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관객이 엄청나게 몰린다고 해서 ‘엽기적인 그녀’를 봤어요. 아이고, 거기 비하니까 ‘친구’는 아카데미상 감이더구먼요.” 그의 나이는 40대. 만약 그가 지금 극장가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조폭 마누라’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모르긴 해도 별로 좋은 소리는 나오지 않을 듯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괜찮다’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영화가 개봉 5일 만에 100만 명을 넘었으니…. 이 영화의 홍보를 맡은 영화공간측은 “오늘(13일) 정도면 전국 300만 돌파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런 기세라면 전국에서 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친구’가 부럽지 않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박 제작자’ 서세원은 “세상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나 칭기즈칸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개봉 이후 그에게는 어림잡아 하루에 7억∼8억 원의 순이익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폭 마누라’를 상대적으로 무시하며 같은날 개봉한 ‘봄날은 간다’에 몰표를 던진 평단과 언론은 정반대로 전개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이상 징후를 느끼고 있다.
‘조폭 마누라’는 평론가들뿐 아니라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조차 ‘잘된 영화’라는 수식어를 애초부터 달지 않았다. 개봉 전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제작자, 감독, 배우는 입을 모아 “부족한 점이 많지만” “만들고 보니 어설픈 점이 많이 눈에 띄지만” 등의 말로 영화적 미완성도를 인정하며 “그래도 잘 좀 봐달라”고 애원조로 부탁했다. 그러나 극장가에서 만난 한 관객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사람들, 골치 아픈 영화 보고 싶어하나요. 그저 보는 동안 재미있고 웃기면 그만이지.” 사람들이 왜 ‘조폭 마누라’ 같은 영화에 모이는지 그 이유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영화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영화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과, 그런 글을 올린 사람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욕설로 점입가경이다. “주제도 없고, 내용도 없고, 작품성 같은 건 다 쓰레기통에 처박아뒀고…” “옛날 심형래 영화 ‘우뢰매’가 차라리 낫겠다” 같은 감정적 반응이 있는가 하면, “‘공동경비구역 JSA’나 ‘무사’를 보면서 느낀 한국영화의 발전 가능성이 퇴폐·저질 영화로 퇴행하는 징후를 느낀다”는 심각한 비평도 있다. 이런 글에는 어김없이 반대의 뜻을 표명하는 ‘리플’이 달렸는데, 한 네티즌은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층은 대부분 중·고등학생”이라고 말한다.
‘조폭 마누라’의 성공은 올해 ‘친구’로 시작해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로 이어진 한국영화의 흥행 행진을 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영화계의 분위기는 확실히 ‘쉬리’나 ‘…JSA’의 성공을 바라보던 때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평론가들을 비롯한 영화전문가들은 “이처럼 질 낮은 코미디에만 관객이 몰린다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임순례 감독의 작가적 성향이 강한 ‘작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홍보해 온 명필름의 박재현 팀장. “무슨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처럼 몇 개월 동안 잠도 못 자고, 지방을 돌고, 밤마다 시사회를 열면서 ‘미친 듯이’ 홍보했다. 팀 회의를 하면서 ‘이렇게 하고도 관객이 안 들면 서울극장 앞에서 다 함께 분신하자’는 농담까지 했다. 그때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여러분, 한국에 조폭 마누라만 있으면 되겠습니까?’라고.”
박팀장의 말은 지금의 한국영화 시장이 얼마나 기형적인 형태로 자라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두세 편의 상업·오락영화가 싹쓸이한 시장에서 나름대로 존재 의미가 있는 영화들이 주목받지 못한 채 사라진다면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지속되기 힘든 것. 한 장르가 터지면 우르르 몰리는 기획성 영화가 봇물을 이루고 영화산업이 오로지 시장논리로만 치달을 경우, 상업영화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는 반면 예술영화의 기반은 취약해져 결국 ‘반쪽짜리’ 경쟁력으로만 그치고 말 것이다. 박팀장은 “한쪽으로만 쌓아올린 탑은 언젠가 무너지고 마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영화가 잘된다고 무조건 환호를 보낼 일은 아니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과장된 오락성에 반해 작품성에서는 관습적인 상업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의 대박현상에 의문을 제기해 봐야 한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씨(서울예술대 교수)는 한국영화의 발전이 ‘질적인 성장’이 아니라 ‘양적인 거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거품현상은 제작비 추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95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년 동안 제작된 영화의 평균 순제작비는 9억에서 15억 원으로 뛰어올랐고, 마케팅비는 1억에서 6억5000만 원으로 6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따라 영화의 총제작비는 10억에서 33억1000만 원으로 늘었는데, ‘조폭 마누라’의 경우 순제작비 18억 원에 마케팅비가 15억 원으로 제작비에 육박하는 돈을 홍보에 쏟아부었다. 영화사 ‘봄’ 기획실의 변준희씨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만 잡아 대충 만들고, 물량공세로 (홍보를) 때려주면 돈 되는 영화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조폭 마누라’ 때문에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의 열의가 많이 꺾인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한다.
변씨 말대로 영화계에서 투자·제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쉽고 가벼운’ 영화 위주로 흐르면서, 전혀 본질이 아닌 홍보에 신경을 더 쓰게 된다면 우리 영화계가 급속도로 퇴행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가 “지금 ‘조폭 마누라’의 대박이 한국영화로서는 아주 좋지 않은 징후”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제작자들의 사명감과 양심이 중요한 때다. 관객들이 관심을 덜 갖더라도 ‘조폭 마누라’와는 다른 류의 영화가 계속 나와줘야 하는데, 얼마나 버텨줄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한국영화의 지금 상황이 그리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진단도 나온다. 최근 ‘한국영화의 도전과 성공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낸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영화의 성공요인으로 △스크린쿼터 축소와 미국 직배영화가 들어오면서 겪은 생존의 절박감과 경쟁압력으로 시나리오와 연출력이 빠르게 도약했다 △대중문화의 흐름을 민감하게 포착한 뒤 마케팅에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영화에 참여하는 인력의 질이 크게 향상됐다 △영화제작사 투자회사 마케팅 등 3자가 긴밀하게 협의하는 협업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복합상영관의 등장 등 인프라가 확충됐다 등을 꼽았다. 이 연구소의 심상민 수석연구원은 “미국 테러사태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한국 영화산업의 성공요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정책연구실장 역시 “국내 배급사의 확고한 경쟁력 확보, 영화관 수 급증, 관객 수와 시장규모 확대, 외국자본 유치와 영화전문 투자조합의 결성 등 긍정적인 면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조폭 마누라’ 하나만 가지고 한국영화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들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산업적 측면에서만 접근한 분석이라는 한계가 있다. 영화는 산업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일종의 예술행위이기도 한 것. 예술적 인프라의 뒷받침 없는 산업으로서의 영화 중흥이 오래갈 수는 없다.
그러나 ‘조폭 마누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평론가도 있기는 하다. 영상물 등급분류위원회 위원인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여태까지의 한국영화가 다 괜찮았는데, 이 영화에만 문제 있다는 식의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영화는 90년대 이후 이미 기획영화가 주류로 자리잡았다. ‘조폭 마누라’는 폭력, 눈물, 웃음, 섹스 등 대중적인 코드를 영화의 흥행요소로 적극 활용했고, 따라서 기획영화의 정점에 서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징후는 ‘쉬리’ 때부터 나타났다. ‘조폭 마누라’의 성공을 한국영화 급락의 징후로 보는 것은 한참 ‘오버’한 것이다.”
전씨는 한국영화의 흐름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관객의 의식과 패러다임 역시 바뀌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늘 똑같은 기준으로 영화를 평가하고 교과서적인 틀에서 영화의 가치를 판단하는 언론과 평단의 문제도 크다는 것. “지금 극장가에는 7편 정도의 한국영화가 상영되고 있고, 그중 5편 정도가 소위 ‘문제작’이라 할 수 있는 우수 작품이다(‘무사’ ‘나비’ ‘킬러들의 수다’ ‘봄날은 간다’ ‘고양이를 부탁해’ 등). 이런 광경은 과거엔 볼 수 없던 것이다. 암(暗)을 보고 명(明)을 무시해선 안 된다. 예술이 산업을 이끌고, 산업이 예술을 이끄는 지금의 형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영화의 경쟁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로 산업적 측면에서의 낙관론이기는 하지만, 한국영화의 발전 논리도 이렇듯 강한 만큼 우리 영화의 미래에 대해 섣불리 어떤 판단을 내리기는 이른 듯하다. 그러나 영화 한 편에 수백만 명의 관객이 드는 대박영화와, 단 한 개의 극장에서 개봉을 하더라도 꾸준히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작은’ 영화가 공존할 수 있어야 영화산업의 건강한 토대가 마련된다. 지금처럼 ‘돈’이 흥행이 되는 작품으로만 흘러 들어가고, 감독마다 흥행을 최우선적 요인으로 생각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충무로를 황폐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괜찮다’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영화가 개봉 5일 만에 100만 명을 넘었으니…. 이 영화의 홍보를 맡은 영화공간측은 “오늘(13일) 정도면 전국 300만 돌파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런 기세라면 전국에서 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친구’가 부럽지 않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박 제작자’ 서세원은 “세상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나 칭기즈칸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개봉 이후 그에게는 어림잡아 하루에 7억∼8억 원의 순이익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폭 마누라’를 상대적으로 무시하며 같은날 개봉한 ‘봄날은 간다’에 몰표를 던진 평단과 언론은 정반대로 전개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이상 징후를 느끼고 있다.
‘조폭 마누라’는 평론가들뿐 아니라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조차 ‘잘된 영화’라는 수식어를 애초부터 달지 않았다. 개봉 전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제작자, 감독, 배우는 입을 모아 “부족한 점이 많지만” “만들고 보니 어설픈 점이 많이 눈에 띄지만” 등의 말로 영화적 미완성도를 인정하며 “그래도 잘 좀 봐달라”고 애원조로 부탁했다. 그러나 극장가에서 만난 한 관객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사람들, 골치 아픈 영화 보고 싶어하나요. 그저 보는 동안 재미있고 웃기면 그만이지.” 사람들이 왜 ‘조폭 마누라’ 같은 영화에 모이는지 그 이유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영화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영화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과, 그런 글을 올린 사람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욕설로 점입가경이다. “주제도 없고, 내용도 없고, 작품성 같은 건 다 쓰레기통에 처박아뒀고…” “옛날 심형래 영화 ‘우뢰매’가 차라리 낫겠다” 같은 감정적 반응이 있는가 하면, “‘공동경비구역 JSA’나 ‘무사’를 보면서 느낀 한국영화의 발전 가능성이 퇴폐·저질 영화로 퇴행하는 징후를 느낀다”는 심각한 비평도 있다. 이런 글에는 어김없이 반대의 뜻을 표명하는 ‘리플’이 달렸는데, 한 네티즌은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층은 대부분 중·고등학생”이라고 말한다.
‘조폭 마누라’의 성공은 올해 ‘친구’로 시작해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로 이어진 한국영화의 흥행 행진을 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영화계의 분위기는 확실히 ‘쉬리’나 ‘…JSA’의 성공을 바라보던 때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평론가들을 비롯한 영화전문가들은 “이처럼 질 낮은 코미디에만 관객이 몰린다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임순례 감독의 작가적 성향이 강한 ‘작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홍보해 온 명필름의 박재현 팀장. “무슨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처럼 몇 개월 동안 잠도 못 자고, 지방을 돌고, 밤마다 시사회를 열면서 ‘미친 듯이’ 홍보했다. 팀 회의를 하면서 ‘이렇게 하고도 관객이 안 들면 서울극장 앞에서 다 함께 분신하자’는 농담까지 했다. 그때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여러분, 한국에 조폭 마누라만 있으면 되겠습니까?’라고.”
박팀장의 말은 지금의 한국영화 시장이 얼마나 기형적인 형태로 자라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두세 편의 상업·오락영화가 싹쓸이한 시장에서 나름대로 존재 의미가 있는 영화들이 주목받지 못한 채 사라진다면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지속되기 힘든 것. 한 장르가 터지면 우르르 몰리는 기획성 영화가 봇물을 이루고 영화산업이 오로지 시장논리로만 치달을 경우, 상업영화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는 반면 예술영화의 기반은 취약해져 결국 ‘반쪽짜리’ 경쟁력으로만 그치고 말 것이다. 박팀장은 “한쪽으로만 쌓아올린 탑은 언젠가 무너지고 마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영화가 잘된다고 무조건 환호를 보낼 일은 아니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과장된 오락성에 반해 작품성에서는 관습적인 상업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의 대박현상에 의문을 제기해 봐야 한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씨(서울예술대 교수)는 한국영화의 발전이 ‘질적인 성장’이 아니라 ‘양적인 거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거품현상은 제작비 추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95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년 동안 제작된 영화의 평균 순제작비는 9억에서 15억 원으로 뛰어올랐고, 마케팅비는 1억에서 6억5000만 원으로 6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따라 영화의 총제작비는 10억에서 33억1000만 원으로 늘었는데, ‘조폭 마누라’의 경우 순제작비 18억 원에 마케팅비가 15억 원으로 제작비에 육박하는 돈을 홍보에 쏟아부었다. 영화사 ‘봄’ 기획실의 변준희씨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만 잡아 대충 만들고, 물량공세로 (홍보를) 때려주면 돈 되는 영화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조폭 마누라’ 때문에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의 열의가 많이 꺾인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한다.
변씨 말대로 영화계에서 투자·제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쉽고 가벼운’ 영화 위주로 흐르면서, 전혀 본질이 아닌 홍보에 신경을 더 쓰게 된다면 우리 영화계가 급속도로 퇴행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가 “지금 ‘조폭 마누라’의 대박이 한국영화로서는 아주 좋지 않은 징후”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제작자들의 사명감과 양심이 중요한 때다. 관객들이 관심을 덜 갖더라도 ‘조폭 마누라’와는 다른 류의 영화가 계속 나와줘야 하는데, 얼마나 버텨줄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한국영화의 지금 상황이 그리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진단도 나온다. 최근 ‘한국영화의 도전과 성공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낸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영화의 성공요인으로 △스크린쿼터 축소와 미국 직배영화가 들어오면서 겪은 생존의 절박감과 경쟁압력으로 시나리오와 연출력이 빠르게 도약했다 △대중문화의 흐름을 민감하게 포착한 뒤 마케팅에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영화에 참여하는 인력의 질이 크게 향상됐다 △영화제작사 투자회사 마케팅 등 3자가 긴밀하게 협의하는 협업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복합상영관의 등장 등 인프라가 확충됐다 등을 꼽았다. 이 연구소의 심상민 수석연구원은 “미국 테러사태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한국 영화산업의 성공요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정책연구실장 역시 “국내 배급사의 확고한 경쟁력 확보, 영화관 수 급증, 관객 수와 시장규모 확대, 외국자본 유치와 영화전문 투자조합의 결성 등 긍정적인 면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조폭 마누라’ 하나만 가지고 한국영화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들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산업적 측면에서만 접근한 분석이라는 한계가 있다. 영화는 산업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일종의 예술행위이기도 한 것. 예술적 인프라의 뒷받침 없는 산업으로서의 영화 중흥이 오래갈 수는 없다.
그러나 ‘조폭 마누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평론가도 있기는 하다. 영상물 등급분류위원회 위원인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여태까지의 한국영화가 다 괜찮았는데, 이 영화에만 문제 있다는 식의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영화는 90년대 이후 이미 기획영화가 주류로 자리잡았다. ‘조폭 마누라’는 폭력, 눈물, 웃음, 섹스 등 대중적인 코드를 영화의 흥행요소로 적극 활용했고, 따라서 기획영화의 정점에 서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징후는 ‘쉬리’ 때부터 나타났다. ‘조폭 마누라’의 성공을 한국영화 급락의 징후로 보는 것은 한참 ‘오버’한 것이다.”
전씨는 한국영화의 흐름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관객의 의식과 패러다임 역시 바뀌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늘 똑같은 기준으로 영화를 평가하고 교과서적인 틀에서 영화의 가치를 판단하는 언론과 평단의 문제도 크다는 것. “지금 극장가에는 7편 정도의 한국영화가 상영되고 있고, 그중 5편 정도가 소위 ‘문제작’이라 할 수 있는 우수 작품이다(‘무사’ ‘나비’ ‘킬러들의 수다’ ‘봄날은 간다’ ‘고양이를 부탁해’ 등). 이런 광경은 과거엔 볼 수 없던 것이다. 암(暗)을 보고 명(明)을 무시해선 안 된다. 예술이 산업을 이끌고, 산업이 예술을 이끄는 지금의 형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영화의 경쟁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로 산업적 측면에서의 낙관론이기는 하지만, 한국영화의 발전 논리도 이렇듯 강한 만큼 우리 영화의 미래에 대해 섣불리 어떤 판단을 내리기는 이른 듯하다. 그러나 영화 한 편에 수백만 명의 관객이 드는 대박영화와, 단 한 개의 극장에서 개봉을 하더라도 꾸준히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작은’ 영화가 공존할 수 있어야 영화산업의 건강한 토대가 마련된다. 지금처럼 ‘돈’이 흥행이 되는 작품으로만 흘러 들어가고, 감독마다 흥행을 최우선적 요인으로 생각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충무로를 황폐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