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브 무대를 찾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무대도 객석도 온통 젊다. 클래식 공연장처럼 엄숙한 격식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부담 없이 환호하고 가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소리도 내지를 수 있는 무대가 라이브 공연이다. 그러나 3월1일부터 3일까지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10+1 콘서트’의 주인공은 가수가 아니었다. 재즈 트럼펫 주자인 이주한이 무대의 주인공이고 윤상 이적 노영심 김형석 김조한 정재형과 레이몬드 강, 갱톨릭, CBMASS, 존 헨슨, 이병우 등이 게스트로 나섰다. 무대에는 재즈와 팝, 록, 메탈, 힙합, 뉴에이지 등 다종다양한 장르들이 공존했다. 가수인 윤상과 이적도 키보드 앞에 앉아 재즈 연주를 선보였다.
노래가 들어가야 할 부분은 트럼펫 연주가 채웠다. 김형석이 “처음 봤을 때는 당연히 외국인인 줄 알았다. 한국에 이처럼 트럼펫을 잘 부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고 소개한 이주한은 모든 장르에 걸맞게 트럼펫의 음색과 주법을 변화시키는 ‘묘기’를 부렸다. 같은 기타 연주라도 이병우가 클래식 기타로 연주한 ‘마리이야기’에서는 고요하게, 록 기타리스트인 김세황이 연주한 하드 록 ‘Meto-xide’에서는 현란하게 트럼펫을 불었다. ‘그때로 돌아가는 게’나 ‘달팽이’ 같은 가요에서는 아예 트럼펫이 노래의 선율을 대신했다.

이주한의 이력은 참 독특하다. 열한 살 때 이란의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처음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했고 열두 살 때부터 남미의 수리남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 굳이 트럼펫이라는 악기를 선택한 것은 외교관인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아버지는 아침에 자녀들을 깨우기 위해 냇 킹 콜이나 핸리 멘시니의 음악을 틀 만큼 트럼펫을 좋아했다.
이주한은 1989년 현대자동차의 인턴 사원으로 한국에 왔다. 미국의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MBC의 ‘수요예술무대’에 출연하는 등 재즈 무대에 몇 번 서다가 재즈 트럼펫 주자의 길을 가게 됐다.
국내에 재즈 트럼펫 주자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이주한의 활동 영역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트럼펫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해보았다’. 안치환, 김광석의 음반부터 노영심, 김동률, S.E.S의 음반에도 그의 연주가 들어갔다. ‘10+1 콘서트’에 무려 열 명의 주자가 모일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이주한의 폭넓은 활동 덕분에 가능했다.

세 번째로 모인 10+1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중음악의 선수’들은 다 모인 듯한 느낌을 준다. 최근 영화음악 ‘마리이야기’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기타리스트 이병우, ‘그대 내게 다시’ ‘너의 뒤에서’ ‘나나나’ 등을 작곡한 발라드 작곡가 김형석, 그룹 ‘노바소닉’의 기타리스트 김세황, ‘솔리드’ 출신의 R&B 가수 김조한, 그룹 ‘패닉’ ‘긱스’의 리드싱어 이적,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노영심, 재즈 피아니스트 레이몬드 강과 한충완, ‘베이시스’의 정재형,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래 활동하다 최근 공중파 방송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힙합 그룹 CBMASS 등 대중음악의 대가급들이 이 한 무대에 모두 게스트로 출연했다.
“트럼펫은 화음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꼭 같이 연주하는 악기가 있어야 해요.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만 게스트로 나왔지만 열 명의 피아니스트 각자의 특성을 살려가면서 라이브 무대를 이끌어가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기타나 힙합 그룹과도 함께 연주했는데 피아노와 함께 할 때와 색깔은 다르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에요.”
특별 출연한 윤상은 “자기 음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고 답답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TV가 아닌 무대에서라도 자유가 있고 편안한 음악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즐거웠다. 연세대 대강당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이 환호하고 박수치는 사이 캠퍼스의 봄밤은 서서히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