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로 치면, 마`…`상병 달 때까지 막내 노릇하는 거 아니겠습니꺼? 쫄병이 안 들어오는데 우얍니까? 무슨 방법이 없는 거 아임니꺼?”
두산중공업(구한국중공업) 창원공장에서 만난 근로자 장진환씨(53)는 한숨을 내쉬기보다 ‘당연한 것 아니냐’는 투였다. 장씨가 이 회사에서 일한 지 올해로 꼭 20년째. 그는 최근 들어 ‘요즘처럼 젊은 근로자를 찾아보기 힘든 때가 또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다. 장씨가 서른넷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지금은 남들이 다 꺼리는 용접·조립 공장에 뛰어든 것은 ‘편한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유별난 성격 때문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장씨는 경남 지역에서 알아주는 명문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유망한 은행원이었다. 그러나 군화 모양의 작업화와 안전모로 무장한 초로의 장씨에게서 지금 그러한 흔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다. 장씨는 “고학과 독학으로만 자라왔기 때문에 몸이 힘들더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훨씬 좋았다”고 젊은날을 기억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풀어 버리고 푸른 작업복을 선택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 장씨와 같은 길을 선택하는 젊은이는 더 이상 없다. 장씨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지만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3D업종이라는 게 지금 우리들이 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슬그머니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장씨가 일하는 두산중공업 원자력 공장 200명 근로자의 현재 평균 연령은 44세. 이 공장의 최연소 근로자는 32세다. 고교 졸업 후 취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서의 ‘막내’가 어림잡아 10년 가까이 근무한 경력자인 셈이다. 그만큼 젊은 기술인력을 충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IMF 사태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신입사원 충원은 그 대목에서 아예 중단하고 말았다.
“전부 다 대리급이에요, 대리. 사원 하나도 없다 아입니꺼? 결혼도 하고, 아도 놓고 할 거 다 했지만 지가 계속 쫄병이지, 머….” 반장-직장-기장으로 이어지는 생산직 근로자의 직급 체계 중 최고봉인 기장에 ‘품질 명장’까지, 장씨는 기술자로서는 오를 데까지 올랐지만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후배들이 해야 할 일은 이제 훌훌 털어 넝가주고 뭔가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야 다 있다 아입니꺼. 근데 그게 마 어디 쉽게 됩니꺼? 넝가아 줄 후배가 있어야제….”
특히 두산중공업 같은 대형 플랜트 공장의 경우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숙련한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는 데에 더 큰 문제점이 있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원자로 하나 만들어 내보내는 데 꼬박 4년이 걸립니다. 적어도 원자로를 3개는 만들어 봐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부터 기술자를 길러도 이미 늦었다는 말이지요.”
두산중공업 원자력 공장은 원전 설비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다투는 한국산 원자로와 원전 핵심부품인 증기 발생기를 만드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중량이 430kg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증기발생기에 매달려 용접불꽃을 일으키는 근로자들이야말로 기술 한국의 주력군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도 이 현장에 젊은 근로자들이 점차 사라진다는 사실은 생산직 고령화 현상이 단순히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어떤 부서에서는 ‘막내 나와 봐라’고 하면 입사 15년차인 ‘중견’이 나서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같은 사정은 우리 수출전선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는 조선업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우·현대·한진 등 대형 조선업계의 생산직 근로자 평균 연령이 모두 40세를 넘어섰기 때문. 한진중공업의 경우 생산직 근로자 평균 연령이 무려 44세나 된다. 현대중공업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고 대우조선의 경우 용접 현장 근로자 평균 연령은 40.8세다. 그나마 삼성중공업이 93~96년 설비를 대폭 증설하면서 3000여 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한 덕분에 평균 연령에서는 다른 조선소보다 낮은 편에 속한다.
이같은 고령화 현상을 손놓고 바라보아야 하는 회사측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우조선 여민수 차장은 “조선업의 경우 다른 업종보다 평균 임금이 꽤 높은데도 젊은 인력들의 기피현상이 여전한 실정이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고령화 문제에 대해 특정 분야의 분사나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하기 때문에 대형 사업장의 평균 연령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한진중공업 지찬호 인사팀장은 “딱히 젊은층이 조선업계를 기피해서라기보다는 그만두는 고령 근로자도 없고 그러다 보니 신규 충원하는 젊은 근로자도 없는 형편이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조직의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고 ‘퇴직=실업’으로 인식하는 40~50대 근로자들에게 조직의 수혈을 위해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다. 설비 개선이나 자동화 등으로 고령화 추세에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지찬호 팀장은 “갈수록 고령화 현상은 더욱 심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나마 유수한 대기업 마크가 그려진 작업복을 걸칠 수 있는 대형 사업장의 사정이 이 정도이므로 중소 영세업체의 사정은 물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서울 문래동에 있는 D공업사. 100평 남짓한 작업실이 열기로 후끈하다. 귀청을 때리는 기계음, 발디딜 틈 없이 자리잡은 자재와 작업대는 영등포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소규모 사업장의 모습. 대기업에서 필요한 강철 파이프를 용도에 맞게 가공하는 이 공장의 인원은 사장을 포함해 모두 8명. 이 중 20대는 경리를 보는 아가씨 한 명 뿐이다. 생산작업에 종사하는 5명의 근로자 중 생산과장 김종찬씨(43)를 제외한 4명은 모두 조선족 노동자. 그나마 40대가 절대 다수다. “젊은 사람이 정말 이렇게 없느냐”는 질문에 10년 전 이 공장이 생길 때부터 일해 온 생산과장 김씨는 “뭘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묻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왔다가도 한 이틀 일하다 그만두겠다고 짐 싸버려요. 올 때는 마음 독하게 먹고 찾아오는 것 같은데. 이 동네에서 젊은이들 만날 수 있는 데는 딱 한 군데예요. 판매 대리점에서 영업하는 친구들.”
산업현장을 등진 20대 젊은이들이 작업복 대신 근사한 정장을 차려 입고 유흥업소 호객행위를 하는 동안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40대만이 현장에 남는다는 것이다. 이 회사 이정항 영업이사(44)의 말에 따르면 영등포 일대 공장에서 20~30대는 이미 ‘천연기념물’이 된 지 오래다.
“문제가 있죠. 기술 축적이 안 되니까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강관 하나를 자르는 데도 노하우라는 게 있습니다.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없으니까 발전이 안 되는 거죠.” 이씨는 무엇보다도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공장에서 기술을 배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 없다는 것.
“공장은 장래성이 없다고들 하지만 소규모 수요는 없어질 수가 없어요. 이런 자잘한 작업을 모두 외국에 맡겨 버리면 비용이 훨씬 더 드니까요. 한 10년 일하면 최고 기술자 대우를 받습니다. 서로 끌어가려고 하니 월급도 상당하지요. 그렇게 돈 모으면 자기 공장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삐끼 10년 해보세요, 뭐가 남는지.”
월급 100만 원도 안 되는 자리에라도 취직하려고 구직박람회장에 늘어선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이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일단 젊은 사람이 생각부터 바꿔야겠죠. 그렇지만 정부도 노력해야 합니다. 벤처, 인터넷, 다 좋습니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벤처에는 적용하는 병역 특례가 왜 우리 같은 작업장에는 안 됩니까? 학교 취업정보실 같은 데에 유망 중소기업 리스트 뿌리고 ‘여기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면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공업기술을 무조건 낡았다고 배격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량만큼은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장의 이러한 항변이 있음에도 생산직 근로자들의 고령화 현상은 사무직이나 서비스업 등 다른 분야에서의 추이와 비교해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정부가 해마다 집계하는 공식 노동통계에 따르면 사무직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이 지난 93~99년까지 6년 동안 30.1~30.7세로 0.6세 늘어난 데 비해 생산직 근로자들은 99년 37.4세로 93년보다 2.8세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생산직 근로자가 사무직 근로자보다 5배 가까이나 ‘나이를 먹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생산직 근로자의 고령화 현상이 부정적 결과만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 설비나 조선산업처럼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우 10여 년간 현장에서 축적한 노하우나 기술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철강산업 역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근로자들의 평균연령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그대로 문제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노동인구의 고령화 문제가 우리보다 심각한 선진국의 경우에 비춰보면 문제는 약간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 철강업체인 포스코의 전체 근로자 가운데 20대 기술직 근로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6%. 이에 비해 30대가 46%, 40대 이상이 42%를 차지한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일본 최대의 철강업체 신일본제철의 근로자 평균연령이 40.6세인데 비해 포스코의 경우는 39.4세다”며 아직 경쟁업체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사팀의 다른 관계자는 “사회적 추세와도 맞물려 있는 근로자들의 고령화 문제가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사실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형 자동차 메이커의 경우 최근 몇 년 동안 쉴새없이 진행한 공정 자동화의 영향으로 근로자 평균 연령은 아직 40대를 넘지 않았다.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40대 근로자도, 그렇다고 20대 근로자도 아닌 ‘로봇’이기 때문이다. 현대·대우 등 주요 자동차 메이커의 현장 근로자 평균 연령은 36~38세 수준. 그러나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자동차 산업이 점점 정밀화하는 추세와 반대로 근로자 평균연령은 점점 고령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의 고령화 추세는 당연히 인력 수급이나 안전 관리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하고 있다. 투자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이야 설비 개선으로 고령화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지만 중소기업들은 설비 투자엔 꿈도 꾸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역시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스프링 생산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경쟁력을 갖췄다는 삼원정공 양용식 사장(54)이 외국인 근로자 문제를 보는 관점은 단호하다.
“우리 나라 근로자들의 임금은 외국인 노동자의 2.5배나 됩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현행법상 2년이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일이 손에 익을 무렵이면 그만두어야 하거든요. 외국인 근로자를 안 써본 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따져보면 오히려 손해라는 말이지요. 높은 임금을 주더라도 평생을 함께 일하며 기술력을 쌓아갈 수 있는 인력을 키우는 게 길게 보면 남는 장사일 겁니다.”
근무 환경도 마찬가지. 근로자들이 고령화할수록 여기저기 몸에서 고장 나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안전 관리에 더 많이 신경써야 한다. 대우조선에서 17년째 선박 내부의 전기배관 등 의장업무에 종사해 온 홍순호 부장(46)은 “근로자들이 고령화할수록 ‘사람을 아껴야 한다’는 점을 회사측이나 근로자가 모두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생산직 근로자의 고령화 현상은 고임금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의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추가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기름때 묻은 장갑을 벗어놓고 작업대를 등지는 젊은이들이 늘어날수록 산업 현장에 동맥경화 현상이 닥쳐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벤처나 IT열풍을 뒷받침할 수 있는 든든한 산업 예비군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산업의 대동맥이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대동맥이 고장난 채 모세 혈관만으로 살 수 없는 이치와 같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 기름밥을 먹은 두산중공업 홍병도 기장(54)은 아직도 대동맥을 지킨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우리 때나 ‘공돌이’였지. 마, 지금은 엔지니어 아닙니까, 엔지니어. 이렇게 대가 끊기다가는 나중에 큰일납니다. 젊은 사람 많이 오라카세요. 내도 노래방에서 요즘 노래 마아니 연습하고 있십니더.”
두산중공업(구한국중공업) 창원공장에서 만난 근로자 장진환씨(53)는 한숨을 내쉬기보다 ‘당연한 것 아니냐’는 투였다. 장씨가 이 회사에서 일한 지 올해로 꼭 20년째. 그는 최근 들어 ‘요즘처럼 젊은 근로자를 찾아보기 힘든 때가 또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다. 장씨가 서른넷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지금은 남들이 다 꺼리는 용접·조립 공장에 뛰어든 것은 ‘편한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유별난 성격 때문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장씨는 경남 지역에서 알아주는 명문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유망한 은행원이었다. 그러나 군화 모양의 작업화와 안전모로 무장한 초로의 장씨에게서 지금 그러한 흔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다. 장씨는 “고학과 독학으로만 자라왔기 때문에 몸이 힘들더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훨씬 좋았다”고 젊은날을 기억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풀어 버리고 푸른 작업복을 선택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 장씨와 같은 길을 선택하는 젊은이는 더 이상 없다. 장씨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지만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3D업종이라는 게 지금 우리들이 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슬그머니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장씨가 일하는 두산중공업 원자력 공장 200명 근로자의 현재 평균 연령은 44세. 이 공장의 최연소 근로자는 32세다. 고교 졸업 후 취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서의 ‘막내’가 어림잡아 10년 가까이 근무한 경력자인 셈이다. 그만큼 젊은 기술인력을 충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IMF 사태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신입사원 충원은 그 대목에서 아예 중단하고 말았다.
“전부 다 대리급이에요, 대리. 사원 하나도 없다 아입니꺼? 결혼도 하고, 아도 놓고 할 거 다 했지만 지가 계속 쫄병이지, 머….” 반장-직장-기장으로 이어지는 생산직 근로자의 직급 체계 중 최고봉인 기장에 ‘품질 명장’까지, 장씨는 기술자로서는 오를 데까지 올랐지만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후배들이 해야 할 일은 이제 훌훌 털어 넝가주고 뭔가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야 다 있다 아입니꺼. 근데 그게 마 어디 쉽게 됩니꺼? 넝가아 줄 후배가 있어야제….”
특히 두산중공업 같은 대형 플랜트 공장의 경우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숙련한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는 데에 더 큰 문제점이 있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원자로 하나 만들어 내보내는 데 꼬박 4년이 걸립니다. 적어도 원자로를 3개는 만들어 봐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부터 기술자를 길러도 이미 늦었다는 말이지요.”
두산중공업 원자력 공장은 원전 설비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다투는 한국산 원자로와 원전 핵심부품인 증기 발생기를 만드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중량이 430kg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증기발생기에 매달려 용접불꽃을 일으키는 근로자들이야말로 기술 한국의 주력군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도 이 현장에 젊은 근로자들이 점차 사라진다는 사실은 생산직 고령화 현상이 단순히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어떤 부서에서는 ‘막내 나와 봐라’고 하면 입사 15년차인 ‘중견’이 나서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같은 사정은 우리 수출전선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는 조선업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우·현대·한진 등 대형 조선업계의 생산직 근로자 평균 연령이 모두 40세를 넘어섰기 때문. 한진중공업의 경우 생산직 근로자 평균 연령이 무려 44세나 된다. 현대중공업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고 대우조선의 경우 용접 현장 근로자 평균 연령은 40.8세다. 그나마 삼성중공업이 93~96년 설비를 대폭 증설하면서 3000여 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한 덕분에 평균 연령에서는 다른 조선소보다 낮은 편에 속한다.
이같은 고령화 현상을 손놓고 바라보아야 하는 회사측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우조선 여민수 차장은 “조선업의 경우 다른 업종보다 평균 임금이 꽤 높은데도 젊은 인력들의 기피현상이 여전한 실정이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고령화 문제에 대해 특정 분야의 분사나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하기 때문에 대형 사업장의 평균 연령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한진중공업 지찬호 인사팀장은 “딱히 젊은층이 조선업계를 기피해서라기보다는 그만두는 고령 근로자도 없고 그러다 보니 신규 충원하는 젊은 근로자도 없는 형편이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조직의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고 ‘퇴직=실업’으로 인식하는 40~50대 근로자들에게 조직의 수혈을 위해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다. 설비 개선이나 자동화 등으로 고령화 추세에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지찬호 팀장은 “갈수록 고령화 현상은 더욱 심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나마 유수한 대기업 마크가 그려진 작업복을 걸칠 수 있는 대형 사업장의 사정이 이 정도이므로 중소 영세업체의 사정은 물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서울 문래동에 있는 D공업사. 100평 남짓한 작업실이 열기로 후끈하다. 귀청을 때리는 기계음, 발디딜 틈 없이 자리잡은 자재와 작업대는 영등포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소규모 사업장의 모습. 대기업에서 필요한 강철 파이프를 용도에 맞게 가공하는 이 공장의 인원은 사장을 포함해 모두 8명. 이 중 20대는 경리를 보는 아가씨 한 명 뿐이다. 생산작업에 종사하는 5명의 근로자 중 생산과장 김종찬씨(43)를 제외한 4명은 모두 조선족 노동자. 그나마 40대가 절대 다수다. “젊은 사람이 정말 이렇게 없느냐”는 질문에 10년 전 이 공장이 생길 때부터 일해 온 생산과장 김씨는 “뭘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묻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왔다가도 한 이틀 일하다 그만두겠다고 짐 싸버려요. 올 때는 마음 독하게 먹고 찾아오는 것 같은데. 이 동네에서 젊은이들 만날 수 있는 데는 딱 한 군데예요. 판매 대리점에서 영업하는 친구들.”
산업현장을 등진 20대 젊은이들이 작업복 대신 근사한 정장을 차려 입고 유흥업소 호객행위를 하는 동안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40대만이 현장에 남는다는 것이다. 이 회사 이정항 영업이사(44)의 말에 따르면 영등포 일대 공장에서 20~30대는 이미 ‘천연기념물’이 된 지 오래다.
“문제가 있죠. 기술 축적이 안 되니까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강관 하나를 자르는 데도 노하우라는 게 있습니다.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없으니까 발전이 안 되는 거죠.” 이씨는 무엇보다도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공장에서 기술을 배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 없다는 것.
“공장은 장래성이 없다고들 하지만 소규모 수요는 없어질 수가 없어요. 이런 자잘한 작업을 모두 외국에 맡겨 버리면 비용이 훨씬 더 드니까요. 한 10년 일하면 최고 기술자 대우를 받습니다. 서로 끌어가려고 하니 월급도 상당하지요. 그렇게 돈 모으면 자기 공장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삐끼 10년 해보세요, 뭐가 남는지.”
월급 100만 원도 안 되는 자리에라도 취직하려고 구직박람회장에 늘어선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이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일단 젊은 사람이 생각부터 바꿔야겠죠. 그렇지만 정부도 노력해야 합니다. 벤처, 인터넷, 다 좋습니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벤처에는 적용하는 병역 특례가 왜 우리 같은 작업장에는 안 됩니까? 학교 취업정보실 같은 데에 유망 중소기업 리스트 뿌리고 ‘여기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면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공업기술을 무조건 낡았다고 배격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량만큼은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장의 이러한 항변이 있음에도 생산직 근로자들의 고령화 현상은 사무직이나 서비스업 등 다른 분야에서의 추이와 비교해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정부가 해마다 집계하는 공식 노동통계에 따르면 사무직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이 지난 93~99년까지 6년 동안 30.1~30.7세로 0.6세 늘어난 데 비해 생산직 근로자들은 99년 37.4세로 93년보다 2.8세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생산직 근로자가 사무직 근로자보다 5배 가까이나 ‘나이를 먹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생산직 근로자의 고령화 현상이 부정적 결과만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 설비나 조선산업처럼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우 10여 년간 현장에서 축적한 노하우나 기술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철강산업 역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근로자들의 평균연령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그대로 문제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노동인구의 고령화 문제가 우리보다 심각한 선진국의 경우에 비춰보면 문제는 약간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 철강업체인 포스코의 전체 근로자 가운데 20대 기술직 근로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6%. 이에 비해 30대가 46%, 40대 이상이 42%를 차지한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일본 최대의 철강업체 신일본제철의 근로자 평균연령이 40.6세인데 비해 포스코의 경우는 39.4세다”며 아직 경쟁업체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사팀의 다른 관계자는 “사회적 추세와도 맞물려 있는 근로자들의 고령화 문제가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사실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형 자동차 메이커의 경우 최근 몇 년 동안 쉴새없이 진행한 공정 자동화의 영향으로 근로자 평균 연령은 아직 40대를 넘지 않았다.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40대 근로자도, 그렇다고 20대 근로자도 아닌 ‘로봇’이기 때문이다. 현대·대우 등 주요 자동차 메이커의 현장 근로자 평균 연령은 36~38세 수준. 그러나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자동차 산업이 점점 정밀화하는 추세와 반대로 근로자 평균연령은 점점 고령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의 고령화 추세는 당연히 인력 수급이나 안전 관리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하고 있다. 투자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이야 설비 개선으로 고령화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지만 중소기업들은 설비 투자엔 꿈도 꾸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역시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스프링 생산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경쟁력을 갖췄다는 삼원정공 양용식 사장(54)이 외국인 근로자 문제를 보는 관점은 단호하다.
“우리 나라 근로자들의 임금은 외국인 노동자의 2.5배나 됩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현행법상 2년이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일이 손에 익을 무렵이면 그만두어야 하거든요. 외국인 근로자를 안 써본 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따져보면 오히려 손해라는 말이지요. 높은 임금을 주더라도 평생을 함께 일하며 기술력을 쌓아갈 수 있는 인력을 키우는 게 길게 보면 남는 장사일 겁니다.”
근무 환경도 마찬가지. 근로자들이 고령화할수록 여기저기 몸에서 고장 나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안전 관리에 더 많이 신경써야 한다. 대우조선에서 17년째 선박 내부의 전기배관 등 의장업무에 종사해 온 홍순호 부장(46)은 “근로자들이 고령화할수록 ‘사람을 아껴야 한다’는 점을 회사측이나 근로자가 모두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생산직 근로자의 고령화 현상은 고임금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의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추가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기름때 묻은 장갑을 벗어놓고 작업대를 등지는 젊은이들이 늘어날수록 산업 현장에 동맥경화 현상이 닥쳐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벤처나 IT열풍을 뒷받침할 수 있는 든든한 산업 예비군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산업의 대동맥이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대동맥이 고장난 채 모세 혈관만으로 살 수 없는 이치와 같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 기름밥을 먹은 두산중공업 홍병도 기장(54)은 아직도 대동맥을 지킨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우리 때나 ‘공돌이’였지. 마, 지금은 엔지니어 아닙니까, 엔지니어. 이렇게 대가 끊기다가는 나중에 큰일납니다. 젊은 사람 많이 오라카세요. 내도 노래방에서 요즘 노래 마아니 연습하고 있십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