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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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대부분 유흥업소 나가 생계 유지 … 부당 대우 설움 삼키고 따가운 시선에 ‘피눈물’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4-11-23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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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며 울먹이는 J씨(26)의 얼굴에는 내내 불안한 표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지난 11월8일 인권단체 관계자와 함께 기자를 만나는 동안, 그의 손끝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발을 빼려고 해도 쉽지 않아요. 영원히 도망자 신세를 각오해야 하거든요. 서울이든 지방이든 먹고살 길은 클럽밖에 없는데, 사장들끼리 죄다 연결돼 있어요. 도망치면 오빠들 풀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겠다고 위협하기도 하고요.”

    J씨는 지난 3년간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서울 이태원의 한 트랜스젠더 클럽에서 일해왔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가 그러하듯 J씨가 ‘여자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사춘기 무렵. 그는 주민등록상의 성과 본인이 느끼는 성이 다른 데서 오는 혼란과 방황을 심하게 겪었다. 대학에 진학해 남학생으로 생활했지만 도저히 적응할 수 없던 그는 결국 여자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 길로 클럽에 찾아갔어요. 대한민국에서 트랜스젠더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다른 길은 거의 없으니까요. 여자 옷을 입고 화장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직장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J씨와 알고 지냈다는 동료 P씨(26)는 “처음부터 클럽에 가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나름대로 자격증도 따고 공부도 하면서 준비를 하지만 한번이라도 시험을 보고 나면 좌절하기 일쑤라는 것.



    “아마 실수였겠지만 저도 서류전형에서 통과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면접 보러 갔더니 분위기가 이상해지더군요. 처음에는 단순한 착오라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주민등록번호를 확인시켜 주니까 바로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취업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구나’ 생각하게 됐죠.” 한 친구의 경우는 남자로 취업했다가 트랜스젠더임이 밝혀지자 큰 문제가 돼 곧바로 사표를 내야 했다고 P씨는 말한다.

    여자로 살기 위해 집과도 인연 끊은 이들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업소에서 발목을 잡히는 것은 빚 때문이다. 같은 클럽에서 일하다 2년 전 빠져나온 K씨(28)의 말을 들어보자. “대부분 군대문제 때문에 업소에 빚을 지게 돼요. 단순히 여성 옷을 즐겨 입고 업소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는 면제가 될 수 없거든요.” 신체 일부라도 수술을 받아야 확실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병무청 방침인 까닭에 거의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이 업소측에서 수술비를 빌린다는 것.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집을 나와 떠돌고 있는 애들이 돈이 있을 리 없잖아요. 이때 ‘엄마’ 사장이 ‘수술비는 자기가 대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서죠. 그런데 이 빚이 덫이 되는 거예요.” 그만두겠다고 하는 경우 업소측에서 요구하는 이자는 원금의 다섯 배 이상. 자신은 가족의 도움으로 빚을 해결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빚이 늘어나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 K씨의 설명이다.

    J씨가 일하는 업소의 접대부는 40여명 내외. 최근에는 우후죽순격으로 클럽이 생겨나는 바람에 사람이 부족해 “한번 들어온 접대부는 여간해서 놔주지 않는다”고 J씨는 말한다. “반년이 지나면 다들 그만두고 싶어해요. 그냥 나가서 술만 따르고 들어오는 게 아니니까요. 좋든 싫든 무조건 ‘2차’를 나가 윤락을 해야 하는데 그건 죽기보다 싫은 일입니다.”

    저녁 8시경 일을 시작해 다음날 새벽 6시경끝나지만 이들이 업주로부터 받은 첫 월급은 30만원 내외. 나머지는 알아서 팁을 챙겨야 한다고.

    지방으로 도망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붙잡힐 경우 본보기 차원에서라도 혹독한 보복이 가해진다. 빚이 더욱 늘어나는 것은 물론 구타까지 각오해야 한다. 인권단체에 접수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끌려와 감금·폭행을 당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너희들 하나쯤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쉽게 얘기해요. 그 말은 사실일 거예요. 집과 인연 끊고 사는데 실종된다고 누가 신고나 해주겠어요?”(J씨) 상상을 초월하는 보복 때문에 경찰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결국 인권단체뿐.

    ‘동성애자 인권모임 ‘친구사이’의 박철민 사무국장은 “이런 일은 전국의 유흥업소 여종업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트랜스젠더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로 느껴질까요. 이들은 정상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트랜스젠더 문제의 핵심입니다”고 말한다.

    동성애자 단체의 추산에 따르면 전국 50여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숫자는 대략 500여명. 전체의 90% 이상이 유흥업소에서 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박국장은 설명한다.

    경기도 군포에 있는 한 중견 벤처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트랜스젠더 윤지선씨(25ㆍ가명)는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드문 경우에 속한다.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호적을 정정하지 않고 취업한 사람은 저뿐인 것 같아요. 비교적 자유로운 벤처 분위기가 취업에 도움이 되었죠. 그러나 제가 받는 월급은 얼마 안 돼요. ‘약점’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윤씨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주눅 들어 있다”고 말한다. 사회 진입의 벽이 높다 보니 아예 포기하게 되는 ‘심리적 좌절감’이 더 큰 문제라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클럽으로 가게 되는 ‘슬픈 공식’이 현실이니까요.” 자신의 경우는 구조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현행법상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해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호적을 정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난 수년간 여러 차례 걸쳐 정정신청이 있었지만 법원은 “염색체가 성별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는 점을 들어 대부분 기각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춘천지법 강릉지원의 문유석 판사는 논문을 통해 “성전환을 인정하지 않으면 교육과 병역, 결혼 및 취업 등 사회 전반에서 혼란이 반복된다”며 “사회 통념이 변한 만큼 호적정정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끈 바 있다.

    J씨는 호적 정정이 가능해지면 우선 학교를 마치고 여행 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돌아갈 수 없는 가족과 정상적인 생활, 이룰 수 없는 결혼에 대한 꿈을 털어놓으며 그는 잠시 미소지었다. 그러나 기자와 헤어져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는, 오늘 밤에도 계속될 시련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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