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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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불똥’ 개성공단에도 튈라

수익 의문시되는 판에 남북 냉각기류마저 겹쳐 … 국내 기업들 개성 진출 더 몸 사릴 듯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2-12-18 12: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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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 불똥’ 개성공단에도 튈라

    개성공단 가동 이후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을 놓고 남북간 인식 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를 방문한 박남기 북한경제시찰단장(위 왼쪽)과 북한 내 공장 근로자들의 작업 장면.

    대구 성서공단에서 27년째 나일론 직물 제조업을 해온 대준섬유 박노화 사장. 12월13일 박사장과 같은 공단 내 섬유업체 사장들이 함께 한 점심식사 자리의 화제는 단연 ‘북한 핵’이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화제는 ‘개성공단’이었다. 개성공단이 내년쯤 분양을 시작할 경우 입주 1순위는 대구지역 섬유업체들일 것임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2일 북한의 핵동결 해제 선언 이후 이 지역 섬유업체들 사이에서는 개성공단 연내 착공도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박노화 사장은 “개성공단에 투자하더라도 제대로 투자를 회수할 수 있을지, 제네바 합의 같은 국가간 협약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마당에 개성공단 관련 협약이 이뤄진다고 해서 북한측이 이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많다”고 전했다.

    북한의 핵동결 해제 선언 이후 남북경제협력(이하 경협) 사업에도 당분간 먹구름이 드리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개성공단이 첫번째 유탄(流彈)을 맞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은 8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2차 회의에서 개성공단 연내 착공에 합의한 이후, 실무 접촉을 통해 12월26∼30일에 착공식을 개최한다는 데까지는 합의했으나 ‘북한 핵’이라는 예기치 못한 대형 암초를 만난 것.

    중국에 비해 분양가 월등히 높아

    북한 핵동결 해제 선언 이후에도,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차 남북경제협력제도 실무협의회는 일단 예정대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번 실무협의회에서도 상사분쟁 해결방안이나 통행절차 등에 관해서는 아무런 합의사항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달 말로 예정된 개성공단 착공식이 여러 가지 변수 때문에 예정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북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협사업 중 일부는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사업 계획만 나와 있는 상태에서 자재나 인원이 이동하지 않은 사업의 경우에는 사업 시작 자체가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2월 말 착공을 앞두고 있는 개성공단 사업이다. 안 그래도 개성공단 사업은 착공식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임에도 개성공업지구법 발표 이후 구체적인 입주 조건 등이 확정되지 않아 입주 희망 기업들이 제대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편이다.

    개성공단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단 입주로 얼마만한 비용 절감 효과와 수익 증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이와 관련해 10월 남한이 개성공단 개발을 통해 302억 달러의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언론에도 대서특필됐다.

    당시 전경련은 북한 역시 개성공단 조성 과정에서 154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54억 달러는 2000년 북한의 예산보다도 많은 액수. 한마디로 개성공단 사업이야말로 남북한 모두의 경제에 이익이 되는 윈윈(win-win)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경련의 이러한 추정은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다. 우선 개성공단 지역의 토지는 무상 임대를 원칙으로 하고 개성공단 내에서 생산된 제품은 전량 북한 외부로 수출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단까지의 도로 및 철도는 북한 쪽이 건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개성공업지구법은 공단 부지에 있는 주택 및 농지의 철거는 물론 도로·통신·전력 등 공단 외부 기반시설 설치도 사업시행자가 전적으로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토지 무상 임대 문제 등도 아직까지 타결짓지 못하고 있는 형편.

    ‘핵 불똥’ 개성공단에도 튈라
    또 입주 희망 기업들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공단 분양가가 어느 수준에서 결정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아직까지 개성공단의 분양가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토지공사가 개성공단 1단계 공사(100만평) 예산으로 잡아놓은 금액이 20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평당 분양가는 30만원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공원과 도로 등 공공시설을 제외하고 전체 면적 100만평의 70% 정도를 입주 기업들에게 분양한다고 했을 때 평당 30만원은 받아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동안 입주 희망 기업들이 개성공단 분양가를 이야기할 때마다 ‘최소한 중국 수준 이하’를 주장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기업들의 요구 수준과는 차이가 크다.

    중국 수준과 비교해보기 위해 한국 기업들이 입주한 중국 내 공단의 경우를 살펴보면 사정은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11월 말 기공식을 열고 내년 9월 완공을 목표로 조성중인 단둥 동항경제개발구 시범공단의 경우 평당 분양가는 6만2500원 수준. 단둥과 배편으로 바로 연결되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인천시가 몇 년 전 분양을 마치고 현재 가동중인 중국의 단둥공단 분양 당시도 분양가는 6만원 이하였다. 또 한국토지공사가 분양했던 중국 선양공단의 분양가가 평당 6만9000원, 톈진공단의 평당 분양가가 8만2000원 수준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중국과 비교해본 개성공단의 경쟁력은 입주 시점부터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개성공단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분양가와 임금 수준은 더욱 구체적이다.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에서도 섬유의류 60개 업체와 전자정보 15개 업체 등 개성공단 진출이 예상되는 업종 중심으로 75개 업체를 상대로 비공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6% 정도의 업체가 개성공단 진출 요건으로 ‘분양가 10만원 이하, 월 임금 50달러 이하’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 윤영선 산업입지환경과장은 “일반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나라에서 기본 인프라를 갖춰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개성공단의 경우 인프라 부족과 근로자들에 대한 사회보장비 등으로 인해 기업들 입장에서는 추가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가 현실화할 경우 진출 1순위로 꼽히는 업체는 바로 섬유 및 직물 업체들이다. 그런데 섬유업체들의 개성공단에 대한 인식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이하 섬산련)는 현대아산측과 2년 전부터 계약을 맺고 섬유업체들에 대한 개성공단 입주 수요 조사를 실시해 현대아산에 전달해왔다.

    북측 임금 요구액도 기업들과 큰 차이

    섬산련이 11월25일부터 12월7일까지 실시한 수요 조사에서 개성공단 입주를 희망하는 섬유업체는 174개 업체로 나타나 2년 전 조사 당시의 132개 업체에 비해 24% 가량 늘어났다. 또 입주 희망 공장 부지 규모 역시 2년 전 조사에서는 50만평 수준이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72만평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 조사에 응한 섬유업체들 역시 개성공단 입주를 위한 적정 분양가로는 평당 10만원 선을, 평균임금으로는 월 85달러 수준을 꼽아 현재 논의중인 분양가 및 임금 수준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한마디로 개성공단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은 계속 늘고 있지만 입주조건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섬산련 문기영 과장은 “섬유업체들의 관심은 크지만 아직 개성공업지구법 발표 이후 구체적인 시행 세칙 등이 나오지 않아 유보적 입장을 보이는 업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1월 116개 남북교역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응한 74개 업체 역시 개성공단의 적정 분양가로 평당 11만7000원을 꼽았다. 이 또한 현재 논의되고 있는 평당 30만원 수준과는 크게 차이 나는 수치다.

    한국수출입은행 김태희 이사는 “도로, 용수, 전력 등 기반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개성공단 평당 분양가는 아무리 낮춰 잡아도 20만원은 넘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남쪽의 대불공단보다도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사는 또 “임금 문제의 경우에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수로 근로자들의 최저임금이 110달러라는 점을 감안할 때 북한측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개성공단 분양가가 눈앞의 이익만을 보고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개성공단 분양을 맡게 될 토지공사가 결국 정부 의중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일단 공단 조성 사업 착수 단계에서는 다소 신축적인 양상을 띨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통일연구원 최수영 선임연구위원은 분양가나 임금 문제는 남북 간에 어느 정도 협의가 가능한 부분이라고 전망했다. 토지공사 역시 국내 공단 분양사업과는 달리 수익성 위주로 접근하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의 교두보 확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분양가 문제는 어느 정도 신축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물류비용 면에서는 개성공단이 중국 지역의 다른 공단에 비해 압도적 우위에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그동안 높은 물류비가 남북경협 활성화를 가로막는 대표적 요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의선 도로 연결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개성공단은 남북경협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경제적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북한 핵문제 등으로 인해 남북한을 둘러싼 정세가 불안할수록 개성공단의 운명이 정치적 격랑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북한이 11월 발표한 개성공업지구법은 개성공단에 공업지구 관리기관을 두고 공단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관리기관은 북한 중앙의 공업지구 지도기관의 지도 아래 놓인다는 점에서 명실상부한 자율기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

    따라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현단계에서 무조건 기일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개성공단의 ‘토대’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KDI 신지호 초빙연구위원은 “북한이 50달러 수준의 임금을 과감히 받아들이고 종업원들에 대한 임금 직접 지불을 가능하게 해 인센티브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으로 하여금 인건비와 토지 임대료를 통한 눈앞의 이익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 건설이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에 주목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러한 지적을 내놓는 전문가들은 결국 ‘메이드 인 개성’ 제품의 품질이 올라가고 브랜드가 알려지게 되면 임금 수준은 따라서 올라갈 수도 있으리라고 전망한다.

    통일연구원 최수영 박사는 “북한 핵동결 해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마당에 착공식이 이뤄진다고 해서 실제로 국내 건설업체들이 북한에 들어가 개성 지역에서 공사를 벌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KDI 신지호 연구위원도 “정권 말기를 맞아 정부가 남북경협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착공식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팡파르를 울리고 언 땅에 삽질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성공단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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