 남겨둔 채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사망 직전 그의 정신은 아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러시아의 작곡가 피터 일리치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슈만과 반대의 경우다. 코간은 차이코프스키 역시 조울증 환자였지만 슈만과는 달리 우울증 상태에서 좋은 작품을 작곡했다고 설명한다.
“알려진 대로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는 이 같은 성적 경향이 외부에 알려질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극단적인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우울 증세가 창작 능력을 자극해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죠. 그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되는 교향곡 6번 ‘비창’을 작곡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살했는데 이때 그의 우울증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결국 우울증 때문에 그는 걸작도 남기고 목숨도 잃었던 셈입니다.”
정신병과 작곡 능력은 밀접한 관계?
만약 차이코프스키가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자신의 건강과 작곡 능력 중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
“그가 겪었던 우울증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차이코프스키는 건강한 정신과 창작 능력을 바꾸지는 않았을 겁니다.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1400여통의 편지를 보면, 그가 작곡을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의무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서머타임’의 작곡가인 미국의 조지 거슈윈(1898~1937)은 슈만, 차이코프스키와는 또 다른 정신병으로 고생했다. 거슈윈은 재즈와 클래식을 결합한 작품을 다수 작곡해 젊은 나이에 유명세와 부를 거머쥔 세계적인 천재 작곡가였다. 그러나 30대 중반부터 거슈윈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매주 5일씩 2년간이나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는데도 그의 병은 낫지 않았다.
병으로 고생하던 2년간, 거슈윈은 자신의 최대 걸작인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작곡했다. 그리고 1937년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미 뇌 속에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종양이 퍼져 있었다. 거슈윈은 39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거슈윈의 우울증은 뇌종양 때문에 생겨난 2차적 증세였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2년간이나 받았는데도 의사는 그의 뇌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던 거죠. 거슈윈의 우울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1935년 작곡된 ‘포기와 베스’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놀랄 만큼 어두운 음악입니다. 거슈윈은 자신의 병세가 죽음으로 이어지리란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었고, 그 직감이 음악에 나타났다고 봅니다.”
코간은 ‘내가 정신과가 아니라 병리학이나 방사선학 등을 전공한 의사였다면, 피아노 연주는 내게 아주 좋은 휴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과 정신병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기 때문에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내 머리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연주자들은 작곡가의 악보를 연주할 때 단순히 음표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음악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근 25년간이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해왔지만 이제서야 이 작곡가가 자신의 우울증과 동성애 성향 때문에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리고 그 같은 고민이 피아노 협주곡의 작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보다 통찰력 있는 연주로 이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죠.”
현재 690가지에 달하는 ‘세계문화유산’ 중 음악으로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유일하다. ‘합창’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한국의 석굴암, 인도의 타지 마할 등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길이 보존해야 할 보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토록 위대한 음악을 작곡한 정신은 또한 얼마나 위대했을까. 그러나 실제 베토벤은 귀가 어두워서 소리를 듣지 못했고 매독환자였으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위대한 유산’과 ‘괴팍한 성질’.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피아니스트인 리처드 코간(48)도 이 부조화가 흥미롭고 궁금했다. 코간은 여섯 살 때 공개연주를 해 신동 소리를 듣던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음악과 의학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하버드 의대에 진학했지만, 대학 재학 시절에도 첼리스트 요요마와 연주하는 등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도 꾸준히 쌓아왔다.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된 코간은 ‘불량한 정신’으로 평생을 고생한 작곡가들이 남긴 ‘위대한 음악’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몇몇 작곡가들의 정신병과 그 같은 병력이 작곡에 미친 영향을 설명했다.
우선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의 경우부터 보자. 코간은 베토벤이 평소에 병적인 변덕을 부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베토벤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미친 듯이 화를 냈으며 걸핏하면 ‘자살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코간은 “특히 말년에 이 작곡가가 보인 각종 기행(奇行)들은 누가 보아도 정신병적인 증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하면서 이 같은 증후들도 더 심해졌을 것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슈만은 조증 겪으며 하루 22시간씩 작곡
정신과 의사로서 코간이 가장 흥미를 보인 대상은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다. 슈만은 젊은 시절 왕성한 창작력으로 주옥같은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을 작곡했으나 30대 이후 별다른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코간은 슈만의 증세가 전형적인 조울증이었다고 진단했다.
“슈만이 살았던 19세기 당시에는 조울증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조울증으로 고생했죠. 또 일부는 조울증 덕분에 더욱 뛰어난 창작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슈만도 조울증의 조증 상태에 있을 때 맹렬하게 작곡을 했죠. 하루에 22시간씩 작곡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정열로 슈만은 2주일 동안 세 곡의 현악 4중주를, 그리고 1년 동안 무려 138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그러나 조울증의 조증 상태가 사라지고 우울증이 찾아오면서 그의 창작력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몇 년 동안 전혀 작곡을 하지 못하면서 슈만은 자신의 정신병을 치료해줄 의사를 찾아 헤맸다. “아마 슈만은 19세기 당시 독일에서 할 수 있었던 치료법은 모두 다 받아보았을 겁니다. 의사가 슈만에게 ‘지나치게 작곡을 많이 해서 몸의 에너지를 다 써버렸기 때문에 병이 난 것’이라고 말하면, 그는 즉시 다른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이미 창작의 에너지가 다 고갈되었다는 말은 슈만이 가장 듣기 두려워했던 말이었거든요.”
‘악성’ 베토벤. 리처드 코간은 베토벤이 청력 상실과 매독뿐만 아니라 정신병적 증후도 나타냈다고 주장한다.슈만, 거슈윈. 차이코프스키와 그와 결혼했다가 바로 이혼한 안토니아 밀류코바.(왼쪽부터)
러시아의 작곡가 피터 일리치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슈만과 반대의 경우다. 코간은 차이코프스키 역시 조울증 환자였지만 슈만과는 달리 우울증 상태에서 좋은 작품을 작곡했다고 설명한다.
“알려진 대로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는 이 같은 성적 경향이 외부에 알려질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극단적인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우울 증세가 창작 능력을 자극해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죠. 그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되는 교향곡 6번 ‘비창’을 작곡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살했는데 이때 그의 우울증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결국 우울증 때문에 그는 걸작도 남기고 목숨도 잃었던 셈입니다.”
정신병과 작곡 능력은 밀접한 관계?
만약 차이코프스키가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자신의 건강과 작곡 능력 중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
“그가 겪었던 우울증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차이코프스키는 건강한 정신과 창작 능력을 바꾸지는 않았을 겁니다.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1400여통의 편지를 보면, 그가 작곡을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의무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서머타임’의 작곡가인 미국의 조지 거슈윈(1898~1937)은 슈만, 차이코프스키와는 또 다른 정신병으로 고생했다. 거슈윈은 재즈와 클래식을 결합한 작품을 다수 작곡해 젊은 나이에 유명세와 부를 거머쥔 세계적인 천재 작곡가였다. 그러나 30대 중반부터 거슈윈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매주 5일씩 2년간이나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는데도 그의 병은 낫지 않았다.
병으로 고생하던 2년간, 거슈윈은 자신의 최대 걸작인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작곡했다. 그리고 1937년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미 뇌 속에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종양이 퍼져 있었다. 거슈윈은 39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거슈윈의 우울증은 뇌종양 때문에 생겨난 2차적 증세였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2년간이나 받았는데도 의사는 그의 뇌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던 거죠. 거슈윈의 우울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1935년 작곡된 ‘포기와 베스’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놀랄 만큼 어두운 음악입니다. 거슈윈은 자신의 병세가 죽음으로 이어지리란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었고, 그 직감이 음악에 나타났다고 봅니다.”
코간은 ‘내가 정신과가 아니라 병리학이나 방사선학 등을 전공한 의사였다면, 피아노 연주는 내게 아주 좋은 휴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과 정신병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기 때문에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내 머리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연주자들은 작곡가의 악보를 연주할 때 단순히 음표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음악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근 25년간이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해왔지만 이제서야 이 작곡가가 자신의 우울증과 동성애 성향 때문에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리고 그 같은 고민이 피아노 협주곡의 작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보다 통찰력 있는 연주로 이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