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시내 곳곳에 ‘media city seoul 2000’이라고 쓰인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고 ‘저게 뭐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 2호선 환승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걷다보면 평소 보지 못했던 ‘이상한’ 그림이나 물건 등이 눈에 들어온다. 시내 대형 전광판에서는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인지 다소 헷갈리는 영상도 종종 흘러나온다.
이 모든 것은 서울시에서 전례 없는 큰 규모의 현대미술 축제가 열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9월2일 개막된 이 행사는 ‘미디어아트 2000’ ‘디지털 앨리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지하철 프로젝트’ ‘시티비전’ 등 5개 전시로 나뉘어 서울 종로구 신문로 경희궁 근린공원 내에 있는 시립박물관 시립미술관 600년기념관과 시내 13개 지하철역 및 42개 전광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미디어아트 2000’ 등 3개 전시가 열리고 있는 경희궁 근린공원. 평일에 찾은 전시장은 무척 한산하다. 관람객보다 전시를 안내하는 도슨트(docent)나 작품의 안전을 담당한 캡스(CAPS)요원들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다. 한미애(韓美愛) 주최측 홍보팀장은 “당초 하루 평균 5000명의 관람객을 목표로 했으나 현재까지 하루 1000명 정도가 찾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이번 전시가 ‘시민 없는 시민축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입장료가 너무 비싼 것이 시민축제라는 취지를 무색케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곳을 둘러보려면 어른(만 18∼64세)은 1만원, 청소년(만 12∼17세)은 8000원, 어린이(만 4∼11세)는 5000원을 내야 한다. 4인가족이 함께 관람하는 데 3만원이 훨씬 넘는 돈이 들어간다.
주최측은 “광주비엔날레의 입장료가 어른 기준 1만2000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비싼 것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사실 전시 수준으로 보면 주전시인 ‘미디어아트 2000’은 광주비엔날레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우선 작품을 내놓은 빌 비올라, 게리 힐, 브루스 나우만, 비토 아콘치, 매튜 바니, 스티브 매퀸, 토니 오슬러, 로즈마리 트로켈 등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이고 작품도 최근 비디오 아트의 발전경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비디오 아트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평론가 중 한명인 김홍희씨는 다음과 같이 이번 전시 수준을 높이 평가했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흔히 봐왔던 비디오 설치나 조각 같은 것에서 탈피해 영상 자체를 중시하고 TV모니터보다 프로젝션을 선호하는 최근 비디오 아트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빌 비올라의 ‘만남’은 세 여인이 만나는 일상적인 장면을 극도로 느린 속도로 보여줌으로써 ‘만남’의 순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걸작이다. 특히 이 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 카메라는 국내 작가들이 아직까지 사용하기 힘든 고성능 카메라다.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 4’도 비디오 작품과 영화가 구별이 없어져 가는 최근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큰 도움을 준다. 외국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봐야 하는 주요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시는 상당히 유익한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시티 서울’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일반인의 평가는 전문가의 의견과 상당히 다르다.
“볼거리도 없으면서 1만원이나 하고… 쓸데없이 많은 안내원과 경비요원. 어이가 없다. 돈만 아깝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시를 추천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등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고 “그저 한두 작품만 건지면 만족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실제 전시를 보고 배운 점이 많았다”는 긍정적 견해는 간혹 눈에 띌 뿐이었다.
기자는 두 차례 전시장에 찾아갔다. 처음에는 혼자서, 두번째는 도슨트의 도움을 받으며 봤다. 확실히 혼자 보는 것보다는 도슨트의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으며 보는 것이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남준 류의 비디오 설치나 조각이 눈에 익은 관람객에게 영상이나 프로젝션이 중심이 돼가는 최근의 비디오 작품은 약간 설명이 필요한 듯하다.
빌 비올라의 ‘만남’이나 장 페일리의 ‘먹기’, 김영진의 ‘액체’ 등은 조금만 설명을 들으면 누구라도 금방 진가를 알아볼 수 있고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 4’는 오랫동안 충격적 영상으로 남을 작품이다. 전시장이 한산한 것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작품을 진지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라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주최측의 전시 안내가 필요한 사람에게 그때그때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도슨트가 전시를 설명하는 시간은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 등으로 하루 세 차례에 그치고 안내원의 인위적인 동선(動線) 유도나 사려깊지 못한 개입은 자연스러운 작품관람을 방해하는 측면이 많다.‘미디어 아트 2000’과는 달리 ‘디지털 앨리스’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상대로 한 대중적인 전시다. 너무 대중적이어서 “이게 무슨 미술 전시야. 엑스포(EXPO)지”라는 비판까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눈높이를 달리해 어린이의 눈으로 봤을 때 ‘디지털 앨리스’는 최상의 놀이교육 공간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이 전시에는 경희궁에 소풍 나오는 기분으로 많은 어린이와 어머니들이 찾고 있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는 고급화된 전자오락실 이상의 감동을 주지 않지만 성인들도 ‘미디어 아트 2000’의 어둠침침한 전시장을 벗어나 어려운 미술을 감상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좋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디어 아트 2000’과 다른 두 전시의 골이 너무 깊고, 그 타깃이 분명히 다른 데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한꺼번에 요금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 아트 2000’은 최첨단 미술 장르를 다루고 있다. ‘디지털 앨리스’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를 보러온 어린이나 청소년이 성인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비디오 아트를 관람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반대로 ‘미디어 아트 2000’을 보러온 성인들이 ‘디지털 앨리스’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를 보고 큰 감동이나 체험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송미숙(宋美淑) 전시총감독(성신여대 교수)은 “전시마다 따로 요금을 받으면 ‘미디어아트 2000’의 입장료는 영화관람료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겠지만 총체적인 디지털 체험은 세 전시를 동시에 다 봐야만 얻어질 수 있다는 취지로 함께 요금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며 “현재 서울시측에 요금체제 개편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상의 어려움과 이미 관람한 사람들과의 형평성 등의 문제로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서울시에서 전례 없는 큰 규모의 현대미술 축제가 열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9월2일 개막된 이 행사는 ‘미디어아트 2000’ ‘디지털 앨리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지하철 프로젝트’ ‘시티비전’ 등 5개 전시로 나뉘어 서울 종로구 신문로 경희궁 근린공원 내에 있는 시립박물관 시립미술관 600년기념관과 시내 13개 지하철역 및 42개 전광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미디어아트 2000’ 등 3개 전시가 열리고 있는 경희궁 근린공원. 평일에 찾은 전시장은 무척 한산하다. 관람객보다 전시를 안내하는 도슨트(docent)나 작품의 안전을 담당한 캡스(CAPS)요원들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다. 한미애(韓美愛) 주최측 홍보팀장은 “당초 하루 평균 5000명의 관람객을 목표로 했으나 현재까지 하루 1000명 정도가 찾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이번 전시가 ‘시민 없는 시민축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입장료가 너무 비싼 것이 시민축제라는 취지를 무색케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곳을 둘러보려면 어른(만 18∼64세)은 1만원, 청소년(만 12∼17세)은 8000원, 어린이(만 4∼11세)는 5000원을 내야 한다. 4인가족이 함께 관람하는 데 3만원이 훨씬 넘는 돈이 들어간다.
주최측은 “광주비엔날레의 입장료가 어른 기준 1만2000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비싼 것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사실 전시 수준으로 보면 주전시인 ‘미디어아트 2000’은 광주비엔날레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우선 작품을 내놓은 빌 비올라, 게리 힐, 브루스 나우만, 비토 아콘치, 매튜 바니, 스티브 매퀸, 토니 오슬러, 로즈마리 트로켈 등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이고 작품도 최근 비디오 아트의 발전경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비디오 아트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평론가 중 한명인 김홍희씨는 다음과 같이 이번 전시 수준을 높이 평가했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흔히 봐왔던 비디오 설치나 조각 같은 것에서 탈피해 영상 자체를 중시하고 TV모니터보다 프로젝션을 선호하는 최근 비디오 아트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빌 비올라의 ‘만남’은 세 여인이 만나는 일상적인 장면을 극도로 느린 속도로 보여줌으로써 ‘만남’의 순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걸작이다. 특히 이 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 카메라는 국내 작가들이 아직까지 사용하기 힘든 고성능 카메라다.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 4’도 비디오 작품과 영화가 구별이 없어져 가는 최근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큰 도움을 준다. 외국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봐야 하는 주요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시는 상당히 유익한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시티 서울’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일반인의 평가는 전문가의 의견과 상당히 다르다.
“볼거리도 없으면서 1만원이나 하고… 쓸데없이 많은 안내원과 경비요원. 어이가 없다. 돈만 아깝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시를 추천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등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고 “그저 한두 작품만 건지면 만족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실제 전시를 보고 배운 점이 많았다”는 긍정적 견해는 간혹 눈에 띌 뿐이었다.
기자는 두 차례 전시장에 찾아갔다. 처음에는 혼자서, 두번째는 도슨트의 도움을 받으며 봤다. 확실히 혼자 보는 것보다는 도슨트의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으며 보는 것이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남준 류의 비디오 설치나 조각이 눈에 익은 관람객에게 영상이나 프로젝션이 중심이 돼가는 최근의 비디오 작품은 약간 설명이 필요한 듯하다.
빌 비올라의 ‘만남’이나 장 페일리의 ‘먹기’, 김영진의 ‘액체’ 등은 조금만 설명을 들으면 누구라도 금방 진가를 알아볼 수 있고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 4’는 오랫동안 충격적 영상으로 남을 작품이다. 전시장이 한산한 것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작품을 진지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라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주최측의 전시 안내가 필요한 사람에게 그때그때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도슨트가 전시를 설명하는 시간은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 등으로 하루 세 차례에 그치고 안내원의 인위적인 동선(動線) 유도나 사려깊지 못한 개입은 자연스러운 작품관람을 방해하는 측면이 많다.‘미디어 아트 2000’과는 달리 ‘디지털 앨리스’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상대로 한 대중적인 전시다. 너무 대중적이어서 “이게 무슨 미술 전시야. 엑스포(EXPO)지”라는 비판까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눈높이를 달리해 어린이의 눈으로 봤을 때 ‘디지털 앨리스’는 최상의 놀이교육 공간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이 전시에는 경희궁에 소풍 나오는 기분으로 많은 어린이와 어머니들이 찾고 있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는 고급화된 전자오락실 이상의 감동을 주지 않지만 성인들도 ‘미디어 아트 2000’의 어둠침침한 전시장을 벗어나 어려운 미술을 감상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좋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디어 아트 2000’과 다른 두 전시의 골이 너무 깊고, 그 타깃이 분명히 다른 데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한꺼번에 요금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 아트 2000’은 최첨단 미술 장르를 다루고 있다. ‘디지털 앨리스’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를 보러온 어린이나 청소년이 성인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비디오 아트를 관람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반대로 ‘미디어 아트 2000’을 보러온 성인들이 ‘디지털 앨리스’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를 보고 큰 감동이나 체험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송미숙(宋美淑) 전시총감독(성신여대 교수)은 “전시마다 따로 요금을 받으면 ‘미디어아트 2000’의 입장료는 영화관람료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겠지만 총체적인 디지털 체험은 세 전시를 동시에 다 봐야만 얻어질 수 있다는 취지로 함께 요금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며 “현재 서울시측에 요금체제 개편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상의 어려움과 이미 관람한 사람들과의 형평성 등의 문제로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