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8일 부산시 해운대구 K게임방에서는 한 30대 남자가 돌연사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 당시 이 30대는 ‘천년’이란 온라인 무협게임을 즐기던 중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남자는 그 게임방의 주인이었다. 끼니도 거른 채 석달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씩 게임에 자신을 내던진 결과였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지난 6월8일. 기자는 인터넷 게임방의 한 ‘겜방 알바’(게임방 아르바이트 직원을 일컫는 은어)를 만나 부산에서 발생한 게임 중독 사고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그런 뉴스쯤은 이들에겐 이미 ‘잊힌 과거’일 뿐이죠. 한번 보세요. 하나같이 찰나의 승부에 몰입하고 있잖아요.”
별의별 손님 ‘세상의 축소판’
게임방 알바 이모씨(23)를 만난 곳은 그의 ‘직장’인 서울역 인근의 P게임방. 그는 이곳에서 3개월째 일한다고 했다. 온라인 게임에 온 신경을 집중한 군상들 틈에서 혼자 ‘별종’처럼 인터넷 자료만 검색하는 기자가 신기해 보였던지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이뤄졌다.
그의 말대로 일련번호가 매겨진 20여 대의 PC는 인근 하숙생과 직장인으로 보이는 ‘반짝 주인’들을 만나 ‘풀 가동’ 중이었다. 30평 남짓한 실내에 자욱한 담배연기, PC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디지털 음향. 카운터 위에 걸린 벽시계의 시침이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선뜻 자리를 뜨는 손님은 없었다.
“게임방에도 사이클이 있어요. 오후 4시가 피크 타임이죠. 이때부터 밤 10시까진 수업을 마친 중고딩(중-고생)과 대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빈자리 잡기가 힘들어요. 미성년자(만 18세 미만) 출입이 금지되는 밤 10시 이후에야 간간이 자리가 납니다.”
게임방 알바는 게임방의 산 증인이다. 이들이 매일같이 관찰하는 게임방의 낮과 밤은 세상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별별 손님이 다 있어요. 컵라면 먹어가며 10시간도 넘게 게임하는 사람은 기본이죠. 새벽 2시에 들어와 1대 1 채팅을 하면서 시작한 지 10분만에 핸드폰 받고 나가는 20대 아가씨도 있어요. 그런 여자들은 다시는 안와요. 원조교제를 하는지도 모르죠. 화상채팅하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여대생도 있고, 만취한 30대 미시족이 밤새도록 PC로 뮤직비디오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도 봤습니다. 게임방에서 가계부 쓰는 아줌마도 더러 있어요. 그래도 ‘돌발사태’만 없으면 비교적 조용하게 하루가 지나가는 편입니다.”
‘돌발사태’란 뭘까. “며칠 전 술에 잔뜩 취한 20대 남자가 들어왔는데 PC 앞에다 갑자기 ‘분노의 역류’(구토)를 하는 바람에 혼났어요. 주위의 다른 손님까지 짜증을 내며 나가버려 장사도 망쳤습니다.” 손님간 시비가 붙어 간혹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이런 일은 서너달에 한두번쯤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일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자정을 넘어서자 한참 온라인 바둑에 빠져 있던 30대 2명을 포함해 10여 명의 손님이 빠져나갔다. 남은 손님은 차림새로 보아 인근 고시원에 기거하는 듯한 20대 5명.
6월9일 새벽 3시. 새로 들어오는 손님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 알바들의 휴식시간은 이때부터다. 매일 알바에게 눈도장을 찍다시피 하는 ‘순한’ 단골들만 자리를 지키기 때문. 이씨는 기자에게 자판기 커피를 뽑아 주고는 “눈 좀 붙여야겠다”며 카운터로 종종걸음쳤다.
게임방 알바는 인터넷 게임산업의 활황과 더불어 창출된 새로운 아르바이트 직종이다. 7000여 명의 게임방 업주를 회원으로 둔 한국인터넷멀티문화협회가 추산하는 전국의 게임방 수는 무려 1만7000여 개(지난해 12월 문화관광부 집계는 1만5000여 개소). 협회 정책국 직원 김윤범씨(27)는 “업소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는 만큼 1개 업소당 주야로 평균 2명의 아르바이트 직원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전국의 게임방 알바는 3만4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알바들의 나이는 대부분 19∼25세 가량. 간혹 월급을 받는 이도 있지만 이들의 보수는 거의 시급제다. 시간당 2000∼2500원 선이 ‘공정가격’이다. 하루 8시간 일하면 1만6000∼2만원 정도 번다.
게임방 알바는 다른 알바에 비해 ‘인기 짱’이다. 싹싹하고 친절한 알바나 미모의 여성 알바가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 단골들이 게임방을 찾는 횟수가 늘게 마련이어서 자연히 업주들도 ‘양질’의 알바를 구하는데 신경을 기울인다.
지난해 6월 개업한 게임방 로손컴(서울 개봉동)의 우동수사장(36)은 얼마전 알바 1명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와 생활정보지에 실었다가 깜짝 놀랐다. 일주일만에 접수된 이력서가 무려 200여 통. 경쟁률이 200대 1을 넘은 것이다. 게임방 알바에 대한 N세대의 인기를 짐작케 하는 단적인 예다.
“보수가 별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 없어 편하고 256∼512Kbps의 고속전용선으로 게임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방 알바를 하려는 또래들이 엄청 많아요.” 6월7일 게임방 웹진 ‘M.O.G’에 알바 구직정보를 올린 인천의 이모군(19)은 “친구 3명이 게임방 알바 경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유능한 알바는 게임 마니아들의 게임 선호도와 게임방 사업의 트렌드를 읽어내 업주의 소득증대에 기여하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게임방 알바 김모씨(21)는 “요즘은 한물간 ‘스타크’(스타크래프트)보다는 ‘포트리스’나 ‘리니지’가 인기”라며 “전체 손님의 70% 가량은 네트워크 게임을, 여성들은 주로 채팅사이트에 들어가 화상채팅을 한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는 설치된 PC 한대당 적어도 하루 1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려야 게임방이 유지될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새벽 5시부터 오전 8시까지 거의 모든 게임방은 ‘개점휴업’ 상태다. 특히 3∼6월은 비수기여서 새벽 손님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전날 밤 10시쯤 다른 알바와 ‘임무’를 교대한 뒤 이 시각까지 일했던 ‘야간 알바’들에겐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일부 부지런한(?) 알바들은 빈자리에 앉아 자기가 좋아하는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즐기기도 한다. 담배꽁초나 각종 오물이 가득한 화장실 청소도 이들의 몫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편안한 휴식을 끝내고 하루를 ‘준비’하는 이 시각, 할인혜택이 있는 야간 정액 이용권을 끊어 날밤을 새며 게임방을 사수(?)하던 골수 심야족도 비로소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게임 마니아 중엔 일회용 면도기와 세면도구, 간단한 속옷까지 갖고 다니는 대학생과 직장인도 있어요. 화장실에서 대충 씻는 거죠. 아침에 수업이나 일을 잘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들은 다음날도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력이 거의 ‘철인’ 수준이죠.”
대구시 서구 내당동 S게임방에서 8개월간 알바를 하다 최근 취업을 위해 그만둔 변치승씨(29)는 “게임방협회에서 나오는 안내책자에서 휴게실은 물론 샤워실까지 갖춘 최신 게임방 소식도 더러 접할 수 있었다”며 “서울엔 출근하는 직장인을 위해 새벽에 토스트와 우유를 무료로 제공하는 게임방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면 또다른 고객들이 게임방에 나타난다. 증권 시황을 체크하려는 데이 트레이더(초단타 매매를 주로 하는 주식투자자)들이다. 이들의 자리는 서로간의 ‘암묵적 동의’ 하에 대개 정해져 있다.
자신의 가게를 내기 전 한달 가량 다른 게임방에서 시장조사도 할 겸 알바 역할을 해본 로손컴의 우동수사장은 “가끔 데이 트레이더들의 옷차림이나 행색이 며칠만에 갑자기 초라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며 “이럴 경우 잘못 투자한 주식 때문에 큰 손해를 봤다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고 귀띔했다.
오후 4시. 게임방은 다시 손님들로 가득 찬다. 한 사이클이 끝나고 다시 일상의 반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알바들 역시 바빠지기 시작한다.
게임방 알바들에게도 직업병(?)은 있다. 공기가 탁한 실내에서 다른 알바와 교대하기 전까지 하루 8∼12시간씩 줄곧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줄담배 피우는 손님도 많은데다 종일 들어야 하는 소음 또한 만만치 않아 두통을 호소하는 알바들이 적지 않다.
최근엔 이같은 ‘애환’을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게임방 알바들의 친목모임도 생겨나고 있다. 6월8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엔 게임방 알바들의 사이버 카페(http://cafe.daum.net/arba/)까지 개설됐다.
게임방은 열린 공간이자 닫힌 공간이다. 누구든 올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일단 들어가 PC 앞에 앉으면 그 순간 ‘나’만을 위한 폐쇄 공간이 돼 버린다. 쉽게 게임중독에 빠져드는 게이머들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다수 알바들도 이를 수긍하는 한편 파생되는 악영향에 대해 염려스러워 한다.
“게임방은 모든 억눌린 욕망의 집결지인 것 같아요. 날마다 게임방에서 일과 놀이를 혼동하며 밤을 지새는 사람들을 보면 취미와 중독의 경계를 가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절제의 미덕은 필요하겠죠.”
한 게임방 알바의 이런 쓴소리가 아니더라도 게임방과 ‘게임 인간’의 전성시대가 단기간 내에 끝날 것 같진 않다. 알바의 ‘관찰’ 또한 이어질 것이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지난 6월8일. 기자는 인터넷 게임방의 한 ‘겜방 알바’(게임방 아르바이트 직원을 일컫는 은어)를 만나 부산에서 발생한 게임 중독 사고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그런 뉴스쯤은 이들에겐 이미 ‘잊힌 과거’일 뿐이죠. 한번 보세요. 하나같이 찰나의 승부에 몰입하고 있잖아요.”
별의별 손님 ‘세상의 축소판’
게임방 알바 이모씨(23)를 만난 곳은 그의 ‘직장’인 서울역 인근의 P게임방. 그는 이곳에서 3개월째 일한다고 했다. 온라인 게임에 온 신경을 집중한 군상들 틈에서 혼자 ‘별종’처럼 인터넷 자료만 검색하는 기자가 신기해 보였던지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이뤄졌다.
그의 말대로 일련번호가 매겨진 20여 대의 PC는 인근 하숙생과 직장인으로 보이는 ‘반짝 주인’들을 만나 ‘풀 가동’ 중이었다. 30평 남짓한 실내에 자욱한 담배연기, PC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디지털 음향. 카운터 위에 걸린 벽시계의 시침이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선뜻 자리를 뜨는 손님은 없었다.
“게임방에도 사이클이 있어요. 오후 4시가 피크 타임이죠. 이때부터 밤 10시까진 수업을 마친 중고딩(중-고생)과 대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빈자리 잡기가 힘들어요. 미성년자(만 18세 미만) 출입이 금지되는 밤 10시 이후에야 간간이 자리가 납니다.”
게임방 알바는 게임방의 산 증인이다. 이들이 매일같이 관찰하는 게임방의 낮과 밤은 세상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별별 손님이 다 있어요. 컵라면 먹어가며 10시간도 넘게 게임하는 사람은 기본이죠. 새벽 2시에 들어와 1대 1 채팅을 하면서 시작한 지 10분만에 핸드폰 받고 나가는 20대 아가씨도 있어요. 그런 여자들은 다시는 안와요. 원조교제를 하는지도 모르죠. 화상채팅하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여대생도 있고, 만취한 30대 미시족이 밤새도록 PC로 뮤직비디오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도 봤습니다. 게임방에서 가계부 쓰는 아줌마도 더러 있어요. 그래도 ‘돌발사태’만 없으면 비교적 조용하게 하루가 지나가는 편입니다.”
‘돌발사태’란 뭘까. “며칠 전 술에 잔뜩 취한 20대 남자가 들어왔는데 PC 앞에다 갑자기 ‘분노의 역류’(구토)를 하는 바람에 혼났어요. 주위의 다른 손님까지 짜증을 내며 나가버려 장사도 망쳤습니다.” 손님간 시비가 붙어 간혹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이런 일은 서너달에 한두번쯤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일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자정을 넘어서자 한참 온라인 바둑에 빠져 있던 30대 2명을 포함해 10여 명의 손님이 빠져나갔다. 남은 손님은 차림새로 보아 인근 고시원에 기거하는 듯한 20대 5명.
6월9일 새벽 3시. 새로 들어오는 손님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 알바들의 휴식시간은 이때부터다. 매일 알바에게 눈도장을 찍다시피 하는 ‘순한’ 단골들만 자리를 지키기 때문. 이씨는 기자에게 자판기 커피를 뽑아 주고는 “눈 좀 붙여야겠다”며 카운터로 종종걸음쳤다.
게임방 알바는 인터넷 게임산업의 활황과 더불어 창출된 새로운 아르바이트 직종이다. 7000여 명의 게임방 업주를 회원으로 둔 한국인터넷멀티문화협회가 추산하는 전국의 게임방 수는 무려 1만7000여 개(지난해 12월 문화관광부 집계는 1만5000여 개소). 협회 정책국 직원 김윤범씨(27)는 “업소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는 만큼 1개 업소당 주야로 평균 2명의 아르바이트 직원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전국의 게임방 알바는 3만4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알바들의 나이는 대부분 19∼25세 가량. 간혹 월급을 받는 이도 있지만 이들의 보수는 거의 시급제다. 시간당 2000∼2500원 선이 ‘공정가격’이다. 하루 8시간 일하면 1만6000∼2만원 정도 번다.
게임방 알바는 다른 알바에 비해 ‘인기 짱’이다. 싹싹하고 친절한 알바나 미모의 여성 알바가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 단골들이 게임방을 찾는 횟수가 늘게 마련이어서 자연히 업주들도 ‘양질’의 알바를 구하는데 신경을 기울인다.
지난해 6월 개업한 게임방 로손컴(서울 개봉동)의 우동수사장(36)은 얼마전 알바 1명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와 생활정보지에 실었다가 깜짝 놀랐다. 일주일만에 접수된 이력서가 무려 200여 통. 경쟁률이 200대 1을 넘은 것이다. 게임방 알바에 대한 N세대의 인기를 짐작케 하는 단적인 예다.
“보수가 별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 없어 편하고 256∼512Kbps의 고속전용선으로 게임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방 알바를 하려는 또래들이 엄청 많아요.” 6월7일 게임방 웹진 ‘M.O.G’에 알바 구직정보를 올린 인천의 이모군(19)은 “친구 3명이 게임방 알바 경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유능한 알바는 게임 마니아들의 게임 선호도와 게임방 사업의 트렌드를 읽어내 업주의 소득증대에 기여하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게임방 알바 김모씨(21)는 “요즘은 한물간 ‘스타크’(스타크래프트)보다는 ‘포트리스’나 ‘리니지’가 인기”라며 “전체 손님의 70% 가량은 네트워크 게임을, 여성들은 주로 채팅사이트에 들어가 화상채팅을 한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는 설치된 PC 한대당 적어도 하루 1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려야 게임방이 유지될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새벽 5시부터 오전 8시까지 거의 모든 게임방은 ‘개점휴업’ 상태다. 특히 3∼6월은 비수기여서 새벽 손님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전날 밤 10시쯤 다른 알바와 ‘임무’를 교대한 뒤 이 시각까지 일했던 ‘야간 알바’들에겐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일부 부지런한(?) 알바들은 빈자리에 앉아 자기가 좋아하는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즐기기도 한다. 담배꽁초나 각종 오물이 가득한 화장실 청소도 이들의 몫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편안한 휴식을 끝내고 하루를 ‘준비’하는 이 시각, 할인혜택이 있는 야간 정액 이용권을 끊어 날밤을 새며 게임방을 사수(?)하던 골수 심야족도 비로소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게임 마니아 중엔 일회용 면도기와 세면도구, 간단한 속옷까지 갖고 다니는 대학생과 직장인도 있어요. 화장실에서 대충 씻는 거죠. 아침에 수업이나 일을 잘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들은 다음날도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력이 거의 ‘철인’ 수준이죠.”
대구시 서구 내당동 S게임방에서 8개월간 알바를 하다 최근 취업을 위해 그만둔 변치승씨(29)는 “게임방협회에서 나오는 안내책자에서 휴게실은 물론 샤워실까지 갖춘 최신 게임방 소식도 더러 접할 수 있었다”며 “서울엔 출근하는 직장인을 위해 새벽에 토스트와 우유를 무료로 제공하는 게임방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면 또다른 고객들이 게임방에 나타난다. 증권 시황을 체크하려는 데이 트레이더(초단타 매매를 주로 하는 주식투자자)들이다. 이들의 자리는 서로간의 ‘암묵적 동의’ 하에 대개 정해져 있다.
자신의 가게를 내기 전 한달 가량 다른 게임방에서 시장조사도 할 겸 알바 역할을 해본 로손컴의 우동수사장은 “가끔 데이 트레이더들의 옷차림이나 행색이 며칠만에 갑자기 초라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며 “이럴 경우 잘못 투자한 주식 때문에 큰 손해를 봤다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고 귀띔했다.
오후 4시. 게임방은 다시 손님들로 가득 찬다. 한 사이클이 끝나고 다시 일상의 반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알바들 역시 바빠지기 시작한다.
게임방 알바들에게도 직업병(?)은 있다. 공기가 탁한 실내에서 다른 알바와 교대하기 전까지 하루 8∼12시간씩 줄곧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줄담배 피우는 손님도 많은데다 종일 들어야 하는 소음 또한 만만치 않아 두통을 호소하는 알바들이 적지 않다.
최근엔 이같은 ‘애환’을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게임방 알바들의 친목모임도 생겨나고 있다. 6월8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엔 게임방 알바들의 사이버 카페(http://cafe.daum.net/arba/)까지 개설됐다.
게임방은 열린 공간이자 닫힌 공간이다. 누구든 올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일단 들어가 PC 앞에 앉으면 그 순간 ‘나’만을 위한 폐쇄 공간이 돼 버린다. 쉽게 게임중독에 빠져드는 게이머들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다수 알바들도 이를 수긍하는 한편 파생되는 악영향에 대해 염려스러워 한다.
“게임방은 모든 억눌린 욕망의 집결지인 것 같아요. 날마다 게임방에서 일과 놀이를 혼동하며 밤을 지새는 사람들을 보면 취미와 중독의 경계를 가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절제의 미덕은 필요하겠죠.”
한 게임방 알바의 이런 쓴소리가 아니더라도 게임방과 ‘게임 인간’의 전성시대가 단기간 내에 끝날 것 같진 않다. 알바의 ‘관찰’ 또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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