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는 과연 자정(自淨)될 것인가. (사)한국미술협회(이하 미협)의 전ㆍ현직 간부들이 연루된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 관련 비리가 최근 경찰 수사에 의해 드러난 이후 미술계에 자정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비리사건이 터져 나오는 악습을 거듭해 온 미술계 풍토에 비춰볼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 자연 이를 주시하는 작가들의 관심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미술대전은 주지하듯,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해 온 미술공모전. 해마다 봄(비구상계열)과 가을(구상계열) 1, 2부로 나눠 한국화ㆍ양화(서양화)ㆍ판화ㆍ조각 등 4개 부문에서 입상 및 특ㆍ입선작을 뽑는다. 주최측인 미협 역시 전국에 1만3900여 명의 회원을 둔 국내 최대의 미술인 단체다.
사실 공모전을 둘러싼 금품수수 비리는 새삼스럽지 않다. 국전(國展)의 후신인 대한민국미술대전은 해마다 심사 부정과 관련한 뒷말이 무성했다. 지난해 9월엔 같은 공모전의 운영위원 선정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미협 분과위원장 겸 모 대학 예술대학장 L씨(57) 등을 사법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지난 6월29일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260여 명의 미술인이 조사를 받고, 이 중 25명을 배임수증재 및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입건한 이번 비리는 지난 99년과 2000년에 각각 열린 제18ㆍ1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지난 5월 열린 제20회 대한민국미술대전과 올해 처음 이 대전에서 분리 개최한 문인화대전에서 불거졌다. 심사과정에 입상을 미끼로 한 ‘검은돈’과 학ㆍ지연이 개입한 것은 과거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번엔 전 미협 이사장인 P씨를 비롯해 다수의 미협 관계자가 연루한데다, 최근 미협 내에 신설한 문인화 분과에서도 예외없이 비리를 저질러 미협은 대전 운영 및 심사의 투명성마저 의심 받는 처지에 놓였다. 비리수법도 다른 작가의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속여 출품하거나 낙선작을 입선작으로 둔갑시킨 편법들이 난무했고, 금품의 종류도 다양했다. 심지어 약속한 돈을 제때 받지 못한 한 미협 간부는 청탁한 작가에게서 토지문서까지 받아냈다.
이런 총체적 부정의 와중에서 탄생한 단체가 ‘미술인 자정NGO’(이하 자정NGO). 지난 6월9일 발기인대회를 가진 자정NGO 창립준비위원회(준비위원장 두시영, 전 민족미술인협회 대표)는 지난 7월1일 ‘한국미협 간부들의 부정ㆍ비리 사태에 대하여’란 성명을 사이트(www.artngo.net)에 발표하고, 7월 중순 창립총회를 열어 공식 출범하기로 해 관심을 모은다. 발기인 60인은 동ㆍ서양화, 판화, 조각, 서예, 문인화, 공예, 디자인 등 미술평론 분야의 현역 작가 및 교수, 각종 미술단체 간부 등으로 구성했다 국내 예술계 최초의 NGO인 이 단체의 창립 취지는 미술계 전반의 정화. 자정NGO 결성 실무자인 한국화가 강행원씨(54)는 “화단의 구조가 제도화하고 정부 후원을 받는 미술단체가 관련행사를 주관함에 따라 예술권력으로 변질해 온갖 부정을 낳고 있다”며 “예술단체도 부패의 성역이 아니라는 인식하에 지속적으로 미술계 정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자정NGO의 주 타깃은 공모전 폐단과 환경조형물 관련 비리, 미술단체장 선거 부정 등으로 가입회원들의 제보로 정화작업을 펼칠 계획. 이번 비리와 관련해서도 미협이 비리에 연루한 간부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경우 자정NGO 차원에서 비리 연루자의 실명을 공표한다고 나섰다. 이번 비리로 인해 지난 7월3일 사과 성명을 낸 미협도 ‘환골탈태’에 나설 예정이다. 미협은 이를 위해 7월중 명망 있는 미술계 인사와 미술행정가 등 미협 외부 인사들로 ‘미술대전 개혁위원회’를 꾸린 뒤 상설기구화해 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선정에 공정을 기하고, 공모전 제도개선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취임 당시 ‘미협 쇄신’을 공언한 미협 곽석손 이사장(52, 한국화가ㆍ군산대 예술대 교수)은 “전년도에 일정을 이미 확정한 2001년도 주요 사업의 집행으로 개혁작업이 다소 미뤄지던 차에 비리사건이 터졌다”며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는 대로 자정운동을 구체화할 것이다”고 밝혔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미술계 초유의 이런 자정 움직임은 ‘클린 미술계’에 대한 기대를 낳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두 단체의 자정 노력이 평행선을 긋는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비리수사의 계기가 과열양상을 보인 올해 미협 집행부 선거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파악하는 미술계 자체 분석에서 비롯한다.
현 곽석손 이사장의 당선을 결정한 건 지난 1월31일 실시한 제19대 미협 이사장 선거에서 였다. 미협에 따르면 자정NGO의 발기인 중 상당수가 이 선거에서 곽 후보와 맞섰다가 낙선한 다른 두 후보진영의 인사들로 채워져 있어 자정NGO 결성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미협 집행부측과 낙선후보 진영은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미협 지방회원의 회비 대납 시비로 부정ㆍ금권 선거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공방은 낙선후보 중 한 명인 L씨(57, D대 교수)가 지난 2월 낸 곽이사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5월23일 법원이 기각함으로써 일단락한 상태다. 그러나 미협측은 공교롭게도 이날 비리수사와 관련하여 경찰이 미협 사무국을 압수수색한 사실을 내세워 이번 수사가 낙선후보 진영의 ‘한풀이성 제보’에 편승한 ‘표적수사’라 비난하고 있다.
미협 이범헌 사무국장은 “가처분신청 소송서류의 신청인 명단이 151명에 이르는 등 그간의 진행상황으로 미뤄볼 때 자정NGO 결성은 ‘미협 집행부 흠집내기’를 노린 것이란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정NGO측의 주장은 이와 확연히 다르다. NGO 결성은 미협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오랜 미술계의 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충정’의 발로라는 것이다. 이번 비리수사의 배경이 어떻든지 간에 미술계는 ‘도의적 연대책임’의 책무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경찰의 대한민국미술대전 비리수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계속 수사중인 사건이어서 수사 배경과 범위, 향후 조치에 대해 뭐라 말하기 힘들다”면서도 “곧 마무리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자정NGO까지 구성해야 할 만큼 한국 미술계의 공모전 제도가 ‘후진적’이라는 데는 대다수 작가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도제형식에 가까운 예술계 특유의 독특한 사승(師承)관계와, 학맥·인맥으로 얽힌 계파 간 다툼이 상존하는 미술계에 과연 자정바람이 제대로 불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자정운동의 정착 전망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한국화가 S씨(34)는 “미술대전은 ‘비리(非理)대전’이 된 지 오래다. 따라서 대다수 선량한 작가들의 창작 열의를 꺾는 비리들을 근절하자는 취지는 신선하고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자정 노력들이 수십 년을 이어온 ‘고질병’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도 “갖은 잡음으로 권위가 추락한 대한민국미술대전에 관심을 두는 이는 솔직히 출품작가와 미협 관계자밖에 없다. 오죽하면 수년 전부터 몰개성적인 ‘공모전용 작품’만 양산하는 미술대전의 무용론까지 제기해 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역량 있는 신진작가 발굴’에 뜻을 둬야 할 공모전이 상을 팔고 사는 ‘미술시장’으로 전락하는 폐단을 언제까지 되풀이할까. 자정NGO와 미협의 자정 노력이 양자간 첨예한 대립을 넘어 한 방향으로 부는 순풍이 될지, 맞바람으로 불어닥칠 것인지에 대해 미술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은 주지하듯,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해 온 미술공모전. 해마다 봄(비구상계열)과 가을(구상계열) 1, 2부로 나눠 한국화ㆍ양화(서양화)ㆍ판화ㆍ조각 등 4개 부문에서 입상 및 특ㆍ입선작을 뽑는다. 주최측인 미협 역시 전국에 1만3900여 명의 회원을 둔 국내 최대의 미술인 단체다.
사실 공모전을 둘러싼 금품수수 비리는 새삼스럽지 않다. 국전(國展)의 후신인 대한민국미술대전은 해마다 심사 부정과 관련한 뒷말이 무성했다. 지난해 9월엔 같은 공모전의 운영위원 선정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미협 분과위원장 겸 모 대학 예술대학장 L씨(57) 등을 사법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지난 6월29일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260여 명의 미술인이 조사를 받고, 이 중 25명을 배임수증재 및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입건한 이번 비리는 지난 99년과 2000년에 각각 열린 제18ㆍ1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지난 5월 열린 제20회 대한민국미술대전과 올해 처음 이 대전에서 분리 개최한 문인화대전에서 불거졌다. 심사과정에 입상을 미끼로 한 ‘검은돈’과 학ㆍ지연이 개입한 것은 과거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번엔 전 미협 이사장인 P씨를 비롯해 다수의 미협 관계자가 연루한데다, 최근 미협 내에 신설한 문인화 분과에서도 예외없이 비리를 저질러 미협은 대전 운영 및 심사의 투명성마저 의심 받는 처지에 놓였다. 비리수법도 다른 작가의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속여 출품하거나 낙선작을 입선작으로 둔갑시킨 편법들이 난무했고, 금품의 종류도 다양했다. 심지어 약속한 돈을 제때 받지 못한 한 미협 간부는 청탁한 작가에게서 토지문서까지 받아냈다.
이런 총체적 부정의 와중에서 탄생한 단체가 ‘미술인 자정NGO’(이하 자정NGO). 지난 6월9일 발기인대회를 가진 자정NGO 창립준비위원회(준비위원장 두시영, 전 민족미술인협회 대표)는 지난 7월1일 ‘한국미협 간부들의 부정ㆍ비리 사태에 대하여’란 성명을 사이트(www.artngo.net)에 발표하고, 7월 중순 창립총회를 열어 공식 출범하기로 해 관심을 모은다. 발기인 60인은 동ㆍ서양화, 판화, 조각, 서예, 문인화, 공예, 디자인 등 미술평론 분야의 현역 작가 및 교수, 각종 미술단체 간부 등으로 구성했다 국내 예술계 최초의 NGO인 이 단체의 창립 취지는 미술계 전반의 정화. 자정NGO 결성 실무자인 한국화가 강행원씨(54)는 “화단의 구조가 제도화하고 정부 후원을 받는 미술단체가 관련행사를 주관함에 따라 예술권력으로 변질해 온갖 부정을 낳고 있다”며 “예술단체도 부패의 성역이 아니라는 인식하에 지속적으로 미술계 정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자정NGO의 주 타깃은 공모전 폐단과 환경조형물 관련 비리, 미술단체장 선거 부정 등으로 가입회원들의 제보로 정화작업을 펼칠 계획. 이번 비리와 관련해서도 미협이 비리에 연루한 간부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경우 자정NGO 차원에서 비리 연루자의 실명을 공표한다고 나섰다. 이번 비리로 인해 지난 7월3일 사과 성명을 낸 미협도 ‘환골탈태’에 나설 예정이다. 미협은 이를 위해 7월중 명망 있는 미술계 인사와 미술행정가 등 미협 외부 인사들로 ‘미술대전 개혁위원회’를 꾸린 뒤 상설기구화해 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선정에 공정을 기하고, 공모전 제도개선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취임 당시 ‘미협 쇄신’을 공언한 미협 곽석손 이사장(52, 한국화가ㆍ군산대 예술대 교수)은 “전년도에 일정을 이미 확정한 2001년도 주요 사업의 집행으로 개혁작업이 다소 미뤄지던 차에 비리사건이 터졌다”며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는 대로 자정운동을 구체화할 것이다”고 밝혔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미술계 초유의 이런 자정 움직임은 ‘클린 미술계’에 대한 기대를 낳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두 단체의 자정 노력이 평행선을 긋는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비리수사의 계기가 과열양상을 보인 올해 미협 집행부 선거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파악하는 미술계 자체 분석에서 비롯한다.
현 곽석손 이사장의 당선을 결정한 건 지난 1월31일 실시한 제19대 미협 이사장 선거에서 였다. 미협에 따르면 자정NGO의 발기인 중 상당수가 이 선거에서 곽 후보와 맞섰다가 낙선한 다른 두 후보진영의 인사들로 채워져 있어 자정NGO 결성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미협 집행부측과 낙선후보 진영은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미협 지방회원의 회비 대납 시비로 부정ㆍ금권 선거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공방은 낙선후보 중 한 명인 L씨(57, D대 교수)가 지난 2월 낸 곽이사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5월23일 법원이 기각함으로써 일단락한 상태다. 그러나 미협측은 공교롭게도 이날 비리수사와 관련하여 경찰이 미협 사무국을 압수수색한 사실을 내세워 이번 수사가 낙선후보 진영의 ‘한풀이성 제보’에 편승한 ‘표적수사’라 비난하고 있다.
미협 이범헌 사무국장은 “가처분신청 소송서류의 신청인 명단이 151명에 이르는 등 그간의 진행상황으로 미뤄볼 때 자정NGO 결성은 ‘미협 집행부 흠집내기’를 노린 것이란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정NGO측의 주장은 이와 확연히 다르다. NGO 결성은 미협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오랜 미술계의 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충정’의 발로라는 것이다. 이번 비리수사의 배경이 어떻든지 간에 미술계는 ‘도의적 연대책임’의 책무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경찰의 대한민국미술대전 비리수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계속 수사중인 사건이어서 수사 배경과 범위, 향후 조치에 대해 뭐라 말하기 힘들다”면서도 “곧 마무리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자정NGO까지 구성해야 할 만큼 한국 미술계의 공모전 제도가 ‘후진적’이라는 데는 대다수 작가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도제형식에 가까운 예술계 특유의 독특한 사승(師承)관계와, 학맥·인맥으로 얽힌 계파 간 다툼이 상존하는 미술계에 과연 자정바람이 제대로 불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자정운동의 정착 전망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한국화가 S씨(34)는 “미술대전은 ‘비리(非理)대전’이 된 지 오래다. 따라서 대다수 선량한 작가들의 창작 열의를 꺾는 비리들을 근절하자는 취지는 신선하고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자정 노력들이 수십 년을 이어온 ‘고질병’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도 “갖은 잡음으로 권위가 추락한 대한민국미술대전에 관심을 두는 이는 솔직히 출품작가와 미협 관계자밖에 없다. 오죽하면 수년 전부터 몰개성적인 ‘공모전용 작품’만 양산하는 미술대전의 무용론까지 제기해 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역량 있는 신진작가 발굴’에 뜻을 둬야 할 공모전이 상을 팔고 사는 ‘미술시장’으로 전락하는 폐단을 언제까지 되풀이할까. 자정NGO와 미협의 자정 노력이 양자간 첨예한 대립을 넘어 한 방향으로 부는 순풍이 될지, 맞바람으로 불어닥칠 것인지에 대해 미술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