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외경제 분야 전문인력들에 따르면 지난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상하이(上海) 시찰은 개성공단 개발을 염두에 둔 발걸음이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이후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 무역성 대표단과 민족경제협력연합회 관계자들의 이와 같은 발언은 ‘상하이를 모델로 한 신의주 경제특구’로 요약되는 남한 언론의 관측을 부인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상하이(上海) 모델 경제특구 건설’ ‘중 단둥(丹東)-북 신의주 경제특구로 개발’ ‘신의주-남포 등 경제특구로 적극 추진’ ‘신의주 경제특구 최적.’지난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비공식 방문 이후 신문 1면을 장식했던 북한의 개혁-개방 관련 기사의 제목들이다. 이런 보도에 따르면 마치 북한의 경제특구 지정을 핵심내용으로 한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개방 선언이 임박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는 것이 거의 확정된 것처럼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들과 상당수 대북 전문가들도 북한의 개방 전망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이후 가진 외신과의 회견 등에서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 선택 가능성을 점친 바 있는 김대통령은 2월2일 미국 AP통신과의 회견에서도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최대 목표는 고립되어 있는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고 어려운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은 변화하지 않거나, 또 한국과 미국 및 여타 외국의 협조와 지원을 받지 않고는 이 난국을 벗어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의 고위 관계자도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은 사회주의 국가의 아시아적 모델, 즉 중국 및 베트남과 같은 길을 가겠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북한이 그런 방향의 길을 표방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했다. 박재규 장관 등 통일부 고위 관계자들도 “김위원장이 방문한 푸둥지구는 외국기업과 중국기업 간 합작기업들이 몰려 있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김위원장은 결국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따르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된 결정적 배경은 김정일 위원장의 상하이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정부 관계자들이 중국 당국의 설명을 인용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상하이 방문시 “상하이를 모델로 (북한에도) 경제특구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으로 뒤늦게 전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김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이후 신의주와 남포가 경제특구로 지정될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떠올랐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이례적인 행보에 착안해 신의주 쪽에 무게를 더 실었다. 특히 일부 신문은, 현재 국토종합기본계획에 따라 사업을 확정해 추진중인 신의주가 현실적으로 최적 장소로 판단된다는 종합 검토보고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했다고 전한 외교소식통들을 인용해 북한은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할 것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이 인용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서해안 전지역을 대상으로 관계 기관들과 협의한 결과 △해주는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으로 민간 사업 추진이 곤란하고 △남포는 대규모 부지가 없으며 이에 따라 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뒤 평양 귀환 도중 2박3일간 신의주에 들러 ‘현지 지도’와 함께 경제특구 지정 후보지를 둘러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 무역성 대표단과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의주 경제특구설은 남한 언론이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을 과장 해석하거나 북한 실정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외경제사업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민경련 A씨는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장위원장)께서 중국의 (개방특구식) 경제 개발 및 사회 발전 모델을 인정하고 ‘천지개벽’이라는 극찬을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남측 언론이 말하는 ‘개방선언’이나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남측과의 경협사업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민경련의 B씨 또한 “장군님은 상하이에서 개혁-개방이란 용어를 쓴 적이 없다”면서 “개방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도 우리 식으로 하면 된다”고 말해 ‘개방선언’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용어 사용에는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남한 전용공단 성격을 띤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개발 실험이 시작될 것임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A씨는 “개성공단을 경제특구로 할지 다른 용어를 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북남 간에 합의한 공식 경제협력 대화창구인 북남 경제협력추진위를 중심으로 협의가 되고 있다”면서 특히 “4월이 되면 모든 윤곽이 나올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윤곽이란 우선 개성공단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법령 제정작업을 의미한다. A씨는 구체적으로 “내각에서 개성공단을 지원하고 투자를 보장할 법령 제정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A씨는 “남측의 인천국제공항이 3월 말에 개항하면 그동안 공항 건설에 투입된 막대한 유휴설비들이 국가(남한 정부) 차원에서 4월부터는 개성공단으로 투입되지 않겠느냐”고 말해 4월에 개성공단 건설사업이 착공될 것임을 강하게 암시했다.
또 A씨는 이에 대비해 북측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개성공단 건설사업 착공과 동시에 북측도 대규모 노동인력의 배치 이동과 그 노동인력을 수용할 주택 건설 등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성공단은 간단치 않은 일”이라면서 북측이 공사 노동력뿐만 아니라 시멘트, 강재, 모래 등 공단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상당부분 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북측 인사들은 “개성공단은 남쪽의 요청을 우리가 허용한 것인 만큼 원칙적으로 우리는 땅(공단부지)만 제공하고 모든 인프라(infra)는 남쪽에서 들여와야 한다”고 말해 공단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도로와 전력, 통신, 공업용수 등은 전적으로 남쪽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입장을 취했다. A씨는 “그 대신 남측은 직접 자유왕래를 보장받을 것이다”고 말해 오는 9월 준공 예정인 경의선(문산∼개성) 철도 및 도로가 개성공단 남북한 물류 이동의 주축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또 B씨는 개성공단에 입주할 주요 업종에 대해 관심을 표시하면서 공단 운영과 관련해 “북남 호상 간의 결제방식은 청산방식과 통상방식의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1 대 1 통상방식보다는 총액을 연말에 결산하고 그 결과에 따라 그 다음해 사업규모를 조정하는 청산방식을 선호한다”면서 “그러나 이는 북남이 협의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한편 북한 인사들은 신의주 등에 대한 경제특구 지정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서는 개성공단 말고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의 발언에 따르면 김위원장이 신의주를 방문한 것은 많은 수행원들과 함께 평양에 들렀다가 다시 가려면 번거롭기 때문에 귀국길에 들른 것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김정일 위원장이 연초에 대표적인 경공업 도시인 신의주를 현지 지도함으로써 인민경제 생필품에 대한 지도자의 관심을 과시한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단둥과 연계한 경제특구 지정설에 대해서도 이들은 일축했다. 중국에는 현재 선전(深土川)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 샤먼(廈門) 하이난다오(海南島) 등 5대 경제특구가 있는데 국무원은 중국이 경제특구를 설치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단계를 이미 넘겼고 WTO(세계무역기구)에 곧 가입해 세금과 보조금 등에서 특혜를 주기가 더 이상 어려워 앞으로는 어떤 곳에든지 경제특구를 새로 설치하지 않는다고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밝혀왔다. 또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는 오히려 지난해 5월 말 김정일 위원장이 방중했을 때 신의주에 특구가 생기면 단둥이 죽기 때문에 개성에 특구를 만들어보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상하이 푸둥 방문은 신의주가 아닌 개성공단 개발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추정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 요미우리(讀賣) 신문(1월22일자) 보도다. 이 신문은 김위원장의 상하이 견학에 따라 남북한이 경제특구로 공동 개발중인 개성공업단지의 향배가 주목된다면서 “북한은 당초 중국과 접경지역인 신의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지난해 5월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 당시 ‘한국과 가까운 지역이 미국과 일본으로 수출하는 데 유리하다’는 주룽지 총리의 조언에 따라 개성으로 변경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총면적 2640만㎡에 850개 기업을 유치해 연간 200억달러의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개성공단은 그 규모로 볼 때 개혁-개방을 향한 북한의 의사를 가늠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의 정식 명칭은 개성국제자유경제지대다. 현대아산이 수정한 개성경제지대 종합개발계획안은 “개성지역을 중국의 선전(深土川) 또는 푸둥(浦東) 경제특구와 같은 국제자유경제지구로 지정하여 제조, 금융, 상업 및 관광산업을 포함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종합적인 국제 자유도시로 개발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 외에 미래 대북사업의 주역으로 꼽히는 삼성이 그동안 50만평 규모의 삼성전자복합단지를 해주에 독자 개발한다는 방침에서 개성공단 개발과 연계해 개발하는 쪽으로 계획이 바뀐 점이다. 따라서 삼성의 공단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이건희 회장의 방북도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현대아산과 한국토지공사가 공동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1단계 개성공단 개발사업(100만평)에 탄력이 붙게 되었다. 1단계사업은 중소기업 중심의 섬유, 신발, 전기-전자공업, 금속-기계공업 전용단지로 조성된다. 현대아산측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개성공단 입주를 신청한 업체는 부산신발지식산업협동조합,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전자공업협동조합, 한국기계산업진흥회 등을 포함한 협회 회원사 460여개다. 이를 업종 별로 보면 섬유-의류-신발이 300개(65%), 전기-전자-금속-기계가 100개(22%), 기타(액세서리 주방용품)가 60개(13%)다.
개성공단 개발은 북한이 외부 투자자에게 공단 개발과 공단 내 기업 유치를 위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북한이 외자 유치를 위해 사용한 방법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것으로 경제 개발에 대한 북한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공단 개발은, 북한에는 자본설비 증가를 가져와 북한 경제의 성장 원동력이 될 것이며, 특히 경의선 철도-도로와 연계할 경우 남한에는 국내 경기 부양효과를 통해 생산 기지를 확보하고 생산 잠재력의 확대를 유발하는 등 남북한 경제 모두에 긍정적 효과를 미쳐, 남북 경협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성공단사업은 육로개방과 함께 공단개발의 부산물로 관광개방을 수반하고 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오는 9월부터 시작 예정인 개성관광은 역사유적지와 명승지를 활용한 ‘역사관광’에 국한되는 한계가 있지만 남북한 인적 교류의 물꼬가 터지면서 북한사회에 적잖은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측 인사들은 “우리는 개방-개혁 같은 자본주의식 정치적 술어는 절대 쓰지 않는다”면서 “자본주의 자본과 설비는 사용하지만 그 사상은 들여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북한식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은 전면적 개방보다는 실험적인 경제특구 건설의 형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외자와 과학기술)는 필요하지만 모기장을 쳐서 모기(자본주의 정신)는 막겠다’는 경제특구 건설원칙이 예외 없는 원칙으로 고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래저래 개성공단은 향후 남북관계를 가늠할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상하이(上海) 모델 경제특구 건설’ ‘중 단둥(丹東)-북 신의주 경제특구로 개발’ ‘신의주-남포 등 경제특구로 적극 추진’ ‘신의주 경제특구 최적.’지난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비공식 방문 이후 신문 1면을 장식했던 북한의 개혁-개방 관련 기사의 제목들이다. 이런 보도에 따르면 마치 북한의 경제특구 지정을 핵심내용으로 한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개방 선언이 임박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는 것이 거의 확정된 것처럼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들과 상당수 대북 전문가들도 북한의 개방 전망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이후 가진 외신과의 회견 등에서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 선택 가능성을 점친 바 있는 김대통령은 2월2일 미국 AP통신과의 회견에서도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최대 목표는 고립되어 있는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고 어려운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은 변화하지 않거나, 또 한국과 미국 및 여타 외국의 협조와 지원을 받지 않고는 이 난국을 벗어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의 고위 관계자도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은 사회주의 국가의 아시아적 모델, 즉 중국 및 베트남과 같은 길을 가겠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북한이 그런 방향의 길을 표방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했다. 박재규 장관 등 통일부 고위 관계자들도 “김위원장이 방문한 푸둥지구는 외국기업과 중국기업 간 합작기업들이 몰려 있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김위원장은 결국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따르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된 결정적 배경은 김정일 위원장의 상하이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정부 관계자들이 중국 당국의 설명을 인용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상하이 방문시 “상하이를 모델로 (북한에도) 경제특구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으로 뒤늦게 전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김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이후 신의주와 남포가 경제특구로 지정될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떠올랐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이례적인 행보에 착안해 신의주 쪽에 무게를 더 실었다. 특히 일부 신문은, 현재 국토종합기본계획에 따라 사업을 확정해 추진중인 신의주가 현실적으로 최적 장소로 판단된다는 종합 검토보고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했다고 전한 외교소식통들을 인용해 북한은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할 것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이 인용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서해안 전지역을 대상으로 관계 기관들과 협의한 결과 △해주는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으로 민간 사업 추진이 곤란하고 △남포는 대규모 부지가 없으며 이에 따라 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뒤 평양 귀환 도중 2박3일간 신의주에 들러 ‘현지 지도’와 함께 경제특구 지정 후보지를 둘러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 무역성 대표단과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의주 경제특구설은 남한 언론이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을 과장 해석하거나 북한 실정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외경제사업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민경련 A씨는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장위원장)께서 중국의 (개방특구식) 경제 개발 및 사회 발전 모델을 인정하고 ‘천지개벽’이라는 극찬을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남측 언론이 말하는 ‘개방선언’이나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남측과의 경협사업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민경련의 B씨 또한 “장군님은 상하이에서 개혁-개방이란 용어를 쓴 적이 없다”면서 “개방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도 우리 식으로 하면 된다”고 말해 ‘개방선언’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용어 사용에는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남한 전용공단 성격을 띤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개발 실험이 시작될 것임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A씨는 “개성공단을 경제특구로 할지 다른 용어를 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북남 간에 합의한 공식 경제협력 대화창구인 북남 경제협력추진위를 중심으로 협의가 되고 있다”면서 특히 “4월이 되면 모든 윤곽이 나올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윤곽이란 우선 개성공단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법령 제정작업을 의미한다. A씨는 구체적으로 “내각에서 개성공단을 지원하고 투자를 보장할 법령 제정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A씨는 “남측의 인천국제공항이 3월 말에 개항하면 그동안 공항 건설에 투입된 막대한 유휴설비들이 국가(남한 정부) 차원에서 4월부터는 개성공단으로 투입되지 않겠느냐”고 말해 4월에 개성공단 건설사업이 착공될 것임을 강하게 암시했다.
또 A씨는 이에 대비해 북측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개성공단 건설사업 착공과 동시에 북측도 대규모 노동인력의 배치 이동과 그 노동인력을 수용할 주택 건설 등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성공단은 간단치 않은 일”이라면서 북측이 공사 노동력뿐만 아니라 시멘트, 강재, 모래 등 공단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상당부분 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북측 인사들은 “개성공단은 남쪽의 요청을 우리가 허용한 것인 만큼 원칙적으로 우리는 땅(공단부지)만 제공하고 모든 인프라(infra)는 남쪽에서 들여와야 한다”고 말해 공단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도로와 전력, 통신, 공업용수 등은 전적으로 남쪽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입장을 취했다. A씨는 “그 대신 남측은 직접 자유왕래를 보장받을 것이다”고 말해 오는 9월 준공 예정인 경의선(문산∼개성) 철도 및 도로가 개성공단 남북한 물류 이동의 주축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또 B씨는 개성공단에 입주할 주요 업종에 대해 관심을 표시하면서 공단 운영과 관련해 “북남 호상 간의 결제방식은 청산방식과 통상방식의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1 대 1 통상방식보다는 총액을 연말에 결산하고 그 결과에 따라 그 다음해 사업규모를 조정하는 청산방식을 선호한다”면서 “그러나 이는 북남이 협의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한편 북한 인사들은 신의주 등에 대한 경제특구 지정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서는 개성공단 말고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의 발언에 따르면 김위원장이 신의주를 방문한 것은 많은 수행원들과 함께 평양에 들렀다가 다시 가려면 번거롭기 때문에 귀국길에 들른 것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김정일 위원장이 연초에 대표적인 경공업 도시인 신의주를 현지 지도함으로써 인민경제 생필품에 대한 지도자의 관심을 과시한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단둥과 연계한 경제특구 지정설에 대해서도 이들은 일축했다. 중국에는 현재 선전(深土川)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 샤먼(廈門) 하이난다오(海南島) 등 5대 경제특구가 있는데 국무원은 중국이 경제특구를 설치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단계를 이미 넘겼고 WTO(세계무역기구)에 곧 가입해 세금과 보조금 등에서 특혜를 주기가 더 이상 어려워 앞으로는 어떤 곳에든지 경제특구를 새로 설치하지 않는다고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밝혀왔다. 또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는 오히려 지난해 5월 말 김정일 위원장이 방중했을 때 신의주에 특구가 생기면 단둥이 죽기 때문에 개성에 특구를 만들어보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상하이 푸둥 방문은 신의주가 아닌 개성공단 개발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추정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 요미우리(讀賣) 신문(1월22일자) 보도다. 이 신문은 김위원장의 상하이 견학에 따라 남북한이 경제특구로 공동 개발중인 개성공업단지의 향배가 주목된다면서 “북한은 당초 중국과 접경지역인 신의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지난해 5월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 당시 ‘한국과 가까운 지역이 미국과 일본으로 수출하는 데 유리하다’는 주룽지 총리의 조언에 따라 개성으로 변경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총면적 2640만㎡에 850개 기업을 유치해 연간 200억달러의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개성공단은 그 규모로 볼 때 개혁-개방을 향한 북한의 의사를 가늠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의 정식 명칭은 개성국제자유경제지대다. 현대아산이 수정한 개성경제지대 종합개발계획안은 “개성지역을 중국의 선전(深土川) 또는 푸둥(浦東) 경제특구와 같은 국제자유경제지구로 지정하여 제조, 금융, 상업 및 관광산업을 포함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종합적인 국제 자유도시로 개발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 외에 미래 대북사업의 주역으로 꼽히는 삼성이 그동안 50만평 규모의 삼성전자복합단지를 해주에 독자 개발한다는 방침에서 개성공단 개발과 연계해 개발하는 쪽으로 계획이 바뀐 점이다. 따라서 삼성의 공단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이건희 회장의 방북도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현대아산과 한국토지공사가 공동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1단계 개성공단 개발사업(100만평)에 탄력이 붙게 되었다. 1단계사업은 중소기업 중심의 섬유, 신발, 전기-전자공업, 금속-기계공업 전용단지로 조성된다. 현대아산측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개성공단 입주를 신청한 업체는 부산신발지식산업협동조합,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전자공업협동조합, 한국기계산업진흥회 등을 포함한 협회 회원사 460여개다. 이를 업종 별로 보면 섬유-의류-신발이 300개(65%), 전기-전자-금속-기계가 100개(22%), 기타(액세서리 주방용품)가 60개(13%)다.
개성공단 개발은 북한이 외부 투자자에게 공단 개발과 공단 내 기업 유치를 위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북한이 외자 유치를 위해 사용한 방법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것으로 경제 개발에 대한 북한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공단 개발은, 북한에는 자본설비 증가를 가져와 북한 경제의 성장 원동력이 될 것이며, 특히 경의선 철도-도로와 연계할 경우 남한에는 국내 경기 부양효과를 통해 생산 기지를 확보하고 생산 잠재력의 확대를 유발하는 등 남북한 경제 모두에 긍정적 효과를 미쳐, 남북 경협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성공단사업은 육로개방과 함께 공단개발의 부산물로 관광개방을 수반하고 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오는 9월부터 시작 예정인 개성관광은 역사유적지와 명승지를 활용한 ‘역사관광’에 국한되는 한계가 있지만 남북한 인적 교류의 물꼬가 터지면서 북한사회에 적잖은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측 인사들은 “우리는 개방-개혁 같은 자본주의식 정치적 술어는 절대 쓰지 않는다”면서 “자본주의 자본과 설비는 사용하지만 그 사상은 들여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북한식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은 전면적 개방보다는 실험적인 경제특구 건설의 형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외자와 과학기술)는 필요하지만 모기장을 쳐서 모기(자본주의 정신)는 막겠다’는 경제특구 건설원칙이 예외 없는 원칙으로 고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래저래 개성공단은 향후 남북관계를 가늠할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