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할 책이 있고 갖고 싶은 책이 있다. 사려고 마음먹었던 것도 아닌데 눈에 ‘쏘옥’ 들어오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렇게 서가에 한 권 두 권 쌓인 책은 왠지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다.
요즘 서점에는 이처럼 갖고 싶은 책들이 유난히 많아졌다. 첫장을 넘길 때부터 질감 좋은 종이에 생생한 컬러 인쇄, 변형 판형의 시원한 편집디자인이 돋보인다. 그것은 최근 미술 관련 교양서적 출판이 붐을 이룬 것과도 관계가 깊다. 그림이야 열 번 설명보다 딱 한 번 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여기에 저자의 강의가 곁들여지면서 독자들은 그림 읽기에 빠져들게 된다.
출판사도 이런 독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사진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이중 삼중 스캔으로 윤곽마저 흐릿해진 것을 ‘모나리자이겠거니’ 하면서 참고 보아줬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국내 저자들이 직접 해외에서 찍어왔거나 세계 유명 박물관의 슬라이드 자료를 활용해 인쇄의 질이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주헌씨의 ‘신화, 그림으로 읽기’를 보자. 출판사 학고재가 즐겨 쓰는 미색 세피앙지는 보통의 화보중심 책에 널리 쓰이는 아트지의 뻣뻣함이나 번쩍거림이 없어 좋다. 대신 시각적으로 부드럽고 차분해서 읽기에 편안한 느낌을 준다. 미술교양서이면서 여행안내서이고 수필집이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이 책의 내용에 적합한 선택이다. 책에는 미술관에 소장된 명화나 조각상, 주요 건축물과 풍경사진 사이로 군데군데 가족사진까지 266점의 컬러 도판이 들어 있다. 가족사진은 마치 저자의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장과 장 사이에 넣은 관광안내를 살굿빛 종이로 처리해 본문과 구분하면서 조화를 잃지 않은 점도 돋보인다.
남궁문씨의 ‘멕시코 벽화운동’은 자료적 가치가 높은 책이다.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 뿌리를 둔 멕시코 벽화가 20세기 초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메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 세 명의 거장에 의해 꽃피우기까지 정치사회적 상황과 함께 벽화의 발전과정을 살펴본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컬러 78점, 흑백 16점의 도판 중 상당수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스노화이트 종이는 컬러 인쇄시 색을 흡수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강렬한 멕시코 벽화의 색감을 살리는 데 무리가 없다. 굳이 아쉬움이 있다면 글줄 간격이 너무 빽빽해 답답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창해가 펴낸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 시리즈 중 하나인 ‘야만인의 절규’(폴 고갱 지음) 역시 스노화이트지에 4×6배판 변형으로 최근 규격화돼가는 미술교양서의 편집방향을 보여준다. 이 책은 흑백의 자료사진과 큼직한 컬러 도판이 적절히 어우러져 시각적으로 강약을 주는 게 특징.
물론 고갱이 직접 쓴 글의 내용도 매우 흥미롭다. 고갱이 예술잡지에 발표했던 글, 아내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예술비평가와 작가에게 보낸 편지가 일목요연하게 편집돼 있고 그 가운데 고흐 드가 세잔 르누아르 르동 등 당대 거장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인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끝으로 프랑스에서 미술사와 조경을 공부한 박정욱씨의 ‘루브르 계단에서 관음, 미소짓다’는 처음으로 서양미술과 아시아미술, 한국화와 서양화의 비교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아미타여래도’와 19세기 말 벨기에의 상징주의 화가인 페르낭 크노프의 ‘침묵’을 나란히 놓고 그는 자웅동체의 얼굴과 상반된 성적 매력을 발견하지만, 살며시 편 아미타여래의 손바닥과 왼손을 들어 입을 가린 크노프의 인물상에서 열린 마음과 닫힌 마음의 차이를 읽어낸다.
이 책의 아쉬움은 인쇄에 있다. 제대로 된 사진자료를 구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2도 인쇄를 했다지만 보는 즐거움이 충분치 않다. 저자의 탁월한 안목과 좋은 글임에도 걸맞은 이미지가 따라주지 않으니 초라하다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신화, 그림으로 읽기/ 이주헌 지음/ 학고재 펴냄/ 287쪽/ 1만3500원
멕시코 벽화운동/ 남궁문 지음/ 시공사 펴냄/ 226쪽/ 1만5000원
야만인의 절규/ 폴 고갱 지음/ 강주헌 옮김/창해 펴냄/ 272쪽/ 1만5000원
루브르 계단에서 관음, 미소짓다/ 박정욱 지음/ 서해문집 펴냄/ 256쪽/ 1만2000원
요즘 서점에는 이처럼 갖고 싶은 책들이 유난히 많아졌다. 첫장을 넘길 때부터 질감 좋은 종이에 생생한 컬러 인쇄, 변형 판형의 시원한 편집디자인이 돋보인다. 그것은 최근 미술 관련 교양서적 출판이 붐을 이룬 것과도 관계가 깊다. 그림이야 열 번 설명보다 딱 한 번 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여기에 저자의 강의가 곁들여지면서 독자들은 그림 읽기에 빠져들게 된다.
출판사도 이런 독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사진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이중 삼중 스캔으로 윤곽마저 흐릿해진 것을 ‘모나리자이겠거니’ 하면서 참고 보아줬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국내 저자들이 직접 해외에서 찍어왔거나 세계 유명 박물관의 슬라이드 자료를 활용해 인쇄의 질이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주헌씨의 ‘신화, 그림으로 읽기’를 보자. 출판사 학고재가 즐겨 쓰는 미색 세피앙지는 보통의 화보중심 책에 널리 쓰이는 아트지의 뻣뻣함이나 번쩍거림이 없어 좋다. 대신 시각적으로 부드럽고 차분해서 읽기에 편안한 느낌을 준다. 미술교양서이면서 여행안내서이고 수필집이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이 책의 내용에 적합한 선택이다. 책에는 미술관에 소장된 명화나 조각상, 주요 건축물과 풍경사진 사이로 군데군데 가족사진까지 266점의 컬러 도판이 들어 있다. 가족사진은 마치 저자의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장과 장 사이에 넣은 관광안내를 살굿빛 종이로 처리해 본문과 구분하면서 조화를 잃지 않은 점도 돋보인다.
남궁문씨의 ‘멕시코 벽화운동’은 자료적 가치가 높은 책이다.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 뿌리를 둔 멕시코 벽화가 20세기 초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메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 세 명의 거장에 의해 꽃피우기까지 정치사회적 상황과 함께 벽화의 발전과정을 살펴본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컬러 78점, 흑백 16점의 도판 중 상당수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스노화이트 종이는 컬러 인쇄시 색을 흡수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강렬한 멕시코 벽화의 색감을 살리는 데 무리가 없다. 굳이 아쉬움이 있다면 글줄 간격이 너무 빽빽해 답답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창해가 펴낸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 시리즈 중 하나인 ‘야만인의 절규’(폴 고갱 지음) 역시 스노화이트지에 4×6배판 변형으로 최근 규격화돼가는 미술교양서의 편집방향을 보여준다. 이 책은 흑백의 자료사진과 큼직한 컬러 도판이 적절히 어우러져 시각적으로 강약을 주는 게 특징.
물론 고갱이 직접 쓴 글의 내용도 매우 흥미롭다. 고갱이 예술잡지에 발표했던 글, 아내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예술비평가와 작가에게 보낸 편지가 일목요연하게 편집돼 있고 그 가운데 고흐 드가 세잔 르누아르 르동 등 당대 거장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인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끝으로 프랑스에서 미술사와 조경을 공부한 박정욱씨의 ‘루브르 계단에서 관음, 미소짓다’는 처음으로 서양미술과 아시아미술, 한국화와 서양화의 비교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아미타여래도’와 19세기 말 벨기에의 상징주의 화가인 페르낭 크노프의 ‘침묵’을 나란히 놓고 그는 자웅동체의 얼굴과 상반된 성적 매력을 발견하지만, 살며시 편 아미타여래의 손바닥과 왼손을 들어 입을 가린 크노프의 인물상에서 열린 마음과 닫힌 마음의 차이를 읽어낸다.
이 책의 아쉬움은 인쇄에 있다. 제대로 된 사진자료를 구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2도 인쇄를 했다지만 보는 즐거움이 충분치 않다. 저자의 탁월한 안목과 좋은 글임에도 걸맞은 이미지가 따라주지 않으니 초라하다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신화, 그림으로 읽기/ 이주헌 지음/ 학고재 펴냄/ 287쪽/ 1만3500원
멕시코 벽화운동/ 남궁문 지음/ 시공사 펴냄/ 226쪽/ 1만5000원
야만인의 절규/ 폴 고갱 지음/ 강주헌 옮김/창해 펴냄/ 272쪽/ 1만5000원
루브르 계단에서 관음, 미소짓다/ 박정욱 지음/ 서해문집 펴냄/ 256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