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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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胡志明)의 목민심서

  • 조용준기자

    입력2004-11-18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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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치민(胡志明)의 목민심서
    꼭 1년 전 일이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몇몇 사기꾼이 “그린벨트 지정을 해제해 전매차익을 얻게 해주겠다”며 7억원을 가로챈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사기꾼 가운데 한 명은 ‘하의건설 대표’라고 찍힌 명함을 갖고 “대통령의 8촌 동생으로 대통령과 같은 전남 신안군 하의면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다녔다. 딱히 기억할 만한 가치도 없지만,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하의건설’이라는 회사명이 사기 과정에서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아들은 휴가도 가지 말고, 비행기 탈 때는 의혹 살 만한 사람은 타지 말라고 광고 내고, 공항에는 인사 나오지 말라고 4500만 국민에게 알려야 합니까.”

    대통령 아들의 이 말은 일단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게 만든다. 그가 9월에 낸 자전적 에세이집에서 한 말은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아들은 당사자 입장에선 명예라기보다는 멍에요, 행복 쪽이라기보다는 불행 쪽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런 항변은 정권의 임기 말만 되었다 하면 고질병처럼 반복되는 스캔들 의혹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김홍일 의원의 제주도 휴가에 검찰 고위 인사가 동행한 사실이 선거 직전 터져나온 게 참패의 ‘카운트 블로’가 된 듯하다”고 말한다.

    야당 인사 가운데는 김홍일 의원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각종 부패 스캔들에 김의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야당은 ‘K·K·K라는 이름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집중 발사했고, 시중 민심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가 되었다.



    여당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분노한다. 그러나 이들의 울분은 순서가 틀렸다. 애당초부터 야당 공세의 빌미가 될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참담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김홍일 의원은 이렇게 항변한다. “바보처럼 실업자라도 좋다는 배필을 만나 아버지가 건네주는 생활비로 살다 죽으란 말인가.”

    그러나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제가’(齊家)편은 목민관의 도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위로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아래로 빈종(貧從)을 거느리고 또 노비까지 데리고서 온 집안이 이사해 간다면, 모든 일이 얽히고 꼬여 사사로운 일 때문에 공무가 가려지고 정사가 문란해질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말하기를 고을살이를 나가는 사람은 세 가지를 버리게 된다 하였으니, 첫째는 가옥을 버리는 것이요, 둘째는 노복을 버리는 것이요, 셋째는 아이들을 버렸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바로 이 점에서 실패했다. 그래서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룩했으며, IMF 경제신탁통치 시대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노벨평화상까지 탄 ‘위대한 지도자’가 참으로 쓸쓸한 레임덕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오늘날 집권 여당이 맞이한 총체적 위기는 집권 세력의 무능함이나 경제의 어려움 때문이라기보다, 가신(家臣)들의 발호(跋扈)에 의한 사사로움의 극대화가 백성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데서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齊家’를 모른 체함으로써, 혹은 참으로 사사롭게도 ‘아비 된 심정’만 강조하다 보니 힘없고 ‘빽’ 없는 ‘일반 아비’들의 심정이 ‘억하심정’으로 변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베트남 통일의 영웅 호치민은 친인척의 비리 가능성을 철저하게 차단한 ‘절제된 권력’으로 국민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했다. 대통령이 된 지 한참 지나도록 그의 형과 누나는 그들이 존경하는 지도자 호치민이 동생인 ‘구엔 신 쿵’인지 몰랐다. 뒤에 그들의 해후는 단 한 차례에 그쳤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낡은 인민복과 폐타이어를 잘라 만든 샌들을 신고 지냈지만, 인민들은 그를 ‘호아저씨’라 부르며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다. 바로 그런 호치민은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조선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필독서”라고 꼽았다. 이 땅의 지도자나 정치인들도 애독서를 꼽으라면 으레 ‘목민심서’를 든다. 그러나 ‘목민심서’의 가르침은 지금 잊히고 있다. 차기 대통령 후보에 독신은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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