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JP(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를 끝까지 안고 가야 한다.”
지난 4·13총선 때 “공조 복원은 없다”고 부르짖고 다닌 JP의 ‘몽니’에 대한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토로다.
“결국은 숫자다. 140대 133(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 무소속 의원을 합친 숫자와 한나라당 의원 숫자)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게 깨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숫자를 유지해야 한다.”
7·24 국회 운영위 날치기 파동을 겪은 민주당 동교동계 한 핵심의원의 소회는 지난 총선 때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140대 133 구도’로 인해 민주당은 국회의장 경선과 이한동 총리 국회 인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JP의 ‘골프 회동’(7월22일)을 보면서 민주당은 “누가 공조한대?”(이한동 총리안을 승낙한 이유를 묻는 강창희 전 사무총장에게 JP가 한 말)라는 JP의 천연덕스러운 말 바꾸기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위해서라면 ‘DJP 재혼’(6월20일) 선물로 비누세트를 보낸 일도 망각하고 어느 누구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JP다. 그래서 민주당은 여론의 엄청난 비판적 저항에 부딪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국회법 개정안 ‘변칙 처리’를 시도했다.
결국 국회 파행의 모든 것은 ‘숫자놀음’으로 시작해 끝난다. 원인도 숫자요, 결과도 숫자다. 오로지 국회의원 수만이 결과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최후의 보루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청남대 휴양지에서 급거 청와대로 돌아온 김대통령은 7월27일 “다수의 강행도, 소수의 폭력 저지도 있어선 안 된다”고 양비론적인 유감을 표명했다. ‘140의 강행’도 ‘133의 폭력 저지’도 모두 잘못됐다는 원칙론의 확인인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원칙론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느 한쪽도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팽팽한 힘의 균형은 그 질서를 깨기 위한 시도들로 말미암아 번번이 파열음을 내왔다.
JP와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말하자면 이같은 대립의 절묘한 균형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정치력을 지탱할 수 있었다. 시류에 적절히 편승하면서 추의 어느 한쪽이 기울지 않게 균형을 맞춰줌으로써 자신들의 생명력을 연장해나가는 뛰어난 ‘생존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이른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틈새의 처세’이자 ‘정치 술수’라고나 할까.
7월28일 상도동 자택을 찾아간 자민련 김종호 총재대행에게 YS가 “JP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 “민자당 시절 JP가 탈당하려고 할 때 청구동에 찾아가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JP를 부추긴 것도 바로 이같은 처세술에서 기인한다. YS가 남북정상회담으로 정국 주도권을 잃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만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힘의 균형에서 뭔가 균열이 생기고 틈새가 벌어져야만 자신의 영향력이 발휘될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YS는 한껏 유동성이 많은 변수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따라서 현재 DJ-昌(이회창 총재)-JP-YS 사이에 서로 물고 물리는 ‘유동성 정국’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팽팽한 힘의 균형을 깨고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월한 입지를 선점하려는 치열한 각축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의 정치에서 대권은 정치 행위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같은 존재다. 민생과 관련된 그 어떤 것이라고 하더라도 대권과 관련된 정략 앞에서는 우선 순위가 뒷전으로 밀려난다.
대다수 국민에게 더위의 불쾌지수 체감도를 극대화해준 7월의 ‘복중(伏中) 정치’ 또한 이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회창 총재가 ‘3김 정치 청산’이라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를 포기하고 그 스스로 ‘3김식 정치’의 굴레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만이 과거와 다른 새 양상이다(14쪽 기사 참조). 이총재는 남북정상회담 이전만 해도 3김과 자신을 차별화하고 그 차별화된 이미지의 극대화를 대권 전략 기조로 삼았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나라당이 정국 주도력을 상실하면서 ‘청산 대상’과의 제휴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정창화 총무가 이총재와 JP의 원내교섭단체 이면 합의설을 오히려 증폭시킨 예에서 보듯 한나라당 지도부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다.
여야 지도부가 모두 국회 운영전략과 지도노선을 놓고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국회 파행을 부추기는 근본 원인이다. 한나라당은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파동이라는 호재를 맞아 대여 공세의 대오를 굳히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자중지란 상태에 빠졌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날치기를 강행하면서까지 강공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임시국회 회기를 넘기는 전략 부재를 드러냈다. 더구나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기존의 20석에서 10석으로 대폭 낮추는 ‘과욕’까지 부렸다. 15대보다 의원수가 줄어든 사실을 감안한 적정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18석 정도. 민주당이 이런 욕심을 부린 것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낮춤으로써 ‘쉬운 정계재편’에 대한 길을 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낮추는 문제를 극도로 경계한 우선적 이유 역시 당에서 이탈 세력이 나와 또 다른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등의 ‘야권 분열’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날치기를 진두 지휘한 정균환 총무는 물론 천정배 수석부총무까지 정치 생명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 당 일각에서는 “대통령에게까지 부담을 준 정총무를 경질해야 한다”는 경질설이 대두됐다. 동교동계 한 의원은 “도대체 10석까지 낮출 이유가 없었다”며 지도부와 총무단의 성급한 판단을 성토했다.
‘3김 합작 대통령론’ 점점 확산 중
대통령이 유감 표시를 하고 한나라당이 이를 사과로 받아들여 정국 정상화의 길이 열렸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거꾸로 이회창 총재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감정 대립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나갔다.
이같은 혼란상은 결국 여야 지도부에 정국 운영의 ‘리딩 히터’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바로 그래서 17석의 자민련과 노련한 JP, ‘장외’의 YS가 오히려 거대 정당들을 요리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쥔 형국이 됐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3김씨가 다같이 인정하고 협조하는 사람이라야만 될 것”이라는 ‘3김 합작 대통령론’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번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파동은 지난 총선 직후만 해도 은퇴의 벼랑까지 몰렸던 JP의 힘을 다시 극대화하고, 민국당의 총선 참패로 힘을 잃은 YS에게 영향력 확대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물론 그 힘을 인정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결국 2002년 대선만을 우선시한 결과 자신들의 발목을 스스로 묶는 일을 제도권 정당들이 자초한 꼴이다. 복중(伏中)의 한국 정치는 ‘개판 국회’(7월14일 서영훈 대표)와 ‘쓰레기 정치’(7월24일 이회창 총재)에서 벗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난 4·13총선 때 “공조 복원은 없다”고 부르짖고 다닌 JP의 ‘몽니’에 대한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토로다.
“결국은 숫자다. 140대 133(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 무소속 의원을 합친 숫자와 한나라당 의원 숫자)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게 깨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숫자를 유지해야 한다.”
7·24 국회 운영위 날치기 파동을 겪은 민주당 동교동계 한 핵심의원의 소회는 지난 총선 때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140대 133 구도’로 인해 민주당은 국회의장 경선과 이한동 총리 국회 인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JP의 ‘골프 회동’(7월22일)을 보면서 민주당은 “누가 공조한대?”(이한동 총리안을 승낙한 이유를 묻는 강창희 전 사무총장에게 JP가 한 말)라는 JP의 천연덕스러운 말 바꾸기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위해서라면 ‘DJP 재혼’(6월20일) 선물로 비누세트를 보낸 일도 망각하고 어느 누구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JP다. 그래서 민주당은 여론의 엄청난 비판적 저항에 부딪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국회법 개정안 ‘변칙 처리’를 시도했다.
결국 국회 파행의 모든 것은 ‘숫자놀음’으로 시작해 끝난다. 원인도 숫자요, 결과도 숫자다. 오로지 국회의원 수만이 결과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최후의 보루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청남대 휴양지에서 급거 청와대로 돌아온 김대통령은 7월27일 “다수의 강행도, 소수의 폭력 저지도 있어선 안 된다”고 양비론적인 유감을 표명했다. ‘140의 강행’도 ‘133의 폭력 저지’도 모두 잘못됐다는 원칙론의 확인인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원칙론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느 한쪽도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팽팽한 힘의 균형은 그 질서를 깨기 위한 시도들로 말미암아 번번이 파열음을 내왔다.
JP와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말하자면 이같은 대립의 절묘한 균형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정치력을 지탱할 수 있었다. 시류에 적절히 편승하면서 추의 어느 한쪽이 기울지 않게 균형을 맞춰줌으로써 자신들의 생명력을 연장해나가는 뛰어난 ‘생존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이른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틈새의 처세’이자 ‘정치 술수’라고나 할까.
7월28일 상도동 자택을 찾아간 자민련 김종호 총재대행에게 YS가 “JP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 “민자당 시절 JP가 탈당하려고 할 때 청구동에 찾아가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JP를 부추긴 것도 바로 이같은 처세술에서 기인한다. YS가 남북정상회담으로 정국 주도권을 잃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만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힘의 균형에서 뭔가 균열이 생기고 틈새가 벌어져야만 자신의 영향력이 발휘될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YS는 한껏 유동성이 많은 변수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따라서 현재 DJ-昌(이회창 총재)-JP-YS 사이에 서로 물고 물리는 ‘유동성 정국’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팽팽한 힘의 균형을 깨고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월한 입지를 선점하려는 치열한 각축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의 정치에서 대권은 정치 행위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같은 존재다. 민생과 관련된 그 어떤 것이라고 하더라도 대권과 관련된 정략 앞에서는 우선 순위가 뒷전으로 밀려난다.
대다수 국민에게 더위의 불쾌지수 체감도를 극대화해준 7월의 ‘복중(伏中) 정치’ 또한 이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회창 총재가 ‘3김 정치 청산’이라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를 포기하고 그 스스로 ‘3김식 정치’의 굴레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만이 과거와 다른 새 양상이다(14쪽 기사 참조). 이총재는 남북정상회담 이전만 해도 3김과 자신을 차별화하고 그 차별화된 이미지의 극대화를 대권 전략 기조로 삼았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나라당이 정국 주도력을 상실하면서 ‘청산 대상’과의 제휴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정창화 총무가 이총재와 JP의 원내교섭단체 이면 합의설을 오히려 증폭시킨 예에서 보듯 한나라당 지도부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다.
여야 지도부가 모두 국회 운영전략과 지도노선을 놓고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국회 파행을 부추기는 근본 원인이다. 한나라당은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파동이라는 호재를 맞아 대여 공세의 대오를 굳히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자중지란 상태에 빠졌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날치기를 강행하면서까지 강공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임시국회 회기를 넘기는 전략 부재를 드러냈다. 더구나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기존의 20석에서 10석으로 대폭 낮추는 ‘과욕’까지 부렸다. 15대보다 의원수가 줄어든 사실을 감안한 적정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18석 정도. 민주당이 이런 욕심을 부린 것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낮춤으로써 ‘쉬운 정계재편’에 대한 길을 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낮추는 문제를 극도로 경계한 우선적 이유 역시 당에서 이탈 세력이 나와 또 다른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등의 ‘야권 분열’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날치기를 진두 지휘한 정균환 총무는 물론 천정배 수석부총무까지 정치 생명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 당 일각에서는 “대통령에게까지 부담을 준 정총무를 경질해야 한다”는 경질설이 대두됐다. 동교동계 한 의원은 “도대체 10석까지 낮출 이유가 없었다”며 지도부와 총무단의 성급한 판단을 성토했다.
‘3김 합작 대통령론’ 점점 확산 중
대통령이 유감 표시를 하고 한나라당이 이를 사과로 받아들여 정국 정상화의 길이 열렸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거꾸로 이회창 총재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감정 대립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나갔다.
이같은 혼란상은 결국 여야 지도부에 정국 운영의 ‘리딩 히터’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바로 그래서 17석의 자민련과 노련한 JP, ‘장외’의 YS가 오히려 거대 정당들을 요리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쥔 형국이 됐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3김씨가 다같이 인정하고 협조하는 사람이라야만 될 것”이라는 ‘3김 합작 대통령론’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번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파동은 지난 총선 직후만 해도 은퇴의 벼랑까지 몰렸던 JP의 힘을 다시 극대화하고, 민국당의 총선 참패로 힘을 잃은 YS에게 영향력 확대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물론 그 힘을 인정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결국 2002년 대선만을 우선시한 결과 자신들의 발목을 스스로 묶는 일을 제도권 정당들이 자초한 꼴이다. 복중(伏中)의 한국 정치는 ‘개판 국회’(7월14일 서영훈 대표)와 ‘쓰레기 정치’(7월24일 이회창 총재)에서 벗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