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츄리 꼬꼬는 노래할 때가 제일 웃긴다?’ 이게 무슨 말일까. 가수가 노래하는 게 웃기다니? 그 이유는 여간해선 그들이 TV에 나와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톱스타답게 주말이면 리모컨을 돌리는 족족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개그맨들과 나란히 앉아 ‘토크’를 하고 저기선 여자들과 미팅하고, 또 다른 채널에선 ‘고공에서 달걀 떨어뜨려 컵에 빠뜨리기’ 같은 진기(?)를 선보인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한 번 노래하는 모습이 더 참신하고 재미있는 광경으로 비치게 되었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이제 가수가 나와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가수 ‘핑클’의 멤버들 이름을 일일이 꿰면서 “효리가 어쩌고, 옥주현이 어쩌고…”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정작 ‘핑클’의 노래는 하나도 아는 것이 없더라는 얘기는 우리의 방송 현실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방송에 나와서 노래 대신 뭘 보여주는 것일까. 바로 ‘개인기’다. 요즘 방송에서는 스타들의 현란한 개인기가 넘쳐난다. 원래 개인기란 스포츠경기에서 선수들이 화려한 기량으로 팬들을 사로잡는 것을 일컫는 말로,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갈고 닦은 창조적 기량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요즘에 와선 그 뜻이 변했다. 잘 알려진 인사들의 행동거지를 흉내내거나 성대모사를 하고 황당한 경험담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기가 모두 ‘개인기’란 말로 통하게 되었다. ‘서세원쇼’ 등 토크쇼에서 시작된 개인기 대결이 이제는 웬만한 오락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메뉴가 되었고, 이에 따라 ‘개인기’란 말이 사회적으로도 널리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너희들, 개인기 하나씩 해봐라.” 올해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 김문환씨(26)는 입사 후 선배들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이런 요구를 받았다. 노래 한 곡 정도 부르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동석한 동기들은 저마다 개그맨을 흉내내고 이다도시의 말투를 따라하는가 하면 즉석에서 삼행시를 짓고 최신 버전의 유머시리즈를 풀어놓으면서 좌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정작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김씨는 기가 죽어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술자리는 이내 썰렁해졌다.
다음날부터 그는 틈날 때마다 TV를 보면서 개그맨들의 말투와 모창을 연습하고 있다. 다음 술자리에서는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호된 경험을 치른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상사나 동료의 호감을 사기 위해선 그저 성실하게 일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요. 주위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능력과 다양한 장기가 필요한 시대란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개인기가 뛰어난 친구가 인기를 독차지한다. 가장 인기있는 건 ‘선생님 흉내내기’. 선생님의 특징 있는 어투나 행동을 가장 그럴듯하게 흉내내는 친구가 오락시간의 최고 스타다. 점심시간 등 여유 있을 때면 삼삼오오 모여서 묵찌빠 게임(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특정 연예인을 흉내내는 것)을 하거나 삼행시를 짓거나 성대모사를 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놀이문화가 이렇게 바뀐 데는 역시 방송의 영향이 가장 크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도 개인기만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연예인도 생겨났고, 심지어 방송에는 매일 나오는데 도대체 가수인지, 연기자인지, MC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한 시청자는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 한 곡 안하고 웃기는 얘기만 하다 들어가는 걸 보고 황당했다. 연예인들이 자기 분야에서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보다 어설픈 흉내내기에 열을 올린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웃겨야 살아남는다.’ 범람하는 오락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다. 토크 프로그램,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 심지어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웃음제조기가 되어 버렸다. 특별한 장기가 없어 웃음을 자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이제 설자리가 없다. 실제로 토크쇼 출연을 기피하는 스타들을 만나 이유를 들어보면 “웃기는 재주가 없어서” “개그맨 되기 싫어서”라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노래만 하고 싶은 가수들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이소라의 프로포즈’와 ‘수요예술무대’ 정도가 고작이다.
웃기는 재주가 없다면 스포츠맨 수준의 운동실력이라도 갖춰야 한다.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KBS)의 ‘출발 드림팀’ 코너 등에서 연예인들은 철인3종 경기를 방불케 하는 게임에 동원돼 뛰고 구르며 온몸을 불사르는 투혼을 선보인다. 이상인 박남현 등은 드림팀의 경기를 승리로 이끌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케이스. 톱스타 조성모 유승준 임창정 등도 발군의 운동실력을 선보이면서 노래와는 별도의 인기를 추가했다.
“톱스타들이 많이 출연하지만 섭외는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연예인들은 이 프로에 출연해 우승에 도전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요즘 연예인들은 종합 엔터테이너 아닌가. 노래나 연기의 본업 외에 다른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조승욱PD(‘출발 드림팀’ 연출)는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TV에 한 번이라도 더 출연하고 싶은 연예인들은 헬스클럽에라도 다니면서 몸을 다지고 최신유머를 구사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한다. 가수의 경우, 노래 이전에 개인기로 먼저 자신을 알리는 쪽으로 홍보전략을 바꾸고 있다. ‘서세원쇼’의 토크 박스 코너에 신인가수들의 출연요청이 몰리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남성듀오 ‘캔’의 경우도 멤버 배기성의 ‘이대근 흉내내기’와 개그맨 못지않은 유머감각이 먼저 알려지면서 덩달아 노래도 인기를 얻었다. 98년 데뷔앨범 때는 주로 대학로에서 공연했는데, 이때 갈고 닦은 순발력과 재담실력이 토크 프로그램에서 빛을 발한 것. 매니저 이재현씨는 “타고난 끼도 있지만, 토크쇼 출연 전에 연습을 많이 한다. 부담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얼굴을 알리는 데 성공한 만큼 앞으로는 출연을 좀 자제할 생각이다. 가수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사실 노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너무 적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 인기를 얻지만, 사실 가수들은 노래를 하고 싶어하고 연기자들은 연기에 충실하고 싶어한다. 미디어평론가 변정수씨는 “손쉽게 시청률을 올리려는 방송의 편의주의적 제작시스템이 연예인들을 웃음제조기로 전락시키고 있다”면서 “이런 오락프로그램의 풍토가 대중문화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고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코미디언 흉내를 내고, 원숭이나 아기를 키우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스타의 모습은 재밌지만 어딘지 씁쓸하다. ‘저러다 언제 폐기처분될까’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토크쇼의 홍수 속에서 개인기로 목숨을 부지하며 일년 내내 노래 한 곡 부르지 않는 일본 가수들의 모습을 이제 우리 방송에서도 보게 될 것 같다”는 전여옥씨(방송평론가·‘일본은 없다’의 저자)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이제 가수가 나와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가수 ‘핑클’의 멤버들 이름을 일일이 꿰면서 “효리가 어쩌고, 옥주현이 어쩌고…”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정작 ‘핑클’의 노래는 하나도 아는 것이 없더라는 얘기는 우리의 방송 현실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방송에 나와서 노래 대신 뭘 보여주는 것일까. 바로 ‘개인기’다. 요즘 방송에서는 스타들의 현란한 개인기가 넘쳐난다. 원래 개인기란 스포츠경기에서 선수들이 화려한 기량으로 팬들을 사로잡는 것을 일컫는 말로,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갈고 닦은 창조적 기량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요즘에 와선 그 뜻이 변했다. 잘 알려진 인사들의 행동거지를 흉내내거나 성대모사를 하고 황당한 경험담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기가 모두 ‘개인기’란 말로 통하게 되었다. ‘서세원쇼’ 등 토크쇼에서 시작된 개인기 대결이 이제는 웬만한 오락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메뉴가 되었고, 이에 따라 ‘개인기’란 말이 사회적으로도 널리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너희들, 개인기 하나씩 해봐라.” 올해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 김문환씨(26)는 입사 후 선배들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이런 요구를 받았다. 노래 한 곡 정도 부르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동석한 동기들은 저마다 개그맨을 흉내내고 이다도시의 말투를 따라하는가 하면 즉석에서 삼행시를 짓고 최신 버전의 유머시리즈를 풀어놓으면서 좌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정작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김씨는 기가 죽어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술자리는 이내 썰렁해졌다.
다음날부터 그는 틈날 때마다 TV를 보면서 개그맨들의 말투와 모창을 연습하고 있다. 다음 술자리에서는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호된 경험을 치른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상사나 동료의 호감을 사기 위해선 그저 성실하게 일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요. 주위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능력과 다양한 장기가 필요한 시대란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개인기가 뛰어난 친구가 인기를 독차지한다. 가장 인기있는 건 ‘선생님 흉내내기’. 선생님의 특징 있는 어투나 행동을 가장 그럴듯하게 흉내내는 친구가 오락시간의 최고 스타다. 점심시간 등 여유 있을 때면 삼삼오오 모여서 묵찌빠 게임(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특정 연예인을 흉내내는 것)을 하거나 삼행시를 짓거나 성대모사를 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놀이문화가 이렇게 바뀐 데는 역시 방송의 영향이 가장 크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도 개인기만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연예인도 생겨났고, 심지어 방송에는 매일 나오는데 도대체 가수인지, 연기자인지, MC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한 시청자는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 한 곡 안하고 웃기는 얘기만 하다 들어가는 걸 보고 황당했다. 연예인들이 자기 분야에서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보다 어설픈 흉내내기에 열을 올린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웃겨야 살아남는다.’ 범람하는 오락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다. 토크 프로그램,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 심지어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웃음제조기가 되어 버렸다. 특별한 장기가 없어 웃음을 자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이제 설자리가 없다. 실제로 토크쇼 출연을 기피하는 스타들을 만나 이유를 들어보면 “웃기는 재주가 없어서” “개그맨 되기 싫어서”라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노래만 하고 싶은 가수들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이소라의 프로포즈’와 ‘수요예술무대’ 정도가 고작이다.
웃기는 재주가 없다면 스포츠맨 수준의 운동실력이라도 갖춰야 한다.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KBS)의 ‘출발 드림팀’ 코너 등에서 연예인들은 철인3종 경기를 방불케 하는 게임에 동원돼 뛰고 구르며 온몸을 불사르는 투혼을 선보인다. 이상인 박남현 등은 드림팀의 경기를 승리로 이끌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케이스. 톱스타 조성모 유승준 임창정 등도 발군의 운동실력을 선보이면서 노래와는 별도의 인기를 추가했다.
“톱스타들이 많이 출연하지만 섭외는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연예인들은 이 프로에 출연해 우승에 도전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요즘 연예인들은 종합 엔터테이너 아닌가. 노래나 연기의 본업 외에 다른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조승욱PD(‘출발 드림팀’ 연출)는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TV에 한 번이라도 더 출연하고 싶은 연예인들은 헬스클럽에라도 다니면서 몸을 다지고 최신유머를 구사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한다. 가수의 경우, 노래 이전에 개인기로 먼저 자신을 알리는 쪽으로 홍보전략을 바꾸고 있다. ‘서세원쇼’의 토크 박스 코너에 신인가수들의 출연요청이 몰리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남성듀오 ‘캔’의 경우도 멤버 배기성의 ‘이대근 흉내내기’와 개그맨 못지않은 유머감각이 먼저 알려지면서 덩달아 노래도 인기를 얻었다. 98년 데뷔앨범 때는 주로 대학로에서 공연했는데, 이때 갈고 닦은 순발력과 재담실력이 토크 프로그램에서 빛을 발한 것. 매니저 이재현씨는 “타고난 끼도 있지만, 토크쇼 출연 전에 연습을 많이 한다. 부담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얼굴을 알리는 데 성공한 만큼 앞으로는 출연을 좀 자제할 생각이다. 가수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사실 노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너무 적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 인기를 얻지만, 사실 가수들은 노래를 하고 싶어하고 연기자들은 연기에 충실하고 싶어한다. 미디어평론가 변정수씨는 “손쉽게 시청률을 올리려는 방송의 편의주의적 제작시스템이 연예인들을 웃음제조기로 전락시키고 있다”면서 “이런 오락프로그램의 풍토가 대중문화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고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코미디언 흉내를 내고, 원숭이나 아기를 키우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스타의 모습은 재밌지만 어딘지 씁쓸하다. ‘저러다 언제 폐기처분될까’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토크쇼의 홍수 속에서 개인기로 목숨을 부지하며 일년 내내 노래 한 곡 부르지 않는 일본 가수들의 모습을 이제 우리 방송에서도 보게 될 것 같다”는 전여옥씨(방송평론가·‘일본은 없다’의 저자)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