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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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용등급, 기업을 갖고 논다?

현대건설 등급 하락에 자금줄 차단 등 비상사태…외국 회사들 비해 신뢰성엔 의문

  • 입력2005-08-22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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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신용등급, 기업을 갖고 논다?
    지난 7월24일 현대건설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는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가 현대건설의 회사채 등급을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조정한다고 발표하자 현대건설 해외영업팀에는 비상이 걸렸다. 해외에서 진행 중인 금융 차입 관련 협상에 당장 빨간불이 켜지고 해외 금융기관들이 더 이상의 신용장 개설을 중단한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해외 파트너들은 블룸버그 등 외신을 통해 전달받은 현대건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 뉴스를 내놓으면서 현대건설측에 해외 일류은행의 추가 보증을 요구했다. 이들 은행의 추가 보증을 받으려면 국내은행에 비해 최고 5배나 높은 보증료를 물어야 한다.

    사태는 금융분야뿐만 아니라 시공 쪽에서도 터졌다. 심지어 입찰 참여를 앞두고 있는 공사에서는 발주자들이 입찰 대상에서 현대건설을 제외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모든 사태가 바로 신용등급 하향 조정 조처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다.

    뒤늦게 현대건설 임원진은 평가기관인 한국기업평가를 방문해 신용등급 하락 조치에 항의하고 해외영업에 따르는 애로를 호소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도 한참 늦어버린 뒤였다. 한기평측의 답변은 “대외신인도가 개선된다면 언제라도 신용등급을 재조정할 수 있지만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는 것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워크아웃설에 시달리던 중에 예기치 못한 일격을 당한 현대건설측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현대건설 해외영업 담당 김호영 전무는 “한기평측이 현대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다고 했지만 해외영업 분야가 무너져 다 죽고 난 다음에 무슨 구조조정을 할 것이냐”고 반발했다.

    신용평가기관이 기업들로부터 잦은 항의를 받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아직 국내 신용평가회사의 공신력이 외국 유수 평가기관들의 신뢰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용평가기관들이 갖고 있는 ‘원죄’도 작용하고 있다. 한기평만 해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단일 금융기관으로는 최대주주로 참여해 만들어진 회사다. 결국 개별 기업의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도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게 평가 대상 기업들의 인식이다. 게다가 경영진도 대부분 퇴임한 경제 관료 출신이거나 국책은행 임원 출신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는 한국신용정보에서 정부측의 영향력 아래 선임된 사장 취임을 노조가 거부해 임명이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특히 이번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처럼 정부와 재벌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20일 만에 전격적으로 회사채 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지자 현대측은 신용평가기관의 공신력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현대건설 김호영 전무는 “이미 7월3일 회사채 등급을 BBB-로 조정해놓고 20일 만에 별다른 이유 없이 ‘현대그룹의 구조조정 미흡’이라는 애매한 이유만으로 또다시 투기등급인 BB-로 조정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번 현대건설 파동에서 보듯이 국내 신용평가기관의 경우 아직까지 기업들의 영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수긍하고 있다. 한기평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IR 활동에 관심이 없던 기업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물론 평가기관이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미래 안전성 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관점의 차이가 기업들의 불만을 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평가기관들이 부여하는 신용등급은 채권보유자의 관점에서 채권 회수를 위한 방안에 주목하기 때문에 증권사들이 내놓는 기업가치 평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 장영규 팀장은 “현재의 수익흐름이 3배가 될 확률이 50%인 회사보다는 현재의 수익흐름이 유지될 확률이 90%인 업체를 선호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회사채 금리를 낮게 적용받기 위한 목적을 가진 기업들과는 의견충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평가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점도 있다. 현재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2개 기관의 신용등급을 첨부해야 한다. 이른바 복수평가제. 신용평가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기업들로서는 3개 평가기관 중 자기에 유리한 등급을 부여할 만한 2개 기관을 선택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한신평 김선대 이사는 “기업들이 좋은 등급을 보장하는 평가기관만을 선택하는 등, 평가기관을 ‘갖고 노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신용평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맞는 평가기관을 쇼핑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워크아웃에 들어간 새한그룹도 지난 97년 말 투기등급을 부여받자 이내 보따리를 싸 평가기관을 옮겨 투자등급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기업들은 이런 관행이 있다는 사실을 표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한신평측은 이번에 한기평에 의해 회사채 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현대건설의 경우에도 애초 한신평 쪽에 A 정도의 신용등급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다른 평가기관으로 옮겨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계법인들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의 입맛에 맞게 적당한 분식 결산을 눈감아주는 것과 비슷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한신평 송태준 사장은 “단수평가제를 도입하지 못할 바에야 회사채를 인수하는 기관투자가들이 신용평가기관을 지정하도록 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어차피 신용등급은 이들 기관투자가가 채권 인수나 투자 목적에 사용하는 지표인 만큼 사용자들이 가장 믿을 만한 신용평가기관을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어떤 형태이건 간에 적어도 기업들이 신용평가 기관이 부여한 신용등급에 일일이 토를 달고 나서는 ‘재래식’ 관행을 극복하려면 새로운 제도 도입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독립적인 신용평가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야말로 ‘시장의 힘에 의한 구조조정’의 첫단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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