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20대 여성들을 사로잡는 유행 아이템들을 살펴보자. 한쪽 어깨를 대담하게 드러낸 오프 숄더 셔츠, 양어깨를 모두 드러낸 베어톱(bare top) 또는 가슴과 배를 감싼 튜브 톱( tube top), 너비가 10cm는 넘을 듯한 넓은 벨트, 여기저기에 징을 박아 번쩍거리는 벨트, 키스 마크나 성조기와 같이 큰 로고가 프린트된 박스 티셔츠, 물방울 또는 줄무늬 디자인의 에나멜 펌프스(정장용 구두의 일종). 어느 것 하나 대담하지 않은 디자인이 없고, 색상은 원색 중심이어서 단박에 눈에 띈다. 한껏 화려함을 자랑하는 이런 아이템들이 바로 ‘80년대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재유행하고 있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 최신호(6월11일자)는 패션과 음악 등 일본 젊은이들이 다시 1980년대 문화에 열광하는 이유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80년대 분위기는 촌스러운 것으로 여겼고 멋쟁이들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런 아이템들이 유행했을 당시만 해도 유치원 꼬마에 지나지 않던 여성들이 어른이 되면서 그들은 촌티 나고 천박해 보이기까지 한 80년대 스타일에 열광하고 있다. 무엇이 일본 젊은이들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일까.
광고·만화도 복고바람 편승
‘아에라’ 기자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유행의 중심지인 도쿄 시부야였다. 한 의류매장에서 만난 23세된 교코의 옷차림은 오른쪽 어깨를 노출한 오프 숄더 셔츠에 배꼽이 보이고, 목에는 치렁치렁한 목걸이를 5개쯤 겹쳐 늘어뜨리고 있었다. 10여 년 전 미국 영화나 MTV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옷차림이었다. 기자가 “창피하지 않느냐”고 묻자 대답은 “그런 것은 알 바 아니다. 멋있다고 생각한다”였다. 시부야의 한 매장 점원은 이런 디자인의 셔츠가 주말이면 하루에 50장씩 팔려나간다고 했다.
영화 ‘플래시댄스’에 등장하는 크고 넓은 깃이 달린 돌먼 슬리브 셔츠나 80년대 인기가수 신디 로퍼의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금속 배지를 부착한 G셔츠, 디스코 가수들이 애용하던 넓은 금색 벨트 같은 것을 이제는 일본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80년대 유행의 중심에는 ‘마돈나’가 있다. 일본의 한 패션 잡지는 “지금 리바이벌되는 80년대 유행의 에센스는 모두 마돈나에서 시작했다”고 단언하며 데뷔 당시부터 지금까지 마돈나가 유행시킨 아이템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G셔츠나 베어 톱은 물론이고 잠옷 분위기의 다보 셔츠(깃이 없고 헐렁한 긴 소매 셔츠)도 마돈나가 입으면 무조건 멋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일본 패션계에서는 80년대 패션 바람이 작년 가을 파리, 밀라노 콜렉션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또 지난 연말 ‘가요홍백전’에 출연한 하마자키 아유미(일본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패션 리더로 통하는 가수)가 “80년대 패션으로 결정했다”고 한마디한 것이 추종자들 사이에 불을 질렀다. 올 들어서는 디오르나 D&G와 같은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적극적으로 80년대 스타일을 내놓기 시작했고, 이어 중소 어패럴 업체들이 따라 나서면서 어느 새 80년대 패션이 일본 거리를 점령해 버렸다.
이처럼 시부야·하라주쿠 등 일본 유행 중심지의 의류매장들은 요즘 80년대 패션이 압도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80년대 문화의 재유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세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20대는 80년대 스타일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30대 이상은 허리를 감싸는 넓은 벨트나 요란한 프린트의 셔츠를 보면 어쩐지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저항감을 보인다.
물론 옷차림에서만 80년대가 유행하는 것이 아니다. 둘러보면 패션 이외의 분야에서도 80년대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TV광고는 도너 서머나 마돈나, 예스 등이 부른 흘러간 팝송을 틀어대고, 인터넷 음악방송은 80년대 특집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YMO, 컬처클럽, 듀란듀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만화는 ‘링에 걸고2’ ‘킨니쿠만 2세’ ‘창천의 권’ 등 80년대 ‘주간소년 점프’의 황금기에 연재된 작품의 속편들이 대인기. 특히 이 만화의 주독자층은 30대로 80년대 초등학생이던 이들이 다시 추억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나, 패션에서 80년대 유행을 주도하는 것이 20대라는 사실과 구분된다.
90년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변화의 몸부림을 치는 일본에 갑자기 80년대 복고바람이 분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일본인에게 80년대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인이 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면 80년대는 ‘거품경제’의 절정기였다. 일본 가요 작사가인 아키모토 야스시 씨는 “80년대는 한마디로 축제의 시기”라고 말한다. 경기호황은 계속되었고 누구나 들떠서 희망적인 미래만을 꿈꾸던 시절이다. 장기 불황 속에 미래 역시 불투명하고 아버지들의 월급 봉투는 얇아지고, 불안한 주부들은 저축에 여념이 없는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였다. 경기침체의 위기감에 따른 ‘자숙’의 분위기에서 돌연 80년대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좋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지금 20대들은 부모세대에게서 끊임없이 “그때(80년대)가 좋았어”라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80년대를 동경하게 된 것이다.
85년 당시 스물다섯의 나이에 디스코테크 ‘마하라자’를 개관해 ‘버블 경제의 총아’라는 말을 듣던 나리타 마사루 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파라파라(80년대 히트하던 허슬처럼 1번, 2번, 3번 동작이 정해져 있어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동작을 추는 춤. 지난해 일본에서 대히트했다)와 같은 80년대식 댄스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 화려함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함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리타 씨가 기억하는 80년대 젊은이들은 1주일 내내 밤마다 춤을 추러 갈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에게서는 그런 에너지를 발견하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80년대 스타일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에너지다. 80년대 시부야의 도시문화를 연구해 온 미우라 아쯔시 씨는 80년대의 출발이 지금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80년대에 호감을 느끼는 것은 지금 상황이 당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호황기에 접어들기 전 80년대 초반은 73년과 79년 두 차례 오일쇼크의 후유증을 겪으며 어렵게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경기가 호전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좋아졌다. 지금 세대도 그런 기대감을 갖고 80년대를 추종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80년대’ 유행을 바라보는 아키모토 야스시 씨의 시각은 매우 비판적이다.
“80년대 사람은 계획성도 없고, 뭐든지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경기에 접어들면서 계획성이 중시되고 소박·절약이 강조되었다. 여기에 갑갑증을 느끼던 사람이 ‘향락의 시대’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영양을 고려하여 소박한 음식을 먹던 사람은 가끔 색다른 맛을 찾는다. 지금 우리에게 80년대란 고칼로리의 사치스러운 요리와 같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최후의 만찬이었는지도 모르지만.”
80년대 리바이벌을 통해 과연 일본인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한 반성 대신 ‘좋았던 시절’만 골라서 기억하고 싶어하는 일본인에게서 우리는 여전히 건강하지 못한 미래를 읽는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 최신호(6월11일자)는 패션과 음악 등 일본 젊은이들이 다시 1980년대 문화에 열광하는 이유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80년대 분위기는 촌스러운 것으로 여겼고 멋쟁이들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런 아이템들이 유행했을 당시만 해도 유치원 꼬마에 지나지 않던 여성들이 어른이 되면서 그들은 촌티 나고 천박해 보이기까지 한 80년대 스타일에 열광하고 있다. 무엇이 일본 젊은이들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일까.
광고·만화도 복고바람 편승
‘아에라’ 기자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유행의 중심지인 도쿄 시부야였다. 한 의류매장에서 만난 23세된 교코의 옷차림은 오른쪽 어깨를 노출한 오프 숄더 셔츠에 배꼽이 보이고, 목에는 치렁치렁한 목걸이를 5개쯤 겹쳐 늘어뜨리고 있었다. 10여 년 전 미국 영화나 MTV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옷차림이었다. 기자가 “창피하지 않느냐”고 묻자 대답은 “그런 것은 알 바 아니다. 멋있다고 생각한다”였다. 시부야의 한 매장 점원은 이런 디자인의 셔츠가 주말이면 하루에 50장씩 팔려나간다고 했다.
영화 ‘플래시댄스’에 등장하는 크고 넓은 깃이 달린 돌먼 슬리브 셔츠나 80년대 인기가수 신디 로퍼의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금속 배지를 부착한 G셔츠, 디스코 가수들이 애용하던 넓은 금색 벨트 같은 것을 이제는 일본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80년대 유행의 중심에는 ‘마돈나’가 있다. 일본의 한 패션 잡지는 “지금 리바이벌되는 80년대 유행의 에센스는 모두 마돈나에서 시작했다”고 단언하며 데뷔 당시부터 지금까지 마돈나가 유행시킨 아이템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G셔츠나 베어 톱은 물론이고 잠옷 분위기의 다보 셔츠(깃이 없고 헐렁한 긴 소매 셔츠)도 마돈나가 입으면 무조건 멋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일본 패션계에서는 80년대 패션 바람이 작년 가을 파리, 밀라노 콜렉션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또 지난 연말 ‘가요홍백전’에 출연한 하마자키 아유미(일본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패션 리더로 통하는 가수)가 “80년대 패션으로 결정했다”고 한마디한 것이 추종자들 사이에 불을 질렀다. 올 들어서는 디오르나 D&G와 같은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적극적으로 80년대 스타일을 내놓기 시작했고, 이어 중소 어패럴 업체들이 따라 나서면서 어느 새 80년대 패션이 일본 거리를 점령해 버렸다.
이처럼 시부야·하라주쿠 등 일본 유행 중심지의 의류매장들은 요즘 80년대 패션이 압도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80년대 문화의 재유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세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20대는 80년대 스타일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30대 이상은 허리를 감싸는 넓은 벨트나 요란한 프린트의 셔츠를 보면 어쩐지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저항감을 보인다.
물론 옷차림에서만 80년대가 유행하는 것이 아니다. 둘러보면 패션 이외의 분야에서도 80년대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TV광고는 도너 서머나 마돈나, 예스 등이 부른 흘러간 팝송을 틀어대고, 인터넷 음악방송은 80년대 특집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YMO, 컬처클럽, 듀란듀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만화는 ‘링에 걸고2’ ‘킨니쿠만 2세’ ‘창천의 권’ 등 80년대 ‘주간소년 점프’의 황금기에 연재된 작품의 속편들이 대인기. 특히 이 만화의 주독자층은 30대로 80년대 초등학생이던 이들이 다시 추억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나, 패션에서 80년대 유행을 주도하는 것이 20대라는 사실과 구분된다.
90년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변화의 몸부림을 치는 일본에 갑자기 80년대 복고바람이 분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일본인에게 80년대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인이 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면 80년대는 ‘거품경제’의 절정기였다. 일본 가요 작사가인 아키모토 야스시 씨는 “80년대는 한마디로 축제의 시기”라고 말한다. 경기호황은 계속되었고 누구나 들떠서 희망적인 미래만을 꿈꾸던 시절이다. 장기 불황 속에 미래 역시 불투명하고 아버지들의 월급 봉투는 얇아지고, 불안한 주부들은 저축에 여념이 없는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였다. 경기침체의 위기감에 따른 ‘자숙’의 분위기에서 돌연 80년대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좋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지금 20대들은 부모세대에게서 끊임없이 “그때(80년대)가 좋았어”라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80년대를 동경하게 된 것이다.
85년 당시 스물다섯의 나이에 디스코테크 ‘마하라자’를 개관해 ‘버블 경제의 총아’라는 말을 듣던 나리타 마사루 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파라파라(80년대 히트하던 허슬처럼 1번, 2번, 3번 동작이 정해져 있어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동작을 추는 춤. 지난해 일본에서 대히트했다)와 같은 80년대식 댄스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 화려함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함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리타 씨가 기억하는 80년대 젊은이들은 1주일 내내 밤마다 춤을 추러 갈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에게서는 그런 에너지를 발견하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80년대 스타일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에너지다. 80년대 시부야의 도시문화를 연구해 온 미우라 아쯔시 씨는 80년대의 출발이 지금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80년대에 호감을 느끼는 것은 지금 상황이 당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호황기에 접어들기 전 80년대 초반은 73년과 79년 두 차례 오일쇼크의 후유증을 겪으며 어렵게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경기가 호전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좋아졌다. 지금 세대도 그런 기대감을 갖고 80년대를 추종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80년대’ 유행을 바라보는 아키모토 야스시 씨의 시각은 매우 비판적이다.
“80년대 사람은 계획성도 없고, 뭐든지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경기에 접어들면서 계획성이 중시되고 소박·절약이 강조되었다. 여기에 갑갑증을 느끼던 사람이 ‘향락의 시대’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영양을 고려하여 소박한 음식을 먹던 사람은 가끔 색다른 맛을 찾는다. 지금 우리에게 80년대란 고칼로리의 사치스러운 요리와 같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최후의 만찬이었는지도 모르지만.”
80년대 리바이벌을 통해 과연 일본인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한 반성 대신 ‘좋았던 시절’만 골라서 기억하고 싶어하는 일본인에게서 우리는 여전히 건강하지 못한 미래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