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고(go)!” 6월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2가 삼성타워 앞 광장에서 때아닌 구호가 울려퍼졌다.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 소속 55명이 온두라스를 겨냥해 구호를 외친 것은 이틀 전 이 건물 2층에 온두라스 대사관이 입주했기 때문이다.
“삼성타워에서 온두라스 대사관을 유치하려 한다는 제보를 받고 일주일 전 직접 온두라스 대사관을 찾아갔다. 대사는 없었지만 대신 그곳 직원들에게 회사가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대사관을 유치하려 하니 제발 입주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는 ‘이사 계획이 없다’고 하더니 일주일만에 기습적으로 옮긴 것이다. 대사관이 입주하자마자 경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구두로 집회금지를 통보해 왔다.”
삼성복직투쟁위 김성환위원장은 6월7일 집회를 강행하면서 다시 온두라스 대사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집회에 참석했던 해고자들이 “정말 대사관이 입주했는지 눈으로 확인하겠다”며 건물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했다.
삼성해고자들을 분노케 한 것은 온두라스 대사관이 아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제11조 ‘외교기관 100m 이내 옥외집회 및 시위 금지’ 조항을 이용해 집회를 원천봉쇄하려는 기업의 뻔한 속셈에 분개한 것이다. 평소 해고자들의 시위로 골머리를 앓아온 삼성은 주요 건물에 대사관을 차례로 입주시켜 집회 및 시위를 원천봉쇄했다. 97년 삼성본관 옆 태평로빌딩에 싱가포르 대사관이 입주했고, 올 3월에는 엘살바도르 대사관이 삼성본관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삼성생명 빌딩에 입주함으로써 회사측이 자랑하던 태평로의 열린광장은 썰렁한 광장이 돼버렸다.
이후 해고자들이 국세청이 입주한 종로2가 삼성타워로 옮겨가자 역시 온두라스 대사관을 유치해 이곳마저 집회와 시위 금지지역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집시법 11조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은 삼성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세종로 동화면세점 빌딩에 브루나이 대사관이 입주했고, 올 5월26일에는 정부중앙청사 바로 옆 현대상선 건물에 파나마대사관이 입주했다.
특히 현대상선의 파나마대사관 유치는 시민-노동단체의 빈축을 샀다. 그동안 미대사관과 마주보고 있는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 집회를 포기하고 후문 쪽으로 옮겨갔는데 파나마대사관 입주로 그나마도 불가능하게 됐다.
“대사관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것이지 의도적으로 유치한 적이 없다”는 기업측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임대보증료와 월세를 다른 입주자에 비해 10%씩 할인해 주면서까지 굳이 대사관을 입주시키려 한 것은 의혹을 살 만한 일이다. 파나마대사관의 경우 현대와 삼성의 유치 줄다리기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다 현대상선을 택했고, 실패한 삼성은 재빨리 온두라스 쪽에 손을 내밀었다.
세종로 태평로 종로 등 서울시내 주요지역에 속속 대사관들이 자리잡음으로써 대규모 집회 이후 이어지던 거리행진도 불가능해졌다. 시민-노동단체들은 “4대문 안에서 행진을 하려면 곳곳이 지뢰밭”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행진코스를 잡으려면 집회신고자와 경찰이 머리를 맞대고 대사관 근처를 피해갈 수 있도록 골목골목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6월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행진코스는 각국 대사관을 피하려다 보니 미로처럼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종묘에서 종로 길을 따라 곧장 정부청사로 가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온두라스 대사관, IBRD(영풍빌딩), 파라과이대사관(SK빌딩), 네덜란드대사관(교보빌딩), 미국대사관, 파나마대사관까지 제약이 너무 많았다. 결국 서울역에서 출발해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는 것을 택했다. 신문로 중간에 EU대표부가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경찰도 처음 해보는 코스라며 난색을 표했다.”(전교조 서준영 총무부장)
문제의 ‘100m조항’은 올해 들어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5월27일 문화관광부 옆 열린시민마당에서 ‘한미행정협정개정 국민행동’ 주최로 열릴 예정이었던 집회에 대해 경찰은 미국 대사관 담에서 열린시민마당 경계까지 85m밖에 안된다며 집회를 금지했다. 그러자 국민행동측은 “집회가 개최될 장소는 대사관으로부터 100m 밖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공원은 한 필지 개념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집회를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형식논리”라며 반발했다.
경찰이 걸핏하면 ‘100m조항’을 이유로 번번이 집회를 금지하자 2년 전 민주노총은 직접 줄자를 들고 실측에 나섰다. 경찰 입회 하에 정부중앙청사에서 미대사관까지 거리를 실측했더니 어이없게도 100m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종합청사 앞 집회를 금지할 근거가 사라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어 민주노총은 5월25일 집시법 11조에 대해 위헌소송을 냈다. 민주노총측은 “국민이 집회와 시위를 하는 것은 정부나 재벌에 소외된 목소리를 전달하자는 취지인데 대사관을 이용해 집회를 원천봉쇄해 버리면 듣기 싫은 목소리에 아예 귀를 막겠다는 것”이라며 “집시법 11조는 명백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의 김도형변호사는 “대사관 앞 집회의 경우 해당 국가와의 외교적 분쟁과 마찰을 우려해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특정 집회나 시위를 선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개개 집회-시위의 성질과 내용을 불문하고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로 집시법11조는 외교분쟁에 관계없이 ‘귀에 걸면 귀엣고리 코에 걸면 코엣고리’ 식으로 집행된다.
지난 4월 삼성해고자들이 시청 주변에서 하기로 한 집회는 싱가포르 대사관이 입주한 건물로부터 100m 안에 있는 장소인데도 접수가 됐다. 복직투쟁위가 “도대체 신고를 접수하는 원칙이 뭐냐” “누구를 위한 금지조항이냐”며 따지자, 경찰은 “이번 집회신고로 끝이다. 다음부터는 받아줄 수 없다”고 군색한 변명만 했다. 결국 지난해 4월 개정된 현행 집시법에 대해 집회를 하는 시민-노동단체나 집회를 막으려는 경찰 모두 법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먼저 불씨를 댕긴 것은 이무영경찰청장. 5월2일 이청장은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개최 단체의 과격시위전력과 참가인원, 집회기간 등에 따라 집회를 제한하는 법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시민-노동단체는 “말이 신고제지 지금도 허가제나 마찬가진데 집시법을 더 강화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반발했다.
그럼에도 오는 6월14일 경찰학회 주최로 ‘평화적 집회 및 시위문화의 정착’ 세미나를 열어 집시법 개정을 구체화할 움직임이 보이자, 시민단체도 집시법 개악 반대를 위한 긴급토론회로 맞불을 놓았다. 이 자리에서 김종일 민족화합자주통일협의회 사무총장은 “과잉적용으로 집회의 자유를 막는 100m조항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시민들이 불복종 운동을 벌여 집시법 개악을 막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시법 개정을 둘러싼 경찰청과 시민-노동단체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올 하반기 양측의 한판 대결을 예고한다.
“삼성타워에서 온두라스 대사관을 유치하려 한다는 제보를 받고 일주일 전 직접 온두라스 대사관을 찾아갔다. 대사는 없었지만 대신 그곳 직원들에게 회사가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대사관을 유치하려 하니 제발 입주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는 ‘이사 계획이 없다’고 하더니 일주일만에 기습적으로 옮긴 것이다. 대사관이 입주하자마자 경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구두로 집회금지를 통보해 왔다.”
삼성복직투쟁위 김성환위원장은 6월7일 집회를 강행하면서 다시 온두라스 대사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집회에 참석했던 해고자들이 “정말 대사관이 입주했는지 눈으로 확인하겠다”며 건물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했다.
삼성해고자들을 분노케 한 것은 온두라스 대사관이 아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제11조 ‘외교기관 100m 이내 옥외집회 및 시위 금지’ 조항을 이용해 집회를 원천봉쇄하려는 기업의 뻔한 속셈에 분개한 것이다. 평소 해고자들의 시위로 골머리를 앓아온 삼성은 주요 건물에 대사관을 차례로 입주시켜 집회 및 시위를 원천봉쇄했다. 97년 삼성본관 옆 태평로빌딩에 싱가포르 대사관이 입주했고, 올 3월에는 엘살바도르 대사관이 삼성본관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삼성생명 빌딩에 입주함으로써 회사측이 자랑하던 태평로의 열린광장은 썰렁한 광장이 돼버렸다.
이후 해고자들이 국세청이 입주한 종로2가 삼성타워로 옮겨가자 역시 온두라스 대사관을 유치해 이곳마저 집회와 시위 금지지역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집시법 11조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은 삼성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세종로 동화면세점 빌딩에 브루나이 대사관이 입주했고, 올 5월26일에는 정부중앙청사 바로 옆 현대상선 건물에 파나마대사관이 입주했다.
특히 현대상선의 파나마대사관 유치는 시민-노동단체의 빈축을 샀다. 그동안 미대사관과 마주보고 있는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 집회를 포기하고 후문 쪽으로 옮겨갔는데 파나마대사관 입주로 그나마도 불가능하게 됐다.
“대사관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것이지 의도적으로 유치한 적이 없다”는 기업측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임대보증료와 월세를 다른 입주자에 비해 10%씩 할인해 주면서까지 굳이 대사관을 입주시키려 한 것은 의혹을 살 만한 일이다. 파나마대사관의 경우 현대와 삼성의 유치 줄다리기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다 현대상선을 택했고, 실패한 삼성은 재빨리 온두라스 쪽에 손을 내밀었다.
세종로 태평로 종로 등 서울시내 주요지역에 속속 대사관들이 자리잡음으로써 대규모 집회 이후 이어지던 거리행진도 불가능해졌다. 시민-노동단체들은 “4대문 안에서 행진을 하려면 곳곳이 지뢰밭”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행진코스를 잡으려면 집회신고자와 경찰이 머리를 맞대고 대사관 근처를 피해갈 수 있도록 골목골목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6월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행진코스는 각국 대사관을 피하려다 보니 미로처럼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종묘에서 종로 길을 따라 곧장 정부청사로 가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온두라스 대사관, IBRD(영풍빌딩), 파라과이대사관(SK빌딩), 네덜란드대사관(교보빌딩), 미국대사관, 파나마대사관까지 제약이 너무 많았다. 결국 서울역에서 출발해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는 것을 택했다. 신문로 중간에 EU대표부가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경찰도 처음 해보는 코스라며 난색을 표했다.”(전교조 서준영 총무부장)
문제의 ‘100m조항’은 올해 들어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5월27일 문화관광부 옆 열린시민마당에서 ‘한미행정협정개정 국민행동’ 주최로 열릴 예정이었던 집회에 대해 경찰은 미국 대사관 담에서 열린시민마당 경계까지 85m밖에 안된다며 집회를 금지했다. 그러자 국민행동측은 “집회가 개최될 장소는 대사관으로부터 100m 밖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공원은 한 필지 개념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집회를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형식논리”라며 반발했다.
경찰이 걸핏하면 ‘100m조항’을 이유로 번번이 집회를 금지하자 2년 전 민주노총은 직접 줄자를 들고 실측에 나섰다. 경찰 입회 하에 정부중앙청사에서 미대사관까지 거리를 실측했더니 어이없게도 100m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종합청사 앞 집회를 금지할 근거가 사라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어 민주노총은 5월25일 집시법 11조에 대해 위헌소송을 냈다. 민주노총측은 “국민이 집회와 시위를 하는 것은 정부나 재벌에 소외된 목소리를 전달하자는 취지인데 대사관을 이용해 집회를 원천봉쇄해 버리면 듣기 싫은 목소리에 아예 귀를 막겠다는 것”이라며 “집시법 11조는 명백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의 김도형변호사는 “대사관 앞 집회의 경우 해당 국가와의 외교적 분쟁과 마찰을 우려해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특정 집회나 시위를 선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개개 집회-시위의 성질과 내용을 불문하고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로 집시법11조는 외교분쟁에 관계없이 ‘귀에 걸면 귀엣고리 코에 걸면 코엣고리’ 식으로 집행된다.
지난 4월 삼성해고자들이 시청 주변에서 하기로 한 집회는 싱가포르 대사관이 입주한 건물로부터 100m 안에 있는 장소인데도 접수가 됐다. 복직투쟁위가 “도대체 신고를 접수하는 원칙이 뭐냐” “누구를 위한 금지조항이냐”며 따지자, 경찰은 “이번 집회신고로 끝이다. 다음부터는 받아줄 수 없다”고 군색한 변명만 했다. 결국 지난해 4월 개정된 현행 집시법에 대해 집회를 하는 시민-노동단체나 집회를 막으려는 경찰 모두 법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먼저 불씨를 댕긴 것은 이무영경찰청장. 5월2일 이청장은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개최 단체의 과격시위전력과 참가인원, 집회기간 등에 따라 집회를 제한하는 법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시민-노동단체는 “말이 신고제지 지금도 허가제나 마찬가진데 집시법을 더 강화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반발했다.
그럼에도 오는 6월14일 경찰학회 주최로 ‘평화적 집회 및 시위문화의 정착’ 세미나를 열어 집시법 개정을 구체화할 움직임이 보이자, 시민단체도 집시법 개악 반대를 위한 긴급토론회로 맞불을 놓았다. 이 자리에서 김종일 민족화합자주통일협의회 사무총장은 “과잉적용으로 집회의 자유를 막는 100m조항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시민들이 불복종 운동을 벌여 집시법 개악을 막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시법 개정을 둘러싼 경찰청과 시민-노동단체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올 하반기 양측의 한판 대결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