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이란 단어에서 늘 피 냄새를 맡는다. 각혈, 불꽃 같은 광태(狂態)의 삶 등의 어휘 역시 그렇다. 요절하면서 그들은 특별히 극적인 독성을 발산한다. 젊은 시절 그 누가 요절의 유혹에 매료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는 자기파괴가 전하는 기괴한 독성 탓이다..... 생을 담보로 이룬 행복한 파산. 범상을 초월하는 특별한 능력은 이미 지상의 것을 경이롭게 넘어선다. 범인들은 그 파산마저 동경하는 것이다.”(‘요절’ 중에서)
조용훈 교수가 ‘요절(夭折)’에 집착한 이유는 더 물을 필요도 없다. 기성의 질서에 도전하며 불꽃처럼 살다 섬광으로 사라진 천재들의 삶은 범인들에게 늘 동경의 대상이요, 시샘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절’이라는 말에는 함정이 있다. 말 그대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신화가 되는 것이다. 그들도 평균 이상을 살았다면 ‘그저 그런 한 사람’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천재성이라는 신의 축복이 거꾸로 저주가 된 예술가들의 삶은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들은 왜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자기파괴의 길을 선택했을까.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중섭, 손상기, 나혜석, 최욱경, 윤두서, 오윤, 류인, 이인상, 전기, 구본웅, 이인성, 김종태 등 화가 12인의 삶을 추적했다.
저자는 이 12명의 화가들이 자신의 천재성과 죽음을 맞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원인별로 분류했다. 이중섭과 손상기의 경우 ‘애절한 사랑’이 광기를 불렀다. ‘동양의 루오’로 불리던 이중섭은 일본 유학중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와의 만남으로 짧은 환희를 얻는다. 이때 그 유명한 ‘부부(닭을 소재로 한 그림)’가 탄생했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그는 발광한다. 두번 다시 가족과 만날 수 없다는 불안과 공포, 애틋한 정이 그 유명한 ‘은지화(담배 포장용 은박지에 그린 그림)’에 담기기도 했으나 이중섭은 곧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짐승처럼 죽어갔다. 꼭 마흔이 되던 해였다.
신은 손상기에게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내렸다. 축복은 예술적 재능이요, 저주는 구루병이었다. 돌출된 가슴뼈, 외봉낙타처럼 생긴 등 등 눈에 띄는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패배하지 않은 그였지만 사랑 앞에서 무기력했다. 어린 아내를 의심했고 끊임없이 괴롭혔다. 결국 결혼이 파괴되자 그의 삶도 끝났다. “다가오는 죽음만큼 확실한 건 없다”는 메모가 유언을 대신했다. 대표작 ‘공작도시(연작)’는 찢겨진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항상 선두를 놓치지 않았던 최욱경은 한국의 대표적인 신여성 나혜석과 같은 범주에 든다. 최욱경은 끊임없이 예술세계를 개척하면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이화여중, 서울예고, 서울대를 거쳐 1960년대 초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이 거침없는 소녀는 추상표현주의에 자신의 열정을 소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달리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친구의 초상(시인 이상)’으로 유명한 구본웅은 개화한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낙상사고로 불구가 됐다. 육체적 장애로 인한 절망을 예술로 승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동아 건설’에 매진한 친일예술가라는 오욕을 벗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이미 18세에 조선 제일의 화가로 꼽히던 이인성의 죽음은 더욱 허망하다. 한국전쟁 중 만취한 채 통행금지를 위반한 그를 치안대원은 총으로 쏴 죽였다. 개죽음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종말. 그의 나이 35세였다.
일제시대 이름을 날린 김종태는 기인 중의 기인으로 꼽힌다. 탁월한 재능에 관계없이 뻔뻔한 사기극과 낭비벽, 안하무인의 태도로 그는 인간말종이기를 자처했다. 저자는 구본웅, 이인성, 김종태를 ‘한국화란 무엇인가’를 놓고 정체성을 고민해야 했던 시대가 낳은 불운한 천재로 묶는다.
천재적 예술성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독선과 광기로 세상과의 불화를 자청했던 이들. 러닝머신 위에서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들의 삶은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처럼 매섭다. ‘요절’이라는 격정적인 단어가 새삼 가슴에 파고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요절/ 조용훈 지음/ 효형출판 펴냄/ 360쪽/ 1만2000원
조용훈 교수가 ‘요절(夭折)’에 집착한 이유는 더 물을 필요도 없다. 기성의 질서에 도전하며 불꽃처럼 살다 섬광으로 사라진 천재들의 삶은 범인들에게 늘 동경의 대상이요, 시샘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절’이라는 말에는 함정이 있다. 말 그대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신화가 되는 것이다. 그들도 평균 이상을 살았다면 ‘그저 그런 한 사람’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천재성이라는 신의 축복이 거꾸로 저주가 된 예술가들의 삶은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들은 왜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자기파괴의 길을 선택했을까.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중섭, 손상기, 나혜석, 최욱경, 윤두서, 오윤, 류인, 이인상, 전기, 구본웅, 이인성, 김종태 등 화가 12인의 삶을 추적했다.
저자는 이 12명의 화가들이 자신의 천재성과 죽음을 맞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원인별로 분류했다. 이중섭과 손상기의 경우 ‘애절한 사랑’이 광기를 불렀다. ‘동양의 루오’로 불리던 이중섭은 일본 유학중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와의 만남으로 짧은 환희를 얻는다. 이때 그 유명한 ‘부부(닭을 소재로 한 그림)’가 탄생했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그는 발광한다. 두번 다시 가족과 만날 수 없다는 불안과 공포, 애틋한 정이 그 유명한 ‘은지화(담배 포장용 은박지에 그린 그림)’에 담기기도 했으나 이중섭은 곧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짐승처럼 죽어갔다. 꼭 마흔이 되던 해였다.
구본웅, 김종태, 나혜석, 류인, 손상기, 오윤, 윤두서, 이인상, 이인성, 이중섭, 최욱경(위 왼쪽부터).
모든 분야에서 항상 선두를 놓치지 않았던 최욱경은 한국의 대표적인 신여성 나혜석과 같은 범주에 든다. 최욱경은 끊임없이 예술세계를 개척하면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이화여중, 서울예고, 서울대를 거쳐 1960년대 초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이 거침없는 소녀는 추상표현주의에 자신의 열정을 소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달리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친구의 초상(시인 이상)’으로 유명한 구본웅은 개화한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낙상사고로 불구가 됐다. 육체적 장애로 인한 절망을 예술로 승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동아 건설’에 매진한 친일예술가라는 오욕을 벗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이미 18세에 조선 제일의 화가로 꼽히던 이인성의 죽음은 더욱 허망하다. 한국전쟁 중 만취한 채 통행금지를 위반한 그를 치안대원은 총으로 쏴 죽였다. 개죽음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종말. 그의 나이 35세였다.
일제시대 이름을 날린 김종태는 기인 중의 기인으로 꼽힌다. 탁월한 재능에 관계없이 뻔뻔한 사기극과 낭비벽, 안하무인의 태도로 그는 인간말종이기를 자처했다. 저자는 구본웅, 이인성, 김종태를 ‘한국화란 무엇인가’를 놓고 정체성을 고민해야 했던 시대가 낳은 불운한 천재로 묶는다.
천재적 예술성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독선과 광기로 세상과의 불화를 자청했던 이들. 러닝머신 위에서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들의 삶은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처럼 매섭다. ‘요절’이라는 격정적인 단어가 새삼 가슴에 파고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요절/ 조용훈 지음/ 효형출판 펴냄/ 360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