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단체들이 판매 중단을 요구한 ‘예수는 신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 김기수 목사, 이하 한기총)와 한국복음주의협의회(대표 김명혁 목사, 이하 한복협)가 ‘예수는 신화다’를 거세게 비판하며, 출판된 책을 전량 회수하고 반기독교적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
한기총은 “점술과 미신 행위를 조장하는 책의 출판 및 광고 행위를 중단하라”면서 “정론을 표방하는 신문사에서 이런 책을 출판 보급하고 있다는 데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기총 관계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적극적인 소비자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김용옥 교수가 내용 언급 후 논쟁 확산
한복협도 성명서를 통해 “계속 책을 출간할 경우 여러 기독교단체와 연대해 응분의 조처를 취하겠다”며 “예수의 존재를 허구로 몰아가는 책을 출간한 것은 한국의 5만 교회와 1200만 성도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예수는 신화다’가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기독교계가 이처럼 발끈한 것일까. ‘예수는 신화다’는 신약의 네 복음서가 목격자들의 이야기라는 전통적인 주장과 달리, 복음서는 이교도의 신화를 유대인식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저자인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이야기가 이교도 신화를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예수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메시아의 전기가 아니라, 이교도의 유서 깊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 신화일 따름이다.”
저자들이 표절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이교도 신인 오시리스나 디오니소스의 신화와 예수의 전기가 갖는 유사성이다. 이들은 서기 3세기의 부적 그림을 제시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이교도의 신인 오시리스-디오니소스였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예수의 이야기로만 알았던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인간 으로 동정녀였다 △세상의 죄를 대신해 죽고 사흘 만에 부활했다 등의 내용이 이미 고대 신앙에 그대로 등장했었다는 주장엔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책이 출간된 뒤에도 한동안 종교계에서 ‘예수는 신화다’를 둘러싼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된 것은 도올 김용옥 교수가 달라이 라마에게 이 책을 언급하면서부터. 김교수는 “예수라는 사건은 역사적으로 실존한 것이 아니라 신화적으로 구성된 픽션에 불과하다는 가설을 설득력 있고 치밀하게 분석했다. 기독교는 신화를 사실로 강요하는 데서부터 신앙의 논의를 출발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달라이 라마에게 말했다.
도올의 이런 언급이 있은 후 책을 둘러싼 파문은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김명혁 목사는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양식이 있는 지성인이라면 기독교를 폄하하면서 씨부렁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도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파문이 확대되자 기독교 관련 모 일간지는 10월5일부터 ‘예수는 신화 아닌 실화’라는 주제로 이중표 김상복 최건호 김명혁 황의영 목사의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신화다’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쓰레기 같은 책이라며 저주를 퍼붓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기독교의 문제점을 꼬집은 수작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소설가 이윤기씨는 “이 책의 주장 자체는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이어서 그렇게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성경에 쓰여진 것은 한마디도 의심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그대로 믿는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번역 출간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도 여기까지 왔구나 싶다”고 말한다.
한편 1999년 영국에서 이 책이 출간됐을 때도 학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한국의 일부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겐 ‘악마의 책’으로까지 간주되고 있는 ‘예수는 신화다’는 영국 ‘데일리 텔레그라프’지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