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유재건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에는 요즘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동료 의원 273명에게 나눠주는 책이다. 유의원이 당파에 상관없이 동료 의원에게 책을 나눠주는 것은 10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10월에는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윌버 포스’, 이번에는 ‘거인들의 발자국’이란 책이다. 매달 한 권씩 의원들에게 책을 보내는 이 행사는 앞으로 계속할 예정이다.
의원들에게 책을 보내주자는 생각은 유의원이 다니는 온누리교회의 ‘비전 컨퍼런스’라는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정치인들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교양과 상식을 쌓도록 돕자는 취지다. 의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아 “다음 책은 무엇이고 언제 오느냐”는 전화가 쇄도한다.
경희대 도정일 교수(영문학)도 ‘책을 나눠주는 사람’이다. 도교수는 지난 6월 출범식을 가진 ‘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의 공동대표다. 이 모임은 발족 취지문에서 “도서관 없는 나라, 책 없는 도서관이라는 현실에서는 창조적 지식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책을 추궁한다는 ‘의원 나리들’에게도 책을 공짜로 나눠주고, 국민을 상대로 운동까지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책을 읽지 않는 ‘전 국민적 풍토’의 부작용은 당장 이번 수능시험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수능시험보다 어렵게 출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온 나라가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보다 통곡하는 나라에서 이민 가고 싶다”느니 “밥을 지으라고 했더니 죽을 쒀놔 다시 지으라고 했더니 이번엔 생쌀을 올린 격”이라느니 별별 비난과 항의의 목소리가 난무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모두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에게 떠넘기는 분위기다. 교육개혁을 서두른 담당 장관이었으므로 그를 희생양으로 몰고 갈 수도 있겠고, 학부모들의 절절한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논의의 순서가 뒤바뀌었거나 곁가지 문제가 본질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번 ‘수능 사태’ 이후 전개된 다양한 논의들에서 자주 잊히는 것은 ‘대학에 왜 가는가’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다.
도정일 교수는 “대학교육의 기본은 기능인을 기르는 데 있지 않고 ‘생각하는 사람’(thinking man)을 길러내는 데 있으며, 대학교육의 여러 다른 목표들은 이 기본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대학 수학을 위한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이번 수능의 언어 영역이나 사회탐구 영역의 문제들은 아주 ‘당연하고도 좋은’ 문제들이다. 그런데도 이로 인해 난리가 벌어지는 까닭은 학생과 부모, 학교 가운데 아무도 이에 대한 준비를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교와 부모, 학생이 삼위일체로 점수 올리는 요령과 잘 찍는 방법에만 길들여져 있어 나름의 추리력과 논리력, 상상력을 요구하는 대목에만 이르면 “나 잡아 잡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서태지나 조성모처럼 노래만 잘하면 국민적 영웅이 되고, SES의 누구처럼 예쁘고 가수만 되면 대학도 그냥 들어갈 수 있고, 컴퓨터 게임만 잘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허상’을 부지런히 전파한 이 정부와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책임이 없을 리 없다. 난이도 편차가 들쑥날쑥하고, 수능의 목적성이 왔다갔다하게 만든 교육부의 책임 또한 잊혀선 안 된다. 그러나 본질은 이런 것이 아니다.
정말 핵심적인 문제는 아이들이 ‘책맹’(冊盲)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컴맹’보다 더 무서운 ‘책맹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공포다.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고 정말 무책임하게 일컬어지는 ‘이해찬 세대’는 엄밀하게 말해 ‘책맹세대’로 불려야 마땅하다.
혹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냄새 펄펄 풍긴다고 야유하겠지만, 교양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교양의 힘’ 없이는 IT와 벤처가 아무리 날아다녀도, 전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해도 일시에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다. ‘책맹’은 교양 부재로 이어진다. 교양을 무시하고서는 교육정책을 어떻게 바꾸어도, 어떤 교육개혁을 부르짖어도 헛일이다.
의원들에게 책을 보내주자는 생각은 유의원이 다니는 온누리교회의 ‘비전 컨퍼런스’라는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정치인들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교양과 상식을 쌓도록 돕자는 취지다. 의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아 “다음 책은 무엇이고 언제 오느냐”는 전화가 쇄도한다.
경희대 도정일 교수(영문학)도 ‘책을 나눠주는 사람’이다. 도교수는 지난 6월 출범식을 가진 ‘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의 공동대표다. 이 모임은 발족 취지문에서 “도서관 없는 나라, 책 없는 도서관이라는 현실에서는 창조적 지식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책을 추궁한다는 ‘의원 나리들’에게도 책을 공짜로 나눠주고, 국민을 상대로 운동까지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책을 읽지 않는 ‘전 국민적 풍토’의 부작용은 당장 이번 수능시험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수능시험보다 어렵게 출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온 나라가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보다 통곡하는 나라에서 이민 가고 싶다”느니 “밥을 지으라고 했더니 죽을 쒀놔 다시 지으라고 했더니 이번엔 생쌀을 올린 격”이라느니 별별 비난과 항의의 목소리가 난무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모두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에게 떠넘기는 분위기다. 교육개혁을 서두른 담당 장관이었으므로 그를 희생양으로 몰고 갈 수도 있겠고, 학부모들의 절절한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논의의 순서가 뒤바뀌었거나 곁가지 문제가 본질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번 ‘수능 사태’ 이후 전개된 다양한 논의들에서 자주 잊히는 것은 ‘대학에 왜 가는가’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다.
도정일 교수는 “대학교육의 기본은 기능인을 기르는 데 있지 않고 ‘생각하는 사람’(thinking man)을 길러내는 데 있으며, 대학교육의 여러 다른 목표들은 이 기본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대학 수학을 위한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이번 수능의 언어 영역이나 사회탐구 영역의 문제들은 아주 ‘당연하고도 좋은’ 문제들이다. 그런데도 이로 인해 난리가 벌어지는 까닭은 학생과 부모, 학교 가운데 아무도 이에 대한 준비를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교와 부모, 학생이 삼위일체로 점수 올리는 요령과 잘 찍는 방법에만 길들여져 있어 나름의 추리력과 논리력, 상상력을 요구하는 대목에만 이르면 “나 잡아 잡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서태지나 조성모처럼 노래만 잘하면 국민적 영웅이 되고, SES의 누구처럼 예쁘고 가수만 되면 대학도 그냥 들어갈 수 있고, 컴퓨터 게임만 잘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허상’을 부지런히 전파한 이 정부와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책임이 없을 리 없다. 난이도 편차가 들쑥날쑥하고, 수능의 목적성이 왔다갔다하게 만든 교육부의 책임 또한 잊혀선 안 된다. 그러나 본질은 이런 것이 아니다.
정말 핵심적인 문제는 아이들이 ‘책맹’(冊盲)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컴맹’보다 더 무서운 ‘책맹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공포다.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고 정말 무책임하게 일컬어지는 ‘이해찬 세대’는 엄밀하게 말해 ‘책맹세대’로 불려야 마땅하다.
혹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냄새 펄펄 풍긴다고 야유하겠지만, 교양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교양의 힘’ 없이는 IT와 벤처가 아무리 날아다녀도, 전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해도 일시에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다. ‘책맹’은 교양 부재로 이어진다. 교양을 무시하고서는 교육정책을 어떻게 바꾸어도, 어떤 교육개혁을 부르짖어도 헛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