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는 김대중 정부 대북 정책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A4 용지 5장 분량의 국가정보원(약칭 국정원) 비밀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98년 12월 중순 만들어진 이 문건의 제목은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적 보완방안 검토’.
한 정통한 소식통은 “이 문건은 국정원의 관련부서에서 작성해 통일부 등 통일-외교 관련부서 고위층에게 한 부씩 배포된 문건”이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이 문건은 ‘햇볕정책의 추진경과 평가’ ‘전략운용방향’ ‘분야별 추진방안’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문건 작성자는 문건 첫 페이지에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해 온 대북 포용정책의 경과를 중간평가하고, 북한의 변화를 앞당길 수 있는 전략적 보완요소를 검토했다’고 작성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문건에서 거론한 전략적인 방안과 각종 구체적인 정책들은 실제로 전개된 흐름과 상당 부분 공통점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이 문건은 국정원이 정부정책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대북정책의 흐름을 주도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건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남북간 비밀접촉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햇볕정책 추진을 본궤도에 진입시켜 통일지향적 변화를 조속한 시일 내에 유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공개정책 위주에서 이면(裏面)적 전략요소를 가미해 나가야 한다’는 것. 햇볕정책에 대한 이런 제안은 ‘비밀접촉을 통해 미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맞교환 추진을 검토해야 한다’는 분야별 추진방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뜨거운 감자’인 ‘미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맞교환’이 98년 말 이미 정부 일각에서 검토됐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문건대로라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98년 2월25일부터 98년 12월말 사이에는 국정원을 중심으로 한 남북간 비밀접촉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 들어 국정원이 남북간 비밀접촉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문건이 만들어진 지 4개월 뒤인 99년 4월 중순쯤이다. 남북 당국간 대화채널을 열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국정원의 김보현 대북전략국장 등이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전금철 부위원장 등과 은밀히 만났던 것. 99년 4월초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비료 1만t을 전해주자 북측에서 “‘통크게’ 비료를 보내주면 당국간 대화를 열어 상호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 계기가 됐다. 작성시기와 문건내용으로 볼 때 이 문건은 남북간 비밀접촉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98년 12월 중순 당시 국정원은 햇볕정책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가. ‘국제적으로는 주변 4강과 EU(유럽연합)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 냈으며, 국내에서는 70% 이상의 지지율을 줄곧 유지, 국민적 공감대가 정착단계에 이르렀으나 일부 논자들이 안보문제에 관한 시비를 걸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햇볕정책의 상대인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의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금강산 관광사업 성사를 비롯하여 민간분야의 접촉과 교류가 전례 없이 활성화됐다. 그러나 아직도 햇볕정책을 흡수통일의 변종으로 간주하고 당국간 대화를 기피하는 등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당시 국정원은 네 가지로 ‘전략 운용방향’의 줄기를 잡았다. △‘보다 많은 접촉-대화-교류’ 방침에 입각하여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되 당국과 함께 주민을 의식한 전략방안을 개발-시행 △공개정책은 북한이 중시하는 자존심과 명분을 세워주면서 실질적으로 북한의 (경계심의) 벽을 허물어 나감 △이면정책은 그간의 자극적인 정치공세 중심에서 북한내 각계 각층과 심리적 유대를 증진해 나가는 문화적-경제적 접근을 보강 △정책운용 과정에서 북한의 도발이나 핵문제 등으로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교류협력의 기본 틀’을 깨뜨리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 관리 등이 그것이다. ‘서해교전 사태’(99년 6월15일),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 억류사건’(99년 6월20일) 등의 일련의 사태에도 김대중 정부가 일관되게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것은 이런 전략운용방향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또 한총련을 제외한 운동권 학생들의 시각 교정을 위해 이들을 금강산 관광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일반 운동권과 한총련을 분리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밖에 ‘정치-사회분야’ ‘경제분야’ ‘국제분야’ 등으로 나뉜 분야별 추진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정치-사회분야 추진방안’의 기본방침은 ‘민간급 교류를 활성화하여 이를 당국간 대화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 이밖에 앞에서 말한 △비밀접촉을 통해 미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맞교환 추진 △문제권 학생(한총련 제외)들의 시각교정을 위해 금강산 관광에 참여시키는 방안 검토 외에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와 재북 이산가족 송금 허용을 위한 적십자 회담, 국회 회담 등 준당국 회담의 물꼬를 터 나간다는 것 등이 주요 항목이다.
또 이 문건에서는 정치-사회분야에서 고려해 볼 만한 대북 ‘공세방안’으로 △2002년 월드컵 분산개최 △문화예술분야 남북한 저작권 보호협정 추진 △민족문화유산 공동조사 및 발굴 △북한 기자의 국내취재 허용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을 통한 8·15 통일대축전 수용 등을 적시하고 있다.
‘경제분야 추진방안’의 기본방침은 ‘경제협력의 실익과 함께 실질적 협력대상은 한국뿐이라는 사실을 체감시키는데 주안을 둔다’는 것. 이를 위해 △생필품 등 소비재 위주 지원 △노동집약적 산업투자에 중점 △남북관계 주도권 확보를 위해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에 북한의 부족식량 전량을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천명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 있다.
또 ‘현금, 에너지, 첨단과학 기술 등의 지원은 지양하고, 연간 옥수수 기준 200만t(3억5000만 달러 상당)을 일정한 조건 아래 분배한 뒤 투명성, 육로 수송 등 다양한 협의를 거쳐 지원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문건은 중장기적으로 현재의 경수로 사업과 금강산 관광 사업에 추가해 나진-선봉, 남포-해주, 백두산-묘향산 지역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이를 북한 개방의 교두보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지도와 함께 담고 있다.
국제적 측면에서는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끄는 우회적 여건을 조성해 나간다’는 것이 추진방안의 핵심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안보 환경 경제분야의 동북아지역 대화협력체를 적극 추진한다’ ‘국제 사회의 대북 지원시 북한의 경제분야 투자확대 등 자원의 합리적 배분과 자구노력 선행을 요구한다’ ‘UN 등을 통해 북한인권과 탈북자 문제를 이슈화한다’는 것 등을 들고 있다. 문건은 이와 함께 김대중대통령이 탈북자 문제를 정치색 없는 순수 인도적 문제로 규정하고, 북한 정세 안정 후 귀향을 희망하는 탈북자의 귀향을 전제로 이들에 대한 해외 긴급구조 활동을 남북공동으로 전개할 것을 천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건은 북한주민을 △일반주민 △중간권력층 △권력핵심 등으로 구분해 전략적인 접근법을 각각 다르게 상정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일반주민에게는 ‘기아와 억압의 탈출구는 한국뿐’, 중간권력층에게는 ‘통일 또는 체제 변화시에도 기득권 보장 혹은 더 나은 전망 제공’, 권력핵심에는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 등을 던져야 한다는 것. 98년 12월 당시, 국정원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정통한 소식통은 “이 문건은 국정원의 관련부서에서 작성해 통일부 등 통일-외교 관련부서 고위층에게 한 부씩 배포된 문건”이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이 문건은 ‘햇볕정책의 추진경과 평가’ ‘전략운용방향’ ‘분야별 추진방안’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문건 작성자는 문건 첫 페이지에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해 온 대북 포용정책의 경과를 중간평가하고, 북한의 변화를 앞당길 수 있는 전략적 보완요소를 검토했다’고 작성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문건에서 거론한 전략적인 방안과 각종 구체적인 정책들은 실제로 전개된 흐름과 상당 부분 공통점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이 문건은 국정원이 정부정책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대북정책의 흐름을 주도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건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남북간 비밀접촉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햇볕정책 추진을 본궤도에 진입시켜 통일지향적 변화를 조속한 시일 내에 유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공개정책 위주에서 이면(裏面)적 전략요소를 가미해 나가야 한다’는 것. 햇볕정책에 대한 이런 제안은 ‘비밀접촉을 통해 미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맞교환 추진을 검토해야 한다’는 분야별 추진방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뜨거운 감자’인 ‘미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맞교환’이 98년 말 이미 정부 일각에서 검토됐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문건대로라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98년 2월25일부터 98년 12월말 사이에는 국정원을 중심으로 한 남북간 비밀접촉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 들어 국정원이 남북간 비밀접촉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문건이 만들어진 지 4개월 뒤인 99년 4월 중순쯤이다. 남북 당국간 대화채널을 열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국정원의 김보현 대북전략국장 등이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전금철 부위원장 등과 은밀히 만났던 것. 99년 4월초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비료 1만t을 전해주자 북측에서 “‘통크게’ 비료를 보내주면 당국간 대화를 열어 상호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 계기가 됐다. 작성시기와 문건내용으로 볼 때 이 문건은 남북간 비밀접촉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98년 12월 중순 당시 국정원은 햇볕정책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가. ‘국제적으로는 주변 4강과 EU(유럽연합)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 냈으며, 국내에서는 70% 이상의 지지율을 줄곧 유지, 국민적 공감대가 정착단계에 이르렀으나 일부 논자들이 안보문제에 관한 시비를 걸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햇볕정책의 상대인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의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금강산 관광사업 성사를 비롯하여 민간분야의 접촉과 교류가 전례 없이 활성화됐다. 그러나 아직도 햇볕정책을 흡수통일의 변종으로 간주하고 당국간 대화를 기피하는 등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당시 국정원은 네 가지로 ‘전략 운용방향’의 줄기를 잡았다. △‘보다 많은 접촉-대화-교류’ 방침에 입각하여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되 당국과 함께 주민을 의식한 전략방안을 개발-시행 △공개정책은 북한이 중시하는 자존심과 명분을 세워주면서 실질적으로 북한의 (경계심의) 벽을 허물어 나감 △이면정책은 그간의 자극적인 정치공세 중심에서 북한내 각계 각층과 심리적 유대를 증진해 나가는 문화적-경제적 접근을 보강 △정책운용 과정에서 북한의 도발이나 핵문제 등으로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교류협력의 기본 틀’을 깨뜨리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 관리 등이 그것이다. ‘서해교전 사태’(99년 6월15일),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 억류사건’(99년 6월20일) 등의 일련의 사태에도 김대중 정부가 일관되게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것은 이런 전략운용방향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또 한총련을 제외한 운동권 학생들의 시각 교정을 위해 이들을 금강산 관광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일반 운동권과 한총련을 분리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밖에 ‘정치-사회분야’ ‘경제분야’ ‘국제분야’ 등으로 나뉜 분야별 추진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정치-사회분야 추진방안’의 기본방침은 ‘민간급 교류를 활성화하여 이를 당국간 대화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 이밖에 앞에서 말한 △비밀접촉을 통해 미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맞교환 추진 △문제권 학생(한총련 제외)들의 시각교정을 위해 금강산 관광에 참여시키는 방안 검토 외에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와 재북 이산가족 송금 허용을 위한 적십자 회담, 국회 회담 등 준당국 회담의 물꼬를 터 나간다는 것 등이 주요 항목이다.
또 이 문건에서는 정치-사회분야에서 고려해 볼 만한 대북 ‘공세방안’으로 △2002년 월드컵 분산개최 △문화예술분야 남북한 저작권 보호협정 추진 △민족문화유산 공동조사 및 발굴 △북한 기자의 국내취재 허용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을 통한 8·15 통일대축전 수용 등을 적시하고 있다.
‘경제분야 추진방안’의 기본방침은 ‘경제협력의 실익과 함께 실질적 협력대상은 한국뿐이라는 사실을 체감시키는데 주안을 둔다’는 것. 이를 위해 △생필품 등 소비재 위주 지원 △노동집약적 산업투자에 중점 △남북관계 주도권 확보를 위해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에 북한의 부족식량 전량을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천명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 있다.
또 ‘현금, 에너지, 첨단과학 기술 등의 지원은 지양하고, 연간 옥수수 기준 200만t(3억5000만 달러 상당)을 일정한 조건 아래 분배한 뒤 투명성, 육로 수송 등 다양한 협의를 거쳐 지원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문건은 중장기적으로 현재의 경수로 사업과 금강산 관광 사업에 추가해 나진-선봉, 남포-해주, 백두산-묘향산 지역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이를 북한 개방의 교두보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지도와 함께 담고 있다.
국제적 측면에서는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끄는 우회적 여건을 조성해 나간다’는 것이 추진방안의 핵심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안보 환경 경제분야의 동북아지역 대화협력체를 적극 추진한다’ ‘국제 사회의 대북 지원시 북한의 경제분야 투자확대 등 자원의 합리적 배분과 자구노력 선행을 요구한다’ ‘UN 등을 통해 북한인권과 탈북자 문제를 이슈화한다’는 것 등을 들고 있다. 문건은 이와 함께 김대중대통령이 탈북자 문제를 정치색 없는 순수 인도적 문제로 규정하고, 북한 정세 안정 후 귀향을 희망하는 탈북자의 귀향을 전제로 이들에 대한 해외 긴급구조 활동을 남북공동으로 전개할 것을 천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건은 북한주민을 △일반주민 △중간권력층 △권력핵심 등으로 구분해 전략적인 접근법을 각각 다르게 상정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일반주민에게는 ‘기아와 억압의 탈출구는 한국뿐’, 중간권력층에게는 ‘통일 또는 체제 변화시에도 기득권 보장 혹은 더 나은 전망 제공’, 권력핵심에는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 등을 던져야 한다는 것. 98년 12월 당시, 국정원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