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에게 ‘사랑의 묘약’으로 불리는 초콜릿에는 신경을 자극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
초콜릿 어디에 감미로운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력이 있는 것일까.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초콜릿에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기는 하다.
초콜릿에는 뇌를 자극해 각성 효과를 나타내는 카페인 외에도 신경을 자극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종자의 약 5%를 구성하고 있는 ‘테오브로민(theobromine)’이 바로 그것. 이 물질은 폐의 평활근을 이완시켜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초콜릿의 몇몇 성분에는 마약 효과까지 있다. 대표적 성분은 트립토판이다. 뇌 속에는 매우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이들은 신경세포 사이에서 전기적 신호를 전달해 감각 정보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트립토판은 뇌의 신경세포와 함께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데 고농도의 세로토닌은 기분 좋은 상태, 심지어 황홀경(ecstasy)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립토판이 ‘초콜릿 엑스터시’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초콜릿 중독은 어떤 성분 때문?
초콜릿의 또 다른 화학성분인 페닐에틸아민은 ‘초콜릿 암페타민’이라 불린다. 암페타민은 대뇌피질을 각성시켜 사고력과 기억력, 집중력 등을 순식간에 고조시킨다. 강렬한 각성작용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철저한 관리 하에서만 처방할 수 있다. 고농도의 암페타민은 중독성까지 있다. 한때 유행한 ‘스피드’라고 불렸던 마약의 주성분이 암페타민이다. 고농도의 페닐에틸아민도 암페타민과 비슷하게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해 상대에 대한 끌림과 흥분감, 현기증 등의 감정을 유발하며 뇌 속의 ‘행복중추’를 자극한다. 남녀가 성관계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낄 때 신경전달물질인 페닐에틸아민 농도가 최고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는 초콜릿의 ‘해피 케미컬(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화학물질)’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다. 서울대 약학대학의 고광호 박사는 “초콜릿에 들어 있는 트립토판과 페닐에틸아민 같은 화학물질은 초콜릿뿐 아니라 다른 음식에도 들어 있다”며 “더욱이 초콜릿에는 매우 적은 양이 포함되어 있어 이들이 체내에서 소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분해되지 않고 뇌 속으로 제대로 전달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초콜릿을 ‘사랑의 묘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달콤함에 대한 갈망’이 지나쳐 초콜릿 중독에 빠지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심지어 초콜릿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전문클리닉이 등장하고, 중독 치료용 패치 제품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초콜릿을 이야기할 때 ‘중독성’을 빼놓을 수 없다.
초콜릿의 성분 중 아나다마이드(anandamide)는 초콜릿 중독의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다. 미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신경과학연구소의 다니엘 피오멜리 박사는 초콜릿의 성분 중 하나인 아나다마이드가 대마초를 흡입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일으키는 대뇌의 수용체와 결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마초의 주성분은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tetrahydrocannabinol)인데, 뇌 속에는 이것에 반응하는 수용체가 있다. 피오멜리 박사에 의하면 초콜릿 속의 아나다마이드도 THC 수용체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콜릿도 대마초처럼 중독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초콜릿을 먹어 대마초 효과를 내려면 한 번에 약 7kg의 초콜릿을 먹어야 할 만큼 초콜릿에 함유된 아나다마이드는 극미량(초콜릿 1g에 수㎍)에 불과하다.
초콜릿 중독이 근거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왜 달콤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일까. 가장 설득력 있는 대답은 진화론적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선사시대 인류에게 달콤한 것을 가려내는 능력은 곧 ‘생존’을 의미했다. 쓴맛을 내는 독초는 피하고 단맛을 내는 과일 같은 열량이 풍부하고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선호하도록 만든 ‘달콤한 유전자’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열매.초콜릿 홍보를 위한 쇼에서 모델이 초콜릿으로 만든 옷을 선보이고 있다.초콜릿은 피부 마사지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왼쪽부터)
2001년에는 이 달콤한 유전자의 정체가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미 뉴욕대 마운트시나이 의대의 로버트 마골스키 교수팀은 우리 혀에 단맛을 가려낼 수 있는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이에 따라 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단맛에 집착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신맛과 쓴맛, 짠맛을 느끼는 수용체는 밝혀졌지만 단맛 수용체를 밝힌 것은 마골스키 교수팀의 연구가 처음이다.
연구팀은 단맛이 나는 물과 그렇지 않은 물을 좋아하는 두 종류의 쥐를 분석했다. 그 결과 두 그룹의 쥐에게서 각기 다른 유전자를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가 혀의 단맛 수용체를 결정한다고 결론지었다. 현재는 이와 비슷한 염기서열을 가진 인간 유전자를 찾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달콤한 유전자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단맛에 좀더 민감하고 더 좋아하는지를 유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한편 초콜릿이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미국의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대의 칼 킨 교수 연구팀은 2000년 초콜릿 성분의 하나인 플라비노이드에는 혈액 응고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심장마비나 심장발작은 혈액 응고를 주관하는 혈액 속의 혈소판이 지나치게 활동적이 되면서 발생한다. 그런데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플라비노이드가 혈소판의 혈액 중 농도를 낮춰 혈액 응고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킨 교수는 플라비노이드는 차와 와인 등에도 들어 있지만 초콜릿에는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농도가 함유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킨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킨 교수가 미 초콜릿 제조회사인 마스사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한 것이 밝혀지면서 학계에서는 그의 연구결과의 객관성을 문제 삼았다. 현재는 킨 교수의 결과를 검증하려는 관련 연구가 진행중이다.
킨 교수의 주장은 초콜릿에 함유된 과도한 지방을 무시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시판중인 초콜릿에는 주원료인 카카오 페이스트와 카카오 버터보다 전지분유 등 지방 성분이 훨씬 많이 들어 있다. 최근 하버드대 보건연구팀은 초콜릿의 플라비노이드가 심장병을 예방하는 효과보다 지방 성분이 심장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한 달에 세 번 초콜릿을 먹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일 년 정도를 더 살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수명을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초콜릿의 지방 성분이 심장병과 비만 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초콜릿을 선물해야 할까?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이종미 교수는 “초콜릿은 두 얼굴을 가진 식품”이라며 “건강을 생각한다면 어두운 색의 초콜릿을 먹는 게 좋다”고 말한다. 다크 초콜릿은 밀크 초콜릿보다 코코아 함량이 높기 때문에 혈액 속의 고밀도 콜레스테롤(HDL)의 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HDL은 동맥에서 피를 엉기게 만들어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저밀도 콜레스테롤(LDL)과 달리 피가 엉기는 것을 억제하는 ‘좋은’ 콜레스테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