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은동에 사는 주부 노남숙씨(34)는 요즘 일곱 살 난 딸 재원이를 발레학원에 보낸다. 친구집에 놀러 갔던 재원이가 예쁜 발레복을 입고 찍은 친구의 사진을 보고 자기도 발레를 배우겠다고 졸랐기 때문이다. 남숙씨는 딸이 발레를 배우면서 키도 크고 자세가 좋아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 취미로 가르치는 수준이지만 만약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면 발레리나로 키울 마음도 있다.
재원이는 별반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요즈음 예닐곱 살짜리 치고 발레를 배우지 않는 아이는 별로 없다. 남자아이들도 체조개념으로 발레를 하기 때문에 성적 편견도 없다. 성장기에 발레를 배우면 몸이 균형있게 자란다는 속설은 엄마들의 발걸음을 발레학원으로 이끈다. 어지간한 규모의 아파트 단지 상가에 발레학원이 입주한 것도 흔한 풍경이 되었다.
불과 5, 6년 전만 해도 ‘찬밥신세’
발레 조기교육 붐은 곧 한국발레의 중흥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립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등 3대 직업발레단의 공연은 연일 성황을 이룬다. 국립발레단의 정기공연은 지난해 객석 점유율 평균 89%에 유료관객 74%를 기록했다. 국립발레단과 쌍벽을 이루는 유니버설 발레단도 객석 점유율 90%에 유료관객은 70%에 육박한다. 지난 5월 공연한 ‘동물의 사육제’(유니버설 발레단)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서울발레시어터)는 전 공연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불과 5, 6년 전까지 발레는 공연장에서 찬밥신세였다. “객석 점유율 60%가 목표였습니다. 그중 유료관객은 20%도 안 되었죠.” 유니버설 발레단 관계자의 말이다. 방학숙제인 ‘공연 한 편 보고 입장권 제출하기’를 해결하러 온 학생들이나 출연자의 친지들로 간신히 채워지곤 하던 발레가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으니 눈 씻고 다시 볼 일이다.
특이한 것은 이런 관객몰이가 다른 분야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연극, 오페라, 클래식 음악 등 거의 모든 공연분야에서 관객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1997년과 2000년을 비교한 이 조사에서 1년 동안 한 번이라도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연극의 경우 20.2%에서 10.9%로,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공연은 13.3%에서 6.7%로 줄었다. 국내 최대의 음악축제인 교향악 축제는 관객의 외면으로 폐지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런데 똑같은 ‘국내단체’인 발레단의 공연은 초대권은커녕 웃돈을 주고 표를 사야 할 지경이다.
발레 붐은 발레의 조기교육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발레 공연 중에서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호두까기 인형’이나 어린이를 위한 발레작품들에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느 정도 발레를 배운 어린이들은 제대로 된 발레공연을 보고 싶어하게 마련이고,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는다.
그러나 단순히 발레교육의 열기로만 붐을 설명할 수는 없다. 무용평론가 장광열씨는 다양한 공연의 형태가 발레 붐을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1998년부터 시작된 ‘코리아 발레 페스티벌’을 비롯한 각종 갈라 공연들을 통해 스타급 무용수들이 탄생했습니다. 관객들은 전막 공연 중 가장 재미있는 장면들만 모은 갈라 공연을 통해 발레의 묘미를 느끼게 된 거죠. 또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 같은 초보관객들을 위한 공연도 발레 대중화에 큰몫을 했어요.”
지난 97년부터 시작된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는 ‘발레 속의 동물캐릭터’ ‘발레의 2인무’ 등 자상한 해설이 돋보이는 시리즈 공연이다. 올해로 다섯 해를 맞은 이 시리즈의 유료 관객은 98%. 지금까지 전회매진의 대기록을 세웠다.
발레단의 성공적인 세대교체도 국내 발레단의 중흥에 한몫을 했다. 최태지(국립발레단), 문훈숙(유니버설 발레단), 김인희(서울발레시어터), 박경숙(광주시립발레단) 등 국내 4대 발레단체의 단장은 모두 40대 초반이다. 주역 무용수 출신인 젊은 단장들은 백화점 특설무대에 서거나 현대발레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등 과감한 기획을 시도했고, 이러한 변신이 관객의 취향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세대교체는 단장급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각 단체의 주역급들 역시 ‘젊은 피’로 수혈되었다. 김용걸, 김지영, 이원국, 김주원 등은 각기 팬클럽까지 거느리는 발레계 스타들이다. 파리, 모스크바, 룩셈부르크 등 굵직굵직한 발레 콩쿠르에 입상하거나 해외 발레단에 입단하는 무용수의 숫자가 늘고 있는 것도 그만큼 주역급들의 기량이 급성장했다는 증거다. 무용평론가 이종호씨는 “발레는 주역 무용수의 기량이 뛰어나면 다른 부분이 미흡해도 관객이 몰리게 마련”이라면서 발레 붐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물론 한국발레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주역들의 기량은 세계 수준이지만 군무, 의상, 무대장치 등은 미흡한 부분이 많다. 좋은 안무가가 없어 공연 때마다 외국의 안무가를 초청해야 한다는 사실도 한국발레의 한계로 지적된다. 또 남자무용수들은 병역혜택이 주어지지 않아 그러잖아도 짧은 무용수로서의 생명이 더욱 단축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룩셈부르크 발레 콩쿠르 2인무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한 엄재용은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했음에도 군대에 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음악의 경우는 정부가 인정하는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무용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국내 무용수들이 해외의 유명한 발레콩쿠르에서 잇달아 입상하면서 발레계에는 “우리도 해보니까 되더라”는 식의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꼭 무대에 선 무용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에게도 발레는 더 이상 ‘서양인들이나 즐기는 화려한 예술’이 아닌 재미있는 볼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발레동호회, 팬클럽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발레를 향유하는 팬들의 숫자도 점차 늘고 있다. 관객의 눈은 가장 정직하다. 발레를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관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한국 발레의 앞날은 밝고도 행복해 보인다.
재원이는 별반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요즈음 예닐곱 살짜리 치고 발레를 배우지 않는 아이는 별로 없다. 남자아이들도 체조개념으로 발레를 하기 때문에 성적 편견도 없다. 성장기에 발레를 배우면 몸이 균형있게 자란다는 속설은 엄마들의 발걸음을 발레학원으로 이끈다. 어지간한 규모의 아파트 단지 상가에 발레학원이 입주한 것도 흔한 풍경이 되었다.
불과 5, 6년 전만 해도 ‘찬밥신세’
발레 조기교육 붐은 곧 한국발레의 중흥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립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등 3대 직업발레단의 공연은 연일 성황을 이룬다. 국립발레단의 정기공연은 지난해 객석 점유율 평균 89%에 유료관객 74%를 기록했다. 국립발레단과 쌍벽을 이루는 유니버설 발레단도 객석 점유율 90%에 유료관객은 70%에 육박한다. 지난 5월 공연한 ‘동물의 사육제’(유니버설 발레단)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서울발레시어터)는 전 공연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불과 5, 6년 전까지 발레는 공연장에서 찬밥신세였다. “객석 점유율 60%가 목표였습니다. 그중 유료관객은 20%도 안 되었죠.” 유니버설 발레단 관계자의 말이다. 방학숙제인 ‘공연 한 편 보고 입장권 제출하기’를 해결하러 온 학생들이나 출연자의 친지들로 간신히 채워지곤 하던 발레가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으니 눈 씻고 다시 볼 일이다.
특이한 것은 이런 관객몰이가 다른 분야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연극, 오페라, 클래식 음악 등 거의 모든 공연분야에서 관객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1997년과 2000년을 비교한 이 조사에서 1년 동안 한 번이라도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연극의 경우 20.2%에서 10.9%로,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공연은 13.3%에서 6.7%로 줄었다. 국내 최대의 음악축제인 교향악 축제는 관객의 외면으로 폐지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런데 똑같은 ‘국내단체’인 발레단의 공연은 초대권은커녕 웃돈을 주고 표를 사야 할 지경이다.
발레 붐은 발레의 조기교육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발레 공연 중에서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호두까기 인형’이나 어린이를 위한 발레작품들에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느 정도 발레를 배운 어린이들은 제대로 된 발레공연을 보고 싶어하게 마련이고,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는다.
그러나 단순히 발레교육의 열기로만 붐을 설명할 수는 없다. 무용평론가 장광열씨는 다양한 공연의 형태가 발레 붐을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1998년부터 시작된 ‘코리아 발레 페스티벌’을 비롯한 각종 갈라 공연들을 통해 스타급 무용수들이 탄생했습니다. 관객들은 전막 공연 중 가장 재미있는 장면들만 모은 갈라 공연을 통해 발레의 묘미를 느끼게 된 거죠. 또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 같은 초보관객들을 위한 공연도 발레 대중화에 큰몫을 했어요.”
지난 97년부터 시작된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는 ‘발레 속의 동물캐릭터’ ‘발레의 2인무’ 등 자상한 해설이 돋보이는 시리즈 공연이다. 올해로 다섯 해를 맞은 이 시리즈의 유료 관객은 98%. 지금까지 전회매진의 대기록을 세웠다.
발레단의 성공적인 세대교체도 국내 발레단의 중흥에 한몫을 했다. 최태지(국립발레단), 문훈숙(유니버설 발레단), 김인희(서울발레시어터), 박경숙(광주시립발레단) 등 국내 4대 발레단체의 단장은 모두 40대 초반이다. 주역 무용수 출신인 젊은 단장들은 백화점 특설무대에 서거나 현대발레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등 과감한 기획을 시도했고, 이러한 변신이 관객의 취향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세대교체는 단장급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각 단체의 주역급들 역시 ‘젊은 피’로 수혈되었다. 김용걸, 김지영, 이원국, 김주원 등은 각기 팬클럽까지 거느리는 발레계 스타들이다. 파리, 모스크바, 룩셈부르크 등 굵직굵직한 발레 콩쿠르에 입상하거나 해외 발레단에 입단하는 무용수의 숫자가 늘고 있는 것도 그만큼 주역급들의 기량이 급성장했다는 증거다. 무용평론가 이종호씨는 “발레는 주역 무용수의 기량이 뛰어나면 다른 부분이 미흡해도 관객이 몰리게 마련”이라면서 발레 붐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물론 한국발레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주역들의 기량은 세계 수준이지만 군무, 의상, 무대장치 등은 미흡한 부분이 많다. 좋은 안무가가 없어 공연 때마다 외국의 안무가를 초청해야 한다는 사실도 한국발레의 한계로 지적된다. 또 남자무용수들은 병역혜택이 주어지지 않아 그러잖아도 짧은 무용수로서의 생명이 더욱 단축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룩셈부르크 발레 콩쿠르 2인무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한 엄재용은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했음에도 군대에 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음악의 경우는 정부가 인정하는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무용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국내 무용수들이 해외의 유명한 발레콩쿠르에서 잇달아 입상하면서 발레계에는 “우리도 해보니까 되더라”는 식의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꼭 무대에 선 무용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에게도 발레는 더 이상 ‘서양인들이나 즐기는 화려한 예술’이 아닌 재미있는 볼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발레동호회, 팬클럽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발레를 향유하는 팬들의 숫자도 점차 늘고 있다. 관객의 눈은 가장 정직하다. 발레를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관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한국 발레의 앞날은 밝고도 행복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