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클라스존의 \'바니타스 정물\'
그렇다면 정물화는 언제부터 그려지기 시작했을까? 고대 그리스에도 정물 소재만 전문적으로 그린 정물화가가 있었던 것 같다.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10서’ 제6권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리스인들은 맛난 것을 즐기고 넉넉한 것을 좋아해 손님이 찾아오면 침실과 부엌을 마련해 주고 식당과 곳간을 달아주었다. 첫날은 주인이 손님을 식탁에 초대해 같이 음식을 나눈다. 그러나 다음날은 닭, 달걀, 채소, 과일 그리고 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손님에게 보낸다. 그리고 손님이 좋을 대로 요리해서 챙겨 먹게 한다. 이때 손님에게 보내는 음식 재료를 소재 삼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세니아(Xenia)라고 불렀다.”
시몽 드 파스의 '바니타스'
미술사학자들은 ‘세니아’가 최초의 정물화가를 일컫는 말이라고 본다. 세니아의 단수형은 세니온이다. 세니온(Xenion) 말고도 옵소니아(Obsonia), 뤼파로그라포스(Rhyparographos) 같은 비슷한 개념들이 있지만 딱히 정물 분야에 한정했는지, 일반적인 풍속화가의 개념까지 포함했는지 정확한 경계는 알 수 없다.
그리스인들은 식사할 때 달걀에서 시작해 생선이나 고기를 먹고 나중에 과일로 입가심했다고 한다. 때문에 정물화의 소재도 달걀 꾸러미, 과일 바구니, 생선 두름 같은 것을 보기 좋게 늘어놓는 식이었을 것이다.
고대 이후 정물이 그림 속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였다. 시민들의 가계가 윤택해져 미술품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생긴 변화였다. 이들은 성서나 신화처럼 무거운 주제의 그림보다는 거실이나 부엌에 부담 없이 걸 수 있는 풍경화나 정물화를 선호했다. 웬만한 집이면 열두세 점씩은 장만하고 서로 소유, 보존, 교환 매매가 성행했다니 그림도 일종의 가구처럼 대접받은 셈이다.
한편 구매자의 취향과 안목이 섬세해지면서 화가들도 제각기 전문분야를 내세우고 주제를 분담하기 시작했다. 가령 풍경화 같으면 시골길 전문, 둔덕 전문, 파노라마 전문, 강변 전문, 운하 전문, 해변 전문, 바다 전문, 시골풍경 전문, 도시 풍경 전문까지 다 따로 있어 저마다 독자적인 작업 영역을 주장했다. 이들 주제 대부분은 미술의 역사에서 이때 처음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다양해진 정물의 양식 중에는 ‘죽음’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피터 클라스존. 북구 미술을 풍미했던 네덜란드 정물화가 가운데 죽음의 실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화가다. 그의 그림에는 늘 죽음이 숨쉰다. 17세기 네덜란드라면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모험의 꿈에 부풀고 대항해의 도전에 들떴던 위대한 동경의 시대다. 나라의 살림살이도 활짝 펴 시장에는 진귀한 수입품이 넘쳐나고 집집마다 정원에 백화가 만발했다.
하르멘 스텐바이크의 '바니타스'
그러나 클라스존은 혼자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혀 섬뜩한 해골 그림을 그린다. 햇살 눈부신 대도시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그의 그림 ‘바니타스 정물’은 말이 없다. 이국적인 과일과 꽃들이 피워내는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조용히 붓을 움직여 죽음의 제단을 쌓을 뿐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슬며시 다가와 입맞춤하고 부패의 유혹이 손짓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거역할 수 있을까? 삶의 향기보다도 암담하고 죽음의 유혹보다도 달콤한 설교자의 말씀을!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니, 세상만사 헛되다
구약성서 ‘전도서’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도서의 설교자는 일찍이 세상의 향락에 몸을 담갔으나 헛되었고, 포도주와 여인의 향기에 몸을 적셨으나 헛되었다고 고백한다. 설교자는 지혜로운 군왕 솔로몬이 아니었을까? 전도서의 내용에 서로 충돌하는 사상이 여럿 뒤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솔로몬 한 사람의 고백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설교자는 하늘 아래 온갖 지혜를 쓸어 담았으나 그것도 헛되었다.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구부러진 것을 펼 수 없었고, 넘어진 것을 세울 수 없었으며, 없는 것을 헤아릴 수 없었다. 지나간 나날이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시간의 무덤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을 아는 설교자의 지혜는 지울 수 없는 시름으로 덮이고 만다.
클라스존의 그림은 붓으로 말하는 설교다. 여기서는 턱 빠진 해골이 설교자다. 이마가 반들반들한 해골은 책을 깔고 앉아 이 세상 지식과 학식의 쓸모없음을 침묵으로 말한다. 그리고 공허한 눈을 들어 그림 밖의 빛을 응시한다. 종교적 정물화에서 빛은 항상 멀리 있는 존재다. 시각이나 인식의 그물로 포착할 수 없을 만큼 멀찍이 떨어져 그림 속의 희미한 반영을 통해 임재할 뿐이다.
해골의 이마에는 거뭇하게 때가 끼어 있다. 누구일까? 어떤 이름 모를 은자가 영혼의 번민과 씨름하며 죽음의 표상을 제 품에 끌어안고 어루만졌을까? 여기서 해골은 특정한 아무개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 자체를 의미한다. 죽음이 부재의 시선을 들었다. 그의 눈길은 존재의 근원, 영원히 시들지 않는 빛의 향배를 좇는다. 이보다 간절한 무표정, 이보다 빛나는 암울을 누가 그려낼 수 있을까?
클라스존은 탁자 위에 암담한 죽음의 눈부신 이미지를 올려두었다. 또 짧게 스치는 삶과 예술의 긴 생명을 한 손으로 버무려 죽음을 넘어선 삶의 희망을 지어낸다. ‘전도서’의 설교자가 헛되고 헛된(vanitas vanitatem) 세상의 가치에 절망했다면, 클라스존의 붓은 완전한 죽음의 시선을 통해 빛의 근원(causa lucis)을 가리켜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정물화 속의 모든 해골 그림은 화가의 정신적인 사후 초상으로도 보인다.
설교자의 고독한 밤을 위무한 것은 아마 한 잔의 포도주였을 것이다. 술잔은 비었다. 그리고 쓰러졌다. 고대 로마의 유리를 본떠 구운 유리잔은 탁자 가장자리에 놓였다. 벼랑 앞의 운명처럼 아슬아슬하다. 바람 앞의 촛불이나 상처 입은 과육처럼 꺼지거나 상하기 쉽다. 그러나 누군들 자신을 남김없이 비우고 싶지 않을까. 촛불이 제 열정을 이기지 못하여 빛을 밝혔다면, 한 모금의 붉은 포도주는 영혼의 경건을 데우기에 모자라지 않다.
촛대 위의 몽당 양초는 노란 불씨를 남기고 꺼졌다. 푸른 연무가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죽음의 시선 속에 빨려든다. 촛불을 끈 것은 열린 책의 갈피를 뒤적이는 바람의 손길이었을까?
“은사슬이 끊어지면 금그릇이 깨지고, 두레박 끈이 끊어지면 물동이가 깨지듯이…” “아무도 꺼져가는 제 숨결을 붙잡지 못한다.”(전도서 12, 6과 8, 8)
삶에 미련을 두는 것은 꺼진 촛불을 아쉬워하듯, 바람을 잡으려 하듯 헛된 일이다. 세상 무심한 사연들이 모두 탁자 위에 놓였다. 탁자는 차가운 청회색의 돌판이다. 사실 반듯하게 잘라낸 돌판은 탁자라기보다 어린 아기의 주검을 가두는 석관의 덮개나 평지 무덤을 덮는 묘석판처럼 보인다. 돌판 이마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화가가 붓을 여미어 새긴 소슬한 경구다.
“술잔이 비었다. 시간이 찼다. 촛불이 꺼졌다. 인간은 말이 없다.”
클라스존의 그림은 침묵의 수사로 웅변한다. 말없는 회화와 턱뼈 달아난 그림 속의 설교자가 세상의 능변을 비웃으며 하는 말이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을 것이다.
어린 아기가 턱을 괴고 죽음을 묵상한다. 아기의 머릿속 생각이 뒷벽에 쓰여 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상기하라는 뜻이다. 모래시계와 꽃병을 수놓은 꽃들은 모두 덧없이 사라지는 허무의 상징들이다. 그러나 얼마나 잔인한가.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을 역설하기 위해 아기와 해골을 유비의 끈으로 묶어놓은 것은. 또 얼마나 비극적인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의 악령을 기억에 보듬고 살아야 하는 운명은.
스텐바이크는 정물화의 뒷배경을 빛과 어둠의 투쟁으로 묘사했다. 탁자 끄트머리에 놓인 조개는 터무니없는 낭비, 황금향로는 지나친 사치를 의미한다. 칼과 악기는 촉각과 청각, 향로와 물항아리는 후각과 미각을 뜻한다. 책과 조개와 해골의 눈빛은 시각의 은유로 보인다. 전통적인 바니타스 소재에다 다섯 감각 사치물품을 뜻하는 프롱크 정물이 덧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