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치마 저고리는 정말 예뻐요.”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전형적 일본인 아키코 코지마씨(27)가 댕기머리에 색동 한복을 입고는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 코지마씨는 카메라 앞에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망설이지만 미소만은 잃지 않는다. 나고야에 살고 있는 이 일본인 여성은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방문 둘째 날 아침 일찍부터 일본 잡지에 소개됐던 서울 명동의 한 스튜디오를 찾아 사진 촬영에 나선 것.
이처럼 최근 일본인들 사이에선 앨범 제작을 위한 명동행 ‘원정 여행’이 늘고 있다. 김치, 불고기 등 전통음식이 맛있어 한국을 가끔 찾는다는 아키코 코지마씨는 “명동에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찍은 사진은 한국 관광을 기념하는 데 그만”이라고 말했다.
색동 한복 촬영을 끝내고 갈아입은 옷은 붉은색 궁중 혼례복. 사극 주인공의 모습을 연출한 코지마씨는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올린 머리가 잘 어울리나요?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그녀가 이렇게 명동 스튜디오에서 갈아입은 한복만 모두 다섯 벌이다.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식사중에도 사진 찍기를 즐기는 일본인들이지만 한국인들처럼 평상시 결혼기념 앨범을 만들거나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한국 전통의상과 웨딩드레스, 중국 의상까지 갖춰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한국 여행의 새로운 묘미가 아닐 수 없다.
“저도 일본인이 펼쳐보인 일본 잡지를 보고 명동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오키나와에서 온 4명의 일본인을 안내해 명동의 스튜디오를 찾은 한국인 관광 가이드의 말이다. 일본인 관광객 중에는 아예 공항에서 한국인 가이드를 만나자마자 앨범 제작을 소개한 일본 잡지를 내밀며 명동의 스튜디오를 안내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앨범 제작과정이 일본 언론에 소개되면서 일본인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심지어 앨범 촬영을 끝낸 뒤 누드사진을 찍는 여성도 적지 않다. 장당 2만5000원 정도의 부담 없는 가격으로 젊은 시절의 매력적인 몸매를 간직할 수 있기 때문. 누드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일본인들은 20~30대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얼마 전에는 몸무게가 120kg인 거구의 일본인 남성 3명이 함께 누드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한국 관광 관련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도 소개된 서울 명동의 M스튜디오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하루에 많게는 10여명. 이남훈 사장은 “최근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스튜디오가 늘어 경쟁이 심해졌다”며 “매일 공항에 나가 직접 홍보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일부 여행사에서는 앨범 제작을 여행 패키지 상품으로 만들 계획이다.
명동에서 일본인 고객을 잡으려 애쓰는 건 사진관만이 아니다. 최근 명동의 모습은 아예 ‘일본인 거리’를 방불케 한다.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발마사지 업소는 물론 안경점과 안과, 성형외과까지 일본어로 된 간판을 내걸고 있다. 찌개 골목의 음식점들에서도 일본어 메뉴는 기본이고, 식당 입구마다 일본 잡지들을 늘어놓은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심지어 간판과 대형 벽유리를 온통 일본어로 꾸민 커피숍도 있다. 명동에 우동, 돈가스, 라면 등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점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최근에는 간판은 물론 내부까지 온통 일본 그림과 일본어 메뉴로 장식한 음식점이 늘어나고 있다.
명동의 하루 유동인구는 평일 150만명, 주말에는 200만명에 이른다. 명동 입구에 자리잡은 관광안내소에 따르면 그중 일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 정도. 하지만 평일 오전에 명동에서 만날 수 있는 외국인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인근 L호텔이나 S호텔 등에서 숙박하고,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관광에 나선 것.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고객의 절반에서 80% 가량을 일본인이 차지하는 가게도 있다.
2박3일 동안 일본인을 안내한 관광가이드 김모씨(35)는 “여행잡지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명동이 일본인들에게 잘 알려졌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은 대개 3∼4일밖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쇼핑과 음식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명동은 필수 코스”라고 말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즐겨 찾는 곳은 음식점, 화장품 매장, 몇 년 전부터 속속 생겨난 발마사지실과 사우나 등이다. 최근에는 안경점을 찾는 일본인이 부쩍 늘었고 안과나 성형외과를 찾는 경우도 있다.
명동에서만 4년째 발관리실을 운영하고 있는 박선생발관리실의 박은실 원장은 “고객의 70~ 80%는 일본인”이라며 “일본인들이 발마사지를 좋아해 명동에 있는 발관리실만 30여 군데”라고 전했다. 이 발관리실의 경우 일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JCB카드사에서 선물로 이 업소 쿠폰을 제공할 정도.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까지 안경점이나 안과, 성형외과를 많이 찾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안경의 경우 일본에 비해 가격이 3분의 1에서 절반 수준이다. 명동 입구에 자리잡은 가톨릭성모안과 관계자는 “한국에서 라식수술을 받는 데 드는 비용은 일본보다 100만원 정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의 경우 일본인 상담만 전담하는 직원이 따로 있고, 1년 전부터는 일본인을 위한 일본어 홈페이지도 마련했다. 명동 A성형외과의 경우 평일 고객의 20~30%가 일본 여성이고, 쌍커풀과 코 수술에 대한 상담이 대부분이다.
일본인이 명동의 주요 고객이 되다 보니 명동 한복판에는 아예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 얼굴을 간판으로 내건 곳도 있다. 지난 3월23일 명동 유네스코 회관 뒤편에 문을 연 일본제품 전문 쇼핑몰 ‘재팬혼모노타운’이 바로 그런 경우. 지하 1층, 지상 6층의 재팬혼모노타운은 일본 전자제품과 의류는 물론 일본 스포츠카를 전시하고, 소니사에서 개발한 장난감 로봇을 비롯해 30대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로봇 아톰과 ‘철인 28호’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식당가인 3층 천장에는 신간센 대형 기차 모형이 돌아다니고, 일본에서 초빙해 온 일본인 철도원도 있어 아예 일본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서울의 명동 한복판에 ‘작은 일본’이 들어선 셈이다. 일본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본 제품을 좋아하고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한국인들을 동시에 겨냥한 명동 속의 일본타운은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명동은 1990년대 들어 대형 패션몰을 내세운 동대문에 ‘패션 1번지’의 명성을 빼앗겼다. 이후 명동에도 대형 복합몰이 세워졌지만 다른 지역과의 차별화 문제로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 관광특구로 지정된 뒤 명동 상인들은 외국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인의 눈길을 끌기 위해 빠른 속도로 명동을 일본화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명동의 일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 김은희 사무국장은 “외국인들의 주요 관광코스인 명동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예술과 낭만의 사랑방’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 등으로 상징되던 명동의 고유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며 “명동의 정체성과 색깔을 찾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일본인들 사이에선 앨범 제작을 위한 명동행 ‘원정 여행’이 늘고 있다. 김치, 불고기 등 전통음식이 맛있어 한국을 가끔 찾는다는 아키코 코지마씨는 “명동에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찍은 사진은 한국 관광을 기념하는 데 그만”이라고 말했다.
색동 한복 촬영을 끝내고 갈아입은 옷은 붉은색 궁중 혼례복. 사극 주인공의 모습을 연출한 코지마씨는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올린 머리가 잘 어울리나요?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그녀가 이렇게 명동 스튜디오에서 갈아입은 한복만 모두 다섯 벌이다.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식사중에도 사진 찍기를 즐기는 일본인들이지만 한국인들처럼 평상시 결혼기념 앨범을 만들거나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한국 전통의상과 웨딩드레스, 중국 의상까지 갖춰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한국 여행의 새로운 묘미가 아닐 수 없다.
“저도 일본인이 펼쳐보인 일본 잡지를 보고 명동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오키나와에서 온 4명의 일본인을 안내해 명동의 스튜디오를 찾은 한국인 관광 가이드의 말이다. 일본인 관광객 중에는 아예 공항에서 한국인 가이드를 만나자마자 앨범 제작을 소개한 일본 잡지를 내밀며 명동의 스튜디오를 안내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앨범 제작과정이 일본 언론에 소개되면서 일본인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심지어 앨범 촬영을 끝낸 뒤 누드사진을 찍는 여성도 적지 않다. 장당 2만5000원 정도의 부담 없는 가격으로 젊은 시절의 매력적인 몸매를 간직할 수 있기 때문. 누드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일본인들은 20~30대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얼마 전에는 몸무게가 120kg인 거구의 일본인 남성 3명이 함께 누드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한국 관광 관련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도 소개된 서울 명동의 M스튜디오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하루에 많게는 10여명. 이남훈 사장은 “최근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스튜디오가 늘어 경쟁이 심해졌다”며 “매일 공항에 나가 직접 홍보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일부 여행사에서는 앨범 제작을 여행 패키지 상품으로 만들 계획이다.
명동에서 일본인 고객을 잡으려 애쓰는 건 사진관만이 아니다. 최근 명동의 모습은 아예 ‘일본인 거리’를 방불케 한다.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발마사지 업소는 물론 안경점과 안과, 성형외과까지 일본어로 된 간판을 내걸고 있다. 찌개 골목의 음식점들에서도 일본어 메뉴는 기본이고, 식당 입구마다 일본 잡지들을 늘어놓은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심지어 간판과 대형 벽유리를 온통 일본어로 꾸민 커피숍도 있다. 명동에 우동, 돈가스, 라면 등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점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최근에는 간판은 물론 내부까지 온통 일본 그림과 일본어 메뉴로 장식한 음식점이 늘어나고 있다.
명동의 하루 유동인구는 평일 150만명, 주말에는 200만명에 이른다. 명동 입구에 자리잡은 관광안내소에 따르면 그중 일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 정도. 하지만 평일 오전에 명동에서 만날 수 있는 외국인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인근 L호텔이나 S호텔 등에서 숙박하고,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관광에 나선 것.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고객의 절반에서 80% 가량을 일본인이 차지하는 가게도 있다.
2박3일 동안 일본인을 안내한 관광가이드 김모씨(35)는 “여행잡지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명동이 일본인들에게 잘 알려졌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은 대개 3∼4일밖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쇼핑과 음식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명동은 필수 코스”라고 말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즐겨 찾는 곳은 음식점, 화장품 매장, 몇 년 전부터 속속 생겨난 발마사지실과 사우나 등이다. 최근에는 안경점을 찾는 일본인이 부쩍 늘었고 안과나 성형외과를 찾는 경우도 있다.
명동에서만 4년째 발관리실을 운영하고 있는 박선생발관리실의 박은실 원장은 “고객의 70~ 80%는 일본인”이라며 “일본인들이 발마사지를 좋아해 명동에 있는 발관리실만 30여 군데”라고 전했다. 이 발관리실의 경우 일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JCB카드사에서 선물로 이 업소 쿠폰을 제공할 정도.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까지 안경점이나 안과, 성형외과를 많이 찾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안경의 경우 일본에 비해 가격이 3분의 1에서 절반 수준이다. 명동 입구에 자리잡은 가톨릭성모안과 관계자는 “한국에서 라식수술을 받는 데 드는 비용은 일본보다 100만원 정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의 경우 일본인 상담만 전담하는 직원이 따로 있고, 1년 전부터는 일본인을 위한 일본어 홈페이지도 마련했다. 명동 A성형외과의 경우 평일 고객의 20~30%가 일본 여성이고, 쌍커풀과 코 수술에 대한 상담이 대부분이다.
일본인이 명동의 주요 고객이 되다 보니 명동 한복판에는 아예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 얼굴을 간판으로 내건 곳도 있다. 지난 3월23일 명동 유네스코 회관 뒤편에 문을 연 일본제품 전문 쇼핑몰 ‘재팬혼모노타운’이 바로 그런 경우. 지하 1층, 지상 6층의 재팬혼모노타운은 일본 전자제품과 의류는 물론 일본 스포츠카를 전시하고, 소니사에서 개발한 장난감 로봇을 비롯해 30대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로봇 아톰과 ‘철인 28호’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식당가인 3층 천장에는 신간센 대형 기차 모형이 돌아다니고, 일본에서 초빙해 온 일본인 철도원도 있어 아예 일본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서울의 명동 한복판에 ‘작은 일본’이 들어선 셈이다. 일본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본 제품을 좋아하고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한국인들을 동시에 겨냥한 명동 속의 일본타운은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명동은 1990년대 들어 대형 패션몰을 내세운 동대문에 ‘패션 1번지’의 명성을 빼앗겼다. 이후 명동에도 대형 복합몰이 세워졌지만 다른 지역과의 차별화 문제로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 관광특구로 지정된 뒤 명동 상인들은 외국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인의 눈길을 끌기 위해 빠른 속도로 명동을 일본화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명동의 일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 김은희 사무국장은 “외국인들의 주요 관광코스인 명동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예술과 낭만의 사랑방’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 등으로 상징되던 명동의 고유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며 “명동의 정체성과 색깔을 찾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