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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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총재님 위해 목숨을 …”

한나라당 일부 의원 꼴불견 ‘충성경쟁’ … 권력 1인 집중, 줄서기 한창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04-11-19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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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창 총재님 위해 목숨을 …”
    한나라당 의원들의 어느 저녁 회식자리가 요즘 정치권에서 화제다. 그날 회식에 참석했던 한 의원으로부터 전해들은 풍경을 옮기면 이렇다.

    지난 10월6일 토요일 저녁 서울 강남구 포스코 사옥 내 중식당 휘닉스. 이날 오후 골프모임을 가진 한나라당 의원 10여명이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이회창 총재가 인사차 이곳에 들렀다. 한 의원이 일어서서 인사말을 했다. “만날 하던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당은 대선후보를 빨리 확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총재가 대선에 나왔을 때 중앙당 돈을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이총재의 당선을 위해) 사비를 털어 5000만원씩 쓸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내가 1억 내겠다고 이 자리에서 약속합니다.”

    그러자 곳곳에서 ‘동참선언’이 나왔다. 한 의원은 “이총재를 위해 목숨 바치겠습니다”고 말했다. 이렇듯 회식 분위기가 좋아 좌중에서는 폭소와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총재를 포함해 의원들은 폭탄주를 몇 순배 돌려가며 마셨다. 몇몇 의원은 이총재를 향해 “충성”이라고 구호를 붙여 경례했다. 이총재와, 동석한 한 의원이 사법연수원에서 교수와 연수원생으로 만났던 얘기도 나왔다. 오후 7시에 시작된 회식은 오후 10시30분쯤 끝났다.

    한 참석자는 “모처럼 긴장 풀고 술 한잔 하는 자리였다. 사적인 자리에선 분위기를 즐겁게 가지려고 농담도 하고, 듣기 좋은 말도 하고, 그러다 보면 ‘오버’하는 말도 나오게 마련 아닌가. 의원들이 정말 충성 맹세나 한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총재가 ‘냉정하다’는 이미지와 달리 의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등 인간적으로 보였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날 회식 자리는 이총재의 절대적 위상을 확인해 준 사례로 정치권에 알려졌다.

    10·25 재·보궐 선거 이후 민주당은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에 휩싸인 반면 한나라당 일각에선 이총재에 대한 충성 경쟁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몇몇 의원은 “대통령 이회창 정부 출범을 위해 목숨 바치기로…” “총재님이 머리가 너무 좋아서…” “이총재가 포용력이 크고 정이 많다는 점을 알릴 수 있는 대책이…” 등의 ‘아부성’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총재 받들어 모시기’ 풍조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고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회창 총재님 위해 목숨을 …”
    비주류 김덕룡 의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총재 1인 중심의 정당 타파’를 주장한다. “현재 한나라당에선 의원들과 당원들의 의사가 민주적으로 수렴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주요 정책 결정권, 인사·공천권 등 당내 권력은 사실상 총재 1인에게 집중되어 있어 총재를 향한 충성경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 전개다. 한나라당의 공식적 의사결정 시스템으로는 총재단회의, 당3역 회의, 주요 당직자회의, 의원총회 등이 있다. 한나라당 한 핵심 관계자는 “모든 주요 결정이 이들 회의체를 통해 형성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의원총회 역시 소속 의원 136명의 의견이 상향식으로 수렴되는 메커니즘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각종 보고사안 전달, 총재 말씀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대북 쌀 지원 혼선이 한 사례다. ‘무조건 대북 쌀 지원 방침’을 밝힌 것은 이총재측이었다. 당 주류에서조차 “총재단회의, 의원총회, 간담회 한 번 없이 그런 당론을 정한 것은 심했다”는 반발이 나왔다. 그런데 ‘무조건 대북 쌀 지원’ 방침을 갑작스럽게 철회하겠다고 한 것 역시 이총재측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이총재와 이총재 측근의 파워가 워낙 막강해 자신들이 원하면 중요한 당론을 바닥 뒤집듯 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지난 10월 말 추경 예산안 통과를 둘러싼 해프닝 역시 비슷한 사례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2차 추경예산을 통과시켜 주겠다는 식으로 언론에 미리 당 방침을 흘렸다. 예산안을 심의해야 하는 예결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우리는 핫바지냐”고 반발했다.

    참여연대 김두수 시민감시국장은 “이번 재·보궐 선거 최돈웅 의원 공천과정은 핵심 측근들에 의한 ‘밀실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측은 또한 당헌 등에서 한나라당은 권력 집중성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의 최고위원회의와 한나라당의 총재단회의를 비교했을 때 최고위원회의의 의사결정 기능이 더 크다는 게 참여연대측 시각이다. 한나라당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참여연대는 대변인제도 역시 총재와 총재 측근의 의사를 과도하게 여론에 반영시키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이회창 총재님 위해 목숨을 …”
    정치권 인사들은 한나라당의 공식 의사결정 구조보다는 총재 측근의 움직임에 더 주목하고 있다. 그곳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의 궁금증은 이총재의 공식·비공식 측근 그룹 중에서 실질적 ‘컨트롤 타워’는 어디인가라는 대목으로 옮겨지고 있다. 이총재의 인사 스타일은 ‘물레방아형’으로 알려져 있다. 요직에 여러 사람을 번갈아가며 기용한다는 의미로, 이는 측근들간의 충성경쟁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핵심 당직자인 A의원과 B의원간의 불편한 관계, C의원과 D의원간의 언쟁은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이총재에 대한 충성경쟁은 직접적으로 이총재의 인사 영향력에 대한 기대 때문에 발생한다는 분석이 있다. 연말쯤 한나라당은 당직 개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직자 인사권을 모두 갖게 되며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2004년 총선 공천권까지 사실상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한나라당 몇몇 의원은 “내년 광역단체장 공천에서 현직 프리미엄을 인정해 주지 말라”고 이총재에게 부탁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한나라당이보수`-`진보의 스펙트럼을 모두 수용하고 있어 의원들의 다양한 의정활동을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에게 꼭 당내 권력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민주 정당이냐는 반문이다.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은 “정권교체 목표를 위해 당이 단합하는 것은 줄서기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윤영탁 의원은 “이총재와 언제든 통화하거나 만날 수 있다. 한나라당 총재실엔 ‘문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사람도 무척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한나라당으로선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국민 우선정치’를 하는 건지 ‘총재 우선정치’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냉소적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집권한 뒤에도 대통령의 눈 막고 귀 막는 통치체제, 인의 장막, 구조적 권력형 비리가 반복된다면 정권교체는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는 최근의 민주당 사태가 ‘당내 민주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민주화는 한나라당에도 똑같이 중요한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 한 인사는 한나라당이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 내 국가혁신위는 오는 12월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이 보고서에다 한국 정당의 비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집권 후 청와대와 권력 핵심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개혁 프로그램을 담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먼저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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