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에서 1970년대는 무엇이었나. 70년대를 상징하는 두 가지를 꼽으라면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일 것이다. 등장 순서는 경부고속도로가 빨랐다. 원래 고속도로 개통 예정일은 1971년 6월30일이었지만 1971년 대선을 염두에 둔 박정희 대통령이 준공을 1년 앞당길 것을 지시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밀어붙이기 공사로 1970년 7월7일, 세계에서 가장 싼 건설비를 들여, 가장 빠른 시간 안에 429km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다. 훗날 손정목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노선 결정은 물론 공정계획까지도 박대통령이 직접 지휘했던 ‘원맨쇼’였다.”
그러나 남북종단 경부고속도로는 머리보다 다리가 크고 양팔과 오른쪽 다리가 말라버린 기형아 같은 꼴이었다. 영남지역으로의 교통망 집중으로 영호남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가시화된 영호남 차별은 돌이킬 수 없는 지역갈등의 길로 가고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모든 국력을 쏟아붓고 있을 때 청계천 평화시장에서는 재단사 전태일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의 싹이 트고 있었다. 마침내 전태일은 1970년 11월13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자살했다. 그의 나이 스물셋.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전태일의 절규는 당시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양심을 강타했다. 그들은 인권을 부르짖었고 노동운동에 가세했다. 1971년 일어난 노동분규 사건은 1656건으로 전년에 비해 10배가 넘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한국현대사산책-1970년대 편’에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라는 부제를 달았다. 전태일의 절규가 울려 퍼지던 평화시장에서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엽색행각을 벌이다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궁정동까지 1970년대는 그렇게 다사다난했다.
그러나 전태일은 잊혀져가고 있고 지난 30년 동안 땜질공사로 누더기가 된 경부고속도로만 사람들의 일상에 남아 있다. 이에 대해 강교수는 “대중의 세상 인식은 물질적이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고통과 모욕은 추억으로 박제되고 물질의 역사만이 위풍당당하다”고 말한다.
‘한국현대사산책’은 우리에게 고통과 모욕의 역사를 들려준다. “경부고속도로는 희망과 번영만 실어 나른 게 아니었다. 낙원으로의 지름길로 선전되던 고속도로 끝에는 지옥 같은 도시의 ‘다락방’이 있었다.” 또 박정희 신드롬과 개발독재가 만들어낸 신민(臣民)문화, 그 안에 푹 빠져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자만과 자학의 두 얼굴. 이 두 얼굴이 민주주의의 과실을 향유하면서도 ‘국가주의적 지도자 숭배문화’를 고수하는 모순을 가능케 했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70년대를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문화 언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한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개별적인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고 각각의 사건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정인숙 사건’은 ‘요정정치’의 천태만상을 폭로했고, 결국 박대통령이 죽은 장소도 궁정동이라는 개인 요정이 아니었던가.
또 1권의 끝에 ‘남진과 나훈아’ ‘김추자와 신중현’이라는 대중가수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70년대 초 가요계 최고의 스타 남진과 나훈아는, 스스로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서민을 구분하는 잣대였다. 그러나 ‘천박’(남진)과 ‘촌스러움’(나훈아)을 상징하던 두 가수는 전라도(남진)와 경상도(나훈아)의 대표가수였으며 정치적 라이벌 김대중, 김영삼과 동류항이었다. 두 가수의 이야기와 1970년대 ‘40대 기수론’의 기치 아래 벌어진 김대중, 김영삼의 치열한 경쟁을 떠올려보라.
‘한국현대사산책’은 194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나눠 각 연대별로 2~3권씩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1970년대를 담은 3권의 책에 이어 내년 2월 1980년대 편이 발간된다. 저자의 말대로 80년대는 70년대와는 다른 세계였다. 달라진 세상에서 군사독재를 연장하기 위해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는 광주학살을 저질렀고 더욱 폭압적인 공포정치를 했는지도 모른다. 70년대 편은 ‘전두환의 등장과 새로운 파시즘의 도래’를 예고하며 끝난다. 이제 70년대에 태어나 지금은 막 서른에 접어든 세대들이 조금이나마 ‘역사’를 체험하기 시작한 80년대가 펼쳐진다.
한국현대사산책(전 3권)/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각 권 300쪽 안팎/ 각 권 8800원
그러나 남북종단 경부고속도로는 머리보다 다리가 크고 양팔과 오른쪽 다리가 말라버린 기형아 같은 꼴이었다. 영남지역으로의 교통망 집중으로 영호남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가시화된 영호남 차별은 돌이킬 수 없는 지역갈등의 길로 가고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모든 국력을 쏟아붓고 있을 때 청계천 평화시장에서는 재단사 전태일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의 싹이 트고 있었다. 마침내 전태일은 1970년 11월13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자살했다. 그의 나이 스물셋.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전태일의 절규는 당시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양심을 강타했다. 그들은 인권을 부르짖었고 노동운동에 가세했다. 1971년 일어난 노동분규 사건은 1656건으로 전년에 비해 10배가 넘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한국현대사산책-1970년대 편’에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라는 부제를 달았다. 전태일의 절규가 울려 퍼지던 평화시장에서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엽색행각을 벌이다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궁정동까지 1970년대는 그렇게 다사다난했다.
그러나 전태일은 잊혀져가고 있고 지난 30년 동안 땜질공사로 누더기가 된 경부고속도로만 사람들의 일상에 남아 있다. 이에 대해 강교수는 “대중의 세상 인식은 물질적이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고통과 모욕은 추억으로 박제되고 물질의 역사만이 위풍당당하다”고 말한다.
‘한국현대사산책’은 우리에게 고통과 모욕의 역사를 들려준다. “경부고속도로는 희망과 번영만 실어 나른 게 아니었다. 낙원으로의 지름길로 선전되던 고속도로 끝에는 지옥 같은 도시의 ‘다락방’이 있었다.” 또 박정희 신드롬과 개발독재가 만들어낸 신민(臣民)문화, 그 안에 푹 빠져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자만과 자학의 두 얼굴. 이 두 얼굴이 민주주의의 과실을 향유하면서도 ‘국가주의적 지도자 숭배문화’를 고수하는 모순을 가능케 했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70년대를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문화 언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한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개별적인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고 각각의 사건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정인숙 사건’은 ‘요정정치’의 천태만상을 폭로했고, 결국 박대통령이 죽은 장소도 궁정동이라는 개인 요정이 아니었던가.
또 1권의 끝에 ‘남진과 나훈아’ ‘김추자와 신중현’이라는 대중가수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70년대 초 가요계 최고의 스타 남진과 나훈아는, 스스로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서민을 구분하는 잣대였다. 그러나 ‘천박’(남진)과 ‘촌스러움’(나훈아)을 상징하던 두 가수는 전라도(남진)와 경상도(나훈아)의 대표가수였으며 정치적 라이벌 김대중, 김영삼과 동류항이었다. 두 가수의 이야기와 1970년대 ‘40대 기수론’의 기치 아래 벌어진 김대중, 김영삼의 치열한 경쟁을 떠올려보라.
‘한국현대사산책’은 194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나눠 각 연대별로 2~3권씩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1970년대를 담은 3권의 책에 이어 내년 2월 1980년대 편이 발간된다. 저자의 말대로 80년대는 70년대와는 다른 세계였다. 달라진 세상에서 군사독재를 연장하기 위해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는 광주학살을 저질렀고 더욱 폭압적인 공포정치를 했는지도 모른다. 70년대 편은 ‘전두환의 등장과 새로운 파시즘의 도래’를 예고하며 끝난다. 이제 70년대에 태어나 지금은 막 서른에 접어든 세대들이 조금이나마 ‘역사’를 체험하기 시작한 80년대가 펼쳐진다.
한국현대사산책(전 3권)/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각 권 300쪽 안팎/ 각 권 8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