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란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익숙한 탈것이고, 버스 정류장은 그 모든 ‘역’ 중에서 가장 흔한 일상적 공간이며, 그야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리 삶의 거리에 그저 서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 ‘버스, 정류장’의 제작사 명필름 대표 심재명씨는 영화 개봉에 앞서 같은 제목의 작은 책을 출판하면서 책머리에 이렇게 썼다. “영화 제목이 ‘기차역’이라거나 ‘공항’ ‘지하철역’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겠죠. 가장 사소하고 흔해빠진 탈것이자 공간인 버스 정류장이 개인의 내밀하고 의미 있는 기억, 혹은 상상의 끄나풀을 이끌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얽힌 이야기라…. 책에는 소설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영화평론가, 기자, 만화가 등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이 들려주는 사연들이 실려 있다. 그들은 기억 속의 버스 정류장에서 경험한 만남과 헤어짐, 설렘과 기다림, 즐거운 추억과 아스라한 감정을 고스란히 풀어놓았다.
하루에 두 번밖에 오지 않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던 소녀의 이야기(신경숙), 낯선 버스 정류장에서 느낀 당혹감(정지우), 사람들로 북적대는 버스 정류장에서 필사적으로 어머니의 옷깃을 말아쥐고 있던 어린 시절(이동진),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버스 정류장 이야기(김은정), 여자친구와 헤어지기 싫어 정류장 벤치에 앉아 여러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버리곤 하던 시절의 이야기(김지운)….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니 우리의 수많은 기억 속에도 ‘그곳’에 얽힌 얘깃거리가 비슷하게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이 던져준 상념 때문일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버스, 정류장’이라는 평범하고 심심한 제목의 멜로영화가 어딘지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것은.
비 오는 날의 버스 정류장. 훌쩍 키가 큰 한 남자가 우산도 받지 않은 채 버스에서 내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한다. 서른두 살의 이 남자는 보습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학원강사.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 채 늘 혼자다. 사회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친구들을 보면서 괜히 화가 나고 그러는 자신에게 또 짜증이 난다.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은 세상과의 단절. ‘사람은 왜 꼬박꼬박 살지. 뛰엄뛰엄 살 수 없을까’라고 생각하는 무기력한 남자 앞에 열일곱 살 소녀가 나타난다.
공부도 곧잘 하고 단정한 모습의 소희는 그러나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뇌물을 받는 공무원 아버지, 체육센터 강사와 바람난 어머니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은 원조교제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간다.
학원 강의실에서 만난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조심스레 사랑을 키워가는 곳이 바로 버스 정류장이다. 두 사람 다 소리 내어 외로움을 말하지 못하고,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서성이며, 그저 기다리는 것이 다인 사람들. 서로가 닮은꼴임을 금세 알아보지만 그들은 같은 버스를 타고서도 나란히 앉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서로를 응시한다.
‘버스, 정류장’이 일반적인 멜로물과 다른 건 ‘사랑’이라는 애틋하고 달콤한 감정이 아닌, 사람 사이의 ‘소통’의 문제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알아본다’는 것. 사람과 세상에 대한 상처가 깊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두 사람이 오랜 기다림 속에서 함께 쌓아가는 감정의 나이테는 마침내 단단한 나무가 되어 둘의 영혼을 결속한다.
지루하리만큼 느릿느릿하게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영화의 구성이 아무 양념 없는 요리를 먹는 것처럼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미연 감독은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깊이 있는 영상으로 낯설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빚어냈다. 초여름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 잠깐 눈을 떴을 때, 열린 차창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문득 행복한 기분을 느꼈던 언젠가처럼 영화가 전하는 느낌은 작지만 소중하다.
영화 ‘버스, 정류장’의 제작사 명필름 대표 심재명씨는 영화 개봉에 앞서 같은 제목의 작은 책을 출판하면서 책머리에 이렇게 썼다. “영화 제목이 ‘기차역’이라거나 ‘공항’ ‘지하철역’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겠죠. 가장 사소하고 흔해빠진 탈것이자 공간인 버스 정류장이 개인의 내밀하고 의미 있는 기억, 혹은 상상의 끄나풀을 이끌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얽힌 이야기라…. 책에는 소설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영화평론가, 기자, 만화가 등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이 들려주는 사연들이 실려 있다. 그들은 기억 속의 버스 정류장에서 경험한 만남과 헤어짐, 설렘과 기다림, 즐거운 추억과 아스라한 감정을 고스란히 풀어놓았다.
하루에 두 번밖에 오지 않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던 소녀의 이야기(신경숙), 낯선 버스 정류장에서 느낀 당혹감(정지우), 사람들로 북적대는 버스 정류장에서 필사적으로 어머니의 옷깃을 말아쥐고 있던 어린 시절(이동진),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버스 정류장 이야기(김은정), 여자친구와 헤어지기 싫어 정류장 벤치에 앉아 여러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버리곤 하던 시절의 이야기(김지운)….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니 우리의 수많은 기억 속에도 ‘그곳’에 얽힌 얘깃거리가 비슷하게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이 던져준 상념 때문일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버스, 정류장’이라는 평범하고 심심한 제목의 멜로영화가 어딘지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것은.
비 오는 날의 버스 정류장. 훌쩍 키가 큰 한 남자가 우산도 받지 않은 채 버스에서 내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한다. 서른두 살의 이 남자는 보습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학원강사.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 채 늘 혼자다. 사회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친구들을 보면서 괜히 화가 나고 그러는 자신에게 또 짜증이 난다.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은 세상과의 단절. ‘사람은 왜 꼬박꼬박 살지. 뛰엄뛰엄 살 수 없을까’라고 생각하는 무기력한 남자 앞에 열일곱 살 소녀가 나타난다.
공부도 곧잘 하고 단정한 모습의 소희는 그러나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뇌물을 받는 공무원 아버지, 체육센터 강사와 바람난 어머니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은 원조교제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간다.
학원 강의실에서 만난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조심스레 사랑을 키워가는 곳이 바로 버스 정류장이다. 두 사람 다 소리 내어 외로움을 말하지 못하고,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서성이며, 그저 기다리는 것이 다인 사람들. 서로가 닮은꼴임을 금세 알아보지만 그들은 같은 버스를 타고서도 나란히 앉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서로를 응시한다.
‘버스, 정류장’이 일반적인 멜로물과 다른 건 ‘사랑’이라는 애틋하고 달콤한 감정이 아닌, 사람 사이의 ‘소통’의 문제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알아본다’는 것. 사람과 세상에 대한 상처가 깊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두 사람이 오랜 기다림 속에서 함께 쌓아가는 감정의 나이테는 마침내 단단한 나무가 되어 둘의 영혼을 결속한다.
지루하리만큼 느릿느릿하게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영화의 구성이 아무 양념 없는 요리를 먹는 것처럼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미연 감독은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깊이 있는 영상으로 낯설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빚어냈다. 초여름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 잠깐 눈을 떴을 때, 열린 차창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문득 행복한 기분을 느꼈던 언젠가처럼 영화가 전하는 느낌은 작지만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