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9·11 테러사태 이후 한국이 얻은 수확이라면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것이다. 사건 초기만 해도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 지리, 종교, 경제 등 가장 기초적인 사실조차 생경할 뿐이었다. 테러 초기 발간된 ‘이슬람’(청아 펴냄)은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이제는 각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이번 테러행위를 단순히 이슬람 광신도 집단의 책임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을 반(反)테러전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새뮤얼 헌틴텅이 주장한 것처럼 이번 사건은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 간의 ‘문명충돌’일까? 최근 출간된 책들은 이런 구체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중동문제 전문가인 파워즈 A. 거즈스가 쓴 ‘이슬람과 미패권주의’(명지사 펴냄)는 일관성도 없고 모순으로 가득 찬 미국의 대(對) 이슬람 정책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부시와 클린턴 정부 시절만 해도 미국은 이슬람과 그 문화를 지나칠 정도로 극찬하며 이슬람 부흥운동을 측면 지원했다. 그런데 왜 아들 부시에 이르러 미국은 문명충돌의 당사자가 되어버렸는가. 이 책은 최초로 역대 미 대통령의 대 이슬람관과 외교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지상에 소개된 에드워드 사이드의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김영사 펴냄)은 처음부터 문명충돌이란 없으며 단지 종교적 광신론자들이 저지른 테러일 뿐이고, 그 배경에는 ‘미국 시온주의자들’의 음모가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언론인이며 중동문제 전문가인 필 마셜이 쓴 ‘인티파다’(책갈피 펴냄)는 무대를 팔레스타인으로 옮겨갔다. 1987~2000년에 벌어진 팔레스타인들의 민중봉기를 소개하고 유대인들의 시온주의를 새로운 제국주의로 해석한 점이 특징이다. ‘아랍 민중의 관점에서 바라본 유일한 책’이라는 광고 카피는 과장된 것이지만, 이런 책들을 통해 우리의 시각이 조금씩 미국과 서구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는 각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이번 테러행위를 단순히 이슬람 광신도 집단의 책임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을 반(反)테러전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새뮤얼 헌틴텅이 주장한 것처럼 이번 사건은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 간의 ‘문명충돌’일까? 최근 출간된 책들은 이런 구체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중동문제 전문가인 파워즈 A. 거즈스가 쓴 ‘이슬람과 미패권주의’(명지사 펴냄)는 일관성도 없고 모순으로 가득 찬 미국의 대(對) 이슬람 정책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부시와 클린턴 정부 시절만 해도 미국은 이슬람과 그 문화를 지나칠 정도로 극찬하며 이슬람 부흥운동을 측면 지원했다. 그런데 왜 아들 부시에 이르러 미국은 문명충돌의 당사자가 되어버렸는가. 이 책은 최초로 역대 미 대통령의 대 이슬람관과 외교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지상에 소개된 에드워드 사이드의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김영사 펴냄)은 처음부터 문명충돌이란 없으며 단지 종교적 광신론자들이 저지른 테러일 뿐이고, 그 배경에는 ‘미국 시온주의자들’의 음모가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언론인이며 중동문제 전문가인 필 마셜이 쓴 ‘인티파다’(책갈피 펴냄)는 무대를 팔레스타인으로 옮겨갔다. 1987~2000년에 벌어진 팔레스타인들의 민중봉기를 소개하고 유대인들의 시온주의를 새로운 제국주의로 해석한 점이 특징이다. ‘아랍 민중의 관점에서 바라본 유일한 책’이라는 광고 카피는 과장된 것이지만, 이런 책들을 통해 우리의 시각이 조금씩 미국과 서구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