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둔 12월1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핵동결 조치 해제 및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했다. 이로써 북한 외무성 강석주 제1부장이 10월 초 방북한 미국의 대북 특사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에게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하면서 불거진 북핵 문제는 새로운 양상을 띠며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당장 현실적인 위협 상황 긴박
문제는 이번에는 상황이 좀더 긴박하다는 점이다.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은 한미 정부당국이 밝혔듯이 초기 수준이어서 수년이 지난 뒤에야 현실화되는 문제지만, 핵동결 조치 해제는 당장 현실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발표된 지 하루 만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핵시설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를 요청함으로써 북핵 위기는 점점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 제2의 북핵 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북한이 밝힌 핵동결 조치 해제는 제네바합의를 사문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고조된 한반도 핵 위기가 북-미 간 제네바합의를 통해 진정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더욱 심각해 보인다. 94년에 체결된 제네바합의는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100kw급 경수로 2기를 북측에 제공하고, 북-미 관계를 정상화해 나가는 것을 요체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북경수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구성됐고,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KEDO는 현재 북한 함경남도 신포에서 진행중인 경수로 2기 건설을 책임지고 있다. 북한이 핵동결 조치 해제를 강행한다면 현재 가동이 중단된 평북 영변의 5MW 흑연감속 원자로, 건설이 중지된 영변의 50MW 발전소, 평북 태천의 200MW 발전소 등의 건설 및 가동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따른 후속조치로 IAEA측에 철거를 요청한 핵시설 봉인 및 감시카메라를 철거한다면 사태는 급속히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감시카메라 및 봉인은 5MW 원자로에서 꺼낸 폐연료봉 8000여개를 보관중인 수조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 실험실에 설치돼 있는데, 폐연료봉 활용은 핵무기 재료로 사용되는 플루토늄 추출 작업과 직결되기 때문에 미국과의 극단적인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북핵 위기가 불거진 뒤 한미 양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부심하고 있지만 아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제네바합의가 사문화된다면 경수로 건설을 중단하고 공사 인력을 철수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검토 단계에 들어서지는 않은 상태다. 북한이 과연 실제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지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미국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현재의 자세에서 벗어나 강제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핵 위기가 전개 상황에 따라서는 북-미 간의 대결 양상으로 흐르기는 하겠지만 쉽게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 또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스스로도 극단적인 대결을 원하지는 않는 듯하기 때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연간 50만t의 중유 제공을 조건으로 취했던 핵 동결을 해제하고 전력 생산에 필요한 핵시설의 가동과 건설을 즉각 재개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문제의 발단은 미국의 중유 제공 중단이고, 북한의 향후 움직임도 전력 생산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북한의 핵시설 감시장치 제거 요구가 IAEA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점도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하필 이 시점에 핵동결 조치 해제라는 초강수를 두고 나왔을까.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한 뒤 북미관계가 순조롭게 풀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북관계는 조금씩이나마 진전되고 있었다. 북한 지도부도 핵 문제가 불거지면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핵동결 조치 해제 결정은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희생시키더라도 좀더 큰 열매를 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핵동결 조치 해제라는 초강수를 둔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라늄 핵 개발 계획 시인 이후의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한 뒤 한-미-일 3국 정상은 10월26일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린 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먼저 폐기해야 하며,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11월9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3국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통해 북한이 태도에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대북 중유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어 14일 뉴욕에서 열린 KEDO 이사회에서는 12월분 대북 중유 지원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해오던 유럽연합도 대북지원 및 경제교류를 중단할 움직임을 보였다.
이렇듯 국제사회가 북한에 등을 돌리기 시작하자 7월1일부터 경제개혁 조치를 실시해오던 북한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대외 개방 노력 이미지 ‘찬물’
따라서 북한의 핵 위기 조성은 정체 상태에 있는 미국과의 협상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핵시설들을 다시 동결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 것에서도 이 같은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켈리 특사 방북시 모든 것을 시인한 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북-일 정상회담에서 납치문제, 우라늄 핵 개발 계획 시인 등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을 추진하던 북한은 선(先) 핵 폐기라는 암초를 만나 더 이상 운신할 공간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편으로는 12월9일 미국이 스페인 전함을 통해 미사일 수출을 위해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화물선 서산호를 나포해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술적으로도 그동안 미국측에 서운한 감정만을 보이며 협상을 바라던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미국의 입김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공세적인 움직임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의 대선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핵 위기를 일으켰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이번 핵 위기가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는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임을 감안한다면 그동안의 북한의 태도를 고려해볼 때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소수정권인 DJ 정부가 사사건건 대북정책에 발목이 잡히는 것을 보고 다수당을 배경으로 한 정권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과거 보수적인 정권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노력했고, 남북교류협력이라는 물결이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고려할 때 북한으로서는 오히려 다수당을 배경으로 한 정권이 등장하는 것이 북한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유가 어떤 것이든 이 같은 상황 전개는 북한이 7월1일부터 물가와 임금인상을 바탕으로 시작한 경제관리 개선조치, 신의주 경제특구 발표, 북-일 정상회담 및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 금강산 및 개성공단 특구 지정 등 잇따른 깜짝쇼와 경제개혁을 위한 북한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 것임이 틀림없다. 이는 94년 7월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별다른 경제 청사진을 만들지 못하다가 올 들어 자신의 경제 구상을 공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 정부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만을 바라고 있을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남북관계를 재검토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이 핵 개발 의혹에 대해 국제사회에 해명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남북교류협력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연내 성사될 것으로 기대했던 개성공단 착공식, 육로를 이용한 금강산 시범관광, 철도연결 등의 사업의 성사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초강도 협박 카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한과의 추후 협상은 북한이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한 뒤에야 가능하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양측이 대화의 접점을 찾는 작업은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양측이 대화가 아닌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상황을 몰고 간다면 그만큼 한반도 정세도 위기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현실적인 위협 상황 긴박
문제는 이번에는 상황이 좀더 긴박하다는 점이다.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은 한미 정부당국이 밝혔듯이 초기 수준이어서 수년이 지난 뒤에야 현실화되는 문제지만, 핵동결 조치 해제는 당장 현실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발표된 지 하루 만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핵시설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를 요청함으로써 북핵 위기는 점점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 제2의 북핵 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북한이 밝힌 핵동결 조치 해제는 제네바합의를 사문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고조된 한반도 핵 위기가 북-미 간 제네바합의를 통해 진정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더욱 심각해 보인다. 94년에 체결된 제네바합의는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100kw급 경수로 2기를 북측에 제공하고, 북-미 관계를 정상화해 나가는 것을 요체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북경수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구성됐고,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KEDO는 현재 북한 함경남도 신포에서 진행중인 경수로 2기 건설을 책임지고 있다. 북한이 핵동결 조치 해제를 강행한다면 현재 가동이 중단된 평북 영변의 5MW 흑연감속 원자로, 건설이 중지된 영변의 50MW 발전소, 평북 태천의 200MW 발전소 등의 건설 및 가동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따른 후속조치로 IAEA측에 철거를 요청한 핵시설 봉인 및 감시카메라를 철거한다면 사태는 급속히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감시카메라 및 봉인은 5MW 원자로에서 꺼낸 폐연료봉 8000여개를 보관중인 수조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 실험실에 설치돼 있는데, 폐연료봉 활용은 핵무기 재료로 사용되는 플루토늄 추출 작업과 직결되기 때문에 미국과의 극단적인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북핵 위기가 불거진 뒤 한미 양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부심하고 있지만 아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제네바합의가 사문화된다면 경수로 건설을 중단하고 공사 인력을 철수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검토 단계에 들어서지는 않은 상태다. 북한이 과연 실제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지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미국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현재의 자세에서 벗어나 강제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핵 위기가 전개 상황에 따라서는 북-미 간의 대결 양상으로 흐르기는 하겠지만 쉽게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 또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스스로도 극단적인 대결을 원하지는 않는 듯하기 때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연간 50만t의 중유 제공을 조건으로 취했던 핵 동결을 해제하고 전력 생산에 필요한 핵시설의 가동과 건설을 즉각 재개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문제의 발단은 미국의 중유 제공 중단이고, 북한의 향후 움직임도 전력 생산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북한의 핵시설 감시장치 제거 요구가 IAEA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점도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하필 이 시점에 핵동결 조치 해제라는 초강수를 두고 나왔을까.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한 뒤 북미관계가 순조롭게 풀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북관계는 조금씩이나마 진전되고 있었다. 북한 지도부도 핵 문제가 불거지면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핵동결 조치 해제 결정은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희생시키더라도 좀더 큰 열매를 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핵동결 조치 해제라는 초강수를 둔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라늄 핵 개발 계획 시인 이후의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한 뒤 한-미-일 3국 정상은 10월26일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린 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먼저 폐기해야 하며,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11월9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3국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통해 북한이 태도에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대북 중유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어 14일 뉴욕에서 열린 KEDO 이사회에서는 12월분 대북 중유 지원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해오던 유럽연합도 대북지원 및 경제교류를 중단할 움직임을 보였다.
이렇듯 국제사회가 북한에 등을 돌리기 시작하자 7월1일부터 경제개혁 조치를 실시해오던 북한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대외 개방 노력 이미지 ‘찬물’
따라서 북한의 핵 위기 조성은 정체 상태에 있는 미국과의 협상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핵시설들을 다시 동결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 것에서도 이 같은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켈리 특사 방북시 모든 것을 시인한 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북-일 정상회담에서 납치문제, 우라늄 핵 개발 계획 시인 등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을 추진하던 북한은 선(先) 핵 폐기라는 암초를 만나 더 이상 운신할 공간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편으로는 12월9일 미국이 스페인 전함을 통해 미사일 수출을 위해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화물선 서산호를 나포해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술적으로도 그동안 미국측에 서운한 감정만을 보이며 협상을 바라던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미국의 입김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공세적인 움직임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의 대선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핵 위기를 일으켰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이번 핵 위기가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는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임을 감안한다면 그동안의 북한의 태도를 고려해볼 때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소수정권인 DJ 정부가 사사건건 대북정책에 발목이 잡히는 것을 보고 다수당을 배경으로 한 정권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과거 보수적인 정권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노력했고, 남북교류협력이라는 물결이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고려할 때 북한으로서는 오히려 다수당을 배경으로 한 정권이 등장하는 것이 북한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유가 어떤 것이든 이 같은 상황 전개는 북한이 7월1일부터 물가와 임금인상을 바탕으로 시작한 경제관리 개선조치, 신의주 경제특구 발표, 북-일 정상회담 및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 금강산 및 개성공단 특구 지정 등 잇따른 깜짝쇼와 경제개혁을 위한 북한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 것임이 틀림없다. 이는 94년 7월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별다른 경제 청사진을 만들지 못하다가 올 들어 자신의 경제 구상을 공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 정부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만을 바라고 있을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남북관계를 재검토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이 핵 개발 의혹에 대해 국제사회에 해명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남북교류협력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연내 성사될 것으로 기대했던 개성공단 착공식, 육로를 이용한 금강산 시범관광, 철도연결 등의 사업의 성사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초강도 협박 카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한과의 추후 협상은 북한이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한 뒤에야 가능하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양측이 대화의 접점을 찾는 작업은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양측이 대화가 아닌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상황을 몰고 간다면 그만큼 한반도 정세도 위기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