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을 일궈낸 구씨와 허씨, 두 가문을 상징하는 LG쌍둥이 빌딩
지난 10월1일, 참여연대는 “LG그룹 총수 일가의 LG석유화학 주식 부당 내부거래로 소액주주의 이익이 침해당했다”며 “99년 LG화학이 구본준 LG필립스 LCD사장 등 LG그룹 총수 일가에게 LG석유화학 주식을 매각하도록 결정할 당시의 LG화학 이사 9명을 상대로 800억원대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소송 대상이 된 것은 99년 6월 구본준 사장 등 LG그룹 총수 일가가 LG화학(현 LGCI)으로부터 LG석유화학 지분의 70%에 해당하는 주식 2744만주를 주당 5500원에 매입했다가 올 4월, 분할된 LG화학에 이중 632만주를 주당 1만5000원에 되판 행위. 이로 인해 LG그룹 총수 일가가 주당 9500원의 매매차익을 부당하게 챙겼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이외에도 LG그룹 총수 일가가 LG석유화학 주식을 매입한 뒤 LG석유화학이 거래소에 상장됐고, 총수 일가는 올 1월부터 9월까지 LG석유화학 주식 1701만여주를 주당 1만원에서 2만원에 장내매각했기 때문에 LG그룹 총수 일가가 얻은 시세차익은 공시를 통해 확인된 것만도 1807억원대에 이른다.
참여연대는 이미 99년 LG석유화학 주식 매각 당시 “대주주에게 LG석유화학 주식을 헐값에 매각했다”며 LG화학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바 있다. 그 결과 지난해 1월, LG화학은 공정위로부터 부당 내부거래를 했다는 판정을 받아 79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번 소송의 배상금이 800억원대에 이른 것도 공정위가 99년 당시 LG석유화학 주식의 적정거래가격을 주당 최소 8500원으로 판단한 점에 착안해 배상금을 계산한 결과다((8500-5500)원×2744만주=총823억2000만원). 참여연대는 올해 4월, LG그룹 총수들이 LG석유화학 주식을 되팔자, 즉각 LG에 총수 일가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LGCI의 지분 중 832억원 상당의 지분을 임의로 무상 소각함으로써 부당이득을 회사에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LG측이 이러한 제안을 거부하자 결국 이번에 주주대표소송을 준비하게 된 것.
7월29일 타계한 LG그룹 창업공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는 구본무 LG회장.
그러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교수(한성대 경제학)는 “LG화학이 LG석유화학 주식을 매각한 당일 LG칼텍스정유와 LG유통 주식을 비슷한 규모로 매입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유동성 확보 차원이라는 해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그는 또 “99년이면 이미 LG그룹 내에서는 ‘지주회사’로의 탈바꿈을 내부적으로 계획하고 있었을 때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상장회사의 경우 지분의 30% 이상을 확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LG그룹 총수들에게 LG석유화학 지분을 70%나 매각한 것은 훗날 이를 다시 사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상장을 앞둔 LG석유화학 주식을 이용해 총수 일가에게 대규모 시세차익을 남겨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LG가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설립 계획을 발표한 것은 LG만의 독특한 지배구조에서 기인한다. 구씨와 허씨의 연합체인 LG는 그동안 소유와 경영이 서로 엇갈려 있었던 것. 이 때문에 “구본무 회장은 구씨와 허씨 ‘문중회의’에서 ‘사회’를 보는 격에 지나지 않았고, 이러한 체제가 99년까지 지속되면서 책임 있는 기업경영과 신속한 기업 의사결정에 적잖은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LG는 복잡한 지배구조 때문에 SK나 삼성과 비교할 때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대등한 수준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 규모나 경쟁력에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이러한 지배구조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시장에서도 LG의 지배구조 재편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김상조 교수는 “지분의 5~6%만을 소유한 오너가 독단 경영을 하는 국내 재벌기업의 문제에 비추어본다면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다른 기업보다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들을 희생시키는 부당거래가 있다면 이는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참여연대측의 입장이다.
LG그룹의 한 축인 허씨 가문의 수장 허창수 LG건설 회장.
이런 상황에 비춰볼 때 재계 관계자들은 “LG그룹이 수십개의 자회사 모두에 지배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한다. 결국 비주력 회사는 처분하고 경쟁력 있는 몇 개만 남길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LG는 어느 계열사도 매각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측은 “지주회사 설립 작업을 벌이는 대주주 입장에서는 기존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추가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주식, 특히 비상장회사의 주식을 이용해 시세차익을 거두는 게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LG그룹이 목표로 하는 지배구조 재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구래의 이런 편법을 이용하게 될 것으로 보여 그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LG경영진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소액주주들이 참여하게 될 주주대표소송이 실제 이루어지기까지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상법상 소액주주가 회사에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직접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일정 지분 이상을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는 이번 소송을 위해 LGCI의 주식 약 9000주를 필요로 한다. 참여연대측은 이를 위해 6개월 이상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들을 모집할 계획이다.
LG는 지주회사 설립으로 복잡한 소유관계 및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해 선진 경영체제로의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LG깃발에 환호하는 LG화학 임직원.
반면 LG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정조차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LG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LG석유화학 기업공개 당시 공모가격이 6700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볼 때, 99년 대주주와의 거래 가격 5500원이 헐값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가 주주대표소송을 고집한다면 이번 기회에 그간 논란의 대상이 됐던 ‘비상장 주식 거래시의 적정가격’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주회사로의 재편에 대해 LG측은 ‘선진국형 지배구조로의 전환’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재계 일각에는 LG만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그 사정이란 딸들의 경영에서 배제시켜 온 LG의 구본무 회장에게 아들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LG가 진행하고 있는 경영체제 개편이 장기적으로는, 아직 학생 신분인 구회장의 장녀 연경씨의 상속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LG가 계획하고 있는 순수지주회사는 사업지주회사와는 달리 지배주주는 지주회사의 주식만 보유하고, 자회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책임 경영체제로 운영된다. 따라서 2003년 LG의 지주회사 설립이 완료되면 ‘장자 상속’만을 고집해온 LG가 딸에게 경영을 맡기지 않으면서도 지주회사의 지배력을 갖도록 해 가족 승계를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것.
이에 대해 LG 고위관계자는 “구본무 회장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듯 대규모의 지각변동을 계획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일을 처리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구회장에게 아들이 없다는 점이 지주회사로의 재편을 앞당기게 된 요인 중의 하나”임을 부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